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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피아라오스 – 테바이 원정과 죽음의 예언
암피아라오스는 아르고스의 유력한 영웅이자 뛰어난 전사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였다. 그는 폴리네이케스를 돕는 테바이 원정이 파멸로 끝나고 자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아내 에리필레의 결정 때문에 전쟁에 나섰다. 예언대로 원정군은 무너졌고, 암피아라오스는 추격을 받던 중 제우스가 갈라 놓은 대지 속으로 전차와 함께 사라졌다. 뒤에는 오로포스에서 신탁을 내리는 신성한 영웅으로 숭배되었다.
1.1 오이클레스의 아들로 태어나다
암피아라오스는 아르고스에서 오이클레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는 오래전부터 예언자의 혈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조상 멜람푸스는 새의 움직임과 여러 징조를 살펴 신들의 뜻을 읽는 인물로 이름이 높았고, 그 예언자의 계보는 안티파테스와 오이클레스를 거쳐 암피아라오스에게 이어졌다. 훗날 암피아라오스 역시 멜람푸스의 후손답게 뛰어난 예언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신탁만을 전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르고스의 영웅으로서 말을 타고 전차를 몰았으며,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서는 전사이기도 했다. 다른 영웅들과 함께 위험한 모험에 참여할 만큼 무예가 뛰어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먼저 신들의 뜻과 징조를 살피는 신중함도 갖추고 있었다. 예언자의 통찰과 영웅의 용맹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암피아라오스는 아르고스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전쟁과 원정처럼 중대한 일을 앞두고 그의 판단을 쉽게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는 능력은 언제나 축복만은 아니었다. 훗날 테바이 원정을 앞두고 그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원정의 파멸과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알아보게 된다.
어린 암피아라오스를 바라보는 오이클레스와 가족
1.2 미래를 읽는 예언자가 되다
암피아라오스는 신들이 보내는 징조를 읽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판단하는 예언자로 이름을 얻었다. 고대인들은 예언자가 새의 비행과 제물의 내장, 꿈과 여러 전조를 살펴 신들의 뜻을 알아낸다고 믿었다. 파우사니아스가 전한 필리우스의 이야기에서는 암피아라오스가 그곳의 ‘예언의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잔 뒤 처음으로 예언의 능력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 뒤 그 건물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닫힌 채 보존되었다.
암피아라오스에게 특히 중요했던 것은 꿈이었다. 훗날 파우사니아스도 그가 꿈의 뜻을 풀이하는 데 뛰어났다고 기록했다. 그는 눈앞의 사건만 바라보지 않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신들의 뜻과 앞으로 닥칠 결과를 헤아리는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전쟁이나 원정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에서는 다른 영웅들보다 더욱 신중하게 행동했다.
이 예언의 능력은 훗날 테바이 원정을 앞두고 가장 무거운 짐이 되었다. 다른 장수들이 승리와 명예를 기대할 때 암피아라오스는 원정군의 끝을 미리 보았다. 아드라스토스를 제외한 장수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자신 역시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알았던 것이다. 미래를 볼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그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언의 집에서 신성한 꿈을 꾸는 암피아라오스
1.3 영웅들과 함께 이름을 떨치다
암피아라오스는 예언자로만 이름을 남긴 사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그리스 각지에서 모여든 영웅들과 함께 여러 모험에 참가했다. 칼리돈에 거대한 멧돼지가 나타나 들판을 망치자 오이네우스 왕은 이름난 영웅들을 불러 사냥에 나섰고, 암피아라오스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테, 테세우스, 펠레우스 같은 영웅들이 함께한 유명한 사냥이었다.
사냥이 시작되자 거대한 멧돼지는 숲을 헤치며 사냥꾼들을 공격했다. 아탈란테가 먼저 멧돼지의 등에 화살을 맞혔고, 이어 암피아라오스도 활을 당겨 멧돼지의 눈을 맞혔다고 전해진다. 결국 멜레아그로스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지만, 암피아라오스 역시 위험한 짐승과 맞서는 뛰어난 전사임을 보여 주었다. 아폴로도로스의 전승에서는 그가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의 영웅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도 이름을 올린다.
