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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별전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9.20. 19:13 (2026.09.20. 19:13)

아이네이아스 – 트로이에서 로마로 이어진 영웅

 
아이네이아스는 아프로디테와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나 트로이 전쟁의 장수가 되었고, 멸망한 도시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이끌고 탈출한 뒤 생존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디도와의 사랑과 이별, 명계 방문을 지나 라티움에 도착한 그는 다시 전쟁에 휘말렸고, 투르누스와의 결투 끝에 새로운 정착의 길을 열었다. 그의 삶은 트로이의 몰락에서 시작해 훗날 로마 건국 전승으로 이어지는 긴 연결고리가 되었다.
목   차
[숨기기]
아이네이아스 – 트로이에서 로마로 이어진 영웅
 
 
 

개요

 
아이네이아스는 아프로디테와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나 트로이 전쟁의 장수가 되었고, 멸망한 도시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이끌고 탈출한 뒤 생존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디도와의 사랑과 이별, 명계 방문을 지나 라티움에 도착한 그는 다시 전쟁에 휘말렸고, 투르누스와의 결투 끝에 새로운 정착의 길을 열었다. 그의 삶은 트로이의 몰락에서 시작해 훗날 로마 건국 전승으로 이어지는 긴 연결고리가 되었다.
 
 
 

제1장. 신의 아들, 트로이의 전사가 되다

1.1 아프로디테와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나다
 
트로이 왕가의 방계에 속한 안키세스는 이다산 기슭에서 가축을 돌보며 지냈다.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인간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도록 한 제우스의 뜻에 따라 그에게 다가갔다. 여신은 프리기아의 왕녀처럼 모습을 꾸미고 안키세스를 만났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렸다. 뒤늦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아프로디테는 그에게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아이네이아스라 하겠다고 말했다.
 
아프로디테는 아이를 직접 기르지 않았다. 아이네이아스는 한동안 이다산의 님프들에게 맡겨졌다가 자라서 아버지 안키세스에게 보내졌다고 전해진다. 그는 신의 피와 인간의 피를 함께 이어받았지만, 처음부터 신처럼 살아가도록 정해진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가문과 도시 안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 왕족의 아들로 성장했다.
 
훗날 그의 삶을 따라다니는 가장 큰 이름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었다. 전쟁터에서는 그것이 신들의 보호로 나타났고,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는 살아남아 새로운 땅으로 가야 하는 운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는 거대한 제국도 로마도 없었다. 이다산에서 태어난 한 아이와, 그 아이와 그의 후손을 통해 다르다노스의 혈통이 이어지리라는 오래된 예언만이 있었다.
 
이다산에서 어린 아이네이아스를 안고 있는 아프로디테
 
 
1.2 다르다노스의 혈통을 이어받다
 
아이네이아스는 프리아모스의 직계 왕자는 아니었지만, 트로이 왕가와 마찬가지로 다르다노스에서 이어지는 오래된 왕족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다르다노스의 후손 가운데 트로스의 아들 아사라코스에서 카퓌스, 안키세스로 이어지는 계보가 그의 집안이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이러한 혈통을 바탕으로 높은 신분의 전사로 성장했으며, 프리아모스의 딸 크레우사와 혼인하여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두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프리아모스의 아들들과는 별도로 다르다니아인들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싸움에 나섰다. 왕위를 직접 물려받을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는 트로이와 다르다니아의 오래된 왕통을 잇는 인물이었다. 그리스군이 바다를 건너와 트로이를 포위하자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의 사람들을 이끌고 도시를 지키는 전사가 되었다.
 
이때까지 아이네이아스에게 미래의 이탈리아나 로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삶은 아버지 안키세스와 아내 크레우사, 어린 아스카니우스가 있는 트로이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훗날 도시가 무너지고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그가 끝내 지키려 했던 것은 바로 이 혈통과 가족이었다. 다르다노스에서 이어진 오래된 계보는 결국 멸망한 트로이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이어지게 된다.
 
안키세스와 어린 아스카니우스 곁에 선 아이네이아스
 
 
1.3 트로이 전쟁의 전사로 나서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측의 주요 영웅 가운데 하나로 싸웠다. 그는 판다로스와 함께 디오메데스에게 맞섰다가 돌에 맞아 크게 다쳤고 죽음의 위기에 빠졌다. 그 순간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전장으로 내려와 아들을 감싸 구하려 했다. 아프로디테마저 디오메데스의 창에 상처를 입자 아폴론이 아이네이아스를 데려가 보호했고, 그는 신들의 도움으로 다시 힘을 얻어 전장으로 돌아왔다.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복귀한 뒤에는 아이네이아스가 직접 그와 맞섰다. 두 영웅은 서로의 혈통을 밝히며 창을 겨루었지만, 힘에서 앞선 아킬레우스가 그를 몰아붙였다. 아이네이아스가 다시 죽음의 위기에 놓이자 이번에는 포세이돈이 나섰다. 포세이돈은 아이네이아스가 아직 죽어서는 안 되며, 다르다노스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후손을 통해 이어질 운명이라고 말하며 그를 전장에서 구해 냈다.
 
