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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9.16. 15:07 (2026.09.16. 15:07)

텔라몬 –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은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의 아들로, 동생 펠레우스와 함께 그리스 영웅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복형제 포코스의 죽음으로 고향에서 추방된 그는 살라미스로 건너가 왕이 되었으며, 아르고호 원정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여했다. 뒤에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트로이를 공격하여 이름을 떨쳤고, 대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은 두 아들의 운명을 갈라놓았고, 늙은 텔라몬에게도 마지막 비극을 남겼다.
목   차
[숨기기]
텔라몬 – 살라미스의 왕
 
 
 

개요

 
텔라몬은 아이기나의 왕 아이아코스의 아들로, 동생 펠레우스와 함께 그리스 영웅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복형제 포코스의 죽음으로 고향에서 추방된 그는 살라미스로 건너가 왕이 되었으며, 아르고호 원정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여했다. 뒤에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트로이를 공격하여 이름을 떨쳤고, 대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은 두 아들의 운명을 갈라놓았고, 늙은 텔라몬에게도 마지막 비극을 남겼다.
 
 
 

제1장 아이아코스의 아들

1.1 아이기나의 왕자로 태어나다
 
아이기나섬에는 제우스와 아이기나의 아들 아이아코스가 다스리는 왕국이 있었다. 아이아코스는 신들에게까지 정의로운 사람으로 알려진 왕이었다. 그의 아내 엔데이스에게서는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태어났고, 바다의 님프 프사마테에게서는 포코스가 태어났다. 세 형제는 같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어머니가 달랐으며, 아이기나의 왕궁에서 함께 성장했다.
 
포코스는 특히 운동 경기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원반던지기를 비롯한 여러 경기에서 좀처럼 상대를 허락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그의 솜씨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텔라몬과 펠레우스 역시 용맹하고 힘센 왕자들이었지만, 포코스가 두각을 나타낼수록 형제 사이에는 시기가 생겨났다. 함께 자란 세 왕자의 관계에 조금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직 텔라몬은 살라미스의 왕도, 이름난 영웅들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그는 아이기나 왕가에서 펠레우스와 함께 성장하며 자신의 앞날을 바라보던 젊은 왕자였다. 그러나 포코스를 향한 형제들의 시기는 곧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텔라몬의 고향을 빼앗고 먼 살라미스로 향하게 할 운명이 이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아코스 왕궁에서 함께 자라는 텔라몬·펠레우스·포코스
 
 
1.2 포코스가 원반에 쓰러지다
 
어느 날 형제들은 함께 운동 경기를 벌였다. 포코스는 평소처럼 뛰어난 솜씨를 보였고, 텔라몬과 펠레우스도 그와 경쟁했다. 그러던 중 날아간 원반이 포코스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포코스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왕가의 경기는 한순간에 죽음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포코스가 죽게 된 경위는 전승에 따라 다르다. 아폴로도로스는 텔라몬과 펠레우스가 포코스를 시기하여 죽음을 계획했으며, 제비를 뽑은 끝에 텔라몬이 원반을 던져 그를 죽였다고 전한다. 다른 전승에서는 펠레우스가 원반을 던졌다고 하며, 그것이 고의였다고도 하고 경기 중 일어난 사고였다고도 한다. 두 형제가 함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널리 전해졌다.
 
형제들은 포코스의 시신을 감추려 했지만 사건은 오래 숨겨지지 않았다. 마침내 아이아코스는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정의를 무엇보다 중하게 여기던 왕에게 살인에 연루된 자들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죄를 덮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포코스의 죽음은 세 형제가 함께 자라던 아이기나 왕가를 돌이킬 수 없게 갈라놓았다.
 
경기장에서 원반에 맞아 쓰러지는 포코스와 놀란 형제들
 
 
1.3 아버지에게 추방당하다
 
포코스의 죽음을 알게 된 아이아코스는 텔라몬과 펠레우스를 아이기나에서 추방했다. 정의를 중히 여기던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죄를 덮어 주지 않았다. 두 형제는 함께 자란 왕궁과 고향을 떠나야 했고, 곧 서로 다른 길로 향했다. 펠레우스는 그리스 본토로 떠났으며, 텔라몬은 바다 건너 살라미스로 향했다.
 
