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티움 전쟁에서 쓰러진 팔라스와 카밀라
팔라스는 아르카디아군을 이끌고 라티움 전쟁에 나서지만 투르누스와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고, 그의 죽음을 들은 아이네이아스는 분노하여 라틴 동맹군을 거세게 몰아붙인다. 라우수스와 메젠티우스까지 쓰러진 뒤 양군은 전사자들의 장례를 위해 잠시 휴전한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자 볼스키족의 여전사 카밀라가 라틴군의 선봉에 서서 활약하지만 아룬스의 창에 맞아 죽고, 전쟁은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의 마지막 대결을 향해 나아간다.
1.1 팔라스가 아르카디아군을 이끌고 싸우다
아이네이아스가 에트루리아군과 함께 돌아오자 전세는 크게 흔들렸다. 에반드로스의 아들 팔라스도 아르카디아 젊은이들을 이끌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처음 겪는 큰 전투였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르카디아군이 적의 공격에 밀리자 팔라스는 말에서 내려 병사들 한가운데 서서, 지금이야말로 아버지와 고향의 이름을 빛낼 때라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팔라스는 직접 앞장서 라구스와 히스보를 비롯한 적들을 쓰러뜨리고 달아나던 병사들을 다시 싸움터로 돌려세웠다. 하라이수스가 거세게 밀고 들어오자 티베르강의 신에게 승리를 빌며 창을 던져 그를 쓰러뜨렸다. 젊은 지휘관의 용기에 힘을 얻은 아르카디아군은 다시 대열을 갖추었고, 트로이군과 에트루리아군도 곳곳에서 라틴 동맹군을 압박했다.
전장의 다른 쪽에서는 라우수스가 병사들을 모아 맞서고 있었다. 팔라스와 비슷한 또래인 두 젊은이는 각자 자기 군대의 중심에서 싸웠지만 서로 직접 맞붙지는 않았다. 그때 투르누스가 팔라스를 발견하고 다른 전사들에게 싸움을 멈추라 명하며 자신이 직접 상대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걸어서 팔라스에게 다가갔고, 아르카디아 병사들은 두 사람 사이에 길을 열었다.
아르카디아 병사들을 격려하는 팔라스
1.2 팔라스가 투르누스와 결투를 벌이다
투르누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팔라스는 상대의 힘이 자신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에반드로스의 집에서 환대를 받았던 헤르쿨레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투르누스를 쓰러뜨려 그 무장을 전리품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헤르쿨레스는 그 기도를 들었지만 팔라스에게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었다.
팔라스가 먼저 창을 힘껏 던졌다. 창은 투르누스의 방패 가장자리를 뚫고 어깨 부근을 스치며 상처를 냈다. 투르누스는 잠시 물러서는 대신 더 강한 창을 들어 팔라스를 겨누었다. 그는 자신의 무기가 더 날카로운지 보라며 창을 던졌고, 굵은 창은 팔라스의 방패에 겹겹이 붙은 가죽과 청동을 뚫은 뒤 갑옷마저 꿰뚫었다.
창끝은 팔라스의 가슴 깊숙이 박혔다. 팔라스는 상처에서 창을 뽑으려 했지만 피와 함께 힘이 빠져나갔고, 결국 적진의 땅 위에 쓰러졌다. 그의 무기가 몸 위에서 요란하게 부딪혔다. 아르카디아 병사들은 젊은 왕자가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얼어붙었다. 첫 출전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던 팔라스의 전투는 그렇게 투르누스와의 결투에서 끝났다.