아이네이아스는 그렇게 전쟁 속에서 여러 차례 죽음을 비껴갔다. 그는 헥토르처럼 트로이의 최후와 함께 사라지도록 정해진 영웅이 아니었다. 당시의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신들은 거듭 그의 생명을 지켜 주었다. 트로이를 위해 싸우던 한 전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멸망 뒤에도 트로이의 혈통을 이어 갈 사람으로 남겨지고 있었다.
 
아킬레우스와 창을 겨루는 아이네이아스
 
 
 

제2장. 멸망한 도시에서 살아남다

2.1 불타는 트로이에서 최후의 싸움에 나서다
 
트로이가 함락되던 밤, 잠든 아이네이아스의 꿈에 죽은 헥토르의 혼령이 나타났다. 피와 먼지에 뒤덮인 헥토르는 이제 트로이를 지킬 수 없다고 말하며, 성물과 가문의 신들을 가지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라고 당부했다. 아이네이아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도시는 이미 불길과 함성에 휩싸여 있었다. 성벽 안으로 그리스군이 밀려들고 있었고, 오랜 전쟁의 끝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의 첫 생각은 탈출이 아니었다. 그는 무장을 갖추고 거리로 뛰어나가 살아남은 동료들을 모았다. 그들은 그리스군과 뒤엉켜 싸우며 프리아모스의 궁전까지 나아갔지만, 왕궁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프리아모스와 왕가 사람들이 쓰러지고 도시 곳곳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이네이아스는 마지막까지 칼을 놓지 않았다. 그는 트로이와 함께 죽는 것이 전사로서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그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인간들의 싸움 너머에서 포세이돈과 헤라, 아테나 등 신들이 직접 트로이의 성벽과 도시를 무너뜨리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제 어떤 용맹으로도 트로이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네이아스는 비로소 전장을 떠나 가족에게로 향했다. 죽음을 택하려던 전사는 그 순간부터 살아남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트로이의 남은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불타는 트로이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아이네이아스
 
 
2.2 아버지를 등에 업고 성을 떠나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네이아스는 늙은 안키세스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청했다. 그러나 안키세스는 이미 늙고 힘을 잃은 자신 때문에 가족이 위험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트로이와 함께 죽겠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네이아스 역시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다시 전장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아스카니우스의 머리 위로 불꽃 같은 징조가 나타나고 하늘에서 천둥과 별빛이 이어지자 안키세스는 마침내 이것을 신들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네이아스는 아버지를 등에 업었다. 안키세스는 트로이의 성물과 가문의 신들을 품었고, 어린 아스카니우스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다. 크레우사는 조금 뒤에서 그들을 따랐다. 불길에 휩싸인 골목과 적군이 가득한 길을 지나면서도 아이네이아스는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어깨에는 아버지의 몸을 놓지 않았다. 전사로서 들었던 방패와 창 대신 이제 그의 몸에는 한 집안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실려 있었다.
 
그들은 성 밖의 약속된 장소를 향해 어둠 속을 빠져나갔다. 아이네이아스가 안키세스를 업고 아스카니우스를 이끄는 모습은 이후 그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무너진 트로이를 모두 구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아버지가 간직한 옛 기억과 아들에게 이어질 다음 세대를 동시에 데리고 나왔다. 그 순간 아이네이아스가 지켜야 할 ‘트로이’는 성벽이 아니라 사람과 기억이 되었다.
 
안키세스를 업고 아스카니우스를 이끄는 아이네이아스
 
 
2.3 크레우사를 잃고 생존자들을 이끌다
 
성 밖에 도착한 뒤 아이네이아스는 크레우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안키세스와 아스카니우스를 남겨 둔 채 다시 불타는 트로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그리스군이 거리를 장악한 뒤였지만 그는 집과 골목, 성문을 헤매며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마침내 크레우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는 아내가 아니라 그 앞에 나타난 혼령이었다.
 
