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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 전쟁 별전 【 가담항설의지식창고 】 2026.09.23. 23:58 (2026.09.23. 23:58)

7. 디도와 사랑에 빠진 아이네이아스

■  
폭풍에 휩쓸려 리비아 해안에 닿은 아이네이아스는 새 도시 카르타고를 세우던 여왕 디도를 만난다. 디도는 트로이인들을 환대하고, 베누스가 보낸 큐피도는 그녀의 마음에 아이네이아스를 향한 사랑을 불어넣는다. 그의 방랑 이야기를 들은 디도는 죽은 남편에 대한 맹세와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동생 안나의 권유로 마음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사냥 중 폭풍을 피해 두 사람이 같은 동굴에 들어가면서 관계는 깊어지고, 디도는 이를 혼인으로 받아들인다.
목   차
[숨기기]
디도와 사랑에 빠진 아이네이아스
 
 
 

개요

 
폭풍에 휩쓸려 리비아 해안에 닿은 아이네이아스는 새 도시 카르타고를 세우던 여왕 디도를 만난다. 디도는 트로이인들을 환대하고, 베누스가 보낸 큐피도는 그녀의 마음에 아이네이아스를 향한 사랑을 불어넣는다. 그의 방랑 이야기를 들은 디도는 죽은 남편에 대한 맹세와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동생 안나의 권유로 마음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사냥 중 폭풍을 피해 두 사람이 같은 동굴에 들어가면서 관계는 깊어지고, 디도는 이를 혼인으로 받아들인다.
 
 
 

제1장. 카르타고에서 디도를 만나다

1.1 폭풍을 피해 카르타고 해안에 닿다
 
드레파눔을 떠난 아이네이아스의 함대는 다시 이탈리아를 향했지만, 오래지 않아 유노가 일으킨 거센 폭풍에 휩쓸렸다. 바람은 배들을 흩뜨리고 파도는 돛과 노를 부러뜨렸다. 넵투누스가 뒤늦게 바다를 진정시켰을 때 살아남은 배들은 리비아 해안으로 밀려가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가까스로 일곱 척을 모아 한적한 만에 배를 대고, 지친 동료들에게 사냥한 짐승과 남은 포도주를 나누어 주며 다시 용기를 내라고 격려했다.
 
다음 날 아이네이아스는 아카테스와 함께 낯선 땅을 살피러 나섰다. 그때 어머니 베누스가 사냥꾼 처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곳이 카르타고이며, 티로스에서 달아난 여왕 디도가 도시를 세우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디도의 남편 시카이우스는 재물을 탐낸 오빠 피그말리온에게 살해되었고, 디도는 남편의 혼령에게 진실을 들은 뒤 재물을 챙겨 추종자들과 바다를 건너왔다.
 
아이네이아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 새 나라를 세운 여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베누스는 아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아이네이아스와 아카테스를 짙은 안개로 감싸고 카르타고로 보냈다. 두 사람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막 세워지고 있는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폭풍 뒤 리비아 해안에 닿은 트로이 함대
 
 
1.2 건설 중인 카르타고의 성 안으로 들어가다
 
안개에 몸을 감춘 아이네이아스와 아카테스는 높은 언덕에서 카르타고를 내려다보았다. 티로스인들은 성벽을 쌓고 길을 내며 항구와 집을 만들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돌을 나르고, 어떤 이들은 법과 행정 질서를 세웠으며, 다른 이들은 신전과 공공시설을 짓고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새 도시가 빠르게 모습을 갖추는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과 트로이인들에게도 언젠가 이처럼 정착할 땅이 주어지기를 바랐다.
 
두 사람은 유노의 거대한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 벽에는 뜻밖에도 트로이 전쟁의 장면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들과 프리아모스, 트로이의 전사들과 아킬레우스의 모습이 낯선 카르타고에서도 기억되고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멸망한 고향의 이야기가 먼 땅에까지 전해졌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트로이의 고통을 아는 곳이라면 자신들에게도 연민을 베풀어 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곧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여왕 디도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모습과 당당한 태도로 신전에 들어선 그녀는 백성들의 일을 나누고 분쟁을 판결하며 새 도시를 이끌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네이아스는 여왕 앞에 폭풍으로 흩어졌던 트로이 동료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죽었으리라 걱정했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본 그는 놀라움과 기쁨 속에서 그들의 말을 지켜보았다.
 