뒤에 텔라몬은 자신이 포코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다시 아이기나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이아코스는 그가 섬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텔라몬은 밤중에 바다에 돌과 흙을 쌓아 둑을 만들고, 그 위에 서서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변론에도 아이아코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텔라몬에게 아이기나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게 완전히 닫혔다. 왕궁도 아버지도 더 이상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힘과 이름만을 의지해 새로운 삶을 찾아야 했다. 바다 위에서 아버지에게 거절당한 왕자는 다시 배를 돌렸고, 훗날 자신의 왕국과 두 아들의 이름이 이어질 살라미스를 새로운 고향으로 삼게 되었다.
 
바다에 쌓은 둑 위에서 아이아코스에게 호소하는 텔라몬
 
 
1.4 살라미스에 새로운 삶을 얻다
 
고향을 떠난 텔라몬은 아이기나 북쪽의 살라미스섬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키크레우스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살라미스의 오래된 영웅이자 지배자로 기억되는 인물이었다. 아이기나에서 추방당한 텔라몬은 키크레우스에게 받아들여졌고, 마침내 이 섬을 자신의 새로운 터전으로 삼게 되었다.
 
텔라몬이 살라미스의 왕이 된 과정은 전승에 따라 다르게 전해진다. 아폴로도로스의 계통에서는 키크레우스가 자식 없이 죽으면서 자신의 왕국을 텔라몬에게 물려주었다. 다른 전승에서는 키크레우스에게 글라우케라는 딸이 있었으며, 텔라몬이 그녀와 혼인하여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어느 전승을 따르든 아이기나에서 쫓겨난 텔라몬이 살라미스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점은 같다.
 
이제 텔라몬에게는 다시 자신이 다스릴 땅과 왕궁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섬에 머물러 왕 노릇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바다 건너에서 영웅들을 부르는 원정이 시작되면 그는 다시 무기를 들었다. 살라미스는 그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고, 이곳을 근거지로 텔라몬의 이름은 그리스 여러 영웅들의 모험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살라미스 왕 키크레우스에게 환영받는 추방자 텔라몬
 
 
 

제2장 살라미스의 왕

2.1 살라미스에 왕가를 세우다
 
살라미스에 자리를 잡은 텔라몬은 이제 자신의 왕가를 이루기 시작했다. 아이기나에서 추방되어 모든 것을 잃었던 그는 아티카와 마주한 이 섬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었다. 훗날 살라미스는 텔라몬뿐 아니라 그의 두 아들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의 이름과도 깊이 연결되는 왕국이 되었다.
 
그의 혼인에 대해서도 전승에는 차이가 있다. 한 전승에서는 키크레우스의 딸 글라우케가 텔라몬의 첫 아내였으며, 그녀가 죽은 뒤 텔라몬이 메가라 왕 알카토오스의 딸 페리보이아와 혼인했다고 한다. 페리보이아는 에리보이아라고도 불린다. 다른 전승에서는 글라우케와의 혼인이 나타나지 않고 페리보이아가 텔라몬의 아내로 등장한다.
 
그러나 아직 텔라몬의 후계자가 태어난 이야기는 조금 뒤에 찾아온다. 왕이 된 뒤에도 그는 젊은 시절의 삶을 버리지 않았다. 이올코스에서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원정대가 조직되고, 칼리돈에서 괴물 같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영웅들이 모이자 텔라몬도 살라미스를 떠났다. 왕관을 쓴 뒤에도 그는 여전히 창과 방패를 드는 전사였다.
 
살라미스 왕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텔라몬
 
 
2.2 아르고호에 오르다
 
이올코스의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떠날 영웅들을 모으자 텔라몬도 원정에 참가했다. 헤라클레스와 오르페우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등 이름난 영웅들이 아르고호에 올랐다. 살라미스의 왕이 된 텔라몬도 왕궁에 머무르기보다 다시 바다로 나가는 길을 택했고, 오랜 동료 헤라클레스와 함께 위험한 항해에 나섰다.
 
원정대가 미시아에 이르렀을 때 헤라클레스의 젊은 동료 힐라스가 물을 길으러 갔다가 사라졌다. 헤라클레스는 힐라스를 찾아 숲속을 헤맸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은 사이 순풍을 얻은 아르고호는 해안을 떠났다. 뒤늦게 헤라클레스가 남겨졌다는 사실을 안 텔라몬은 크게 화를 내며 이아손을 몰아세웠다. 그는 이아손이 헤라클레스의 명성을 시기해 일부러 버렸다고까지 의심했다.
 
