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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9.12. 22:13 (2026.09.12. 22:13)

닉스와 에레보스 – 밤과 어둠의 태초신

 
카오스에서 태어난 닉스와 에레보스는 각각 밤과 깊은 어둠을 이루는 태초의 신이었다. 두 존재가 결합하자 밝은 상공의 아이테르와 낮의 여신 헤메라가 태어나 어둠과 빛이 교대하는 세계의 질서가 시작되었다. 닉스는 다시 홀로 운명과 죽음, 잠과 꿈, 복수와 노쇠, 불화와 속임수를 낳아 신과 인간의 삶을 둘러싼 힘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목   차
[숨기기]
닉스와 에레보스 – 밤과 어둠의 태초신
 
 
 

개요

 
카오스에서 태어난 닉스와 에레보스는 각각 밤과 깊은 어둠을 이루는 태초의 신이었다. 두 존재가 결합하자 밝은 상공의 아이테르와 낮의 여신 헤메라가 태어나 어둠과 빛이 교대하는 세계의 질서가 시작되었다. 닉스는 다시 홀로 운명과 죽음, 잠과 꿈, 복수와 노쇠, 불화와 속임수를 낳아 신과 인간의 삶을 둘러싼 힘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장 태초의 밤과 어둠

1.1 카오스에서 태어나다
 
세상이 아직 하늘과 땅으로 나뉘기 전, 가장 먼저 카오스가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말하는 혼란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생겨나기 전 벌어져 있던 깊고 텅 빈 공간에 가까웠다. 이어 넓은 가슴의 가이아와 땅 아래 깊숙한 타르타로스, 신과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에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 태양도 달도 없었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오는 시간의 흐름도 시작되지 않았다.
 
카오스에서는 또 다른 두 존재가 태어났다. 하나는 세상을 덮는 검은 밤 닉스였고, 다른 하나는 빛이 닿지 않는 깊은 어둠 에레보스였다. 닉스가 세상 위로 펼쳐지는 밤이라면, 에레보스는 세계 아래와 깊은 곳을 채우는 어둠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영역을 나누어 받은 신들이 아니었다. 세계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훨씬 전부터 존재한 태초의 힘이었다.
 
가이아가 땅의 터전을 이루어 앞으로 태어날 존재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했다면, 닉스와 에레보스는 아직 빛이 나타나지 않은 세계의 어두운 부분을 이루었다. 그때는 올림포스도, 제우스도,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오스에서 태어난 밤과 어둠은 그대로 머무르지 않았다. 두 태초신이 만나면서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과 낮이라는 새로운 존재들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오스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닉스와 에레보스
 
 
1.2 닉스 – 세상을 덮는 밤
 
닉스는 단순히 밤을 다스리는 여신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그녀는 밤 그 자체에 가까운 존재였다. 저녁이 찾아오면 검은 장막처럼 세상 위로 내려와 산과 들, 바다와 도시를 차례로 덮었다. 낮 동안 모습을 드러냈던 모든 것은 그녀가 지나가는 동안 어둠 속에 잠겼고, 신과 인간은 잠과 휴식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닉스는 다른 올림포스 신들처럼 화려한 궁전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헤시오도스는 세계의 끝, 땅과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맞닿는 깊은 곳에 그녀의 집이 있다고 전한다. 그곳은 짙은 구름에 싸여 있었으며, 낮의 빛조차 오래 머물지 못하는 곳이었다. 닉스는 그 집에서 기다리다가 자신의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와 다시 온 세계를 지나갔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둠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잠이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꿈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으며, 때로는 죽음과 불길한 운명도 밤의 그림자와 함께 다가왔다. 헤시오도스는 잠과 꿈, 죽음과 운명처럼 밤과 깊이 연결된 여러 힘들을 닉스의 자식으로 전한다. 닉스는 온화한 휴식을 가져오는 밤인 동시에 인간이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두려운 밤이기도 했다.
 
별빛 아래 세상을 검은 장막으로 덮는 닉스
 
 
1.3 에레보스 – 깊은 어둠
 
닉스와 함께 카오스에서 태어난 에레보스는 세계의 가장 깊은 곳을 채우는 어둠이었다. 닉스가 시간이 되면 세상 위로 펼쳐지는 밤이라면, 에레보스는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자리한 어둠에 가까웠다. 그에게는 제우스의 번개나 포세이돈의 삼지창 같은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에레보스 자신이 곧 빛이 사라진 검은 공간을 이루는 태초의 존재였다.
 
