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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 – 아테나이의 영웅
트로이젠에서 태어난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를 찾아 아테나이로 가는 길에서 악인들을 물리치고, 크레타의 미궁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흩어진 아티카를 아테나이 중심으로 묶고 도시의 영웅왕이 된다. 그러나 아마조네스와의 전쟁,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의 비극, 페이리토오스와의 무모한 모험이 이어지면서 그의 삶은 흔들린다. 마침내 왕국을 잃은 테세우스는 스키로스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1.1 트로이젠에서 태어나다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는 오랫동안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는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았지만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트로이젠의 왕 피테우스를 찾아갔다. 피테우스는 신탁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딸 아이트라가 아이게우스와 함께하도록 했다. 전승에 따라서는 같은 밤 포세이돈도 아이트라와 관계를 맺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훗날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포세이돈의 아들이라고도 전해졌다.
아이게우스는 아테나이로 돌아가기 전에 큰 바위 아래에 자신의 검과 신발을 감추었다. 그리고 아이트라에게 아들이 태어나 그 바위를 들어 올릴 만큼 자라면 물건을 꺼내 아테나이로 보내라고 당부했다. 아이게우스는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친족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아이트라는 아들을 낳아 테세우스라 이름 짓고 트로이젠에서 길렀다. 테세우스는 외조부 피테우스의 보호 아래 성장했고, 힘과 용기를 갖춘 청년이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아버지의 비밀을 알려 주자 그는 바위를 움직여 그 아래 있던 검과 신발을 꺼냈다. 테세우스는 이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아테나이로 떠날 준비를 했다.
바위를 들어 아버지의 검과 신발을 꺼내는 테세우스
1.2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나다
아이트라와 피테우스는 테세우스에게 배를 타고 안전하게 아테나이로 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바닷길 대신 위험한 육로를 택했다. 당시 트로이젠에서 아테나이로 이어지는 길에는 여행자들을 해치는 악인들이 많았다. 헤라클레스의 활약을 동경했던 테세우스는 자신의 힘으로 길을 열기로 하고, 바위 아래에서 꺼낸 아버지의 검과 신발을 지닌 채 북쪽으로 떠났다.
그는 철퇴를 휘두르던 페리페테스를 쓰러뜨리고, 사람을 소나무에 묶어 죽이던 시니스를 물리쳤다. 이어 크롬미온의 사나운 암퇘지를 죽이고, 절벽에서 여행자를 바다로 떨어뜨리던 스키론과 씨름으로 사람을 죽이던 케르키온을 꺾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의 몸을 늘이거나 자르던 프로크루스테스를 같은 방식으로 죽였다. 이렇게 테세우스는 아테나이로 향하는 길의 위험을 차례로 제거했다.
아테나이에 도착했지만 아이게우스는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왕 곁의 메데이아는 낯선 청년을 위험한 인물로 여기고 아이게우스를 부추겨 그를 마라톤의 황소에게 보냈다고 전해진다. 테세우스는 황소를 제압하고 살아 돌아왔고, 메데이아는 이번에는 연회에서 독을 먹이려 했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고기를 자르려고 자신의 검을 꺼내자 아이게우스는 오래전 바위 아래 두었던 검을 알아보았다. 왕은 독이 든 잔을 떨어뜨리고 마침내 테세우스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였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쓰러뜨리는 젊은 테세우스
1.3 크레타의 미궁을 빠져나오다
아테나이는 크레타 왕 미노스에게 젊은 남녀를 조공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크레타의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에게 희생될 운명이었다. 테세우스는 이 치욕스러운 조공을 끝내겠다며 젊은이들과 함께 크레타로 향했다. 어떤 전승에서는 그가 희생자 가운데 제비에 뽑혔다고 하고, 다른 전승에서는 스스로 나섰다고 한다.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 배의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어 생환을 알리라고 당부했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았다. 아리아드네는 그가 미궁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실을 건네주었다고 전해진다. 테세우스는 실의 한쪽 끝을 입구에 매어 두고 미궁 깊숙이 들어가 미노타우로스와 맞섰다. 그는 괴물을 쓰러뜨린 뒤 실을 따라 되돌아와 함께 끌려온 아테나이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미궁을 빠져나왔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를 떠났으나 낙소스에서 두 사람이 헤어진 사연은 전승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이후 아테나이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약속했던 흰 돛을 올리는 일을 잊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게우스는 돌아오는 배의 검은 돛을 보고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살아 돌아온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승리와 함께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고, 곧 아테나이의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1.4 아테나이의 왕이 되다