그때 바다에서 글라우코스가 나타나 헤라클레스가 남겨진 것은 신들의 뜻이며 그에게는 다른 과업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렸다. 텔라몬은 자신의 의심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아손과 화해했다. 아르고호는 다시 콜키스를 향해 나아갔다. 이 사건은 헤라클레스를 쉽게 버릴 수 없었던 텔라몬의 강한 동료 의식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전해졌다.
 
미시아 해안에서 떠나는 아르고호를 바라보는 텔라몬
 
 
2.3 칼리돈의 멧돼지를 쫓다
 
아이톨리아의 칼리돈에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났을 때에도 그리스의 영웅들이 다시 모였다. 왕 오이네우스가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빠뜨린 일로 분노한 여신이 보낸 짐승이라고 전해졌다. 멧돼지는 밭을 짓밟고 포도나무를 뽑아 버렸으며, 사람들조차 두려워 산과 들을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멜레아그로스는 짐승을 잡기 위해 여러 지역의 영웅들을 불러들였다. 아탈란테,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테세우스, 펠레우스 등과 함께 텔라몬도 사냥에 참가한 인물로 전해진다. 한때 포코스의 죽음 때문에 헤어졌던 펠레우스와 텔라몬의 이름이 다시 같은 영웅들의 무리 속에 등장하는 셈이었다.
 
사냥은 많은 부상자와 희생자를 낳은 끝에 멜레아그로스가 멧돼지를 쓰러뜨리면서 끝났다. 텔라몬이 마지막 일격을 가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는 당대의 주요 영웅들이 모이는 사건마다 빠지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살라미스의 왕이라는 지위에 더해 아르고호 원정과 칼리돈 사냥은 그의 이름을 그리스 전역에 널리 알렸다.
 
영웅들과 함께 거대한 멧돼지를 추격하는 텔라몬
 
 
2.4 아마조네스와 싸우다
 
텔라몬의 이름은 또 하나의 먼 원정에서도 전해진다. 핀다로스는 그가 이올라오스와 함께 청동 활을 든 아마조네스와 맞서 싸웠다고 노래한다. 전승은 전쟁의 세부를 길게 전하지 않지만, 텔라몬이 아르고호와 칼리돈 사냥뿐 아니라 헤라클레스와 그 주변 영웅들이 벌인 여러 원정에 참여한 전사였음을 보여 준다.
 
아마조네스는 활과 창을 능숙하게 다루고 말을 타고 싸우는 여전사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의 땅을 향해 떠나는 원정은 그리스 영웅들에게도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그러나 텔라몬은 이올라오스와 함께 그 전쟁에 참여했다. 핀다로스는 사람을 굴복시키는 두려움조차 그의 용기를 꺾지 못했다고 하며 텔라몬의 담력을 칭송한다.
 
살라미스의 왕은 그렇게 여러 영웅들과 함께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전쟁을 치렀다. 그 가운데에서도 헤라클레스와 그의 집안과 맺은 인연은 오래 이어졌다. 마침내 헤라클레스가 오래전 자신을 속였던 트로이 왕 라오메돈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을 때, 텔라몬의 이름은 다시 원정군 가운데 나타났다. 그의 삶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이 시작될 때였다.
 
이올라오스와 함께 아마조네스 전사들과 싸우는 텔라몬
 
 
 

제3장 트로이를 함락시키다

3.1 라오메돈이 약속을 저버리다
 
트로이 왕 라오메돈은 포세이돈과 아폴론에게 성벽을 세우게 하고 약속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분노한 신들 때문에 트로이에는 재앙이 닥쳤고, 바다에서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해안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신탁에 따라 왕의 딸 헤시오네가 제물로 바쳐지게 되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헤라클레스가 그녀를 구하겠다고 나섰다.
 
헤라클레스는 괴물을 죽여 주는 대가로 라오메돈에게 특별한 말들을 요구했다. 그 말들은 제우스가 트로이 왕자 가니메데스를 올림포스로 데려간 뒤, 그의 아버지 트로스에게 보상으로 주었던 신성한 말들이었다. 라오메돈은 약속했지만 헤라클레스가 괴물을 죽이고 헤시오네를 구하자 다시 말을 바꾸어 그 말들을 내놓지 않았다.
 
두 번이나 약속을 저버린 왕을 헤라클레스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은 트로이를 떠났지만 언젠가 돌아와 라오메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기로 했다. 뒤에 원정군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그는 오래 함께 싸웠던 텔라몬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텔라몬에게도 이제 살라미스를 떠나 다시 전쟁에 나설 시간이 다가왔다.
 
