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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모스와 티스베 – 벽 너머의 사랑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바빌론에서 이웃집에 살며 사랑하게 된 젊은 남녀였다. 부모의 반대로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은 집 사이 벽의 작은 틈으로 마음을 나누다가 밤중에 도시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피 묻은 베일을 본 피라모스가 티스베가 죽었다고 오해하면서 약속은 비극으로 바뀐다. 피라모스의 피로 물든 뽕나무 열매는 검붉게 변하고, 티스베의 기원에 따라 그 빛을 간직한다. 죽은 뒤 두 사람의 재는 하나의 항아리에 함께 담긴다.
1.1 바빌론의 두 이웃
세미라미스가 벽돌 성벽으로 둘렀다고 전해지는 바빌론에 서로 맞닿은 두 집이 있었다. 한 집에는 피라모스가, 다른 집에는 티스베가 살았다. 피라모스는 바빌론의 젊은이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이름났고, 티스베 또한 동방의 처녀들 가운데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이웃으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가까이 지내는 동안 마음속에는 어느새 사랑이 싹텄다.
처음에는 마주칠 때마다 나누는 짧은 인사와 눈길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서로를 기다리게 되었고, 마음은 점점 깊어졌다. 마침내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혼인하여 함께 살아가기를 바랐다. 서로의 집이 바로 곁에 있었으므로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두 집안의 부모들은 그들의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왜 반대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공개적으로 사랑을 드러내지 못했다. 부모들은 두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이미 깊어진 마음까지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 만나지 못하게 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오히려 더욱 간절해졌다.
바빌론의 이웃집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피라모스와 티스베
1.2 부모가 막은 혼인
혼인을 허락받지 못한 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동안에는 서로 가까이 다가갈 수도, 마음껏 말을 나눌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짓과 손짓으로 뜻을 전했고, 잠깐 마주칠 때마다 다음 만남을 기다렸다. 집안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두 집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고 서로의 생활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웠다. 그러나 부모의 허락 없이는 함께 거리를 걸을 수도 없었다. 한쪽 집에 피라모스가 있고 다른 쪽에 티스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둘은 각자의 방과 뜰에서 서로를 그리워해야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낮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동했지만 눈길이 마주치면 마음을 확인했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말을 나눌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자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두 집을 가르는 오래된 벽이 두 사람에게 뜻밖의 길을 열어 주게 되었다.
부모의 감시 속에서 멀리 서로를 바라보는 두 연인
1.3 벽의 틈을 발견하다
두 집을 나누는 벽에는 오래전 벽을 쌓을 때 생긴 작은 틈 하나가 남아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닿을 방법을 찾던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그 틈을 발견했다. 틈은 너무 좁아 얼굴을 마주 볼 수도, 손을 맞잡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벽 가까이에 입을 대고 조용히 말하면 목소리가 반대편까지 전해졌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벽 양쪽에 서서 남몰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라모스가 작은 목소리로 티스베를 부르면 그녀가 대답했고, 티스베의 속삭임은 벽을 지나 피라모스에게 닿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했으므로 마음껏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벽은 두 사람을 갈라놓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말을 이어 주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때때로 두 사람은 벽을 향해 자신들을 왜 이렇게 갈라놓느냐고 원망했다. 서로를 껴안을 만큼이라도 벌어지거나, 적어도 입맞춤 하나가 지나갈 틈을 내어 달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말을 주고받을 작은 길이라도 남겨 준 것에는 감사했다. 헤어질 때면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쪽 벽에 입을 맞추었지만, 그 입맞춤은 상대에게 닿지 못했다. 이러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두 사람은 마침내 벽 너머가 아니라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
벽의 작은 틈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이는 두 연인
1.4 밤의 탈출을 약속하다
어느 날 아침,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다시 벽의 틈 앞에서 만났다. 밤마다 같은 곳에서 속삭이고 헤어지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부모의 감시를 피해 집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해가 지고 집안 사람들이 잠들면 각자 몰래 문을 열고 나와 바빌론의 성벽 밖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아무 벽도 없이 서로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두려움보다 기쁨을 먼저 느꼈다.
도시 밖은 밤이면 낯설고 위험했으므로 만날 장소도 미리 정했다. 약속한 곳은 닌우스의 무덤 가까이였고, 그 곁에는 샘물이 흐르며 커다란 뽕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에는 아직 희고 밝은 열매가 달려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했다. 누가 먼저 도착하더라도 다른 한 사람이 올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약속했다.
그날 하루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가족들 앞에서 평소처럼 행동하면서도 해가 기울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저녁빛이 사라지고 도시가 어둠에 잠기자 각자의 집에서 기회를 살폈다. 집안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이제 곧 벽의 틈을 사이에 둔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터였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서로 다른 문 앞에서 조용히 탈출할 순간을 기다렸다.