고대의 여러 전승에서는 에레보스라는 이름이 신의 이름뿐 아니라 명계의 어두운 영역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죽은 자들의 세계와 연결되면서 깊고 캄캄한 저승의 어둠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초의 계보에서 에레보스는 하데스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다. 크로노스와 레아에게서 하데스가 태어나 명계를 다스리기 오래전부터 세계에는 이미 에레보스의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에레보스는 많은 신화에서 직접 전쟁을 벌이거나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느껴진다. 태양이 비추지 못하는 곳과 세상의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검은 공간이 그의 모습을 대신했다. 그러나 조용히 세계의 깊은 곳을 채우던 에레보스가 닉스와 결합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깊은 어둠과 밤 사이에서 뜻밖에도 밝은 빛과 낮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빛 없는 세계의 깊은 곳에 자리한 에레보스
 
 
1.4 밤과 어둠이 하나가 되다
 
카오스에서 태어난 닉스와 에레보스는 밤과 어둠이라는 서로 맞닿은 태초의 힘이었다. 헤시오도스는 두 존재가 사랑으로 결합했다고 전한다. 아직 해도 달도 떠오르지 않고 낮이라는 시간조차 모습을 갖추지 않은 세계에서 밤과 깊은 어둠이 만났고, 그들 사이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존재들이 잉태되었다.
 
그러나 두 존재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또 다른 어둠이 아니었다. 닉스는 에레보스와의 결합으로 아이테르와 헤메라를 낳았다. 아이테르는 높은 하늘을 채우는 맑고 밝은 기운이었고, 헤메라는 세상을 밝히는 낮이었다. 검은 밤과 깊은 어둠 사이에서 밝은 상공과 낮이 태어난 것이다. 서로 정반대로 보이는 힘들이 하나의 계보 안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졌다.
 
닉스와 에레보스는 자식들을 이끌고 왕국을 세우거나 다른 신들과 권력을 다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결합은 세계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어둠에 싸여 있던 세계에 밝음이 생겼고, 밤과 교대하는 낮이 나타났다. 아직 헬리오스가 태양 마차를 몰기 훨씬 전이었지만 밝음과 어둠은 이미 서로 다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밤과 어둠에서 태어난 빛과 낮은 앞으로 이어질 세계의 끊임없는 교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주 선 닉스와 에레보스
 
 
 

제2장 어둠에서 빛이 태어나다

2.1 아이테르가 태어나다
 
닉스가 에레보스와 결합하여 낳은 밝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아이테르였다. 그는 인간들이 땅 위에서 숨 쉬는 평범한 공기와는 달랐다. 아이테르는 산봉우리와 구름보다 훨씬 높은 곳을 채우는 맑고 빛나는 기운이었다. 땅 가까이에 머무는 공기를 넘어 신들의 세계와 맞닿은 높은 상공을 이루며, 지금까지 어둠에 둘러싸여 있던 세계 위에 새로운 밝은 영역을 펼쳤다.
 
아이테르가 나타나자 에레보스의 깊은 어둠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공간이 생겼다. 세계 아래쪽과 깊은 곳에는 에레보스가 자리했고, 높은 곳에는 밝고 맑은 아이테르가 펼쳐졌다. 아직 헬리오스가 태양 마차를 몰지도 않았고, 훗날 아폴론이 찬란한 빛과 연결되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태초 세계에는 이미 어둠과 구별되는 밝은 하늘의 기운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아이테르의 빛이 부모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낸 것은 아니었다. 에레보스는 여전히 깊은 곳에 머물렀고, 닉스도 자신의 시간이 오면 세상을 덮었다. 밝음과 어둠은 서로를 없애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차지했다. 세상은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밤과 어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테르는 그렇게 높은 하늘을 밝히며, 서로 다른 힘들이 함께 존재하는 태초 세계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어둠 위로 찬란한 빛을 펼치며 태어나는 아이테르
 
 
2.2 헤메라가 태어나다
 
아이테르와 함께 태어난 또 하나의 존재는 헤메라였다. 그녀는 낮 그 자체였다. 닉스가 세상을 밤으로 덮는 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자신의 시간이 오면 밖으로 나와 어둠을 물러나게 했다. 헤메라가 지나가는 동안 땅과 바다에는 다시 빛이 돌아왔고, 밤 속에 가려졌던 세계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났다.
 
헤메라는 훗날 등장하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나 태양신 헬리오스와는 다른 태초신이었다. 에오스가 새벽을 열고 헬리오스가 태양을 몰고 하늘을 지나기 이전의 계보에서 헤메라는 이미 낮이라는 시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빛나는 아이테르와 함께 닉스와 에레보스가 만든 어둠의 세계에 밝은 시간을 가져왔다.
 