전장에서 맞서는 팔라스와 투르누스
1.3 투르누스가 팔라스의 허리띠를 빼앗다
팔라스가 쓰러지자 투르누스는 그의 시신 위에 발을 올리고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아르카디아 병사들에게 시신을 아버지 에반드로스에게 돌려보내라며, 아이네이아스를 손님으로 맞아들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전하라고 말했다. 팔라스에게 무덤과 장례를 치를 권리는 남겨 주겠다고 했지만, 그의 몸에서 값진 전리품 하나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팔라스가 허리에 두르고 있던 화려한 허리띠였다. 거기에는 다나오스의 딸들이 혼인 첫날밤 남편들을 죽인 이야기가 금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투르누스는 그 허리띠를 벗겨 자신의 전리품으로 삼고 승리를 기뻐했다. 팔라스의 동료들은 울면서 젊은 전사의 시신을 방패 위에 눕히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아군 진영으로 옮겼다.
첫 출전에서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던 팔라스는 그렇게 동료들의 어깨에 실려 전장을 떠났다. 투르누스는 자신이 빼앗은 전리품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 채 다시 싸움 속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라스가 투르누스에게 죽었다는 소식이 아이네이아스에게 전해졌고, 그 순간부터 그의 전투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팔라스의 허리띠를 빼앗는 투르누스
제2장. 팔라스의 죽음에 아이네이아스가 분노하다
2.1 아이네이아스가 투르누스를 찾아 전장을 휩쓸다
팔라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아이네이아스에게 전해지자 그는 에반드로스와 나누었던 약속을 떠올렸다. 팔라스를 맡아 달라던 늙은 왕의 부탁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맺은 우정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아이네이아스는 이제 투르누스를 찾아 전장을 헤집고 다녔다. 그의 공격은 이전보다 훨씬 거칠어졌고, 마주치는 라틴 동맹군은 잇달아 쓰러졌다.
그는 술모의 아들 네 명과 우펜스가 기른 젊은이 네 명을 산 채로 붙잡아 팔라스의 장례 불길에 바칠 포로로 삼았다. 마구스가 그의 무릎을 붙잡고 아스카니우스와 죽은 안키세스의 이름으로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자신에게도 기다리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으며, 많은 금과 은을 몸값으로 내놓겠다고 했지만 아이네이아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르누스가 팔라스를 죽인 순간 그런 거래는 끝났다며 마구스를 베었다.
아이네이아스는 계속 투르누스를 찾았지만 유노는 아직 그의 죽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신은 아이네이아스의 모습을 닮은 환영을 만들어 투르누스를 유인했고, 그가 배에 올라타자 밧줄을 끊어 전장에서 멀리 떠내려가게 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정작 원하던 투르누스와 맞서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적군을 향해 분노를 쏟아부었다.
분노하여 적진을 휩쓰는 아이네이아스
2.2 라우수스가 아버지 메젠티우스를 구하다
투르누스가 전장에서 사라진 뒤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에트루리아에서 쫓겨난 옛 왕 메젠티우스가 라틴 동맹군의 중심에 서서 트로이군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는 거대한 창을 휘두르며 여러 전사를 쓰러뜨렸고, 마침내 아이네이아스와 서로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병사들 사이를 가르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메젠티우스가 던진 창은 빗나가 다른 전사 안토레스를 쓰러뜨렸다. 아이네이아스가 되던진 창은 메젠티우스의 단단한 방패를 꿰뚫고 몸에 깊은 상처를 냈다. 아이네이아스가 칼을 뽑아 마무리하려는 순간 메젠티우스의 아들 라우수스가 아버지 앞으로 뛰어들었다. 젊은 그는 자신의 방패로 아버지를 가리고 동료들에게 창을 던지게 해 메젠티우스가 물러날 시간을 벌었다.
아이네이아스는 라우수스에게 힘에 넘치는 용기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고 경고했지만, 라우수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아이네이아스의 칼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쓰러진 젊은이의 얼굴을 바라본 아이네이아스는 아버지를 구하려다 죽은 그의 모습에서 자신과 안키세스를 떠올렸다. 분노가 잠시 누그러진 그는 라우수스의 무장을 빼앗지 않고 시신을 동료들에게 돌려주었다.