크레우사는 자신을 찾아 더 헤매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아이네이아스에게 긴 바다의 방랑이 기다리고 있으며, 서쪽의 헤스페리아에 이르면 새로운 나라와 왕비를 얻게 될 것이라고 알렸다. 아이네이아스는 세 번이나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크레우사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잘 돌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이네이아스가 다시 성 밖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가족만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남녀와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갈 곳을 잃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품은 채 그들의 앞에 섰다. 이제 그의 선택은 한 집안의 피난을 넘어섰다. 트로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책임이 그의 어깨 위에 놓였다.
 
크레우사의 혼령과 마주한 아이네이아스
 
 
 

제3장. 방랑자에서 지도자로 변하다

3.1 트로이의 생존자들을 이끌다
 
트로이를 떠난 뒤 아이네이아스는 더 이상 한 사람의 피난민일 수 없었다. 여러 척의 배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트로이인들이 타고 있었고, 그들의 식량과 안전, 정착할 땅을 찾는 일이 모두 그의 책임이 되었다. 신탁과 징조는 서쪽으로 가라고 이끌었지만 길은 분명하지 않았다. 어떤 땅에서는 정착을 시도했다가 떠나야 했고, 어떤 곳에서는 오래된 동료를 만나 길을 물었으며, 바다에서는 폭풍과 낯선 섬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그 과정에서 아이네이아스는 하나씩 개인적인 버팀목을 잃었다. 특히 시칠리아의 드레파눔에서 아버지 안키세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크게 흔들렸다. 트로이의 옛 세대와 자신을 이어 주던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온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가야 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아버지를 그곳에 묻은 뒤 다시 배를 띄웠고,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스스로 공동체의 가장 앞에 서야 했다.
 
그래서 그의 방랑은 단순히 여러 장소를 거치는 여행만은 아니었다. 트로이에서는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전쟁에서는 한 명의 장수였던 사람이, 이제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어 갔다. 목적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먼저 불안을 감추고, 쓰러진 사람을 묻고, 살아남은 이들을 다시 배에 태워야 했다. 아이네이아스의 긴 여정 속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지도 위의 위치보다 그 자신의 자리였다.
 
트로이 생존자들과 배를 타고 항해하는 아이네이아스
 
 
3.2 사랑보다 운명을 선택하다
 
폭풍에 밀려 카르타고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는 디도 여왕의 환대를 받았다. 디도 역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새로운 도시를 세운 사람이었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그녀의 궁정에서 트로이의 마지막 밤과 긴 방랑을 이야기했고, 디도는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사냥 도중 폭풍을 피해 같은 동굴에 머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고, 아이네이아스는 한동안 카르타고에 정착한 듯 살아갔다.
 
그러나 그곳이 그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가 나타나 이탈리아와 아스카니우스에게 이어질 미래를 잊었느냐고 일깨웠다. 아이네이아스는 결국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디도는 자신을 버리고 가는 그를 원망하며 붙잡았지만, 아이네이아스는 자신 역시 원하는 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들이 정한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물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배가 카르타고에서 멀어질 때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도시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디도가 마지막으로 남긴 장례의 불길이었지만, 배 위의 아이네이아스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는 불길을 뒤로한 채 다시 이탈리아를 향했다. 카르타고에서의 이별은 그가 자신의 행복보다 앞으로 이어질 사람들의 삶을 선택해야 했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카르타고를 떠나는 아이네이아스를 바라보는 디도
 
 
3.3 아버지의 혼령에게 미래를 듣다
 
이탈리아 해안의 쿠마이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는 시빌라를 찾아갔다. 그는 무엇보다 죽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다. 시빌라는 살아 있는 사람이 명계에 들어가려면 황금 가지를 찾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고, 아이네이아스는 이를 얻은 뒤 그녀의 안내를 받아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죽은 동료들과 옛 전우들의 혼령을 보았고, 카르타고에서 헤어진 디도의 혼령도 보았지만 디도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떠나갔다.
 
마침내 엘리시온에서 안키세스를 만난 아이네이아스는 아버지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혼령은 손을 빠져나갔다. 안키세스는 아들에게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보여 주었다. 알바 롱가의 왕들과 로물루스, 훗날 로마를 빛낼 인물들이 차례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이네이아스가 지금 겪는 방랑과 전쟁이 자신 한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 후대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모습이 되어 드러났다.
 