크레타에서 돌아온 테세우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죽음이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리고 젊은이들을 구해 돌아왔지만, 흰 돛을 올리지 못한 실수 때문에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목숨을 잃었다. 테세우스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 했고, 이제 아이게우스가 다스리던 아테나이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테세우스는 이미 아테나이에 도착했을 때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왕권을 둘러싸고 아이게우스의 형제 팔라스의 아들들과 싸웠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이 충돌의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게 전해지지만, 테세우스가 아테나이 왕가 안에서도 자신의 지위를 지켜야 했음을 보여준다. 크레타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그에게 젊은 영웅으로서 큰 명성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왕이 된 뒤의 삶은 길 위에서 악인을 쓰러뜨리던 시절과 달랐다. 아티카 곳곳에는 각자의 전통과 지도자를 가진 여러 공동체가 흩어져 있었고, 아테나이 왕의 권력이 모든 지역에 똑같이 미치지도 않았다. 테세우스는 이제 혼자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지역을 이끌어야 하는 왕이 되었다. 아버지를 찾아 떠났던 젊은이의 모험은 끝났고, 아테나이와 아티카를 다스리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게우스의 죽음 뒤 왕위를 이어받는 테세우스
2.1 아티카를 하나로 모으다
후대 아테나이 전승에서 왕이 된 테세우스가 이룬 가장 큰 일은 아티카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공동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었다. 당시 여러 지역에는 저마다 회의 장소와 관리가 있었으며 각자의 관습에 따라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테세우스는 이들을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결합해 아티카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각 지역과 씨족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평민들은 새로운 통합에 비교적 쉽게 동의했지만, 지역에서 권력을 누리던 유력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약해질 것을 걱정했다. 테세우스는 자신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전쟁에서 군대를 이끌며 법을 지키는 역할을 맡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설득을 거쳐 그는 여러 지역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마침내 각 지역에 따로 존재하던 회의소와 관직은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고, 공동의 회의와 행정도 한곳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테세우스는 이 통합을 기념하는 축제를 마련하고 아티카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공동체가 하나로 결합되면서 아테나이는 아티카 전체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았으며, 테세우스는 후대 아테나이인들에게 아티카를 하나로 묶은 왕이자 도시의 창건 영웅으로 기억되었다.
아티카의 여러 공동체 대표들을 설득하는 테세우스
2.2 도시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다
아티카의 여러 공동체를 하나로 묶은 뒤 테세우스는 새로 통합된 공동체의 질서를 정비했다고 전해진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는 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기보다 전쟁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법을 지키는 역할을 맡으려 했다. 또한 시민을 귀족과 농민, 장인으로 나누어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귀족에게는 종교 의식과 관직, 법에 관한 일을 맡겼고, 농민과 장인도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했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 사람들도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티카 사람들이 한 도시를 중심으로 결합한 것을 기념해 공동의 축제를 마련했으며, 후대 전승에서는 파나테나이아의 기원도 테세우스에게 연결되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아테나이의 제사와 축제에 함께 참여하면서 새로 통합된 공동체의 결속도 강화되었다.
테세우스의 활동은 아티카 밖으로도 이어졌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이스트모스에 경계 표지를 세워 펠로폰네소스와 이오니아 방면의 경계를 나타냈다고 전한다. 또한 포세이돈을 기리는 이스트미아 경기를 마련하거나 새롭게 정비하고, 아테나이인들이 그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코린토스인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전승도 전해진다. 이처럼 후대의 이야기에서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영웅뿐 아니라 아테나이의 제도와 축제,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마련한 왕으로도 기억되었다.
아테나이 시민들 앞에서 새 질서를 세우는 테세우스
2.3 아마조네스의 여인을 데려오다
아테나이의 왕으로 자리 잡은 뒤 테세우스는 아마조네스와 연결되는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아마조네스의 땅에 갔는지는 전승마다 다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아마조네스 원정에 함께 참여했다고 하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가 따로 흑해 방면으로 항해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한 아마조네스 여인을 데리고 아테나이로 돌아왔다.