이러한 모험들은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그는 신의 뜻을 읽을 뿐 아니라 직접 전차를 몰고 무기를 들 수 있는 인물이었다. 훗날 아드라스토스가 테바이 원정을 위해 장수들을 모았을 때 암피아라오스를 빼놓기 어려웠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모험과 달리 테바이 원정에서 그는 출발하기도 전에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칼리돈 멧돼지의 눈을 화살로 맞히는 암피아라오스
1.4 에리필레와 운명의 약속을 맺다
암피아라오스는 아르고스에서 아드라스토스와 함께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때 심한 다툼이 일어났고, 아드라스토스가 아르고스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전승도 전한다. 결국 두 사람은 화해했으며, 아드라스토스는 자신의 누이 에리필레를 암피아라오스의 아내로 주었다. 이 혼인은 두 집안의 갈등을 끝내기 위한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해만으로는 오래된 불신을 완전히 없앨 수 없었다. 그래서 암피아라오스와 아드라스토스는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의견이 갈릴 경우 에리필레가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맹세했다. 아내이자 누이인 에리필레라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사람을 화해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분쟁을 막기 위한 현명한 장치처럼 보였다.
암피아라오스와 에리필레 사이에서는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 등이 태어났다. 가정은 평온해 보였고, 오래전에 맺은 약속도 잊힌 듯했다. 그러나 훗날 테바이 원정을 둘러싸고 암피아라오스와 아드라스토스가 다시 맞서면서 그 약속이 되살아났다. 두 사람 사이의 분쟁을 결정할 권한이 에리필레에게 있다는 사실을 폴리네이케스가 알아내면서, 오래된 화해의 맹세는 암피아라오스를 돌아오지 못할 길로 이끄는 덫이 된다.
에리필레 앞에서 화해의 맹세를 맺는 두 영웅
2.1 폴리네이케스가 아르고스에 오다
테바이에서 쫓겨난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찾아왔다. 그는 형제 에테오클레스와 번갈아 테바이를 다스리기로 약속했지만,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왕위를 돌려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비슷한 시기에 고향 칼리돈에서 쫓겨난 튀데우스도 아르고스에 머물고 있었다. 아드라스토스는 두 망명자를 사위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잃은 나라를 되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먼저 목표가 된 곳은 테바이였다. 아드라스토스는 폴리네이케스를 왕위에 되돌려 놓기 위해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카파네우스와 히포메돈, 파르테노파이오스 같은 이름난 장수들이 부름을 받았고, 튀데우스 역시 원정에 적극적이었다. 폴리네이케스에게는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테바이로 돌아갈 길이 열린 셈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처음부터 원정에 찬성하지 않았다. 암피아라오스였다. 그는 테바이에 대한 원정이 단순한 왕위 회복 전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드라스토스가 명예와 약속을 이야기하고 다른 장수들이 전공을 꿈꾸는 동안, 암피아라오스는 그들의 앞에 놓인 결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대가 아직 출발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는 이미 패배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드라스토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폴리네이케스
2.2 원정의 파멸을 예견하다
아드라스토스가 장수들을 모아 원정 계획을 밝히자 암피아라오스는 분명하게 반대했다. 그가 본 미래에서 테바이로 향하는 길은 승리의 길이 아니었다. 원정에 참가하는 장수들은 거의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오직 아드라스토스만이 목숨을 건질 운명이었다. 암피아라오스 자신 역시 살아 돌아오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는 원정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강하게 출정을 막으려 했다.
다른 영웅들에게 그의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고였다. 폴리네이케스에게는 왕위를 되찾을 유일한 기회였고, 아드라스토스에게는 사위에게 한 약속이 걸려 있었다. 튀데우스와 여러 장수도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암피아라오스는 명예나 전공보다 신들이 보여 준 징조를 믿었다. 그는 원정을 중지하라고 거듭 말하며 자신도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폴리네이케스에게 암피아라오스의 반대는 큰 장애물이었다. 뛰어난 전사이자 예언자인 그가 빠진다면 원정군의 힘이 약해질 뿐 아니라 다른 장수들의 마음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결국 폴리네이케스는 어떻게 하면 암피아라오스를 전쟁에 끌어낼 수 있을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오래된 약속을 알고 있던 이피스에게서 에리필레를 움직이라는 해답을 듣게 된다.
