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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의 마지막 결투
라티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투르누스는 패퇴하는 라틴군과 자신에게 주어진 결투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아이네이아스와 단독 결투를 벌이기로 한다. 그러나 유노의 뜻을 받은 유투르나의 선동으로 휴전이 깨지면서 전쟁은 다시 시작되고 아이네이아스도 부상을 입는다. 치료를 마친 그가 라우렌툼을 공격하자 투르누스는 마침내 전장으로 돌아와 마지막 결투에 나선다. 아이네이아스는 쓰러진 투르누스를 살려 줄지 잠시 망설이지만, 팔라스의 허리띠를 발견하고 그를 죽이며 긴 전쟁을 끝낸다.
제1장.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가 결투를 약속하다
1.1 투르누스가 단독 결투를 받아들이다
라틴군이 잇달아 패하고 자신에게 결투의 약속을 지키라는 시선이 쏠리자 투르누스는 더 이상 군대 전체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라티누스 왕에게 아이네이아스와 자신이 직접 싸워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라티누스는 이미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며 그를 만류했다. 라비니아와의 혼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땅과 왕국을 얻을 수 있으니 살아남으라고 설득했다.
왕비 아마타도 투르누스에게 매달렸다. 그녀는 그가 죽으면 자신 역시 살아갈 수 없다며 결투를 포기하라고 호소했다. 곁에 있던 라비니아도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붉혔다. 투르누스는 라비니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결투를 피한다면 자신의 명예도, 자신을 따라 싸운 라틴 전사들의 희생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마침내 투르누스는 아이네이아스에게 전갈을 보내 처음 약속했던 단독 결투를 받아들이겠다고 알렸다. 두 사람이 직접 싸워 라비니아의 혼인과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고, 다른 병사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다. 아이네이아스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이어진 라티움 전쟁은 이제 두 영웅의 일대일 결투로 끝날 듯했다.
결투를 결심하고 라티누스 앞에 선 투르누스
1.2 양군이 결투의 맹세를 나누다
다음 날 아침, 트로이군과 라틴군은 넓은 들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지 않았다. 들판 한가운데에는 제단이 세워지고 제물과 불이 준비되었다. 라티누스 왕과 아이네이아스가 앞으로 나왔고, 양쪽 병사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싸울 두 영웅의 결투가 전쟁을 끝내기를 바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네이아스는 유피테르와 여러 신들을 증인으로 삼아 맹세했다. 만약 투르누스가 자신을 쓰러뜨린다면 트로이인들은 에반드로스의 땅으로 물러가고 아스카니우스도 라티움을 떠나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었다. 반대로 자신이 승리하더라도 라틴인들을 정복된 백성으로 만들거나 자신이 왕권을 차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두 민족은 동등한 조건으로 영원한 조약을 맺고, 라티누스는 기존의 왕권을 유지할 것이었다. 트로이인들은 새로운 성벽을 세우고, 그 도시는 라비니아의 이름을 따르게 될 것이었다.
라티누스도 하늘과 땅의 신들을 증인으로 삼아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제물의 피가 제단에 흐르고 양쪽 지도자들이 엄숙하게 서약하자 병사들은 창과 방패를 내려놓았다. 오랜 전쟁이 마침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이 평화를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던 투르누스의 누이 유투르나가 라틴군 사이로 내려와 다시 전쟁의 불씨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제단 앞에서 결투의 맹세를 나누는 양군
1.3 유투르나가 결투를 방해하다
유노는 투르누스가 아이네이아스와 정면으로 싸운다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투르누스의 누이이자 물의 님프로 불멸을 얻은 유투르나를 불러 동생을 구하라고 재촉했다. 유투르나는 라틴 전사 카메르스의 모습을 하고 병사들 사이로 들어가, 수많은 라틴 전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 한 사람의 결투로 모든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옳으냐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때 하늘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백조 떼를 덮쳐 한 마리를 발톱으로 낚아챘다. 그러나 백조들이 떼를 지어 독수리를 공격하자 독수리는 붙잡았던 새를 놓치고 달아났다. 라틴군의 점쟁이 톨룸니우스는 이 광경을 보자 라틴인들이 힘을 합치면 외부에서 온 트로이인들을 몰아낼 수 있다는 신의 징조라고 외쳤다. 그의 말에 동요하던 병사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전투 쪽으로 기울었다.