그 여인의 이름도 하나로 전해지지 않는다. 많은 전승에서는 안티오페라고 부르지만, 히폴리테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며 다른 이름이 나타나는 자료도 있다. 또한 그녀가 전투의 포로였는지, 테세우스를 따라온 것인지, 혹은 속임수로 배에 태워졌는지도 서로 다르다. 테세우스와 이 아마조네스 여인 사이에서는 히폴리토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테세우스가 아마조네스 여인을 아테나이로 데려온 사건은 곧 더 큰 전쟁으로 이어졌다. 동료를 빼앗긴 아마조네스들이 그리스로 내려와 아티카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멀리 국경에서 멈추지 않고 아테나이 가까이까지 진격했고, 도시 주변에서 직접 전투를 벌였다. 테세우스의 개인적인 모험이 이번에는 자신이 다스리는 도시 전체를 전쟁에 휘말리게 했다.
아마조네스 여인과 함께 아테나이로 돌아오는 테세우스
2.4 아마조네스의 침공을 막다
아마조네스의 군대는 먼 북방에서 그리스로 내려와 아티카 깊숙이 진격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자료에서는 아마조네스가 아테나이의 중심부까지 진격했으며, 프닉스와 무세이온 부근에서 직접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전투가 시작되자 아테나이인들은 한때 밀려났지만 테세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다시 맞섰다. 싸움은 도시 가까운 곳에서 이어졌고, 아테나이인들은 마침내 침공한 아마조네스의 세력을 몰아냈다.
테세우스와 함께했던 아마조네스 여인의 운명은 전승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안티오페 또는 히폴리테가 테세우스 편에서 자신의 동족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테세우스가 파이드라와 결혼하려 하자 분노하여 아마조네스와 함께 결혼식장을 공격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녀가 언제 죽었는지 하나의 전승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아마조네스와 아테나이의 싸움은 결국 테세우스 측의 승리로 끝났으며, 일부 전승에서는 양쪽이 화친을 맺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테세우스와 아마조네스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히폴리토스는 살아남았다. 그는 트로이젠에서 성장해 사냥과 말을 즐기는 젊은이가 되었고, 훗날 테세우스가 크레타 왕가의 파이드라를 아내로 맞으면서 왕가의 새로운 비극에 휘말리게 된다.
아테나이에서 아마조네스 군대와 맞서는 테세우스
3.1 파이드라를 아내로 맞다
아마조네스 여인과의 관계가 끝난 뒤 테세우스는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 파이드라와 결혼했다. 파이드라는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탈출하도록 도왔던 아리아드네의 동생이었다. 한때 미노스에게 바쳐지던 아테나이의 조공을 끝낸 테세우스가 이제 그 왕가의 딸을 아내로 맞은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데모폰과 아카마스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테세우스에게는 이미 아마조네스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들 히폴리토스가 있었다. 히폴리토스는 트로이젠에서 자랐으며 사냥과 말을 좋아하고 아르테미스를 특별히 숭배하는 젊은이로 전해진다. 특히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에서는 그가 사랑과 혼인을 멀리하면서 아프로디테를 제대로 공경하지 않았고,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여신이 그에게 복수하려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에서는 히폴리토스가 신비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테나이에 왔을 때 파이드라가 그를 보고 사랑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 뒤 테세우스는 팔라스의 아들들을 죽인 피의 오염을 씻기 위해 일 년 동안 고향을 떠나 트로이젠에서 지내게 되었고, 파이드라도 남편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이미 의붓아들을 향한 마음을 품고 있던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가 살아가는 트로이젠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괴로워했고, 그 사랑은 결국 테세우스의 가족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트로이젠에서 히폴리토스를 바라보는 파이드라
3.2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를 사랑하다
파이드라는 자신도 원하지 않았던 사랑에 사로잡혔다.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에서는 아프로디테가 자신을 업신여긴 히폴리토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파이드라의 마음속에 그를 향한 욕망을 일으킨다. 파이드라는 자신의 감정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식음을 줄이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녀의 쇠약한 모습을 걱정한 유모가 끈질기게 이유를 묻다가 마침내 비밀을 알게 된다.