유노 신전의 트로이 전쟁 벽화를 보는 아이네이아스
 
 
1.3 여왕 디도 앞에 모습을 드러내다
 
트로이인들을 대표해 일리오네우스가 디도에게 간청했다. 그들은 리비아를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니라 폭풍에 휩쓸려 이곳에 닿았으며, 잃어버린 배와 동료들을 찾은 뒤 다시 항해를 이어 가려 한다고 말했다. 디도는 트로이의 운명과 아이네이아스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답했다. 카르타고에 머물고 싶다면 함께 살아도 좋고, 떠나려 한다면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디도가 아이네이아스의 행방을 묻는 순간, 베누스가 둘러놓은 안개가 걷히며 아이네이아스와 아카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누스의 손길로 더욱 빛나는 모습이 된 아이네이아스는 여왕 앞에 서서 자신을 알지도 못하면서 트로이인들을 따뜻하게 받아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는 신들이 디도의 선의를 갚아 주기를 빌었고, 흩어졌던 동료들도 지도자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디도는 과거 살라미스에서 추방된 테우크로스가 새로운 왕국을 찾아 자신의 아버지 벨루스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에게서 트로이 전쟁과 아이네이아스의 이름을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고향을 떠나 오랜 시련 끝에 이곳에 왔기에 트로이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이네이아스와 동료들을 궁전으로 초대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두 사람은 고향과 사랑하는 이를 잃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비슷한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며 디도 앞에 나타난 아이네이아스
 
 
 

제2장. 디도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다

2.1 디도가 트로이인들을 환대하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와 트로이인들을 궁전으로 맞아들여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게 했다. 폭풍 뒤 해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도 소와 돼지, 양과 포도주를 보내 굶주림을 해결하도록 했다. 궁전 안에는 화려한 직물과 금은 그릇이 놓였고, 티로스의 귀족들과 트로이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 방랑 끝에 트로이인들은 적의가 아닌 따뜻한 환대 속에서 잠시 편안한 시간을 맞았다.
 
아이네이아스는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궁전으로 데려오게 하고, 트로이에서 건져 온 귀한 선물도 디도에게 바치려 했다. 헬레네가 지녔던 화려한 옷과 아칸서스 무늬로 장식된 베일, 프리아모스의 맏딸 일리오네가 사용하던 홀과 진주 목걸이,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이중 왕관이 준비되었다. 그는 아카테스를 배로 보내 아스카니우스와 이 선물들을 데려오게 했다. 디도의 따뜻한 환대에 정성을 다해 답하려는 것이었다.
 
디도 역시 손님들을 자신의 사람들처럼 대했다. 그녀에게 아이네이아스는 단순한 난파자가 아니었다. 나라와 배우자를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끌어 새로운 땅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닮아 있었다. 그러나 평온해 보이는 연회 뒤에서는 이미 신들의 계획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을 염려한 베누스는 디도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아이네이아스에게 묶어 두려 했다.
 
카르타고 궁전에서 열린 디도의 환영 연회
 
 
2.2 베누스가 아들 큐피도를 보내다
 
베누스는 카르타고에서 유노의 적의가 다시 아이네이아스를 해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사랑의 신인 아들 큐피도에게 아스카니우스의 얼굴과 모습을 대신하게 했다. 진짜 아스카니우스는 깊은 잠에 빠진 채 베누스에 의해 이달리아의 성스러운 숲으로 옮겨졌고, 큐피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트로이의 선물을 든 채 아카테스와 함께 궁전으로 들어갔다.
 