장수들 앞에서 테바이 원정을 만류하는 암피아라오스
2.3 하르모니아의 목걸이가 에리필레에게 가다
폴리네이케스는 암피아라오스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에리필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암피아라오스와 아드라스토스가 다시 의견을 달리하면 에리필레의 결정을 따르기로 오래전에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는 에리필레의 마음을 돌릴 선물로 테바이 왕가에 전해 내려오던 하르모니아의 황금 목걸이를 선택했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혼인 때 하르모니아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귀중한 보물이었다.
목걸이는 아름답고 값비싼 물건이었지만, 그것이 전해지는 곳마다 불행이 뒤따르는 보물로도 기억되었다. 암피아라오스는 폴리네이케스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짐작하고 에리필레에게 그의 선물을 받지 말라고 미리 경고했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는 결국 황금 목걸이를 에리필레에게 건넸고, 에리필레는 그 선물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테바이 원정을 두고 아드라스토스와 암피아라오스의 의견이 맞서자 결정권은 에리필레에게 넘어갔다. 그녀는 아드라스토스와 폴리네이케스의 편을 들어 원정을 지지했고, 암피아라오스도 함께 가야 한다고 판정했다. 자신이 맺은 맹세 때문에 그는 그 결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황금 목걸이를 받은 아내의 한마디가 결국 암피아라오스를 자신이 이미 예견한 돌아오지 못할 길로 밀어 넣었다.
황금 목걸이를 에리필레에게 건네는 폴리네이케스
2.4 죽음을 알고도 전쟁에 나서다
암피아라오스는 자신이 테바이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출정을 준비했다. 다른 장수들이 갑옷을 손질하고 승리를 이야기할 때 그의 마음은 이미 전쟁 뒤의 일까지 향해 있었다. 그는 아들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에게 자신이 돌아오지 못한 뒤의 일을 맡겼다. 두 아들이 성장하면 어머니 에리필레에게 복수하고 다시 테바이로 출정하라는 무거운 명령을 남겼다.
이 명령은 어린 아들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암피아라오스에게는 자신이 보지 못할 미래를 아들들에게 맡기는 마지막 준비였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도 운명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럼에도 맹세를 깨고 달아나거나 숨어 버리지는 않았다. 자신이 한 약속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른 장수들과 함께 전차에 올랐다.
아르고스에서는 마침내 일곱 장수가 이끄는 군대가 테바이를 향해 출발했다. 아드라스토스와 폴리네이케스에게 그 길은 왕위를 되찾기 위한 원정이었고, 다른 장수들에게는 영광을 얻을 기회였다. 하지만 암피아라오스에게는 이미 끝을 알고 떠나는 길이었다. 그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품은 채, 자신이 막으려 했던 군대의 한가운데에서 테바이를 향해 나아갔다.
두 아들과 작별하고 전차에 오르는 암피아라오스
3.1 네메아에서 불길한 징조를 보다
테바이로 향하던 일곱 장수의 군대는 네메아에 이르러 마실 물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어린 오펠테스를 돌보던 휘프시필레를 만났다. 군사들이 샘의 위치를 묻자 그녀는 아이를 잠시 풀밭에 내려놓고 길을 안내했다. 그 사이 뱀이 다가와 오펠테스를 물어 죽였고, 돌아온 원정군은 뱀을 죽인 뒤 아이를 장사 지냈다. 출정길에서 맞닥뜨린 첫 죽음이었다.
암피아라오스는 이 일을 우연한 사고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오펠테스의 죽음을 앞으로 원정군에 닥칠 파멸을 알리는 징조라고 해석했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운명의 시작’이라는 뜻의 아르케모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이미 테바이 원정의 실패를 예견했던 암피아라오스에게 이 사건은 자신이 본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불길한 표지였다.
장수들은 오펠테스를 기리기 위해 장례 경기를 열었고, 이 경기가 훗날 네메아 경기의 기원으로 전해졌다. 아드라스토스는 경마에서, 에테오클로스는 달리기에서, 튀데우스는 권투에서 승리했다. 암피아라오스는 멀리뛰기와 원반던지기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경기를 마친 원정군은 다시 무기를 챙겨 테바이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죽은 오펠테스를 바라보며 징조를 읽는 암피아라오스
3.2 일곱 장수가 테바이 성문에 서다
원정군이 키타이론을 지나 테바이에 가까워지자 마지막으로 협상을 시도했다. 튀데우스가 사자로 성 안에 들어가 에테오클레스에게 약속대로 왕위를 폴리네이케스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에테오클레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튀데우스를 테바이 사람들이 습격하려 했지만 그는 매복한 자들을 거의 모두 쓰러뜨리고 아르고스군 진영으로 돌아왔다.