아버지 메젠티우스를 가로막아 지키는 라우수스
2.3 메젠티우스가 아들의 뒤를 따라 쓰러지다
상처를 입고 티베르강 근처에서 쉬던 메젠티우스는 아들 라우수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울고 있는 병사들과 방패 위에 실린 아들의 시신이었다. 그는 흙을 머리에 뿌리고 아들의 몸을 끌어안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아들이 대신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메젠티우스는 더는 살아남을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함께 싸워 온 군마를 불러 마지막으로 전장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신과 함께 아이네이아스의 목숨을 빼앗거나, 그렇지 못하면 함께 죽자고 한 뒤 다시 말에 올랐다. 메젠티우스는 아이네이아스를 향해 창을 잇달아 던지며 말을 몰았지만 아이네이아스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아이네이아스는 말에게 창을 던져 쓰러뜨리고 넘어진 메젠티우스에게 다가갔다.
메젠티우스는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라우수스를 잃은 뒤 자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고 말하며 단 하나, 자신의 시신을 아들과 같은 무덤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네이아스의 칼이 그의 목숨을 끊으면서 부자는 같은 날 전장에서 쓰러졌다. 팔라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아이네이아스의 격렬한 반격은 메젠티우스와 라우수스의 죽음까지 이어진 뒤에야 잠시 멈추었다.
쓰러진 군마 곁에서 아이네이아스와 맞서는 메젠티우스
3.1 아이네이아스가 팔라스의 시신을 돌려보내다
전투가 끝난 다음 날 새벽, 아이네이아스는 먼저 메젠티우스에게서 빼앗은 무장을 떡갈나무 줄기에 걸어 마르스에게 승리의 전리품으로 바쳤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보다 그의 마음을 무겁게 누른 것은 팔라스의 죽음이었다. 그는 팔라스의 시신이 놓인 곳으로 가서 젊은 전사의 창백한 얼굴과 가슴의 상처를 바라보며 에반드로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아이네이아스는 나뭇가지와 잎으로 장식한 운구대를 만들게 하고 그 위에 팔라스를 눕혔다. 카르타고의 디도가 직접 짜서 주었던 금실로 수놓은 자주빛 옷 두 벌 가운데 하나를 꺼내 시신을 덮었다. 전장에서 얻은 무기와 말, 전리품들을 함께 보내고, 붙잡아 두었던 포로들도 행렬 뒤를 따르게 했다. 팔라스의 군마는 장식을 벗긴 채 행렬을 따랐고, 트로이인과 에트루리아인, 아르카디아인들은 무기를 거꾸로 들고 뒤를 따랐다.
아이네이아스는 천 명의 병사를 골라 팔라스의 시신을 팔란테움까지 호위하게 했다. 그는 오래도록 행렬을 바라보다가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이상 자신은 함께 갈 수 없었다. 팔라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일을 다른 이들에게 맡긴 채 아이네이아스는 다시 진영으로 돌아섰고, 슬픈 장례 행렬은 에반드로스가 기다리는 도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팔라스의 장례 행렬을 떠나보내는 아이네이아스
3.2 에반드로스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다
팔라스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문이 먼저 팔란테움에 전해져 있었지만, 뒤이어 횃불을 든 장례 행렬이 다가오자 기쁨은 순식간에 통곡으로 바뀌었다. 에반드로스는 성문 밖으로 달려나와 아들의 시신을 맞았다. 운구대가 내려지자 그는 팔라스의 몸 위에 엎드려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도시의 사람들과 아르카디아 병사들도 늙은 왕 곁에서 함께 울었다.
