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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9.16. 15:02 (2026.09.16. 15:02)

펠레우스 –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의 아들로, 포코스의 죽음에 얽혀 고향에서 추방된 뒤 프티아와 이올코스를 떠돌며 여러 시련을 겪은 영웅이다. 두 차례 피의 죄를 씻고도 아카스토스의 배신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마침내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아내로 맞아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삶은 영웅의 영광보다 추방과 상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운명으로 가득하다.
목   차
[숨기기]
펠레우스 –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개요

 
펠레우스는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의 아들로, 포코스의 죽음에 얽혀 고향에서 추방된 뒤 프티아와 이올코스를 떠돌며 여러 시련을 겪은 영웅이다. 두 차례 피의 죄를 씻고도 아카스토스의 배신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마침내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아내로 맞아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삶은 영웅의 영광보다 추방과 상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운명으로 가득하다.
 
 
 

제1장 아이기나에서 쫓겨난 왕자

1.1 아이아코스의 아들로 태어나다
 
아이기나섬의 왕 아이아코스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펠레우스와 텔라몬은 엔데이스에게서 태어났고, 포코스는 바다의 님프 프사마테에게서 태어났다. 아이아코스는 제우스와 아이기나의 아들로 이름난 왕이었으며, 신들을 공경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펠레우스는 이런 아버지의 궁정에서 형제들과 함께 자라며 사냥과 무예, 경기에서 필요한 기술을 익혔다. 장차 여러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힘도 이 섬에서 길렀다.
 
세 형제 가운데 포코스는 특히 운동과 경기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원반을 던지고 몸을 겨루는 자리마다 포코스가 앞서자 그의 이름은 아이기나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높아졌다. 펠레우스와 텔라몬도 훌륭한 젊은이들이었지만, 이복형제가 자신들을 앞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처음에는 형제 사이의 경쟁처럼 보였던 일이 차츰 불편한 감정으로 변해 갔다.
 
평화로워 보였던 아이아코스의 집안에는 그렇게 작은 균열이 생겼다. 훗날 그리스의 여러 왕가로 퍼져 나갈 아이아키다이의 혈통은 이때 아직 한 섬에 모여 있었지만, 포코스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그들을 서로 다른 땅으로 흩어 놓는 첫 사건이 된다. 펠레우스의 긴 방랑도 바로 이 왕가의 불화에서 시작되었다.
 
아이기나 왕궁의 아이아코스와 세 아들
 
 
1.2 포코스와 형제들의 질투
 
포코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펠레우스와 텔라몬의 마음에는 불편함이 쌓였다. 포코스는 젊고 힘이 셌으며 여러 경기에서 형제들을 앞섰다. 어떤 전승에서는 두 형제의 어머니 엔데이스가 프사마테의 아들인 포코스를 미워하여 자기 아들들에게 그를 없애라고 부추겼다고도 한다.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들이었지만 어머니가 달랐고, 왕가 안에서 자라난 경쟁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포코스의 뛰어난 재능은 마침내 그를 위험한 자리에 세웠다.
 
어느 날 세 사람은 함께 운동 경기를 벌였다. 원반을 던지고 힘을 겨루는 평범한 경기처럼 보였지만, 포코스를 향한 적의는 이미 깊어져 있었다. 포코스는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알지 못한 채 형제들과 어울렸고, 펠레우스와 텔라몬은 경기 속에서 그를 쓰러뜨릴 기회를 노렸다. 밝은 경기장은 왕가의 비극이 벌어질 장소로 바뀌고 있었다.
 
아이아코스의 궁정에서 시작된 이 경쟁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신들의 후손으로 태어난 형제들이었지만 혈연은 그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오히려 같은 집안에서 누가 더 뛰어난가를 두고 생긴 질투가 가장 가까운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펠레우스가 평생 벗어나려 했던 피의 죄도 이 순간부터 그의 앞에 놓였다.
 
경기장에서 형제들을 앞서는 포코스
 
 
1.3 포코스의 죽음
 
포코스의 죽음은 전승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비블리오테케》에서는 텔라몬이 경기 중 원반을 포코스의 머리에 던져 그를 죽였고, 펠레우스가 시신을 숲에 숨기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반면 파우사니아스가 전한 이야기에서는 펠레우스가 원반을 던져 포코스를 직접 죽인 것으로 나온다. 두 형제가 함께 살해에 가담했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오래된 이야기들 사이에서 범행의 손은 달라지지만, 펠레우스가 이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은 같다.
 