바다 괴물과 싸우며 제물로 묶인 헤시오네를 구하는 헤라클레스
 
 
3.2 독수리의 징조와 트로이 원정
 
트로이 원정을 앞둔 헤라클레스가 텔라몬을 원정에 부르러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은 텔라몬의 집에서 함께 연회를 열었다. 핀다로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그 자리에서 제우스에게 기도를 올렸다. 텔라몬에게 강하고 용맹한 아들이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잇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새가 나타난 것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다. 그는 페리보이아가 장차 강대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하늘에 나타난 독수리를 따라 그 아이를 아이아스라 부르라고 말했다. 훗날 거대한 방패를 들고 트로이 전장에서 싸우게 될 대아이아스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아이아스의 전쟁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지금 트로이로 떠날 사람은 그의 아버지 텔라몬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여러 영웅과 전사들을 모아 원정 함대를 꾸렸다. 원정 함대의 규모는 전승에 따라 다르지만, 아폴로도로스 계통에서는 열여덟 척의 배가 언급된다. 텔라몬은 오랜 전우 헤라클레스와 함께 에게해를 건너 라오메돈의 트로이를 향했다.
 
제우스에게 기도하는 헤라클레스와 하늘에 나타난 독수리
 
 
3.3 가장 먼저 성벽을 넘다
 
헤라클레스의 군대가 트로이 해안에 상륙하자 라오메돈도 군사를 모아 맞섰다. 트로이의 성벽은 포세이돈과 아폴론이 건설에 관여했다고 전해질 만큼 견고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와 텔라몬을 비롯한 원정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트로이군은 점차 성 안으로 밀려났다.
 
마침내 공격군이 성벽에 이르렀을 때 텔라몬이 누구보다 먼저 방어선을 뚫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헤라클레스는 자신보다 텔라몬이 먼저 트로이를 돌파했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분노했다고 한다. 친구의 표정에서 위험을 알아챈 텔라몬은 곧 주변에 흩어진 돌을 모아 쌓기 시작했다.
 
헤라클레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텔라몬은 ‘승리의 헤라클레스’를 위한 제단을 세우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재치 있는 말에 헤라클레스의 분노가 풀렸다. 두 영웅은 다시 함께 싸웠고, 마침내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텔라몬이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그의 수많은 모험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무공으로 남았다.
 
트로이 성벽을 가장 먼저 넘어서는 무장한 텔라몬
 
 
3.4 헤시오네와 테우크로스를 얻다
 
트로이가 함락된 뒤 헤라클레스는 라오메돈에게 배신당했던 대가를 받아냈다. 그는 포로가 된 왕녀 헤시오네를 텔라몬에게 주었다. 다만 헤시오네에게는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을 구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 포다르케스를 선택하고 몸값을 대신하여 베일을 내놓았다고 전해진다.
 
살아남은 포다르케스는 이후 프리아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훗날 다시 세워진 트로이의 왕이 되었다. 헤시오네는 텔라몬을 따라 살라미스로 갔다. 한때 트로이의 공주였던 그녀는 이제 트로이를 함락시킨 장수의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텔라몬과 헤시오네 사이에서는 테우크로스가 태어났다. 살라미스 왕궁에는 페리보이아에게서 태어난 아이아스와 헤시오네에게서 태어난 테우크로스, 두 아들이 자라게 되었다. 한 사람은 거대한 방패와 창을 든 전사로, 다른 한 사람은 뛰어난 궁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두 아들은 훗날 아버지가 한 번 함락시켰던 바로 그 트로이로 다시 떠나게 된다.
 
포로 헤시오네를 데리고 트로이를 떠나는 텔라몬
 
 
 

제4장 두 아들의 아버지

4.1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가 자라다
 
아이아스는 아버지를 닮아 거대한 체격과 힘을 지닌 전사로 성장했다. 그는 커다란 방패를 들고 전열을 지키는 데 뛰어났으며, 살라미스 군대를 이끌 후계자로 여겨졌다. 반면 이복동생 테우크로스는 활을 선택했다. 그는 아이아스의 큰 방패 뒤에서 몸을 숨긴 채 화살을 쏘는 전법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달랐지만 전장에서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는 형제가 되었다. 아이아스가 앞에서 적의 공격을 막으면 테우크로스가 뒤에서 화살을 날렸다. 텔라몬은 자신이 젊은 시절 원정을 다니며 얻었던 명성과 힘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두 아들에게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테우크로스에게는 트로이 왕가의 피도 흐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헤시오네는 프리아모스의 누이였으므로, 테우크로스에게 프리아모스는 외삼촌이었다. 훗날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공격하게 되면 그는 아버지가 세운 살라미스의 전사로서 자신의 어머니가 태어난 도시와 싸워야 했다. 왕가의 오래된 인연은 다시 전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방패 든 아이아스와 활 든 테우크로스를 바라보는 텔라몬
 
