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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 전쟁 별전 【 가담항설의지식창고 】 2026.09.24. 00:21 (2026.09.24. 00:21)

11.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  
마침내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테베레강 어귀에서 빵으로 만든 받침까지 먹게 되면서 오래전 하르피이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라티누스 왕은 신탁에 따라 트로이인들을 환대하고 아이네이아스와 라비니아의 혼인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유노는 알렉토를 보내 아마타와 투르누스를 선동하고, 아스카니우스가 길들인 사슴을 쏘는 사건까지 겹치면서 트로이인과 라틴인 사이에 첫 피가 흐른다.
목   차
[숨기기]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개요

 
마침내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테베레강 어귀에서 빵으로 만든 받침까지 먹게 되면서 오래전 하르피이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라티누스 왕은 신탁에 따라 트로이인들을 환대하고 아이네이아스와 라비니아의 혼인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유노는 알렉토를 보내 아마타와 투르누스를 선동하고, 아스카니우스가 길들인 사슴을 쏘는 사건까지 겹치면서 트로이인과 라틴인 사이에 첫 피가 흐른다.
 
 
 

제1장. 마침내 약속된 땅 라티움에 도착하다

1.1 키르케의 땅을 지나 라티움으로 향하다
 
시빌라와 함께 명계를 다녀온 아이네이아스는 쿠마이를 떠나 다시 바다로 나섰다. 항해 도중 그의 유모 카이에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세워 마지막 예를 다했다. 일행은 밤바다를 따라 티레니아해 연안을 항해하며 키르케가 사는 땅 가까이 이르렀다. 숲에서는 사자와 늑대, 멧돼지 같은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본래 사람이었으나 키르케의 마법으로 짐승이 된 자들이었다.
 
트로이인들이 그 위험한 해안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넵투누스는 순풍을 보내 함선을 앞으로 밀어 주었다. 배들은 밤새 키르케의 땅을 지나갔고, 새벽빛이 바다를 붉게 물들일 무렵 바람이 잦아들었다. 노를 저어 나아가던 아이네이아스의 눈앞에 넓은 숲과 그 사이를 흘러 바다로 들어오는 큰 강이 나타났다. 황금빛 모래를 실은 물결 위로 새들이 날며 울고 있었다.
 
그 강은 테베레강이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즉시 배의 뱃머리를 돌려 강어귀로 향하게 했다. 오랜 세월 트라키아와 크레타, 에페이로스와 시칠리아, 카르타고를 떠돌던 트로이인들은 마침내 예언이 가리킨 이탈리아의 땅에 들어섰다. 아직 이곳 사람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을 어떻게 맞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함대는 처음으로 목적지의 강물 위에 닻을 내렸다.
 
테베레강 어귀로 들어서는 아이네이아스의 함대
 
 
1.2 식탁까지 먹으며 예언의 뜻을 깨닫다
 
라티움의 해안에 내린 트로이인들은 큰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준비했다. 곡식으로 만든 둥근 빵을 접시처럼 깔고 그 위에 들에서 얻은 열매와 음식을 올려놓았다. 긴 항해 끝에 허기가 심했던 사람들은 음식을 모두 먹고도 배가 차지 않자 밑에 깔아 둔 빵까지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스카니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식탁까지 먹는군요.”
 
아이네이아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의 예언을 떠올렸다. 스트로파데스에서 하르피이 켈라이노는 트로이인들이 이탈리아에 닿더라도 굶주림 때문에 식탁까지 먹기 전에는 도시를 세우지 못하리라고 예언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켈라이노의 예언과 함께, 아버지 안키세스가 생전에 식탁까지 먹게 되는 곳에 이르면 그곳을 정착할 땅으로 삼으라고 남긴 말도 떠올렸다. 지금 그들이 먹은 ‘식탁’은 음식을 받치던 빵이었다. 두려웠던 예언이 뜻밖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네이아스는 마침내 약속된 땅에 도착했음을 확신했다. 그는 이곳의 신과 대지, 강과 샘의 신들에게 기도하고, 이다산의 유피테르와 죽은 아버지 안키세스에게도 기원을 올리며 술을 부어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맑은 하늘에서 천둥이 세 번 울리고 빛나는 구름이 나타났다. 트로이인들은 이를 신들의 응답으로 받아들였다. 오랜 방랑 끝에 자신들이 정착할 땅을 찾았다는 기쁨이 진영에 퍼졌다.
 
