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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 전쟁 별전 【 가담항설의지식창고 】 2026.09.23. 23:41 (2026.09.23. 23:41)

4.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를 만난 아이네이아스

■  
크레타와 스트로파데스를 떠난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에페이로스의 부트로툼에 이르러 뜻밖에도 트로이의 왕자 헬레노스와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만난다.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멸망 뒤 겪은 비극을 들려주고, 예언자 헬레노스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길과 정착지의 징표를 알려 준다. 작별의 순간, 안드로마케는 아스카니우스에게 아스티아낙스를 떠올리며 선물을 건네고, 아이네이아스는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목   차
[숨기기]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를 만난 아이네이아스
 
 
 

개요

 
크레타와 스트로파데스를 떠난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에페이로스의 부트로툼에 이르러 뜻밖에도 트로이의 왕자 헬레노스와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만난다.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멸망 뒤 겪은 비극을 들려주고, 예언자 헬레노스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길과 정착지의 징표를 알려 준다. 작별의 순간, 안드로마케는 아스카니우스에게 아스티아낙스를 떠올리며 선물을 건네고, 아이네이아스는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제1장. 에페이로스에서 또 하나의 트로이를 만나다

1.1 부트로툼에 도착하다
 
악티움에서 겨울을 보낸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다시 배를 띄워 에페이로스의 해안을 지나 카오니아로 향했다. 그들은 마침내 부트로툼 가까이에 닿았고, 그곳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헬레노스가 이 지역을 다스리고 있으며, 헥토르의 아내였던 안드로마케도 살아서 그와 함께 지낸다는 것이었다.
 
트로이가 불타던 밤 이후 여러 해 동안 바다를 떠돌던 아이네이아스에게 그 소식은 쉽게 믿기 어려웠다. 헬레노스와 안드로마케 모두 전쟁 뒤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그리스인의 땅인 에페이로스에서 왕국을 이루고 있다는 말은 놀라움을 더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직접 두 사람을 만나 그동안의 일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부트로툼으로 향했다. 오래전에 헤어진 동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그들이 겪었을 고난에 대한 걱정이 마음속에 뒤섞였다. 성 가까이 다가가던 아이네이아스는 성 밖의 숲과 작은 강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제물을 바치며 죽은 이를 부르고 있던 그녀는 바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였다.
 
부트로툼 성벽을 바라보는 아이네이아스 일행
 
 
1.2 헥토르의 빈 무덤에서 안드로마케를 발견하다
 
안드로마케가 제사를 지내던 곳에는 트로이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까운 작은 물줄기에는 고향의 강을 따라 시모이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강가에는 푸른 잔디로 덮인 봉분과 두 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봉분에는 헥토르의 유해가 묻혀 있지 않았다. 안드로마케가 죽은 남편의 혼을 기리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세운 빈 무덤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헥토르의 혼을 부르며 제물과 술을 바치고 있었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 남편과 아들, 고향까지 모두 잃은 그녀에게 이 작은 강과 무덤은 멀리 떨어진 트로이와 다시 이어지는 장소였다. 실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낯선 땅에 남편의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서 오래전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걸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트로이의 슬픔이 끝나지 않았음을 눈앞의 안드로마케가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아이네이아스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제사를 계속했다. 머나먼 에페이로스의 강가에서 헥토르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이 떠나온 고향 앞에 다시 서 있는 듯했다.
 
헥토르의 빈 무덤에 제물을 바치는 안드로마케
 
 
1.3 안드로마케와 다시 만나다
 
제사를 지내던 안드로마케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굳혔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분명 아이네이아스였고, 주변에는 트로이의 무장을 한 동료들이 있었다. 이미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고향 사람들이 나타나자 그녀는 현실인지 환영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놀라움에 휩싸인 안드로마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질 듯 몸을 떨었다.
 
그녀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아이네이아스에게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 맞느냐고 물었다. 혹시 죽은 자의 혼령이라면 헥토르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오래 눌러 두었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아이네이아스 역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있으며 눈앞의 모습이 환영이 아니라고 대답한 뒤, 안드로마케가 트로이 멸망 뒤 어떤 운명을 겪었는지 물었다.
 
아이네이아스의 질문에 안드로마케는 눈을 내리깔았다. 한때 트로이 최고의 전사 헥토르의 아내였던 그녀가 지금 이 낯선 땅에 서 있기까지는 긴 고난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함께 잃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재회는 환희보다 눈물이 앞섰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트로이가 무너진 뒤의 세월로 이어졌다.
 