톨룸니우스는 마침내 창을 들어 트로이군을 향해 던졌다. 창은 적진에 있던 한 전사를 쓰러뜨렸고, 양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전까지 신들에게 평화를 맹세했던 병사들은 다시 칼과 창을 집어 들었다. 제단은 무너지고 제물은 흩어졌으며 결투를 지켜보던 군대는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투르나의 계략으로 어렵게 마련된 휴전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톨룸니우스의 창으로 무너지는 휴전
2.1 아이네이아스가 휴전을 지키라고 외치다
전투가 다시 시작되자 트로이군과 라틴군은 순식간에 서로 뒤엉켰다. 창과 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조금 전까지 제사를 지내던 들판은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는 처음부터 싸움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는 투구를 벗고 무장하지 않은 채 오른손을 들어 병사들 앞으로 나가 양군에게 무기를 거두라고 외쳤다.
아이네이아스는 자신과 투르누스가 이미 결투를 약속했으니 다른 병사들이 싸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만 싸움을 맡기고 맹세를 지키라고 거듭 외쳤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전장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누가 적이고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전사들은 계속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아이네이아스의 몸을 꿰뚫었다. 누가 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부상에 트로이군이 동요했고, 아이네이아스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전장에서 물러났다. 이를 본 라틴군은 용기를 되찾아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한순간의 화살이 전쟁의 흐름을 다시 투르누스 쪽으로 돌려놓는 듯했다.
싸움을 말리다 화살에 맞는 아이네이아스
2.2 베누스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료하다
아이네이아스는 진영으로 옮겨졌지만 화살촉이 상처 깊숙이 박혀 있었다. 늙은 의사 이아피스가 서둘러 치료에 나섰다. 그는 손으로 화살을 잡아당기고 여러 약초와 도구를 사용했지만 화살촉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아이네이아스는 고통을 참으며 치료를 재촉했다. 전장에서는 여전히 그의 병사들이 싸우고 있었다.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베누스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크레타의 이다산에서 약효가 뛰어난 약초를 가져와 이아피스가 준비한 물에 몰래 섞었다. 의사는 그것이 여신의 도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약물을 상처에 씻어 냈다. 그러자 깊숙이 박혀 있던 화살촉이 저절로 빠져나오고 피도 곧 멎기 시작했다.
놀라울 만큼 빠르게 힘을 되찾은 아이네이아스는 다시 갑옷을 입었다. 그는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불러 잠시 품에 안고, 용기와 인내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창과 방패를 들고 진영 밖으로 나섰다. 조금 전까지 부상당해 물러났던 트로이군의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자 병사들은 환호했고, 전쟁의 흐름도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이아피스의 치료를 받는 아이네이아스
2.3 투르누스를 찾아 전장으로 돌아오다
아이네이아스의 목표는 오직 투르누스였다. 그는 다른 라틴 전사들과 불필요한 싸움을 벌이지 않으려 하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자신과 약속한 상대가 어디 있는지 찾으며 투르누스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러나 투르누스는 좀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투르나가 다시 동생을 위험에서 떼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투르나는 투르누스의 전차를 모는 마부의 모습을 하고 전장을 누볐다. 아이네이아스가 가까이 다가오면 방향을 틀어 멀리 달아났고, 다른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그쪽으로 투르누스를 데려갔다. 투르누스는 적을 베며 싸우면서도 자신이 의도적으로 아이네이아스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아이네이아스는 몇 차례나 투르누스를 눈앞에 두고도 놓쳤다. 아무리 추격해도 전차가 달아났고, 메사푸스가 던진 창까지 그의 투구를 스치자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깨진 맹세의 신들을 증인으로 부르며 마침내 전투에 뛰어들어 라틴군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계속 투르누스를 찾아 헤매는 것만으로는 전쟁을 끝낼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라틴군의 왕도 라우렌툼으로 향했다. 투르누스를 결투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전쟁의 중심지인 도시를 직접 압박하기로 한 것이다.