명계를 나설 때 아이네이아스가 얻은 것은 새로운 무기나 보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왜 계속 서쪽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 아버지를 잃은 뒤 흔들리던 지도자는 이제 아버지의 입을 통해 미래를 들었다. 트로이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 혈통과 기억은 끝나지 않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 기억을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명계에서 안키세스의 혼령과 마주한 아이네이아스
 
 
 

제4장. 새로운 땅의 조상이 되다

4.1 라티움에서 또 다른 전쟁을 맞다
 
마침내 티베리스강 가까운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는 오랜 방랑이 끝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라티움의 왕 라티누스는 오래전부터 딸 라비니아가 이 땅의 남자가 아니라 먼 곳에서 온 사내와 혼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는 트로이인들을 우호적으로 맞아들이고 아이네이아스를 사위로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루툴리족의 지도자 투르누스는 라비니아의 가장 유력한 혼인 상대였고, 왕비 아마타 역시 그를 사위로 원하고 있었다.
 
헤라는 트로이인들이 마침내 정착할 땅을 얻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녀가 보낸 알렉토는 먼저 아마타의 마음에 분노를 불어넣고, 이어 투르누스를 찾아가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겼다. 얼마 뒤 아스카니우스가 사냥을 하다가 라티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길든 사슴을 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슴의 주인과 목동들이 무기를 들고 나섰고, 트로이인들과 충돌하면서 처음으로 피가 흘렀다.
 
라티누스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이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있었다. 투르누스와 여러 이탈리아 세력이 무기를 들었고, 오랜 항해를 끝낸 트로이인들도 다시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네이아스가 그토록 찾아 헤맨 약속의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이 아니었다. 바다를 건너는 방랑은 끝났지만,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전쟁을 넘어야 했다.
 
라티누스 앞에서 라비니아를 둘러싸고 마주한 두 영웅
 
 
4.2 새로운 동맹과 팔라스의 죽음
 
아이네이아스는 투르누스와 여러 이탈리아 세력을 혼자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티베리스강의 신이 꿈에 나타나 동맹을 구하라고 일러 주자 그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팔란테움의 왕 에우안드로스를 찾아갔다. 에우안드로스는 트로이인들을 우호적으로 맞았고, 자신의 젊은 아들 팔라스를 아이네이아스에게 맡겨 함께 싸우게 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이어 에트루리아인들의 도움까지 얻어 동맹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돌아왔다.
 
전투가 벌어지자 팔라스는 젊은 나이에도 용감하게 싸웠지만 마침내 투르누스와 맞닥뜨렸다. 두 사람의 결투에서 팔라스는 투르누스의 창에 쓰러졌고, 투르누스는 죽은 팔라스가 차고 있던 화려한 허리띠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전장에서 팔라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아이네이아스는 큰 슬픔과 분노에 빠졌고, 전투는 더욱 거칠어졌다.
 
아이네이아스는 팔라스의 시신을 정성껏 수습하여 에우안드로스에게 돌려보냈다. 아들을 자신에게 맡겼던 늙은 아버지에게 죽은 아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트로이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등에 업고 탈출했던 아이네이아스는 이제 또 다른 아버지의 슬픔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팔라스의 죽음과 투르누스가 가져간 허리띠는 마지막 결투의 순간까지 그의 마음속에 남게 되었다.
 
쓰러진 팔라스를 발견하고 분노하는 아이네이아스
 
 
4.3 투르누스를 쓰러뜨리고 로마의 선조가 되다
 
전쟁이 길어지자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는 두 사람의 결투로 승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투를 앞두고 맺은 약속이 깨지면서 한동안 전투가 다시 벌어졌고, 두 영웅은 마침내 전장에서 직접 맞섰다. 투르누스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 던졌지만 힘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고, 아이네이아스가 던진 창은 그의 넓적다리를 꿰뚫었다. 땅에 쓰러진 투르누스는 패배를 인정하며 늙은 아버지 다우누스를 생각해 자신을 살려 달라고 청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잠시 칼을 멈추고 투르누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어깨에 걸린 팔라스의 허리띠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투르누스가 팔라스를 죽이고 전리품으로 빼앗은 것이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죽은 젊은이를 떠올렸고, 망설임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팔라스의 이름을 부르며 칼을 찔렀고 투르누스는 숨을 거두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바로 이 장면에서 끝난다.
 
별도의 로마 전승에서는 아이네이아스가 라비니아와 혼인하고 그녀의 이름을 딴 라비니움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아스카니우스가 알바 롱가를 세웠고, 그 왕통은 오랜 세월 뒤 로물루스와 로마 건국 전승으로 이어졌다. 아이네이아스 자신이 로마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트로이에서 아버지를 등에 업고 탈출했던 생존자는 후대의 기억 속에서 멸망한 트로이와 새롭게 태어날 로마를 이어 주는 조상이 되었다.
 
쓰러진 투르누스 앞에 검을 든 아이네이아스
 

 
※ 출전: 《호메로스 찬가》 〈아프로디테 찬가〉,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5·20권,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1~12권, 리비우스 《로마사》 제1권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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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