연회가 시작되자 가짜 아스카니우스는 먼저 아이네이아스에게 다가가 아들의 모습으로 그의 품에 안겼다. 이어 디도의 곁으로 가자 여왕은 사랑스러운 소년을 무릎에 앉히고 여러 번 품에 끌어안았다. 디도는 자신이 안고 있는 아이가 사랑의 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큐피도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그녀의 마음속에 아이네이아스를 향한 사랑을 불어넣고, 죽은 남편 시카이우스의 기억에 묶여 있던 마음을 흔들었다.
 
디도는 소년과 트로이의 선물을 바라보며 점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에는 불행한 망명자들을 향한 연민과 환대였지만, 그 감정은 이제 아이네이아스 개인을 향한 관심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베누스의 계략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디도는 아직 자신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를 분명히 깨닫지 못했지만, 시카이우스의 죽음 이후 닫아 두었던 마음속에서 다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스카니우스 모습으로 디도의 품에 안긴 큐피도
 
 
2.3 디도가 아이네이아스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연회가 깊어지자 디도는 커다란 황금 잔에 포도주를 채우고 유피테르와 유노, 바쿠스에게 손님과 주인을 함께 지켜 달라고 기원했다. 티로스인들과 트로이인들은 차례로 잔을 돌리며 밤을 즐겼다. 불빛이 궁전을 밝히고 음악과 이야기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디도의 시선은 자꾸만 아이네이아스에게 향했다. 큐피도가 심어 놓은 사랑은 이미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에게 트로이 전쟁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헥토르와 프리아모스, 그리스 영웅들과 트로이의 마지막 날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아이네이아스 자신이 어떻게 불타는 도시를 빠져나와 그토록 긴 바다를 떠돌게 되었는지 들려 달라고 청했다. 아이네이아스에게는 다시 꺼내기 힘든 기억이었지만, 여왕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최후의 밤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온 일, 그리스군이 돌아와 도시를 불태운 일,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성을 빠져나온 일과 크레우사를 잃은 순간까지 오래된 상처가 다시 펼쳐졌다. 디도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영웅의 용기와 고난을 알게 될수록 그녀의 연민은 더욱 깊은 애정으로 변해 갔다.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디도
 
 
 

제3장. 죽은 남편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다

3.1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보내다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는 트로이의 멸망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트라키아와 델로스, 크레타를 거쳐 스트로파데스에 닿았던 일과 하르피이 켈라이노에게 저주를 들었던 일을 말했다. 에페이로스에서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를 만나 길을 물었고, 이탈리아 남동부 해안에 닿은 뒤 키클롭스의 땅을 지나 시칠리아까지 온 여정도 차례로 들려주었다.
 
마지막에는 드레파눔에서 아버지 안키세스를 잃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많은 위험을 함께 견딘 아버지가 신들이 약속한 정착지에 이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뒤 다시 바다에 나왔다가 폭풍에 휩쓸려 카르타고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디도는 고향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남편을 잃고 고향 티로스를 떠나 이 낯선 땅에 나라를 세운 사람이었다.
 
밤이 깊어져도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의 이야기를 쉽게 놓지 못했다. 그의 용기와 가문, 수많은 시련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의 얼굴과 목소리도 마음속에 남았다. 연회가 끝나 사람들이 흩어진 뒤에도 그녀는 편히 잠들지 못했다. 시카이우스의 죽음 이후 닫아 두었던 마음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촛불 아래 방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네이아스
 
 
3.2 디도가 안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 디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 동생 안나를 찾아갔다. 그녀는 밤새 자신을 괴롭힌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낯선 손님 아이네이아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모습과 용기가 얼마나 뛰어난지, 신의 혈통을 지닌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겪은 전쟁과 방랑의 이야기도 계속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디도에게 새로운 사랑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첫 남편 시카이우스가 오빠 피그말리온에게 살해된 뒤, 그녀는 다시는 혼인하지 않고 죽은 남편에게 충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리비아와 주변 지역의 여러 왕과 구혼자들도 모두 거절해 왔다. 아이네이아스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켜 온 결심을 깨뜨리는 일이었다.
 