아이네이아스를 알아보고 놀라는 안드로마케
 
 
 

제2장. 안드로마케의 지난 운명을 듣다

2.1 안드로마케가 포로가 된 운명을 이야기하다
 
안드로마케는 트로이가 함락된 뒤 자신에게 닥친 일을 천천히 들려주었다. 그녀는 다른 트로이 여인들과 함께 전리품이 되어 그리스군에 끌려갔고, 아킬레우스의 아들 피로스의 몫이 되었다. 한때 헥토르의 아내로 트로이 왕가에서 살았던 그녀는 이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포로가 되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데 이어 고향과 자유까지 빼앗긴 삶이었다.
 
피로스는 안드로마케를 자신의 여인으로 삼았고, 그녀는 포로의 몸으로 그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나 피로스가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 혼인하게 되면서 그녀의 처지는 다시 바뀌었다. 피로스는 안드로마케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포로 생활을 하던 트로이의 왕자 헬레노스에게 넘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뜻밖의 운명 속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안드로마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트로이에서 죽은 여인들을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했다. 조국과 함께 죽었다면 적어도 포로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살아남았기에 더 긴 슬픔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아이네이아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트로이를 탈출한 사람들뿐 아니라 포로가 된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멸망 뒤의 삶을 견뎌 왔음을 알게 되었다.
 
피로스의 포로로 끌려가는 안드로마케
 
 
2.2 피로스의 죽음과 헬레노스의 왕국을 듣다
 
안드로마케의 삶은 피로스가 죽으면서 다시 달라졌다. 피로스는 헤르미오네를 둘러싸고 오레스테스와 원한을 맺었고, 결국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피로스가 죽은 뒤 그의 왕국 일부가 헬레노스에게 돌아갔다. 포로로 끌려왔던 트로이의 왕자가 뜻밖에도 왕이 되었고, 안드로마케도 그와 함께 에페이로스에 정착하게 되었다.
 
헬레노스는 트로이인 카온의 이름을 따 자신이 다스리는 땅을 카오니아라 불렀다. 그는 낯선 땅에 고향의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고, 새로 세운 성채에는 트로이의 성채를 따라 페르가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멸망한 조국을 되찾을 수는 없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에페이로스에 트로이를 닮은 작은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삶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안드로마케는 이야기를 마친 뒤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떠올렸다. 아이가 어머니를 잃은 일을 기억하는지, 아버지 아이네이아스와 외삼촌 헥토르를 본받아 자라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은 아들 아스티아낙스가 겹쳐 떠올랐다. 그때 헬레노스가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그들을 찾아왔고, 오랫동안 헤어졌던 트로이인들의 또 다른 재회가 이루어졌다.
 
작은 트로이를 세운 헬레노스와 안드로마케
 
 
2.3 헬레노스가 아이네이아스를 환영하다
 
헬레노스는 아이네이아스와 트로이인들을 보자 반갑게 맞았다. 오랜 세월 소식을 알 수 없었던 동족이 살아서 자신을 찾아온 것을 확인한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헬레노스는 일행을 성 안으로 이끌었고, 그제야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이 들었던 ‘또 하나의 트로이’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작은 성채와 성문, 강과 길 곳곳에는 잃어버린 고향의 모습이 되살아나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크산토스라 불리는 작은 물줄기를 바라보고, 옛 트로이의 스카이아이 문을 본뜬 성문의 문설주를 반갑게 끌어안았다. 성채에는 페르가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규모는 옛 트로이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름과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다. 아이네이아스는 낯선 에페이로스에서 트로이의 성문과 강, 궁전을 다시 바라보며 한동안 지나간 세월을 떠올렸다.
 
헬레노스는 넓은 안뜰에서 손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트로이인들은 함께 술잔을 돌리고 황금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누며 서로가 지나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에게는 다시 떠나야 할 길이 남아 있었다. 델로스의 신탁과 페나테스의 계시는 이탈리아를 가리켰지만, 하르피이 켈라이노의 불길한 예언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는 마침내 예언자인 헬레노스에게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스카이아이 문의 문설주를 끌어안는 아이네이아스
 
 
 