포코스는 경기장에서 쓰러졌고, 형제들에게 남은 것은 승리가 아니라 범행을 감추려는 두려움이었다. 그들은 시신을 숨기고 사건을 덮으려 했지만 왕의 집안에서 일어난 죽음을 오래 감출 수는 없었다. 포코스를 찾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마침내 죽음의 진상이 아이아코스에게 알려졌다.
 
아이아코스는 두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공정한 왕으로 이름난 그는 자신의 자식이라고 해서 죄를 덮어 주지 않았다. 포코스의 죽음과 함께 펠레우스가 아이기나에서 누리던 왕자의 삶도 끝났다. 그는 한순간에 고향과 가족, 왕위에 대한 기대를 잃고 피의 죄를 짊어진 망명자가 되었다.
 
원반에 맞아 쓰러지는 포코스와 두 형제
 
 
1.4 프티아로 망명하다
 
아이아코스는 포코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펠레우스와 텔라몬을 아이기나에서 내쫓았다. 왕궁도, 아버지의 보호도, 태어나 자란 섬도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두 형제는 아이기나를 떠나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텔라몬은 살라미스로 향해 그곳에서 새로운 왕가를 이루었고, 펠레우스는 북쪽으로 떠나 테살리아 남부의 프티아로 향했다. 포코스의 죽음은 함께 자라온 형제들의 삶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프티아를 다스리던 에우리티온은 피의 죄를 짊어진 펠레우스를 받아들였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다른 땅으로 달아나는 것만으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없었고, 흘린 피에서 비롯된 오염을 씻는 정화가 필요했다. 펠레우스에게는 자신을 보호하고 정화해 줄 왕이 필요했다. 아이아코스의 아들이라는 높은 혈통도 그가 짊어진 죄를 대신 씻어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펠레우스는 왕자가 아니라 추방자의 신분으로 프티아에 들어섰다. 고향과 가족을 잃은 그에게 이 낯선 땅은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그는 여기에서 정화를 받고 새로운 가족과 영토를 얻으며 삶의 기반을 다시 세우게 된다. 훗날 아킬레우스와 미르미도네스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질 프티아는 이때부터 펠레우스의 운명과 깊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기나를 떠나 프티아로 향하는 펠레우스
 
 
 

제2장 피로 이어진 두 번째 추방

2.1 에우리티온에게 정화를 받다
 
프티아의 왕 에우리티온은 아이기나에서 쫓겨온 펠레우스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펠레우스가 짊어진 피의 죄를 씻어 주는 정화 의식을 행했다. 포코스의 죽음 이후 어디에도 머물 수 없었던 펠레우스는 비로소 한 나라의 보호 아래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정화를 받은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자격을 얻었다.
 
에우리티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딸 안티고네를 펠레우스의 아내로 주고, 나라의 삼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다. 고향을 잃은 망명자는 프티아에서 다시 집과 땅, 가족을 얻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폴리도라라는 딸도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한때 아이기나에서 모든 것을 잃었던 펠레우스에게 프티아는 두 번째 고향이 되어 갔다.
 
펠레우스는 더 이상 쫓기는 왕자만은 아니었다. 그는 에우리티온의 사위이자 프티아의 영주로 자리를 잡았고, 주변 영웅들과 함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훗날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이끌 미르미도네스의 땅과도 연결되는 프티아는 이제 펠레우스의 운명을 새롭게 묶어 주는 장소가 되었다. 이후 그의 운명은 이 땅과 오래 이어졌다.
 
에우리티온에게 정화 의식을 받는 펠레우스
 
 
2.2 아르고호의 영웅이 되다
 
프티아에서 자리를 잡은 펠레우스는 다시 영웅들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올코스의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아 먼 콜키스로 떠날 사람들을 모았을 때, 펠레우스도 아르고호에 오른 영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헤라클레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오르페우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왕자들이 한 배에 모였다. 아이기나에서 추방된 젊은이는 이제 그리스 전역에서 모인 영웅들과 같은 원정대에 서게 되었다.
 
아르고호의 항해는 흑해 동쪽 끝의 콜키스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이었다. 펠레우스는 바다와 낯선 땅을 지나며 동료들과 함께 수많은 위험을 겪었다. 이 원정에서 그의 이름이 이아손이나 헤라클레스처럼 앞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는 영웅 시대의 가장 큰 모험 가운데 하나에 참여한 아이아코스의 아들로 기억되었다. 텔라몬 역시 원정대에 이름을 올려, 흩어진 두 형제가 다시 같은 영웅들의 무리에 속하기도 했다.
 
원정을 마친 펠레우스는 다시 프티아의 삶으로 돌아왔다. 안티고네와 가족이 있고 에우리티온이 그를 받아 준 땅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칼리돈에서 거대한 멧돼지를 잡기 위해 영웅들을 부르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펠레우스는 장인 에우리티온과 함께 다시 사냥길에 나서게 된다.
 