디도는 안나에게 만약 다시 혼인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이네이아스에게 마음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 죽은 남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 했다. 말을 마친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디도는 아직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새로운 마음과 오래된 맹세가 그녀 안에서 서로 맞서고 있었다.
 
동생 안나에게 사랑을 털어놓는 디도
 
 
3.3 안나의 권유로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다
 
안나는 언니에게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만 붙들고 평생을 홀로 보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아이네이아스처럼 뛰어난 영웅을 배우자로 맞는다면 디도에게도 행복이고, 새로 세운 카르타고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주변에는 누미디아와 게툴리아를 비롯한 여러 세력이 있었고, 카르타고는 아직 낯선 땅에서 자리를 잡아 가는 중이었다. 트로이인들과 힘을 합친다면 도시도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안나는 트로이의 배들이 카르타고에 온 것 자체가 신들의 뜻일지도 모른다며 언니를 설득했다. 아이네이아스가 떠날 준비를 서두르지 않도록 겨울과 거친 바다를 이유로 붙잡아 두고, 함께 지내며 관계를 깊게 하라고 권했다. 안나의 말은 이미 사랑에 흔들리고 있던 디도의 마음에 희망을 주었다. 오랫동안 금지해 왔던 새로운 사랑을 이제는 받아들여도 된다는 이유를 얻은 셈이었다.
 
디도는 안나와 함께 신전들을 찾아가 제물을 바치고 신들의 뜻을 구했다. 특히 혼인의 여신 유노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다. 그러나 마음속 사랑의 불길은 더욱 커져 갔다. 그녀는 아이네이아스를 도시 곳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성벽과 재물을 보여 주었고, 말을 시작했다가도 끝맺지 못하곤 했다. 마침내 성벽과 탑의 공사가 멈추고, 젊은이들의 훈련과 항구 건설도 중단되었다. 새 도시를 세우던 여왕의 마음은 점점 아이네이아스에게 사로잡혀 갔다.
 
유노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디도와 안나
 
 
 

제4장. 사냥과 폭풍 속에서 사랑을 이루다

4.1 디도와 아이네이아스가 함께 사냥에 나서다
 
디도의 사랑이 깊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노는 베누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디도가 이미 아이네이아스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으니, 아예 두 사람을 혼인으로 맺어 트로이인들을 카르타고에 머물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네이아스는 이탈리아로 향하지 않고 디도와 함께 카르타고를 다스리게 될 것이었다. 베누스는 유노가 아이네이아스를 예정된 운명에서 떼어 놓으려 한다는 속뜻을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베누스는 유피테르가 티로스인과 트로이인을 한 나라와 한 민족으로 합치는 일을 허락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노는 그 문제는 자신에게 맡기라며 다음 날 예정된 사냥을 이용할 계획을 내놓았다. 디도와 아이네이아스가 숲으로 나가면 갑작스러운 폭우와 우박을 쏟아 사냥꾼들을 흩어 놓고, 두 사람만 같은 동굴로 피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유노는 두 사람을 부부처럼 맺어 주려 했다.
 
다음 날 아침 카르타고의 성문 앞에는 화려한 사냥 행렬이 모였다. 디도는 자주색과 금빛 장식의 옷을 입고 말을 탔고, 아이네이아스도 트로이인들과 함께 그녀의 곁을 따랐다. 젊은 아스카니우스는 사냥의 즐거움에 들떠 들판을 달리며 사슴 떼 사이를 누볐고, 멧돼지나 사자 같은 더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산과 골짜기에는 사냥꾼들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도 맑은 하늘 뒤에서 유노가 준비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말을 타고 사냥터로 나서는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4.2 폭풍을 피해 두 사람이 동굴에 들어가다
 
사냥이 한창일 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거센 비와 우박이 쏟아졌다. 산비탈에서는 빗물이 급류가 되어 흘러내렸고, 카르타고 사람들과 트로이인들은 놀라 사방으로 흩어져 피난처를 찾았다. 아스카니우스와 수행원들도 사냥을 멈추고 비를 피해 달아났다. 유노가 미리 계획한 순간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었다.
 