투르누스의 전차를 추격하는 아이네이아스
3.1 아이네이아스가 라우렌툼 공격을 결심하다
아이네이아스는 전장에 흩어진 트로이군과 에트루리아군을 불러 모았다. 유투르나가 계속 투르누스를 결투에서 피하게 하자 그는 더 이상 상대를 찾아 전장을 헤매지 않기로 했다. 아이네이아스는 므네스테우스와 세르게스투스, 세레스투스 등 장수들을 불러 라우렌툼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했다. 두 번이나 맹세를 깨뜨린 라틴인들이 더 이상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쟁의 근거지인 도시 자체를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트로이군은 방패를 맞대고 라우렌툼을 향해 빠르게 전진했다. 성벽 위에서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발견한 라틴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성문을 열고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무기를 들고 성벽을 지키려 했다. 트로이군은 사다리를 가져오고 횃불을 들었으며 성문과 성벽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성벽 아래에서 라티누스와 라틴인들을 향해 자신이 다시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그들이 또다시 맹세를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외쳤다. 투르누스가 나와 결투하지 않는다면 라우렌툼을 무너뜨리고 불태우겠다고 위협했다. 불붙은 횃불이 성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고, 두 영웅의 결투로 끝날 예정이었던 전쟁은 마침내 라티누스의 왕도 자체를 집어삼킬 위기에 놓였다.
라우렌툼 공격을 명령하는 아이네이아스
3.2 라우렌툼이 혼란에 빠지다
트로이군이 성벽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라우렌툼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살과 돌이 성벽 위아래로 날아다녔고, 일부 병사들은 사다리를 세워 벽을 오르려 했다. 불붙은 횃불이 건물과 방책으로 날아들면서 연기가 치솟았다. 거리에서는 여자들과 노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궁전과 신전으로 몸을 피했다.
라틴인들 사이에서는 다시 의견이 갈렸다. 일부는 성문을 열고 아이네이아스와 화해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투르누스를 따르는 이들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티누스 왕은 자신이 처음부터 트로이인들과 평화를 맺으려 했던 일을 떠올리며 절망했다. 유노의 분노와 사람들의 고집이 결국 나라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었다.
아이네이아스는 공격의 선두에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의 목적은 도시를 점령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투르누스를 결투장으로 불러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성벽과 궁전 가까이까지 불길이 번지고 투르누스의 군대가 보이지 않자, 궁전 안의 아마타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불길과 혼란에 휩싸인 라우렌툼
3.3 아마타가 투르누스의 죽음을 오해하다
궁전 안에서 전투의 소리를 듣던 아마타는 성벽 가까이에서 연기가 치솟고 트로이군이 궁전까지 밀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라우렌툼이 곧 함락될 것이며 투르누스도 이미 전장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오래전부터 아이네이아스와 라비니아의 혼인을 반대하고 투르누스를 사위로 받아들이려 했던 그녀에게 모든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마타는 자신이 전쟁을 부추겨 수많은 죽음을 불러왔다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투르누스마저 죽었다고 믿은 그녀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비의 죽음이 알려지자 궁전은 통곡으로 가득 찼다. 라비니아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몸부림쳤고, 라티누스 왕도 옷을 찢으며 머리에 재를 뿌렸다. 라우렌툼의 혼란은 더욱 커졌다.
한편 전장에서 싸우던 투르누스에게 부상당한 전사 사케스가 말을 달려왔다. 그는 아이네이아스가 라우렌툼을 공격하고 있으며 아마타 왕비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렸다. 투르누스는 멀리 도시에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며 더 이상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유투르나가 다시 그를 위험에서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는 거부하고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자신의 운명을 직접 마주할 때가 온 것이다.
투르누스의 죽음을 오해해 절망한 아마타
제4장.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의 마지막 결투
4.1 투르누스가 마지막 결투에 나서다
투르누스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라우렌툼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더 이상 누이의 도움을 받아 아이네이아스를 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라틴군과 트로이군 사이로 나아가 싸움을 멈추라고 외쳤다. 자신이 처음 약속한 대로 아이네이아스와 홀로 싸우겠으니 다른 사람들은 무기를 거두라고 말했다. 양쪽 병사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었다.
아이네이아스도 투르누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공격을 중지시켰다. 불길과 함성으로 가득했던 전장에 다시 두 영웅이 마주 섰다. 한쪽에는 오랜 방랑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트로이의 영웅이, 다른 쪽에는 자신의 나라와 명예를 지키려 한 라틴 동맹군의 전사가 서 있었다. 이제 누구도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무기를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패와 창이 부딪치고 칼날이 번쩍였다. 투르누스는 온 힘을 다해 공격했고 아이네이아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군의 병사들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라티움 전쟁의 승패가 마침내 두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다.