협상의 길이 끊기자 일곱 장수는 무장을 갖추고 테바이 성벽으로 나아갔다. 성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었고 장수들은 각자 한 문씩 맡았다. 전승에 따라 배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아폴로도로스의 이야기에서는 암피아라오스가 프로이티데스 문 앞에 섰다. 그가 전차를 세운 곳 맞은편에는 자신들이 무너뜨려야 할 높은 성벽과 무장한 테바이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바이 안에서도 예언이 움직이고 있었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희생을 알려 주었고,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우스가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고 전해진다. 성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예언이 같은 전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자 암피아라오스도 다른 장수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자신이 맡은 성문 앞에서 싸움에 나섰다.
프로이티데스 문 앞에 전차를 세운 암피아라오스
3.3 예언대로 전세가 무너지다
전투가 시작되자 아르고스군은 테바이군을 성벽 가까이까지 밀어붙였다. 장수들은 각자 맡은 성문에서 병사들을 이끌었고, 공격은 한때 성공하는 듯 보였다. 카파네우스는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며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제우스의 번개조차 자신을 막지 못할 것처럼 오만하게 외쳤고,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져 그를 쓰러뜨렸다.
카파네우스가 죽자 아르고스군은 크게 흔들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양쪽 군대는 왕위를 둘러싼 싸움을 끝내기 위해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직접 결투하도록 했다. 두 형제는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고, 치열한 싸움 끝에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혀 함께 쓰러졌다. 왕위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원정에서 정작 왕좌를 다투던 두 형제가 모두 죽은 것이다.
그러나 전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벌어진 격전에서 히포메돈과 에테오클로스, 파르테노파이오스 등 아르고스의 장수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암피아라오스가 출정 전에 보았던 미래가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었다. 다른 장수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이제 자신의 차례도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번개에 맞아 성벽에서 추락하는 카파네우스
3.4 튀데우스의 마지막을 지켜보다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튀데우스는 테바이의 전사 멜라니포스에게 치명상을 입었다. 튀데우스가 죽어 가는 가운데 멜라니포스 역시 격전 속에서 쓰러졌다. 튀데우스를 아끼던 아테나는 제우스에게서 불사의 약을 받아 그를 살리려 했다고 전해진다. 신의 도움만 닿는다면 그는 다른 장수들과 달리 죽음을 피하고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암피아라오스는 튀데우스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는 튀데우스가 테바이 원정을 밀어붙여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게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다. 아테나가 튀데우스를 살리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암피아라오스는 쓰러진 멜라니포스의 머리를 잘라 튀데우스에게 가져다주었다. 중상을 입은 튀데우스는 그 머리를 갈라 뇌를 먹었고, 이를 본 아테나는 혐오하여 그에게 주려던 불사의 은혜를 거두었다.
튀데우스까지 죽으면서 일곱 장수의 원정은 사실상 끝나 가고 있었다. 암피아라오스의 행동은 냉혹했지만 그 역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을 피할 수 없었다. 전장은 무너졌고 아르고스 병사들은 성벽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도주였다. 암피아라오스는 마부 바톤과 함께 전차에 올라 무너지는 전장을 빠져나갔다.
멜라니포스의 머리를 튀데우스에게 내미는 암피아라오스
4.1 일곱 장수의 원정이 무너지다
카파네우스가 제우스의 번개에 쓰러지고 다른 장수들까지 차례로 죽자 아르고스군의 공격은 완전히 무너졌다. 성벽을 향해 달려들던 병사들은 방향을 돌려 달아났고, 테바이군은 성문을 열어 패주하는 적을 추격했다. 처음 일곱 장수가 이끌고 출발했던 원정군은 이제 흩어진 패잔병 무리가 되었다. 암피아라오스가 출정 전에 경고했던 파멸이 눈앞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드라스토스는 신마 아리온을 타고 전장을 빠져나가 목숨을 건졌다고 전해진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암피아라오스가 처음부터 내다보았던 예언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암피아라오스에게는 같은 귀환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마부 바톤과 함께 전차에 올라 무너진 전장을 빠져나갔다. 전차의 말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이스메노스 강 쪽으로 힘껏 달렸다.