아르고호에 오른 펠레우스와 영웅들
 
 
2.3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하다
 
칼리돈의 왕 오이네우스가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빠뜨리자, 분노한 여신은 나라를 황폐하게 만드는 거대한 멧돼지를 보냈다. 밭은 짓밟히고 사람과 가축이 희생되었다. 오이네우스는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타, 테세우스, 이아손,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텔라몬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칼리돈에 모였다. 펠레우스도 장인 에우리티온과 함께 프티아를 대표해 사냥에 참가했다.
 
영웅들은 숲을 에워싸며 멧돼지를 몰았다. 짐승은 사냥꾼들을 향해 돌진했고 몇몇 전사들이 쓰러졌다. 아탈란타가 먼저 화살을 맞혀 상처를 입혔고, 마침내 멜레아그로스가 창으로 멧돼지를 찔러 죽였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추격 속에서 펠레우스가 던진 창은 멧돼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날아갔다.
 
창에 맞아 쓰러진 사람은 바로 에우리티온이었다. 자신을 정화해 주고 딸과 영토까지 내어 준 은인이자 장인이 펠레우스의 손에 죽었다. 포코스의 죽음으로 고향을 잃었던 그는 또다시 가까운 사람의 피를 흘리고 말았다. 승리의 함성이 울려야 할 사냥터에서 펠레우스에게 남은 것은 두 번째 피의 죄였다.
 
거대한 멧돼지를 포위한 펠레우스와 영웅들
 
 
2.4 에우리티온을 죽이고 다시 떠나다
 
에우리티온의 죽음은 고의가 아니었다. 펠레우스는 멧돼지를 향해 창을 던졌고, 사냥의 혼란 속에서 잘못 날아간 창이 장인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우연한 죽음이라 해도 흘린 피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처음 정화해 준 사람이 이제 자신의 손에 죽었으니, 펠레우스는 그가 마련해 준 프티아의 삶을 그대로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는 아내 안티고네와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아이기나에서 쫓겨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왕을 찾아가 정화를 받아야 했다. 이번에 펠레우스가 향한 곳은 테살리아의 이올코스였다. 그곳에서는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아르고호 원정에 함께했던 영웅이기도 한 아카스토스라면 자신의 처지를 받아 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다.
 
아카스토스는 찾아온 펠레우스를 받아들이고 에우리티온의 죽음에 대한 죄를 정화해 주었다. 두 번째로 피의 오염에서 벗어난 펠레우스는 다시 살아갈 길을 얻는 듯했다. 하지만 이올코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온한 새 출발이 아니었다. 아카스토스의 왕비가 펠레우스를 바라보면서 그의 삶은 다시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쓰러진 에우리티온 앞에 선 펠레우스
 
 
 

제3장 펠리온산의 시련

3.1 아탈란타와 씨름하다
 
이올코스에서 아카스토스에게 정화를 받은 펠레우스는 한동안 그의 궁정에 머물렀다. 그 무렵 죽은 펠리아스를 기리는 장례 경기가 열렸고, 그리스 여러 곳에서 이름난 영웅들이 이올코스로 모였다. 《비블리오테케》에서는 이 경기에서 펠레우스가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으로 이름난 아탈란타와 씨름을 벌였다고 전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영웅들이 힘과 기량을 겨루는 성대한 자리였다.
 
펠레우스는 두 번이나 피의 죄를 짊어지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지만, 정화를 받은 뒤에는 다시 영웅들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아르고호 원정과 칼리돈의 사냥에 참여했던 그는 이제 이올코스에서도 자신의 힘과 기량을 드러냈다. 아카스토스 역시 한때 아르고호를 함께 탔던 동료였으므로, 펠레우스는 그의 궁정에서 새로운 안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왕궁 안에서는 뜻밖의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카스토스의 아내 아스티다메이아가 펠레우스에게 마음을 품은 것이다. 전승에 따라 그녀의 이름은 히폴리테 또는 크레테이스라고도 전해진다. 펠레우스가 경기장에서 명성을 되찾는 동안, 왕비의 마음에서는 그를 또다시 추방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을 욕망과 원한이 자라나고 있었다.
 
장례 경기에서 씨름하는 펠레우스와 아탈란타
 
 
3.2 왕비의 유혹과 거짓 고발
 
아스티다메이아는 펠레우스에게 몰래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펠레우스는 아카스토스에게 정화를 받은 손님이었고, 프티아에는 아내 안티고네가 있었다. 그는 왕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절당한 아스티다메이아의 마음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그녀는 펠레우스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먼저 멀리 떨어져 있는 안티고네를 노렸다.
 