그러나 헤메라 역시 어머니 닉스를 없애지는 않았다. 낮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결국 닉스가 돌아왔고, 밤이 세상을 뒤덮어도 다시 헤메라가 나왔다. 어머니와 딸은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어느 한쪽이 사라지게 만들지 않았다. 그들의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세상은 낮에서 밤으로, 다시 밤에서 낮으로 이어졌다. 태초의 신들 사이에서 시간의 가장 기본적인 순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밤의 장막을 걷으며 세상에 낮을 여는 헤메라
 
 
2.3 밤과 낮이 서로 길을 비키다
 
세계의 끝, 땅과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가까워지는 곳에는 짙은 구름에 싸인 닉스의 집이 있었다. 그 경계 가까이에서는 이아페토스의 아들 아틀라스가 머리와 지치지 않는 두 손으로 넓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닉스의 집 앞에는 거대한 청동 문턱이 놓여 있었고, 밤의 여신 닉스와 낮의 여신 헤메라는 그곳에서 서로 마주치며 각자의 길을 오갔다.
 
헤메라가 집으로 돌아오는 때가 되면 닉스는 문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두 존재는 청동 문턱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스쳐 지나갔고, 한쪽이 집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한쪽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헤메라가 밖에 있는 동안에는 낮이 세상을 밝혔고, 그녀가 돌아와 닉스가 길을 나서면 검은 밤이 다시 땅과 바다를 덮었다.
 
두 존재가 같은 때에 집 안에 머무는 일은 없었다. 한쪽이 집으로 돌아오면 다른 한쪽은 문밖으로 나와 자신의 길을 갔다. 낮이 물러나야 밤이 찾아왔고, 밤이 지나가야 다시 낮이 시작되었다. 닉스와 헤메라는 서로 싸워 상대를 몰아내지 않았다. 같은 문턱에서 만나 길을 비켜 주며 끝없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었다. 태초부터 이어져 온 그들의 교대는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다시 밤이 오는 끊임없는 순환으로 이어졌다.
 
청동 문턱에서 서로 스쳐 가는 닉스와 헤메라
 
 
2.4 밤과 낮의 질서가 자리 잡다
 
처음 카오스가 벌어져 있었을 때에는 밤과 낮이 번갈아 찾아오는 시간의 흐름도 아직 모습을 갖추지 않았다. 그러나 닉스와 에레보스가 태어나고 그들에게서 아이테르와 헤메라가 나오면서 세계에는 서로 다른 밝음과 어둠의 영역이 생겨났다. 깊은 곳에는 에레보스의 어둠이 자리했고, 높은 곳에는 아이테르의 밝은 기운이 펼쳐졌다. 닉스가 세상을 덮으면 밤이 되었고, 헤메라가 나서면 다시 낮이 찾아왔다.
 
그동안 가이아 역시 자신의 몸에서 우라노스를 낳아 자신을 덮는 하늘을 만들고, 산과 바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세계에는 땅과 하늘, 바다와 육지, 높은 곳과 깊은 곳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닉스와 헤메라가 번갈아 움직이면서 그 공간 위로 밤과 낮이라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느 신의 명령도 없었지만 세계는 점차 일정한 모습을 갖추어 갔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끝나면 다시 밤이 찾아왔다. 밝음은 어둠을 영원히 없애지 않았고 어둠도 밝음을 완전히 삼키지 않았다. 닉스와 헤메라는 각자 자신의 시간을 지키면서 끝없이 자리를 바꾸었다. 그 반복은 훗날 신들과 인간들이 살아갈 세계의 가장 익숙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밤과 낮은 서로 반대되는 존재였지만, 바로 그 교대 속에서 하나의 끊임없는 질서를 이루게 되었다.
 
밤과 낮이 교대하는 세계를 내려다보는 닉스와 헤메라
 
 
 

제3장 밤이 낳은 존재들

3.1 운명과 죽음을 낳다
 
아이테르와 헤메라를 낳은 뒤에도 닉스의 출산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에레보스와 결합하지 않고 홀로 여러 존재를 세상에 내놓았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뜻하는 모로스와 죽음의 운명을 나타내는 케르, 죽음 그 자체인 타나토스가 밤의 품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모든 존재에게 언젠가는 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힘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헤시오도스의 이 계보에서 닉스는 인간의 삶을 정하는 모이라이도 낳았다. 클로토는 생명의 실을 잣고, 라케시스는 각자에게 돌아갈 몫을 정하며, 아트로포스는 정해진 때가 오면 그 실을 끊었다. 또 여러 죽음의 운명을 나타내는 케레스도 닉스의 딸들로 전해진다. 누구도 자신의 수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고, 영웅과 왕조차 정해진 운명의 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후반에서는 모이라이가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로 다시 전해지지만, 닉스에게서 태어났다는 앞선 계보에서는 이들이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오래된 태초의 운명으로 그려진다. 닉스 자신이 인간을 찾아다니며 죽음을 내리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의 밤에서 태어난 운명과 죽음의 존재들이 모든 생명의 곁을 따라다녔다. 인간은 자신의 몫을 살아가다가 마침내 타나토스를 만나야 했고, 그렇게 밤의 자식들은 삶의 끝을 지키는 힘으로 자리 잡았다.
 