 
4.2 두 아들을 트로이로 보내다
 
헬레네가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떠나자 그리스 여러 왕국에서 군대가 모였다. 살라미스에서도 전사들이 출정 준비를 했다. 이제 나이가 든 텔라몬은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았고, 맏아들 아이아스가 살라미스의 군대를 이끌었다. 테우크로스도 활을 들고 형과 함께 배에 올라 그리스군이 집결하는 아울리스를 향했다.
 
텔라몬에게 트로이는 낯선 땅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라오메돈의 트로이를 공격하고 그 성벽을 가장 먼저 넘어선 사람이었다. 그때 트로이에서 데려온 헤시오네에게서 태어난 테우크로스가 이제 어머니의 고향을 공격하러 떠나고 있었다. 전승에는 텔라몬이 살라미스 항구 가까운 돌에 앉아 두 아들이 탄 배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아버지가 한때 싸웠던 전쟁을 이제 아들들이 이어받았다. 아이아스는 거대한 방패를 들고 살라미스 전사들을 지휘했고, 테우크로스는 형의 곁에서 활을 쏘았다. 두 사람은 트로이 전쟁에서 살라미스의 이름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아들들을 떠나보내던 텔라몬은 그날 두 사람 가운데 한 명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항구의 돌에 앉아 아들들의 배를 바라보는 늙은 텔라몬
 
 
4.3 아이아스가 돌아오지 못하다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를 차지할 사람을 두고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경쟁했다. 그러나 심판 끝에 무구는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갔다. 자신이 그리스군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다고 생각한 아이아스는 깊은 수치와 분노에 빠졌다. 그는 자신을 모욕했다고 여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지휘관들에게 복수하려 했다.
 
그러나 아테나가 그의 정신을 미혹했다. 아이아스는 가축들을 그리스 장수들로 착각해 베어 넘기고 일부를 자신의 막사로 끌고 갔다. 광기가 걷힌 뒤 자신이 한 일을 깨달은 그는 견딜 수 없는 수치에 빠졌다. 마침내 아이아스는 땅에 칼을 세우고 그 위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그 칼은 오래전 헥토르와 결투한 뒤 서로 선물을 교환하면서 헥토르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뒤늦게 돌아온 테우크로스는 형의 죽음을 알고 비통해했다. 그는 아이아스의 시신을 지키며 장례를 치르려 했고, 이를 막으려는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에게도 맞섰다. 그러나 아이아스는 트로이 땅에 묻혔고, 테우크로스는 형과 함께 살라미스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긴 전쟁이 끝난 뒤 텔라몬에게 돌아온 것은 테우크로스 한 사람과 맏아들이 죽었다는 소식뿐이었다.
 
헥토르에게 받은 칼 앞에서 최후를 맞는 아이아스
 
 
4.4 테우크로스를 살라미스에서 내쫓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 테우크로스가 살라미스로 돌아왔지만 텔라몬은 그를 반갑게 맞아들이지 않았다. 늙은 왕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 아이아스였다. 그는 살아 돌아온 테우크로스에게 형을 지켜 내지 못한 책임을 물었다. 테우크로스는 아이아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형의 시신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끝까지 싸웠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텔라몬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오래전 자신도 포코스가 죽은 뒤 아이기나로 돌아가 아버지 아이아코스에게 결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흐른 뒤 텔라몬은 아버지의 자리에 서 있었고, 테우크로스는 한때의 자신처럼 결백을 호소하는 아들이 되어 있었다. 결국 텔라몬은 그를 살라미스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
 
테우크로스는 다시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자신이 떠나온 섬을 기억하여 그 도시에도 살라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텔라몬은 첫 번째 살라미스에 남았고 추방된 아들은 바다 건너 두 번째 살라미스를 세웠다. 아이기나에서 아버지에게 쫓겨났던 텔라몬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음 세대에서 되풀이되었다.
 
살라미스 왕궁에서 테우크로스의 귀환을 거부하는 텔라몬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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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