왕비는 안티고네에게 펠레우스가 아카스토스의 딸 스테로페와 새로 혼인하려 한다는 거짓 소식을 보냈다.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믿은 안티고네는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펠레우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번째 삶의 터전에서 얻었던 아내마저 잃었다. 아스티다메이아의 복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편 아카스토스에게 펠레우스가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했다. 아카스토스는 분노했지만 자신이 직접 정화해 준 사람을 궁정에서 죽이는 일을 꺼렸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펠레우스를 대하면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피를 직접 묻히지 않고 산속에서 그를 죽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펠레우스는 자신을 받아 준 왕의 궁전에서 또다시 보이지 않는 함정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펠레우스를 유혹하는 아스티다메이아
 
 
3.3 펠리온산에 버려지다
 
아카스토스는 펠레우스에게 펠리온산으로 사냥을 가자고 제안했다. 산에 오른 사람들은 누가 더 많은 짐승을 잡는지 겨루었다. 펠레우스는 자신이 잡은 짐승의 혀를 하나씩 잘라 주머니에 넣어 두었고, 아카스토스의 일행은 그가 잡은 짐승들을 가져가 놓고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비웃었다. 그러자 펠레우스는 주머니에서 혀들을 꺼내 자신이 잡은 수를 증명했다. 사냥에서는 다시 그의 능력이 드러났다.
 
날이 저물고 지친 펠레우스가 산에서 잠들자 아카스토스는 마침내 계획을 실행했다. 그는 잠든 펠레우스 곁에서 칼을 가져가 쇠똥 속에 숨긴 뒤 일행과 함께 산을 내려가 버렸다.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고도 무기를 잃은 펠레우스가 위험한 펠리온산에서 죽게 만들 생각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펠레우스는 동료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자신을 지켜 줄 칼도 보이지 않았다. 산에는 거친 켄타우로스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무기를 잃은 그는 곧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두 번의 추방에서 살아남았던 펠레우스가 이번에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아카스토스는 그가 살아서 산을 내려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무기 없이 켄타우로스들에게 포위된 펠레우스
 
 
3.4 케이론에게 구원받다
 
펠레우스가 무기를 잃은 채 켄타우로스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를 구한 것은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이었다. 케이론은 난폭한 다른 켄타우로스들과 달리 의술과 음악, 사냥과 전투에 뛰어났으며 신들과 영웅들의 존경을 받는 존재였다. 그는 펠레우스를 위험에서 보호하고 아카스토스가 쇠똥 속에 감추어 둔 칼까지 찾아 돌려주었다. 펠레우스는 그의 도움으로 죽음이 기다리던 펠리온산에서 살아 내려올 수 있었다.
 
펠레우스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카스토스와 아스티다메이아의 일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복수는 훗날 이루어진다. 《비블리오테케》는 테티스와의 혼인과 아킬레우스의 탄생을 전한 뒤, 펠레우스가 이아손과 디오스쿠로이의 도움을 받아 이올코스를 공격했다고 기록한다. 도시는 함락되었고 아스티다메이아는 펠레우스의 손에 죽었다. 《비블리오테케》에서는 아카스토스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지만, 《아르고나우티카》에 대한 고대 주석 전승에서는 펠레우스가 이올코스로 돌아와 아스티다메이아와 함께 아카스토스도 죽였다고 전한다.
 
당장 펠리온산에서 펠레우스에게 남은 것은 케이론과의 깊은 인연이었다. 케이론은 잃어버린 무기를 되찾아 주고 그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 되었다. 이후 펠레우스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혼인하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길러야 했을 때도 케이론은 다시 그의 삶에 등장한다. 펠리온산은 죽음의 장소에서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는 곳으로 바뀌었다.
 
잃어버린 칼을 펠레우스에게 돌려주는 케이론
 
 
 

제4장 여신의 남편, 영웅의 아버지

4.1 테티스를 아내로 정하다
 
수많은 시련을 지나온 펠레우스의 운명에는 이제 인간의 왕녀가 아니라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들어왔다. 테티스는 네레우스와 도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네레이데스 가운데 하나로, 제우스와 포세이돈도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핀다로스와 《비블리오테케》의 전승에서는 테미스가 테티스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고 예언하자 두 신이 혼인을 포기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이 비밀을 제우스에게 알려 주었다고도 한다.
 