벽의 틈을 사이에 두고 밤의 만남을 약속하는 두 연인
2.1 티스베가 먼저 도착하다
약속한 밤이 되자 티스베가 먼저 기회를 잡았다. 집안 사람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도록 베일을 두른 채 바빌론의 거리를 지나 성벽 밖으로 향했다. 한밤중에 홀로 집을 떠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피라모스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티스베는 무사히 성벽을 빠져나와 닌우스의 무덤 근처에 이르렀다. 약속한 곳에는 샘물이 흐르고 그 곁에 흰 열매가 달린 커다란 뽕나무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나무 아래에서 피라모스를 기다렸다. 밤은 고요했고 샘물 소리만 들렸다. 피라모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티스베는 그가 곧 올 것이라 생각하며 길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암사자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짐승은 방금 소를 잡아먹은 뒤였고 입과 턱에는 아직 피가 묻어 있었다. 목을 축이려고 샘으로 다가오는 암사자를 발견한 티스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피라모스를 더 기다리고 싶었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위험했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려 가까운 동굴을 향해 달아났다.
흰 뽕나무 아래에서 피라모스를 기다리는 티스베
2.2 암사자를 피해 달아나다
암사자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티스베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는 뽕나무 아래에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길을 살필 겨를도 없이 바위와 풀 사이를 지나 가까운 동굴로 향했다. 달빛 속에서 본 피 묻은 암사자의 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티스베는 피라모스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짐승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달려갔다.
급히 달아나는 동안 머리를 감싸고 있던 베일이 흘러내렸다. 티스베는 그것이 땅에 떨어졌지만 되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베일보다 목숨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 그녀는 어두운 동굴 안으로 몸을 숨긴 뒤 바깥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암사자는 티스베를 뒤쫓지 않았다. 목이 말랐던 짐승은 샘으로 내려가 물을 마신 뒤 다시 숲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가 암사자는 길가에 떨어진 티스베의 베일을 발견했다. 짐승은 그것을 물어뜯고 흔들었고, 입에 묻어 있던 피가 천에 번졌다. 얼마 뒤 암사자는 베일을 버려둔 채 숲속으로 사라졌다. 동굴에 숨어 있던 티스베는 이 일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위험이 지나가면 곧 피라모스가 기다릴 뽕나무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사이 피로 얼룩진 베일은 약속 장소 가까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피 묻은 암사자를 피해 동굴로 달아나는 티스베
2.3 땅에 떨어진 베일
암사자가 떠난 뒤 약속 장소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샘물은 전과 같이 흐르고 뽕나무의 흰 열매도 달빛을 받고 있었지만, 나무 가까운 땅에는 찢기고 피로 얼룩진 티스베의 베일이 남아 있었다. 부드러운 흙에는 암사자가 오가며 남긴 발자국도 선명했다. 티스베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얼마 뒤 피라모스가 성벽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늦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티스베가 먼저 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미안함을 품고 닌우스의 무덤 가까이 다가가던 그는 땅에 찍힌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흔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발자국은 바로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뽕나무 근처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라모스는 익숙한 베일을 보았다. 찢어진 천에는 붉은 피가 번져 있었고 티스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베일을 집어 들자마자 가장 두려운 결론에 이르렀다. 자신이 늦는 사이 티스베가 맹수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믿은 것이다. 주변을 더 살피거나 티스베의 목소리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피 묻은 베일과 맹수의 발자국은 그의 눈에 티스베의 죽음을 알리는 확실한 증거처럼 보였다.
암사자가 물어뜯는 티스베의 흰 베일
2.4 피라모스의 잘못된 판단
피라모스는 피로 얼룩진 베일을 손에 들고 자신을 책망했다. 티스베를 이런 위험한 곳으로 나오게 해 놓고도 자신이 먼저 와 기다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를 짓눌렀다. 그는 티스베가 맹수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이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그녀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근처에 맹수가 있다면 자신도 잡아먹으라고 외칠 만큼 절망했다.