제3장. 헬레노스에게 앞날을 묻다

3.1 헬레노스에게 이탈리아로 가는 길을 묻다
 
아이네이아스는 헬레노스에게 자신이 받은 신탁과 계시를 이야기했다. 델로스의 아폴론과 페나테스는 모두 이탈리아를 새로운 조국으로 가리켰지만, 스트로파데스의 하르피이 켈라이노는 도시를 세우기 전에 지독한 굶주림을 겪어 식탁까지 먹게 되리라고 저주했다. 아이네이아스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앞으로 어떤 위험을 피하고 어느 길을 따라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헬레노스는 먼저 제물을 바치고 신들의 뜻을 구한 뒤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분명 아이네이아스에게 정해진 땅이었지만, 지금 가까이 보이는 해안이 곧 정착할 장소는 아니었다. 그곳까지 가려면 아직 긴 바다를 돌아야 했고 많은 위험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말고 신들이 가리키는 징표와 올바른 항로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착지를 알아볼 징표도 알려 주었다. 어느 강가의 참나무 숲에서 흰 암퇘지가 서른 마리의 흰 새끼와 함께 누워 있는 모습을 만나면 그곳에서 방랑의 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켈라이노가 말한 ‘식탁을 먹는 굶주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운명이 그 시련을 헤쳐 나갈 길을 열어 주고 아폴론이 도움을 줄 것이므로, 아이네이아스는 정해진 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되었다.
 
헬레노스의 예언을 듣는 아이네이아스
 
 
3.2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피하라는 예언을 듣다
 
헬레노스는 먼저 가까운 이탈리아 해안에 곧장 정착하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일대에는 트로이 전쟁 뒤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들이 있어 트로이인들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 신들에게 제사를 올릴 때에는 자줏빛 천으로 머리를 가려 불길한 모습이 제사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라고도 일렀다. 아이네이아스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땅에서부터 지켜야 할 길과 의식을 하나씩 마음에 새겼다.
 
가장 큰 위험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의 좁은 해협에 있었다. 한쪽에는 바닷물을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삼켰다가 다시 토해 내는 카리브디스가 있고, 다른 쪽에는 절벽의 동굴에서 지나가는 배를 덮치는 스킬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헬레노스는 두 괴물 사이의 짧은 길을 억지로 통과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멀리 돌아가라고 말했다. 시칠리아 남동쪽의 파키눔 곶을 크게 돌아가는 항로가 안전했다.
 
아이네이아스는 헬레노스의 말을 들으며 앞으로의 항로를 머릿속에 그렸다. 이탈리아는 눈앞에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차지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서두르다가는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바다에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헬레노스의 예언은 앞으로 트로이인들이 시칠리아 주변의 험한 바다를 지날 때 따라야 할 구체적인 길이 되었고, 아이네이아스는 그 충고를 잊지 않으려 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위험을 설명하는 헬레노스
 
 
3.3 유노를 달래고 쿠마이의 시빌라를 찾으라는 말을 듣다
 
헬레노스는 여러 충고 가운데에서도 유노를 잊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트로이인들을 오래 미워해 온 여신의 분노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기도와 제물을 바쳐 먼저 그녀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노의 마음을 달래야만 시칠리아 주변의 위험한 바다를 지나 이탈리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자신들에게 적대해 온 여신에게도 마땅한 제의를 올려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
 
헬레노스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뒤 반드시 쿠마이의 시빌라를 찾아가라고 일렀다. 아베르누스 호수 가까운 바위 동굴에 사는 그녀는 아폴론의 뜻을 받아 미래를 말하는 예언자였다. 시빌라는 신탁을 나뭇잎에 적어 동굴 안에 늘어놓지만, 문이 열려 바람이 들어와 잎들이 흩어지면 다시 순서를 맞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녀가 직접 입으로 신탁을 말해 주도록 간청해야 했다.
 
시빌라는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서 만나게 될 민족과 앞으로 벌어질 전쟁, 피해야 할 위험과 견뎌야 할 시련을 알려 줄 것이었다. 헬레노스는 자신에게 허락된 예언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아이네이아스는 그의 말을 하나도 잊지 않으려 마음에 새겼다. 아직 건너야 할 바다와 피해야 할 위험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어느 길을 따라가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쿠마이의 시빌라를 찾아가라 예언하는 헬레노스
 
 
 

제4장. 또 하나의 트로이를 떠나다

4.1 헬레노스에게 마지막 선물과 가르침을 받다
 
예언을 마친 헬레노스는 출항을 준비하는 트로이인들에게 많은 선물을 내놓았다. 금과 상아로 만든 물건과 은, 도도나에서 가져온 솥들이 배에 실렸다. 아이네이아스에게는 세 겹의 금 고리로 엮은 흉갑과 말총 볏이 달린 투구를 비롯해 피로스가 쓰던 무구도 건네주었다. 말과 길잡이를 붙여 주고 부족한 노잡이와 무기도 보충해 주었다. 먼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동족을 위한 아낌없는 배려였다.
 