빵 식탁을 들고 예언의 성취를 깨닫는 아이네이아스
 
 
1.3 라티움에 첫 진영을 세우고 사절을 보내다
 
날이 밝자 아이네이아스는 동료들을 여러 방향으로 보내 주변의 지형과 사람들을 살피게 했다. 그들은 테베레강과 누미키우스의 샘, 넓은 들판과 숲을 돌아보며 이 땅에 라틴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네이아스는 함대가 머무는 곳에 얕은 도랑을 파고 흙을 쌓아 방벽을 만들게 했다. 아직 평화가 보장되지 않은 낯선 땅이었기에 첫 거처는 도시라기보다 견고한 진영의 모습에 가까웠다.
 
곧 아이네이아스는 이 땅의 왕에게 먼저 평화를 청하기로 했다. 그는 동료들 가운데 백 명을 골라 사절로 삼고, 올리브 가지로 머리를 두르게 한 뒤, 트로이에서 가져온 귀중한 선물을 들려 라티누스 왕의 도시로 보냈다. 자신들은 약탈자가 아니라 신탁을 따라 새로운 조국을 찾아온 사람들이며, 정착할 땅과 우호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직접 진영에 남아 방비를 다지며 답을 기다렸다.
 
사절들은 들판을 지나 라티누스의 성벽 가까이에 이르렀다. 성 밖에서는 젊은이들이 말을 달리고 활을 당기며 창을 던지고 있었고, 경주와 권투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낯선 복장의 무리가 다가온다는 소식이 왕궁에 전해지자 라티누스는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안으로 부르도록 명했다.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한 트로이인들의 운명은 이제 라티움의 왕과 마주하게 되었다.
 
올리브 가지를 쓰고 라티누스에게 떠나는 사절단
 
 
 

제2장. 라티누스 왕에게 새로운 땅을 청하다

2.1 라비니아의 혼인을 둘러싼 신탁
 
라티움을 다스리던 라티누스는 나이가 많은 왕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으나 젊어서 세상을 떠났고, 이제 왕가에는 혼인할 나이가 된 딸 라비니아만 남아 있었다. 여러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청혼했으며, 그중에서도 루툴리인의 왕 투르누스가 가장 유력했다. 왕비 아마타도 투르누스를 사위로 맞기를 바랐다. 그러나 라티누스는 딸의 혼인을 둘러싸고 잇따라 나타나는 기이한 징조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왕궁의 신성한 월계수에는 어느 날 수많은 벌이 날아와 가지에 떼를 지어 매달렸다. 예언자는 멀리서 온 낯선 사람이 이곳에 와 권세를 얻게 될 징조라고 풀이했다. 또 라비니아가 제단 곁에 서 있을 때 불길이 머리카락과 관을 휘감으며 타올랐지만 그녀의 몸은 다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징조가 라비니아에게는 큰 명성과 영광을, 라티움의 백성에게는 커다란 전쟁을 예고한다고 해석했다.
 
라티누스는 마침내 아버지 파우누스의 뜻을 묻기 위해 알부네아의 성스러운 숲으로 갔다. 제물을 바치고 양가죽 위에 누워 밤을 보내자 숲 깊은 곳에서 신탁이 들려왔다. “네 딸을 라틴인과 혼인시키지 마라. 바다 건너에서 사위가 올 것이며, 그의 후손은 우리의 이름을 크게 높일 것이다.” 그래서 트로이 사절이 찾아왔다는 소식은 라티누스에게 단순한 이방인의 방문이 아니었다. 오래 기다려 온 신탁이 이루어질 조짐처럼 보였다.
 
불길에 휩싸인 라비니아를 바라보는 라티누스
 
 
2.2 트로이 사절들이 라티누스 왕을 만나다
 
라티누스는 조상들의 상과 전리품이 늘어선 오래된 궁전에서 트로이 사절을 맞았다. 그는 다르다노스의 후손들이 먼 바다를 건너왔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다며, 무엇을 바라 이곳에 왔는지 물었다. 사절단을 이끈 일리오네우스는 폭풍에 떠밀려 온 것이 아니라 신들의 뜻을 따라 스스로 라티움을 찾아왔다고 대답했다. 트로이가 멸망한 뒤 수많은 바다를 건넜지만, 그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정복이 아니라 새로운 조국이었다.
 