그는 티스베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라 생각한 베일을 들고 약속했던 뽕나무 아래로 갔다. 피로 젖고 찢어진 천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여러 번 베일에 입을 맞추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만남을 기다리는 표시였던 뽕나무는 이제 피라모스에게 티스베가 죽은 장소처럼 보였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 없이 홀로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피라모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신의 몸을 찔렀다. 상처에서 피가 높이 솟구쳐 땅을 적셨고, 땅으로 스며든 피를 뽕나무의 뿌리가 머금으면서 본래 흰빛이던 열매는 차츰 어두운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피라모스는 나무 아래로 쓰러졌다. 그러나 티스베는 피라모스의 생각과 달리 여전히 동굴 속에 살아 있었다. 그녀는 암사자가 사라진 뒤 다시 약속 장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피 묻은 베일을 들고 절망하는 피라모스
3.1 돌아온 티스베
동굴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티스베는 한동안 바깥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암사자의 움직임이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동굴을 나왔다. 피라모스가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자신 때문에 피라모스가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닌우스의 무덤 가까이에 돌아온 티스베는 곧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분명 자신이 떠날 때까지 흰빛이던 뽕나무 열매가 짙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혹시 다른 장소에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샘과 무덤을 다시 살폈지만, 분명 조금 전 자신이 피라모스를 기다리던 바로 그곳이었다. 티스베는 나무가 갑자기 변한 까닭을 알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뽕나무 아래 피에 젖은 채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티스베는 놀라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쓰러진 사람이 피라모스임을 알아보자 곧 그의 곁으로 달려가 몸을 끌어안았다. 맹수를 피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전하려던 순간, 티스베는 피라모스가 깊은 상처를 입고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뽕나무 아래 쓰러진 피라모스를 발견하는 티스베
3.2 티스베의 부름
티스베는 피라모스의 상처를 보고 울부짖었다. 그의 몸을 품에 안고 상처를 막아 보려 했지만 피는 계속 흘러나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피라모스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자신은 살아 있으며 암사자에게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피라모스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고, 그의 숨결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티스베의 목소리를 들은 피라모스는 마지막 힘을 모아 눈을 떴다. 죽었다고 믿었던 티스베가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을 바라본 그는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손으로 입힌 상처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티스베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고, 곧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두 사람은 그토록 바라던 만남을 이루었지만 함께할 시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티스베는 곁에 떨어진 자신의 베일과 비어 있는 피라모스의 칼집을 보았다. 찢어진 베일은 암사자의 피 묻은 입에 물어뜯겨 붉게 얼룩져 있었고, 피라모스는 그것을 보고 티스베가 맹수에게 죽었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깨달은 티스베는 다시 피라모스의 몸을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일찍 돌아왔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티스베의 품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뜨는 피라모스
3.3 같은 죽음을 택하다
피라모스가 숨을 거둔 뒤 티스베는 한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부모의 눈을 피해 만나려고 했던 밤은 이제 혼자 돌아갈 수 없는 밤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피라모스의 몸을 끌어안고 슬퍼했다. 벽의 틈에서 수없이 나누었던 목소리와 서로를 직접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겨우 한 번 자유롭게 만나려 했을 뿐이었지만, 피 묻은 베일에서 시작된 오해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티스베는 피라모스가 사용한 칼과 자신의 베일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죽음이 이미 피라모스를 데려갔다면 자신도 그와 떨어져 살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부모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살아 있을 때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더라도 죽은 뒤에는 두 사람을 떼어 놓지 말고, 같은 무덤에 함께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티스베는 머리 위로 가지를 드리운 뽕나무에도 부탁했다. 지금 한 사람의 몸을 덮고 있는 이 나무가 곧 두 사람의 죽음을 함께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본래 희었던 열매가 두 사람의 피를 기억하는 어두운 빛을 계속 간직하기를 빌었다. 말을 마친 티스베는 피라모스가 사용한 칼을 집어 들었다. 아직 그의 피가 묻어 있는 칼끝을 자신의 가슴 아래에 겨누고, 피라모스가 갔던 길을 뒤따르기로 했다.
피라모스 곁에서 그의 칼을 집어 드는 티스베
3.4 두 사람을 기억하는 열매
티스베는 피라모스가 사용한 칼끝을 자신의 가슴 아래에 대고 그 위로 몸을 던졌다. 아직 피라모스의 피가 묻어 있던 칼은 이제 티스베에게도 죽음을 가져왔다. 그녀 역시 뽕나무 아래에서 쓰러졌다. 살아 있을 때에는 집 사이의 벽과 부모의 반대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마침내 같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제 그들을 갈라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티스베가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은 이루어졌다. 두 집안의 부모들은 죽은 뒤만이라도 자신들을 갈라놓지 말아 달라는 두 연인의 뜻을 받아들였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남은 재는 하나의 항아리에 함께 담겼다. 살아 있는 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결합이 죽은 뒤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신들도 티스베의 기원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피라모스의 피를 머금어 빛깔이 변한 열매는 이후 익을 때마다 검붉은 색을 띠게 되었다. 본래 흰 열매를 맺던 뽕나무는 그렇게 두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는 나무가 되었다. 벽의 작은 틈으로 시작된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은 마지막에는 하나의 항아리에 담긴 재와 검붉은 뽕나무 열매 속에 함께 남게 되었다.
두 연인의 죽음을 간직한 검붉은 뽕나무 열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