안키세스는 좋은 바람을 놓치지 않도록 동료들에게 배를 정비하고 돛을 올릴 준비를 하게 했다. 헬레노스는 떠나기 전 안키세스에게도 다가가 축복을 건넸다. 이탈리아는 이미 그들의 운명으로 정해진 땅이었지만, 아폴론이 약속한 진정한 목적지는 아직 더 멀리 있다고 말했다. 눈앞에 보이는 해안에 서둘러 정착하지 말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계속 나아가야 했다.
 
헬레노스는 안키세스와 아이네이아스가 무사히 운명을 이루기를 바라며 더 이상 긴 말로 순풍을 붙잡아 두지 않겠다고 했다. 부트로툼에서 보낸 짧은 평온도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받은 선물과 무구, 앞으로의 길을 알려 주는 예언을 배에 실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족과 다시 헤어져야 했지만, 그들은 새로운 조국을 찾아 또다시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아이네이아스에게 무구를 건네는 헬레노스
 
 
4.2 안드로마케가 아스카니우스에게 선물을 건네다
 
마지막 작별을 앞둔 안드로마케는 아스카니우스를 불러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금실로 정성껏 수놓은 옷과 프리기아식 망토를 비롯한 여러 물건을 내놓으며 자신의 마음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에게 그 선물은 단순히 먼 길을 떠나는 소년에게 주는 물건이 아니었다. 헥토르의 아내였던 자신과 사라진 트로이를 기억하게 할 마지막 흔적과도 같았다.
 
안드로마케가 아스카니우스를 바라보는 동안 눈앞에는 죽은 아들 아스티아낙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녀는 아스카니우스의 눈과 손, 입술에서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아스티아낙스가 살아 있었다면 두 아이는 비슷한 나이로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이 떠오르자 안드로마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들에게 줄 수 없게 된 사랑과 선물이 살아남은 트로이의 소년에게 건너갔다.
 
아스카니우스는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새로운 땅으로 가야 할 트로이의 후손이었다. 안드로마케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소년에게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건네며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이네이아스 역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렵게 이루어진 재회의 시간이 끝나면서 기쁨은 다시 이별의 슬픔으로 바뀌었다. 이제 작은 트로이에 남을 사람들과 새로운 트로이를 찾아 떠날 사람들이 헤어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스카니우스에게 망토를 건네는 안드로마케
 
 
4.3 또 하나의 트로이를 뒤로하고 떠나다
 
아이네이아스도 눈물을 흘리며 헬레노스와 안드로마케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이제 방랑을 끝내고 자신들이 만든 트로이에서 평안히 살아가라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끝없는 바다를 건너거나 이탈리아의 들판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반면 아이네이아스와 그의 동료들은 아직 정해진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으며, 하나의 운명에서 또 다른 운명으로 계속 나아가야 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언젠가 티베리스강과 그 주변의 들판에 도착해 자신의 백성에게 허락된 성벽을 세우게 된다면, 에페이로스의 트로이와 이탈리아의 트로이가 서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두 땅의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노스를 같은 조상으로 두고, 트로이에서 이어진 같은 운명을 품고 있었다. 지금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지만 언젠가 후손들이 서로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로 기억하기를 바랐다.
 
마침내 출항의 순간이 왔다.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자신들을 배웅하는 동족을 뒤로하고 부트로툼을 떠났다. 작은 트로이의 성벽과 스카이아이 문, 헥토르의 빈 무덤은 점점 멀어졌다. 이곳에서 그들은 잃어버린 과거를 다시 만났지만 그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헬레노스에게서 받은 예언과 길잡이를 마음에 품은 채 배들은 다시 바다로 나아갔고, 그들 앞에는 마침내 이탈리아로 건너가는 항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트로이를 뒤로하고 출항하는 아이네이아스
 
 

 
※ 출전: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Aeneis)》 제3권 294~510행을 중심으로 구성
 
※ 각주:
〔1〕 피로스(Pyrrhus): 그리스 신화의 네오프톨레모스(Neoptolemos). 아킬레우스와 데이다메이아의 아들로, 피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사용된 또 다른 이름이다. 트로이 함락 뒤 안드로마케를 포로로 삼았다.
〔2〕 페나테스(Penates): 가정의 식량과 생활을 보호하는 로마의 수호신들. 가정뿐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정확히 대응하는 신은 없다.
〔3〕 유노(Juno):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에 대응하는 로마의 여신. 주피테르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으로, 《아이네이스》에서는 트로이인들의 여정을 방해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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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