일리오네우스는 라티누스에게 넓은 땅이나 부를 요구하지 않았다. 트로이의 신들을 모실 작은 터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물과 공기, 평화롭게 살아갈 자리를 청했다. 다르다노스가 본래 이탈리아에서 떠난 조상이며, 아폴론의 신탁이 그 후손들을 다시 테베레강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이네이아스가 보낸 선물이라며 불타는 트로이에서 구해 온 유물들을 왕 앞에 내놓았다.
 
그 가운데에는 안키세스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황금 잔과 프리아모스 왕의 홀, 머리에 쓰던 관과 트로이 여인들이 짠 의복이 있었다. 멸망한 왕국의 마지막 흔적을 바라보던 라티누스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려한 선물보다 파우누스의 신탁이었다. 바다 건너에서 올 사위와 새로운 혈통에 대한 예언이 지금 자신 앞의 트로이인들과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라티누스 앞에 트로이의 선물을 바치는 일리오네우스
 
 
2.3 라티누스가 평화와 혼인을 받아들이려 하다
 
라티누스는 마침내 트로이인들의 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라티움의 비옥한 땅과 자신의 재산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아이네이아스가 직접 찾아와 손을 맞잡고 우호를 맺기를 바랐다. 이어 자신에게는 딸 하나가 있지만 신탁 때문에 라틴 사람과 혼인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바다 건너에서 온 사위가 라티움의 이름을 높이리라는 예언을 떠올린 그는 아이네이아스가 바로 운명이 가리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왕은 사절들에게 화려하게 장식한 말들을 한 필씩 내주고, 아이네이아스를 위해서는 특별히 두 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준비했다. 금빛 장식과 자주색 천으로 꾸민 말과 전차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평화와 동맹의 표시였다. 사절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답을 얻어 진영으로 돌아갔다. 아이네이아스에게는 정착할 땅뿐 아니라 라티움 왕가와의 혼인 가능성까지 열린 셈이었다.
 
트로이인들은 오랜 방랑 끝에 마침내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왕을 만났다고 여겼다. 라티누스 역시 신탁이 평화롭게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라비니아의 혼인은 이미 투르누스와 왕비 아마타의 마음에 깊이 얽혀 있었다. 트로이인들이 평화의 선물을 받아 들고 돌아가던 바로 그때, 하늘에서는 그 광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신이 있었다. 트로이를 끝까지 미워하던 유노였다.
 
트로이 사절들에게 말과 전차를 내리는 라티누스
 
 
 

제3장. 유노가 라티움에 전쟁의 씨앗을 뿌리다

3.1 유노가 알렉토를 불러내다
 
유노는 트로이 함대가 테베레강에 들어오고 아이네이아스가 마침내 정착할 땅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 바다와 폭풍으로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트로이인들은 끝내 살아남아 라티움에 도착했다. 유노도 운명 자체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라비니아가 결국 아이네이아스와 이어지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일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피와 고통을 더하는 것은 가능했다.
 
유노는 명계의 복수의 여신 가운데 하나인 알렉토를 불러냈다. 알렉토는 전쟁과 원한을 일으키고 가족과 이웃 사이에 증오를 퍼뜨리는 존재였다. 유노는 라티누스와 트로이인들 사이에 막 이루어지려는 평화를 깨뜨리고, 라비니아의 혼인을 둘러싸고 라틴인과 트로이인이 서로 칼을 들게 하라고 명했다. 평화의 약속이 굳어지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부터 뒤흔들라는 것이었다.
 
알렉토는 곧 라티움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처음 향한 곳은 왕궁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투르누스를 사위로 생각해 온 왕비 아마타가 트로이인들의 도착과 라비니아의 혼인 문제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알렉토에게는 새로운 증오를 만들어 낼 필요조차 없었다.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과 불만을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키우기만 하면 되었다. 라티움의 평화는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전쟁의 씨앗은 왕궁 안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명계에서 알렉토를 불러내는 분노한 유노
 