파이드라는 비밀을 지키려 했지만 유모는 히폴리토스를 찾아가 주인의 마음을 전했다. 히폴리토스는 충격을 받고 파이드라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테세우스의 아들이자 그녀의 의붓아들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파이드라는 명예를 잃고 가족에게 수치를 남길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파이드라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전승에서 그녀는 죽기 전에 테세우스에게 남길 글을 준비했다. 그 글에는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실을 알지 못한 테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죽은 아내와 한 장의 고발문이었다. 이제 비극의 방향은 파이드라에서 히폴리토스로 옮겨갔다.
사랑의 고통 속에서 유모에게 비밀을 밝히는 파이드라
3.3 아들을 저주하다
테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목을 매 죽은 파이드라와 그녀가 남긴 글이었다. 글에는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는 고발이 적혀 있었다.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테세우스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아내와 왕가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했고, 히폴리토스를 불러 거칠게 꾸짖었다.
히폴리토스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맹세했지만 모든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유모가 파이드라의 사랑을 전했을 때 그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아내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이미 분노한 테세우스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테세우스는 히폴리토스를 자신의 집과 트로이젠에서 추방했다.
테세우스에게는 포세이돈이 세 번의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전승이 있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그 가운데 하나를 아들에게 사용했다. 테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히폴리토스가 그날을 무사히 넘기지 못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들의 결백을 확인하기도 전에 내려진 저주는 곧 현실이 되었다. 히폴리토스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전차를 몰고 트로이젠을 떠났고, 해안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파이드라의 글을 들고 히폴리토스를 꾸짖는 테세우스
3.4 히폴리토스의 죽음을 마주하다
히폴리토스가 전차를 몰고 해안을 달리던 때 바다에서 거대한 황소가 솟아올랐다. 파도와 함께 나타난 황소를 본 말들은 겁에 질려 날뛰었고, 히폴리토스는 고삐를 붙잡고 전차를 제어하려 했다. 그러나 전차는 바위에 부딪혀 부서졌고 그는 고삐에 몸이 얽힌 채 땅 위로 끌려가 치명상을 입었다. 포세이돈에게 아들의 죽음을 빌었던 테세우스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심하게 다친 히폴리토스가 다시 아버지 앞에 실려 오자 에우리피데스의 이야기에서는 아르테미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신은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프로디테의 계획이었으며, 히폴리토스가 파이드라를 욕보였다는 고발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힌다. 그제야 테세우스는 죄 없는 아들을 믿지 않고 포세이돈에게 죽음을 청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세우스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히폴리토스는 아버지가 아프로디테의 계략과 파이드라의 거짓 고발에 속았음을 알고 그를 용서했다. 아르테미스는 트로이젠의 처녀들이 혼인하기 전에 히폴리토스에게 머리카락을 바치고, 노래와 눈물로 그의 죽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 뒤 자리를 떠났다. 히폴리토스는 아버지를 용서한 뒤 숨을 거두었다. 파이드라는 이미 죽었고 이제 히폴리토스마저 세상을 떠났다. 테세우스는 너무 늦게 진실을 알았고, 자신의 성급한 저주로 아들을 잃은 채 남겨졌다.
죽어가는 히폴리토스와 진실을 깨달은 테세우스
4.1 페이리토오스와 맹우가 되다
테세우스의 명성이 그리스 여러 지역에 알려지자 라피타이의 왕 페이리토오스는 그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 영웅인지 시험하고 싶어 했다. 플루타르코스의 전승에서는 페이리토오스가 마라톤에서 테세우스의 소 떼를 몰고 달아났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테세우스가 무기를 들고 추격하자 페이리토오스는 도망치지 않고 돌아서서 그를 기다렸다.
두 영웅은 서로 마주했지만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의 기세와 용기를 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소를 훔친 벌을 테세우스가 정하도록 맡기겠다고 했다. 테세우스 역시 그를 벌하기보다 친구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험을 돕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여러 이야기에서 함께 행동하는 가장 가까운 전우로 등장한다.
테세우스는 훗날 페이리토오스의 혼인 잔치에도 참석했다. 그의 신부는 플루타르코스에서는 데이다메이아, 다른 전승에서는 히포다메이아라고 불린다. 잔치에 참석한 켄타우로스들이 술에 취해 신부와 여인들을 납치하려 하자 페이리토오스와 라피타이들이 맞서 싸웠고, 테세우스도 친구의 편에서 전투에 뛰어들었다. 이 싸움을 함께 겪은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굳어졌지만, 서로를 돕겠다는 약속은 훗날 훨씬 위험한 모험으로 이어졌다.