테티스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한다면, 제우스에게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냈던 자신의 운명이 되풀이될 수도 있었다. 결국 신들은 테티스를 불사의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그 상대로 선택된 사람이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였다. 그는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고, 신들을 공경하는 뛰어난 인간 영웅으로 이름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테티스가 인간과의 혼인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펠레우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으려면 먼저 붙잡아 놓아야 했다. 이때 다시 케이론이 그를 도왔다고 전해진다. 케이론은 테티스가 불이나 물, 짐승으로 모습을 바꾸더라도 놀라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펠레우스에게는 바다의 여신이 펼치는 마지막 시험을 견뎌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을 정하는 신들
 
 
4.2 변신하는 테티스를 붙잡다
 
펠레우스는 테티스가 나타나는 곳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그녀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붙잡았다. 테티스는 인간에게 붙잡힌 채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바꾸며 펠레우스를 떼어 내려 했다. 불길처럼 뜨겁게 변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물이 되며, 사납게 달려드는 짐승의 모습으로도 변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펠레우스는 케이론의 말을 기억하고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테티스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뱀이나 사자 같은 두려운 모습이 나타나도 펠레우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불길과 물결 앞에서도 그는 버텼다. 상대는 바다의 여신이었으므로 힘만으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내 테티스는 더 이상 모습을 바꾸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펠레우스는 시험을 견뎌 냈고 신들이 정한 혼인을 받아들일 자격을 얻었다. 수없이 고향에서 밀려나고 목숨까지 위협받았던 인간 영웅이 이제 불사의 여신을 아내로 맞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혼인은 펠리온산에서 신들까지 참석하는 성대한 잔치로 이어졌다. 마침내 인간과 여신의 결합이 이루어질 때가 왔다.
 
변신하는 테티스를 끝까지 붙잡은 펠레우스
 
 
4.3 펠리온에서 신들의 혼인을 올리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은 펠리온산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신과 인간의 결합이었기에 올림포스의 신들도 잔치에 참석해 두 사람에게 귀한 선물을 주었다. 케이론은 펠리온산의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을 펠레우스에게 주었고, 포세이돈은 불사의 말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를 선물했다. 《일리아스》에서는 신들이 혼인날 펠레우스에게 훌륭한 갑옷도 주었다고 전한다. 이 무구와 말들은 훗날 그의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이어졌다.
 
그러나 화려한 혼인 잔치에는 훗날 큰 전쟁으로 이어지는 불화의 씨앗도 들어왔다. 오래된 서사 전승에서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이 자리에서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사이에 다툼을 일으켰다고 한다. 후대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는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는 황금 사과를 던졌고, 세 여신이 서로 그것을 차지하려 했다고 전한다.
 
세 여신의 다툼을 판정하는 일은 훗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겨졌다. 파리스의 선택은 헬레네의 납치와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에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도 죽음을 맞는다. 신들의 축복 속에서 열린 두 사람의 혼인은 이렇게 최고의 영웅을 탄생시키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그 영웅이 싸우게 될 전쟁의 먼 출발점이 되었다.
 
신들의 축복 속 혼인하는 펠레우스와 테티스
 
 
4.4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로 남다
 
펠레우스와 테티스 사이에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났다. 한 전승에서는 테티스가 아들의 인간적인 부분을 없애 불사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밤마다 아이를 불 속에 넣고 낮에는 암브로시아를 발랐다고 한다. 이를 우연히 본 펠레우스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의식은 중단되었고, 테티스는 아들을 남겨 둔 채 바다로 떠났다. 펠레우스는 어린 아킬레우스를 케이론에게 맡겼고, 케이론은 펠리온산에서 그에게 사냥과 무예를 가르치며 뛰어난 영웅으로 길렀다.
 
세월이 흐르자 아킬레우스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전사로 성장했다. 트로이 원정이 시작될 무렵 펠레우스는 이미 나이가 들어 프티아에 남았고, 케이론에게 받은 물푸레나무 창과 신들이 선물한 갑옷과 불사의 말들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아킬레우스는 아버지의 무구를 지니고 미르미도네스를 이끌어 트로이로 떠났다. 《일리아스》에서도 그는 먼 고향에서 홀로 늙어 가는 아버지 펠레우스를 여러 차례 떠올린다.
 
펠레우스는 끝내 아들의 귀환을 보지 못했고, 후대 전승에서는 손자 네오프톨레모스의 죽음까지 겪는다. 에우리피데스의 《안드로마케》에서는 마지막에 테티스가 나타나 늙은 펠레우스에게 바닷가로 가 자신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녀는 네레이데스들과 함께 와 그를 데려가 불사의 존재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추방과 상실을 거듭했던 펠레우스의 긴 생애는 그렇게 마지막에 다시 테티스와 이어지며 끝을 맺는다.
 
아킬레우스에게 창과 무구를 물려주는 펠레우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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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