 
3.2 알렉토가 아마타 왕비를 광기에 빠뜨리다
 
알렉토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뱀 한 마리를 꺼내 아마타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처음에는 독기가 천천히 퍼졌다. 아마타는 라티누스에게 눈물을 흘리며 딸을 낯선 트로이인에게 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아이네이아스를 파리스에 빗대며 그가 라비니아를 데리고 떠날지 모른다고 말했고, 이미 여러 차례 혼인을 기대하게 한 투르누스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라티누스가 뜻을 바꾸지 않자 알렉토의 독은 더욱 깊이 퍼졌다. 아마타는 이제 차분한 설득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라비니아를 데리고 왕궁을 뛰쳐나가 숲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바쿠스의 제의를 행하는 것처럼 꾸미며 딸의 혼인을 미루려 했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산과 숲을 돌아다니며 라틴의 여인들을 불러 모았다. 왕비의 행동은 곧 궁정 밖으로 번져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많은 여인들이 집을 떠나 아마타를 따라 숲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라비니아를 투르누스에게 주어야 한다고 외치며 트로이인과의 혼인을 거부했다. 라티누스가 신탁에 따라 마련하려던 평화로운 혼인은 왕비의 반발로 첫 번째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알렉토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왕궁을 흔든 뒤에는 라비니아를 잃게 될 사람, 곧 루툴리인의 왕 투르누스에게 향했다.
 
라비니아를 데리고 숲으로 달려가는 아마타
 
 
3.3 알렉토가 투르누스를 전쟁으로 몰아가다
 
알렉토는 밤중에 루툴리인의 도시 아르데아로 날아가 잠든 투르누스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유노의 늙은 여사제 칼리베의 모습으로 변해 라티누스가 약속을 저버리고 라비니아를 트로이인에게 주려 한다고 말했다. 아이네이아스의 함선이 이미 테베레강에 들어왔으니 지금 일어나 군사를 모으고, 트로이의 배를 불태우며 낯선 자들을 라티움에서 몰아내라고 부추겼다.
 
투르누스는 처음에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트로이 함대가 도착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며, 전쟁과 평화는 자신이 판단할 일이라며 늙은 여사제를 비웃었다. 그러자 알렉토는 가면을 벗었다. 머리에서 뱀들이 솟구치고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무서운 모습을 드러내며 불붙은 횃불을 투르누스의 가슴에 던졌다. 투르누스는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잠에서 깨어났다.
 
알렉토가 심은 불길은 곧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투르누스는 무기를 찾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라티누스가 자신에게 돌아올 라비니아와의 혼인을 빼앗고 낯선 트로이인을 왕가에 들이려 한다고 외쳤다. 그는 루툴리인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라고 명하고 주변의 젊은이들에게도 무장을 재촉했다. 아마타의 반발에 투르누스의 분노까지 더해지면서, 라티움의 갈등은 이제 왕가의 혼인 문제를 넘어 무력 충돌로 향하기 시작했다.
 
횃불을 투르누스의 가슴에 던지는 알렉토
 
 
 

제4장. 첫 피가 흐르며 전쟁의 문이 열리다

4.1 아스카니우스가 길들인 사슴을 쏘다
 
투르누스의 마음에 전쟁의 불을 붙인 알렉토는 다시 트로이인들의 진영으로 향했다. 그때 아스카니우스는 젊은 동료들과 함께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알렉토는 사냥개들에게 특별한 냄새를 맡게 하여 한 마리의 큰 사슴을 뒤쫓게 했다. 그 사슴은 야생 짐승이 아니었다. 라티누스 왕의 가축을 돌보던 티르루스와 그의 자식들이 어려서부터 길러 온 사슴으로, 특히 딸 실비아가 정성껏 보살피며 뿔에 꽃과 장식을 달아 주곤 했다.
 
더위를 피해 강물에 몸을 담그던 사슴이 사냥개들에게 쫓기자 아스카니우스는 활을 들어 화살을 쏘았다. 아스카니우스가 쏜 화살은 사슴의 옆구리를 깊이 꿰뚫었다. 상처 입은 사슴은 피를 흘리며 숲을 빠져나와 익숙한 집으로 돌아갔다. 실비아는 문 앞에 쓰러진 사슴을 보고 울부짖으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티르루스와 주변의 목동들은 곧 몽둥이와 말뚝, 도끼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사슴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자란 존재였다. 알렉토는 이 작은 비극이 더 크게 번지도록 목동들의 뿔나팔 소리를 멀리까지 퍼뜨렸다. 숲과 들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트로이 진영에서도 아스카니우스를 돕기 위해 무장한 젊은이들이 뛰쳐나왔다. 우연처럼 보인 사냥은 이제 두 집단이 맞서는 충돌로 바뀌고 있었다.
 