서로의 용기를 인정하고 손을 맞잡는 두 영웅
4.2 헬레네를 데려가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어느 때 서로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맞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은 먼저 스파르타로 가서 아직 혼인할 나이가 되지 않은 헬레네를 데려왔다. 아폴로도로스는 당시 헬레네가 열두 살이었다고 전하지만, 그녀의 나이는 자료마다 다르다. 두 영웅은 뒤쫓아 오는 사람들을 피해 펠로폰네소스를 벗어난 뒤 제비를 뽑아 누가 헬레네를 아내로 삼을지 결정했다.
제비는 테세우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헬레네가 아직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혼인하지 않고 그녀를 아티카의 아피드나이에 숨겨 두었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헬레네를 보살피게 하고, 친구 아피드노스에게 두 사람의 거처를 비밀로 지키도록 부탁했다. 헬레네의 가족이 그녀를 찾아 나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테세우스에게는 페이리토오스가 아내를 얻도록 도울 차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페이리토오스가 선택한 상대는 인간 세계의 여인이 아니었다. 그는 제우스의 딸이자 하데스의 왕비인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겠다고 했다. 테세우스는 그 계획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친구와 맺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기 위해 살아 있는 몸으로 죽은 자들의 세계를 향해 떠났다.
어린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타를 떠나는 두 영웅
4.3 페르세포네를 찾아 명계로 내려가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기 위해 명계로 내려갔다. 아폴로도로스의 전승에서 하데스는 두 사람이 찾아온 목적을 알고도 겉으로는 손님처럼 맞이했다. 그는 먼저 자리에 앉아 쉬라고 권했고, 두 영웅은 아무 의심 없이 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 앉으면 벗어날 수 없는 ‘망각의 의자’였다. 그들의 몸은 자리에 붙어 버렸고 뱀들이 둘을 휘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케르베로스를 데려오는 과업을 수행하던 헤라클레스가 명계에 내려와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테세우스를 붙잡아 자리에서 끌어내어 구했지만 페이리토오스까지 데려갈 수는 없었다. 어떤 전승에서는 페이리토오스가 영원히 명계에 남았다고 하고, 다른 자료에서는 두 사람의 구출 여부가 다르게 전해진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만 헤라클레스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온다.
플루타르코스는 이와 전혀 다른 전승도 소개한다. 그 이야기에서는 명계가 아니라 에페이로스의 몰로시아가 무대가 되고, 그곳의 왕 아이도네우스가 아내를 페르세포네, 딸을 코레, 사나운 개를 케르베로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이도네우스는 딸을 빼앗으러 온 두 사람을 붙잡아 페이리토오스를 죽이고 테세우스를 가두었다. 훗날 헤라클레스가 왕에게 간청해 테세우스를 풀어 주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소개한 이 전승에서도 페이리토오스는 죽고 테세우스만 살아 돌아온다.
망각의 의자에 붙잡힌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
4.4 왕국을 잃고 스키로스에서 죽다
테세우스가 헬레네를 데려간 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아테나이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헬레네의 오빠 디오스쿠로이는 동생을 되찾으려고 아티카로 진군해 그녀가 숨어 있던 아피드나이를 찾아냈다. 그들은 헬레네를 스파르타로 데려가면서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도 포로로 데려갔다. 그 사이 메네스테우스는 테세우스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모으며 아테나이에서 세력을 키웠다.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돌아온 테세우스는 다시 왕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예전처럼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없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는 계속되는 반대와 혼란 속에서 결국 아테나이를 떠났다. 테세우스는 아들 데모폰과 아카마스를 에우보이아의 엘레페노르에게 보내고 자신은 스키로스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토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리코메데스는 테세우스를 높은 절벽으로 데려간 뒤 아래로 밀어 죽였다고 전해진다. 왕이 그의 명성을 두려워했거나 메네스테우스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테세우스가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다른 전승도 있다. 오랜 세월 뒤 아테나이인들은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그의 유해를 찾으려 했고, 키몬이 스키로스를 점령한 뒤 테세우스의 것이라 여겨진 유골을 아테나이로 가져왔다. 시민들은 성대한 행렬과 제사로 이를 맞이했다. 타향에서 죽은 테세우스는 그렇게 다시 아테나이의 영웅으로 돌아왔다.
스키로스의 높은 절벽 위에 선 테세우스와 리코메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