마지막 결투를 위해 마주 선 두 영웅
4.2 두 영웅이 운명의 결투를 벌이다
격렬한 싸움 중 투르누스가 칼을 휘둘렀지만 칼날이 아이네이아스의 갑옷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다. 급히 전투에 나서면서 아버지 다우누스에게서 받은 자신의 칼 대신 마부 메티스쿠스의 평범한 칼을 잘못 집어 들었던 것이다. 무기를 잃은 투르누스는 달아났고, 아이네이아스는 상처를 견디며 창을 들고 뒤를 추격했다.
아이네이아스가 던진 창은 투르누스를 빗나가 파우누스에게 바쳐진 야생 올리브나무의 뿌리에 깊이 박혔다. 그가 창을 빼내려 애쓰는 사이 유투르나는 메티스쿠스의 모습으로 투르누스에게 본래의 칼을 돌려주었고, 베누스도 아이네이아스의 창을 뽑아 주었다. 그때 유피테르는 유노에게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고 명했다. 유노는 두 민족이 하나가 되더라도 라틴의 이름과 언어, 풍습을 지켜 달라고 청했고 유피테르는 이를 받아들였다. 유투르나는 동생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전장을 떠났다.
홀로 남은 투르누스는 들판의 거대한 경계석을 들어 아이네이아스에게 던지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빠지고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힘껏 던진 돌도 아이네이아스에게 미치지 못하고 떨어졌다. 마치 꿈속에서 달아나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처럼 투르누스는 자신의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경계석을 들어 올리는 투르누스
4.3 팔라스의 허리띠를 보고 투르누스를 쓰러뜨리다
아이네이아스가 던진 창이 투르누스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투르누스는 힘을 잃고 한쪽 무릎을 땅에 꿇었다. 라틴군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고 산과 숲까지 그 소리를 되받아 울리는 듯했다. 쓰러진 투르누스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아이네이아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패배했으니 라비니아도 아이네이아스의 것이며 더 이상 원한을 품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늙은 아버지 다우누스를 생각해 자신의 시신만은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창을 든 채 잠시 망설였다. 쓰러진 상대의 말을 들으며 분노가 가라앉는 듯했고, 투르누스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마음도 일어났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아이네이아스의 눈에 투르누스가 두르고 있던 허리띠가 들어왔다. 그것은 투르누스가 젊은 팔라스를 죽인 뒤 빼앗아 전리품으로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팔라스의 죽음을 떠올린 아이네이아스의 분노가 다시 타올랐다. 그는 “팔라스가 이 일격을 내린다”고 외치며 검을 투르누스의 가슴에 찔렀다. 투르누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그의 영혼은 신음하며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의 싸움, 그리고 《아이네이스》의 긴 이야기도 끝을 맺었다.
쓰러진 투르누스 앞의 아이네이아스
※ 출전: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아이네이스(Aeneis)》 제12권. 투르누스의 단독 결투 제안과 맹세, 유투르나의 개입과 휴전 파기, 아이네이아스의 부상과 치료, 라우렌툼 공격과 아마타의 죽음, 유피테르와 유노의 합의,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의 최후 결투 및 투르누스의 죽음을 중심으로 구성.
※ 각주: 〔1〕 유노(Juno) —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 유피테르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으로, 트로이인들을 적대하며 아이네이아스의 여정을 방해한다. 〔2〕 유투르나(Juturna) — 라티움의 샘과 강을 관장하는 로마 고유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에 직접 대응하는 인물은 없다. 《아이네이스》에서는 투르누스의 누이로 등장하며, 유피테르에게 불멸을 부여받았다. 〔3〕 유피테르(Jupiter) —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 하늘과 천둥을 다스리는 최고신으로, 신들의 운명을 관장한다. 〔4〕 베누스(Venus) —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Aphrodite).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며, 아이네이아스의 어머니로서 그의 여정과 전쟁을 돕는다. 〔5〕 파우누스(Faunus) — 로마의 숲과 목축, 풍요를 관장하는 신. 그리스 신화의 판(Pan)과 동일시되었지만, 본래 이탈리아의 독자적인 신앙에서 유래한 신이므로 완전히 동일한 신으로 보기는 어렵다.
※ 표기상 참고: 투르누스·라티누스·아마타·라비니아·메티스쿠스 등은 로마·이탈리아 전승의 인물로, 그리스 신화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별도의 인물명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아이네이아스·에반드로스·팔라스는 이미 그리스식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각주를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