암피아라오스는 자신이 살아 돌아가지 못할 운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장에서 멈춰 서서 마지막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는 전사로서 끝까지 고삐를 붙잡고 전차를 몰아 추격을 피하려 했다. 자신에게 닥칠 운명의 모습이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뒤에서는 테바이의 전사들이 패주하는 아르고스군을 추격하고 있었다.
무너진 전장을 전차로 빠져나가는 암피아라오스
4.2 페리클리메노스의 추격을 받다
패주하는 암피아라오스의 뒤에는 테바이의 전사 페리클리메노스가 따라붙었다. 포세이돈의 아들로 전해지는 그는 달아나는 암피아라오스를 놓치지 않고 추격했다. 암피아라오스는 마부 바톤과 함께 전차를 몰아 이스메노스 강가를 따라 달렸고, 말들은 전장의 먼지를 일으키며 힘껏 내달렸다. 그러나 페리클리메노스는 점점 거리를 좁히며 그의 등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추격은 이제 피할 곳 없는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암피아라오스에게 남은 동료는 거의 없었다. 함께 테바이 성문을 공격했던 장수들은 대부분 쓰러졌고, 폴리네이케스도 형 에테오클레스와 함께 죽었다. 아드라스토스만이 신마 아리온을 타고 전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출정 전에 예언했던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암피아라오스는 마지막까지 전차의 고삐를 놓지 않고 추격을 피하려 했다.
페리클리메노스가 마침내 창으로 그의 등을 찌르려는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제우스의 번개가 떨어졌고, 암피아라오스의 전차 앞에서 대지가 크게 갈라졌다. 적의 창이 닿기 직전 땅이 입을 벌리면서 암피아라오스의 최후는 다른 장수들의 죽음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창을 든 페리클리메노스에게 쫓기는 전차
4.3 대지가 갈라져 암피아라오스를 삼키다
제우스의 번개가 떨어지자 땅은 암피아라오스의 전차를 삼킬 만큼 크게 갈라졌다. 그는 마부 바톤과 말들, 전차와 함께 그 틈 속으로 들어갔다. 페리클리메노스가 창을 던져 그를 쓰러뜨리기 전에 대지는 다시 닫혔다. 전장에서는 수많은 장수가 피를 흘리며 죽었지만, 암피아라오스는 시신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고대의 이야기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한 죽음으로 보지 않았다. 제우스가 암피아라오스를 적의 손에 죽게 두지 않고 땅속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어떤 전승에서는 그가 죽은 자처럼 하데스로 내려갔으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예견하고 전쟁에 끌려온 영웅에게 신이 특별한 마지막을 허락한 셈이었다.
테바이 원정에서 살아 돌아온 주요 장수는 아드라스토스뿐이었다. 암피아라오스가 출정 전에 말했던 예언은 끝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대지가 닫히는 순간 끝나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장소와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암피아라오스는 전쟁에서 쓰러진 영웅이 아니라 대지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인간에게 신탁을 내리는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대지 속으로 전차째 사라지는 암피아라오스
4.4 신탁의 영웅으로 남다
암피아라오스에 대한 숭배는 훗날 오로포스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곳에는 그의 이름을 딴 성소와 신탁소가 세워졌고, 사람들은 병을 고치거나 앞으로 닥칠 일을 알고 싶을 때 그를 찾아왔다. 파우사니아스는 오로포스 사람들이 암피아라오스를 신성한 존재로 숭배했으며, 그에 대한 숭배가 다른 그리스 지역으로도 퍼졌다고 전한다.
신탁을 구하는 사람들은 먼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암피아라오스와 여러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모든 의식을 마치면 숫양을 희생하고 그 가죽을 바닥에 깐 뒤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사람들은 잠든 동안 꾸는 꿈을 통해 암피아라오스가 앞으로의 일이나 병을 고칠 방법을 알려 준다고 믿었다. 생전에 꿈과 징조를 풀이하던 예언자가 신격화된 뒤에는 사람들의 꿈을 통해 신탁을 내리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암피아라오스는 테바이 원정의 패배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미리 알았지만 맹세 때문에 전쟁에 나섰고, 마지막에는 제우스가 갈라 놓은 대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오로포스의 신탁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죽음을 예언했던 사람은 마침내 죽음 너머에서 예언을 내리는 신성한 영웅으로 남았다.
숫양 가죽 위에서 신탁의 꿈을 기다리는 순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