혼란 속에서 디도와 아이네이아스는 같은 동굴로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렸으며, 대지의 여신 텔루스와 혼인의 여신 유노가 함께 두 사람의 결합을 알리는 징표를 보냈다. 산꼭대기에서는 님프들의 울음이 울려 퍼졌다. 폭풍으로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동굴 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여왕과 손님 사이에 머물지 않았다.
 
디도에게 이날은 자신과 아이네이아스가 부부가 된 날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사랑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이네이아스를 남편처럼 받아들였다. 아이네이아스 역시 카르타고에 머물며 여왕과 가까운 관계를 이어 갔다. 그러나 이 결합을 두 사람이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디도에게는 혼인이었지만, 아이네이아스에게 정해진 운명은 여전히 카르타고 너머에 남아 있었다.
 
폭풍을 피해 같은 동굴에 들어선 두 사람
 
 
4.3 디도가 아이네이아스를 남편처럼 받아들이다
 
폭풍이 지나간 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와의 관계를 더 이상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동굴에서 이루어진 두 사람의 결합을 혼인이라고 여기고 아이네이아스를 자신의 남편처럼 받아들였다. 아이네이아스도 카르타고에 머물며 디도와 가까운 관계를 이어 갔다. 오랜 방랑과 상실을 겪은 두 사람에게 함께 보내는 시간은 잠시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비밀로 남지 않았다. 소문의 여신 파마는 카르타고에서 일어난 일을 리비아 곳곳으로 퍼뜨렸다. 아이네이아스가 카르타고에 와 디도와 결합했고, 두 사람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각자의 나라와 앞날을 잊은 채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도시와 부족 사이를 빠르게 돌아다녔다. 사실과 과장이 뒤섞인 소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카르타고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알렸다.
 
그 소문은 마침내 디도에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했던 게툴리아의 왕 이아르바스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디도는 아직 다가올 파국을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아이네이아스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자 남편과 같은 존재였고, 카르타고에서 함께할 미래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에게 신들이 정해 둔 목적지는 여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가장 깊어진 순간, 그 관계를 뒤흔들 새로운 사건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카르타고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 출전: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1권 34~756행 — 유노의 폭풍, 리비아 상륙, 카르타고 입성, 디도와의 첫 만남, 연회와 큐피도의 개입.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2~3권 — 디도에게 들려주는 트로이 멸망과 아이네이아스의 방랑 이야기.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4권 1~197행 — 디도의 사랑, 안나와의 대화, 제사, 유노와 베누스의 계획, 사냥과 폭풍, 동굴에서의 결합과 소문의 확산.
 
※ 각주:
〔1〕 베누스(Venus) —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Aphrodite)에 해당하는 로마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이다.
〔2〕 큐피도(Cupido) —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Eros)에 해당하는 로마의 사랑의 신. 《아이네이스》에서는 베누스의 아들로 등장하여 아스카니우스의 모습으로 디도에게 접근한다.
〔3〕 유노(Juno) —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에 해당하는 로마의 혼인과 가정의 여신. 유피테르의 아내이며, 《아이네이스》에서는 트로이인들의 여정을 방해한다.
〔4〕 넵투누스(Neptunus) —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Poseidon)에 해당하는 로마의 바다의 신. 《아이네이스》에서는 유노가 일으킨 폭풍을 진정시킨다.
〔5〕 유피테르(Jupiter) —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에 해당하는 로마의 최고신. 하늘과 천둥을 다스리며 신들과 인간의 운명을 관장한다.
〔6〕 바쿠스(Bacchus) —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에 해당하는 포도주와 황홀경의 신. 바쿠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에서도 디오니소스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7〕 텔루스(Tellus) —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Gaia)에 해당하는 로마의 대지의 여신. 테라(Terra)라고도 불린다.
〔8〕 파마(Fama) — 그리스 신화의 페메(Pheme) 또는 오사(Ossa)에 해당하는 소문과 명성의 여신. 《아이네이스》에서는 수많은 눈과 입, 귀를 지닌 거대한 날개 달린 존재로 묘사되며,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소문을 퍼뜨린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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