에반드로스는 전쟁에 나갈 때 조심하겠다고 했던 아들의 말을 떠올렸다. 젊은 시절 자신도 전쟁과 명예가 주는 기쁨을 알고 있었기에 팔라스를 붙잡지 못했다며 슬퍼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네이아스와 트로이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팔라스는 도망치다 죽은 것이 아니라 앞장서 적과 싸우다가 쓰러졌고, 아버지가 바라던 명예를 얻은 채 돌아왔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에반드로스는 트로이 병사들에게 아이네이아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을 잃은 자신이 아직 목숨을 이어 가는 것은 오직 투르누스가 팔라스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아이네이아스에게 새로운 일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투르누스가 그의 손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을 죽은 아들에게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랐다.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에반드로스
3.3 열이틀의 휴전 뒤 전쟁이 다시 시작되다
라틴인들은 올리브 가지를 든 사절을 아이네이아스에게 보내 전장에 쓰러진 사람들을 거두어 장례를 치를 시간을 요청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죽은 자들과 싸울 이유는 없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라틴인 전체와 전쟁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라 투르누스와의 결투로 싸움을 끝낼 뜻이라고 말했다. 양군은 열이틀의 휴전을 맺고 서로 방해하지 않은 채 전사자들을 거두어 화장하고 매장했다.
그 사이 라틴 진영에는 지원을 청하러 갔던 사절들이 돌아왔다. 디오메데스는 트로이인들과 다시 싸우기를 거부했으며, 트로이 전쟁 뒤 그리스 영웅들이 겪은 고난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네이아스와 화해하라고 충고했다. 라티누스 왕은 더 이상의 전쟁을 피할 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드란케스는 투르누스를 비난했고 투르누스는 자신이 직접 아이네이아스와 맞서겠다고 응수했다.
논쟁이 계속되던 중 트로이군과 에트루리아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회의는 중단되고 라틴인들은 성벽과 길목으로 달려가 다시 무기를 들었다. 투르누스는 병력을 나누어 방어를 준비하고 자신은 산길에 매복하여 아이네이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평원의 기병전은 볼스키족의 여전사 카밀라에게 맡겨졌다. 열이틀 동안 멈추었던 전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전이 끝난 뒤 다시 무기를 드는 라틴군
4.1 볼스키족의 여전사 카밀라가 출전하다
카밀라는 볼스키족을 이끄는 젊은 여전사였다. 아버지 메타부스가 고향 프리베르눔에서 쫓겨날 때 그녀는 아직 갓난아이였다. 추격자들에게 쫓기던 메타부스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달아나다 폭우로 크게 불어난 아마세누스강 앞에서 길이 막혔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긴 창에 아이를 코르크나무 껍질로 단단히 묶은 뒤, 딸을 디아나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메타부스는 온 힘을 다해 창을 강 건너편으로 던졌고, 어린 카밀라는 거센 물살 위를 날아 맞은편 강둑에 떨어졌다. 그는 뒤따라 강물을 헤엄쳐 건너가 딸과 창을 되찾았다. 이후 어느 도시도 메타부스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부녀는 산과 숲에서 살았다. 그는 암말의 젖으로 딸을 키웠고, 카밀라는 어려서부터 창과 활, 투석구를 익히며 사냥과 전투에 뛰어난 처녀로 성장했다.
카밀라는 수많은 구혼을 물리치고 디아나를 섬기며 무기를 든 삶을 택했다. 라티움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자 그녀는 메사푸스와 함께 기병대를 이끌고 트로이군과 에트루리아군을 막으러 나갔다. 투르누스는 자신이 산길에 매복하여 아이네이아스를 노리는 동안 평원의 전투를 카밀라에게 맡겼다. 하늘에서 이를 바라본 디아나는 카밀라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시녀 오피스에게 내려가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라고 명했다.
볼스키족 기병을 이끌고 출전하는 카밀라
4.2 카밀라가 라틴군의 선봉에서 활약하다
전투가 시작되자 카밀라는 볼스키 기병의 선두에서 적진을 휘저었다. 손에 든 창을 연달아 던지고 가까이 다가온 적에게는 전투도끼를 휘둘렀으며, 물러설 때조차 몸을 돌려 활을 쏘았다. 라리나와 툴라, 타르페이아 같은 여전사들이 그녀 곁을 지켰다. 카밀라가 지나가는 곳마다 트로이와 에트루리아 병사들이 쓰러졌고 라틴군은 그녀를 따라 다시 힘을 얻었다.