길들인 사슴을 향해 활을 쏘는 아스카니우스
 
 
4.2 트로이인과 라틴인 사이에 첫 피가 흐르다
 
처음에는 목동들이 들고 온 몽둥이와 말뚝이 부딪히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트로이의 젊은이들이 무기를 들고 나오면서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칼이 뽑히고 창과 화살이 날아다녔다. 분노에 휩싸인 양쪽 사람들은 더 이상 사슴 한 마리의 죽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알렉토가 바라던 첫 유혈 충돌이 라티움의 들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싸움 속에서 티르루스의 맏아들 알모가 화살을 맞았다. 목 아래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사람들을 말리려던 늙은 갈라이수스도 목숨을 잃었다. 그는 라티움에서 가장 정의롭고 부유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었지만, 분노한 무리 사이에 끼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시신이 쓰러지자 싸움은 더 이상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을 넘어섰다.
 
알렉토는 자신의 임무가 이루어졌음을 알고 유노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이미 트로이인들의 손에 라틴인들의 피가 묻었으니 이제 두 세력이 쉽게 화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노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사슴의 죽음은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진 사람의 죽음은 전쟁을 요구할 명분이 되었다. 목동들은 알모와 갈라이수스의 시신을 들고 라티누스의 도시로 향했다.
 
알모의 죽음으로 격렬해지는 트로이인과 목동들의 충돌
 
 
4.3 유노가 전쟁의 문을 열다
 
목동들은 죽은 알모와 갈라이수스의 시신을 들고 라티누스의 도시로 향했다. 그들은 왕에게 트로이인들의 공격을 갚아 달라고 외쳤고, 투르누스도 사람들을 이끌고 전쟁을 요구했다. 아마타의 행동에 자극받은 사람들까지 합세하면서 왕궁 주변에는 무기를 들자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라티누스는 신탁이 명한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을 말리려 했지만, 이미 번진 분노를 잠재우기 어려웠다.
 
라티움에는 전쟁을 선포할 때 통치자가 직접 굳게 닫힌 ‘전쟁의 문’을 여는 오래된 관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라티누스에게 문을 열고 트로이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왕은 이를 거부했다. 바다 건너에서 온 사위를 받아들이라는 파우누스의 신탁을 기억한 그는 이 전쟁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여겼다. 결국 라티누스는 더 이상 사람들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왕궁 안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유노가 직접 내려와 굳게 닫힌 전쟁의 문을 밀어 열었다. 라티움 곳곳에서 나팔이 울리고 사람들이 무기를 꺼냈다. 농부들은 밭일을 멈추고 칼과 창을 준비했으며, 여러 도시의 젊은이들이 방패와 투구를 갖추기 시작했다. 투르누스를 중심으로 라티움과 주변 부족의 전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이네이아스가 오랜 방랑 끝에 찾아낸 약속의 땅은 새로운 조국이 되기도 전에 거대한 전쟁을 앞두게 되었다.
 
굳게 닫힌 전쟁의 문을 직접 여는 유노
 
 

 
※ 출전: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7권 1~640행 — 카이에타를 떠난 항해, 테베레강 도착, ‘식탁’의 예언 성취, 라티누스와 파우누스의 신탁, 트로이 사절단, 유노와 알렉토, 아마타와 투르누스, 사슴 사건, 첫 유혈 충돌, 전쟁의 문 개방.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제3권 245~266행 — 스트로파데스에서 하르피이 켈라이노가 예언한 ‘식탁까지 먹게 되는’ 사건.
 
※ 각주:
〔1〕 넵투누스(Neptunus):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Poseidon)에 해당하는 로마의 바다의 신.
〔2〕 유피테르(Iuppiter):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에 해당하는 로마의 최고신. 하늘과 천둥을 다스리는 신.
〔3〕 파우누스(Faunus): 숲과 들판, 가축을 관장하는 고대 이탈리아의 신. 그리스 신화의 판(Pan)과 동일시되었으나 본래 별개의 신이다. 《아이네이스》에서는 라티누스 왕의 아버지이자 신탁을 내리는 신으로 등장한다.
〔4〕 유노(Iuno):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에 해당하는 로마의 여신. 유피테르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
〔5〕 바쿠스(Bacchus):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를 가리키는 이름. 포도주와 황홀경, 종교적 도취를 관장하는 신.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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