모이라이와 타나토스를 거느린 닉스
 
 
3.2 잠과 꿈을 낳다
 
그러나 닉스의 자식들이 모두 죽음과 파멸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타나토스와 함께 힙노스, 곧 잠도 낳았다. 죽음과 잠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였다. 둘 다 인간의 눈을 감게 하고 움직임을 멈추게 했지만, 잠에 빠진 사람은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밤이 찾아오면 힙노스는 지친 사람들의 눈꺼풀을 무겁게 하고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잠시 잊게 했다.
 
닉스는 수많은 오네이로이, 곧 꿈들도 낳았다. 사람들이 힙노스의 손길 아래 잠에 빠지면 꿈들은 밤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꿈은 이미 지나간 일을 되살렸고, 어떤 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여 주는 듯했다. 신들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꿈을 보내기도 했지만, 모든 꿈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거짓된 꿈이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밤은 인간에게 두려움만 가져오는 시간이 아니었다. 낮 동안 지친 사람이 몸을 누이면 힙노스가 다가와 쉼을 주었고, 잠든 마음속에는 오네이로이가 찾아왔다.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은 죽음과 닮아 있었지만 아침이 오면 사람은 다시 눈을 떴다. 죽음의 타나토스와 잠의 힙노스, 그리고 수많은 꿈들이 모두 닉스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밤이 휴식과 두려움, 현실과 환상을 함께 품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잠든 인간들 위로 힙노스와 꿈들을 보내는 닉스
 
 
3.3 복수와 노쇠와 속임수를 낳다
 
닉스는 인간의 삶을 흔드는 또 다른 힘들도 홀로 낳았다. 잘못과 오만에 대가를 돌려주는 네메시스가 있었고, 사람을 속이는 아파테와 늙음을 가져오는 게라스가 뒤따랐다. 모욕과 비난을 뜻하는 모모스, 고통과 비탄을 나타내는 오이지스도 밤의 자식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힘들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뜻밖의 존재도 있었다. 사랑과 친밀한 결합을 나타내는 필로테스와 황금 사과의 정원을 지키는 헤스페리데스 역시 닉스의 딸들로 전해진다. 밤은 죽음과 고통만 낳은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사랑도 태어나고, 세상 끝 서쪽 정원에서는 아름다운 황금 사과를 지키는 존재들도 살아갔다. 닉스의 계보에는 삶의 밝고 어두운 모습이 함께 섞여 있었다.
 
마지막에는 에리스, 곧 불화가 태어났다. 에리스는 다시 노고와 망각, 굶주림과 고통, 싸움과 살육, 거짓과 다툼, 무법과 파멸 같은 수많은 힘들을 낳았다. 닉스에게서 시작된 어두운 계보가 인간의 삶 속으로 더욱 깊숙이 뻗어 나간 것이다. 사람들은 잠들고 꿈꾸며 사랑하지만, 동시에 늙고 속고 다투며 마침내 죽는다. 그 모든 순간의 뒤편에 닉스의 자식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네메시스·아파테·게라스·에리스를 낳는 닉스
 
 
3.4 신들도 두려워한 밤
 
제우스가 티탄들을 물리치고 올림포스의 왕이 된 뒤에도 태초의 밤 닉스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전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해치기 위해 잠의 신 힙노스에게 제우스를 깊은 잠에 빠뜨려 달라고 부탁했다. 힙노스가 제우스를 잠들게 하자 헤라는 라오메돈이 다스리던 일리오스를 함락하고 돌아가던 헤라클레스에게 거센 바람을 일으켰고, 그를 길에서 벗어나 코스섬으로 떠밀어 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제우스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분노했다. 그는 신들 사이에서 힙노스를 찾아내 벌하려 했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힙노스는 올림포스를 떠나 달아났다. 제우스에게 붙잡히면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던져질 처지였다. 궁지에 몰린 힙노스는 마침내 자신의 어머니 닉스에게로 달려가 그 품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뒤쫓던 제우스도 더 이상 힙노스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그는 오래된 밤의 여신 닉스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꺼렸다. 티탄들을 무너뜨리고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조차 카오스에서 태어난 태초의 밤과 함부로 맞서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닉스는 왕좌를 요구하거나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들의 세대가 바뀌고 수많은 영웅이 태어나고 사라져도 밤은 언제나 다시 돌아왔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 오래된 밤 자체가 닉스의 힘이었다.
 
닉스의 품으로 피신한 힙노스와 멈춰 선 제우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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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