그녀는 여러 적장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전장을 누볐다. 빠른 말과 민첩한 움직임 때문에 적들은 그녀를 쉽게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전세가 계속 한쪽으로 기울지는 않았다. 에트루리아의 지휘관 타르콘이 흩어지던 병사들을 꾸짖어 다시 공격하게 했고, 양쪽 기병대가 뒤엉키면서 싸움은 더욱 거칠어졌다. 카밀라는 여전히 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사였다.
그 모습을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싸우던 에트루리아 전사 아룬스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카밀라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다니며 창을 던질 기회를 기다렸다. 카밀라는 그의 추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화려한 프리기아식 무장을 한 클로레우스를 발견했다. 금빛 장식과 자주색 옷을 두른 그에게 시선이 끌린 카밀라는 다른 적들을 잊고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기병대 선두에서 적진을 휘젓는 카밀라
4.3 아룬스의 창에 맞은 카밀라가 쓰러지다
카밀라가 클로레우스를 쫓는 데 몰두하자 아룬스는 기다리던 기회를 잡았다. 그는 아폴론에게 카밀라를 쓰러뜨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멀리서 창을 던졌다. 창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카밀라의 드러난 가슴 아래 깊숙이 박혔다. 곁의 여전사들이 급히 달려와 그녀를 붙잡았고, 아룬스는 자신이 한 일을 두려워해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카밀라는 손으로 창을 뽑으려 했지만 창끝은 뼈 사이에 깊이 박혀 있었다. 피가 빠져나가며 힘을 잃은 그녀는 가장 가까운 동료 아카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자신은 더 싸울 수 없으니 투르누스에게 즉시 가서 전투를 이어받고 트로이군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전하라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카밀라는 고삐와 무기를 놓고 땅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카밀라의 죽음과 함께 볼스키 기병은 흔들렸고 라틴군은 성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디아나가 보낸 오피스는 카밀라의 죽음을 지켜본 뒤 아룬스를 화살로 쏘아 죽였다. 아카에게 소식을 들은 투르누스는 매복을 포기하고 급히 전장으로 돌아왔다. 그가 떠난 직후 아이네이아스가 산길을 지나면서 두 영웅은 또 한 번 엇갈렸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두 사람의 직접 대결을 피하기 어려운 마지막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룬스의 창에 맞아 쓰러지는 카밀라
※ 출전: 베르길리우스(Vergilius), 《아이네이스(Aeneis)》 제10권 362~908행, 제11권 1~915행. 팔라스의 활약과 죽음, 아이네이아스의 격노, 라우수스와 메젠티우스의 죽음은 주로 제10권 후반부에 해당하며, 팔라스의 장례와 에반드로스의 애도, 휴전, 카밀라의 출전과 죽음은 제11권에 해당한다.
※ 각주: 〔1〕 헤르쿨레스(Hercules) :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Heracles).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로, 열두 과업을 수행한 영웅이다. 〔2〕 유노(Juno) :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 유피테르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이며, 《아이네이스》에서 트로이인들의 이탈리아 정착을 방해한다. 〔3〕 마르스(Mars) :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Ares)에 해당하는 로마의 전쟁신. 로마에서는 군대와 국가를 수호하는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4〕 디아나(Diana) :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Artemis). 사냥과 야생동물, 처녀의 수호 여신으로, 《아이네이스》에서 카밀라를 특별히 아낀다.
※ 추가로 구분할 이름: 본문에 나오는 아폴론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므로 각주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티베르강의 신은 특정 강을 의인화한 신으로, 그리스 신화에 직접 대응하는 동일한 신이 없습니다. 또한 에반드로스의 아들 팔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테나의 별칭으로 쓰이는 팔라스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