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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 별전 【 가담항설의지식창고 】 2026.09.26. 21:27 (2026.09.26. 21:27)

이카리오스와 에리고네 – 포도주가 부른 비극

■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전쟁에서 두 형제가 서로를 죽이자, 새 왕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한다. 안티고네는 신들의 법에 따라 오빠의 장례를 치르다 붙잡히고, 크레온은 그녀를 산 채로 동굴에 가둔다. 하이몬의 간청과 테이레시아스의 경고를 듣고 뒤늦게 명령을 거둔 왕은 먼저 폴리네이케스를 장사지낸 뒤 안티고네를 구하러 가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죽음은 하이몬과 에우리디케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크레온은 가족을 잃은 채 홀로 남는다.
목   차
[숨기기]
안티고네의 비극 – 꺾지 못한 신념
 
 

개요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전쟁에서 두 형제가 서로를 죽이자, 새 왕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한다. 안티고네는 신들의 법에 따라 오빠의 장례를 치르다 붙잡히고, 크레온은 그녀를 산 채로 동굴에 가둔다. 하이몬의 간청과 테이레시아스의 경고를 듣고 뒤늦게 명령을 거둔 왕은 먼저 폴리네이케스를 장사지낸 뒤 안티고네를 구하러 가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죽음은 하이몬과 에우리디케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크레온은 가족을 잃은 채 홀로 남는다.
 
 
 

제1장. 두 형제의 죽음과 왕의 금령

1.1 두 형제가 서로를 죽이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전쟁은 마침내 도시를 지켜 낸 테바이군의 승리로 끝났다. 아르고스에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온 폴리네이케스는 빼앗긴 왕위를 되찾으려 했지만, 동생 에테오클레스는 끝내 왕좌를 내놓지 않았다. 두 형제는 테바이의 성문 앞에서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고, 치열한 결투 끝에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오이디푸스가 두 아들에게 내렸던 저주는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형제는 같은 날, 같은 전장에서 서로의 손에 죽었다.
 
아르고스군이 물러가자 테바이는 무너진 성벽을 수습하고 전사자들의 장례를 준비했다. 시민들은 도시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왕궁에는 기쁨이 찾아오지 않았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모두 죽으면서 당장 왕위를 이어받을 두 왕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왕궁에는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남아 있었다.
 
안티고네는 전쟁에 나서기 전 폴리네이케스가 남겼던 부탁을 떠올렸다. 그는 콜로노스에서 아버지의 저주를 듣고, 자신이 죽더라도 두 자매가 장례를 치러 달라고 간청했었다. 안티고네는 오빠에게 전쟁을 포기하고 아르고스로 돌아가라고 애원했지만, 끝내 그를 돌려세우지 못했다. 이제 두 오빠가 모두 죽었고, 그녀에게는 폴리네이케스의 마지막 부탁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부탁을 지키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을 운명이었다.
 
테바이 성문 앞에서 결투하는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1.2 크레온이 테바이의 왕이 되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모두 죽자 왕위는 이오카스테의 형제이자 두 왕자의 외삼촌인 크레온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전에도 오이디푸스 왕가의 위기 속에서 테바이의 국정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전쟁으로 흔들린 도시를 안정시켜야 했던 크레온은 왕위에 오른 뒤 원로들을 왕궁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신들이 테바이를 지켜 주었으며, 이제는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크레온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사적인 친분이나 혈연 때문에 국가의 이익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국을 지킨 자와 조국을 공격한 자를 똑같이 대우할 수 없으며, 나라에 충성한 사람은 살아 있을 때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로들은 왕의 말을 들으며 전쟁에서 쓰러진 두 형제의 처분이 어떻게 결정될지 기다렸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가 끝까지 테바이를 지켰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폴리네이케스는 망명지에서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신의 고향과 신전까지 파괴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두 형제를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배반을 구별하지 않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새로운 왕은 통치의 첫머리에서 두 조카의 죽음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테바이 원로들 앞에서 새로운 왕으로 선언하는 크레온
 
 
1.3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하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게 성대한 장례를 치르고, 테바이를 지키다 죽은 영웅으로 예우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시신에는 정해진 장례 의식이 베풀어지고, 시민들은 왕가의 무덤에서 그를 애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에게 내려진 명령은 정반대였다. 크레온은 그를 조국을 공격한 반역자로 규정하고, 누구도 그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장례를 치러서는 안 된다고 선포했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전장 밖에 버려 둔 채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해야 했다. 누구든 그를 위해 흙을 덮거나 애도의 의식을 행하다 발각되면 시민들 앞에서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크레온은 병사들에게 시신을 감시하도록 지시하고, 왕의 명령을 어기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게 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죽은 뒤에도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일은 살아남은 가족이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였다. 특히 시신에 흙을 덮고 정해진 의식을 치르는 행위는 죽은 이를 명계로 보내는 마지막 예우였다. 폴리네이케스에게 내려진 금령은 단순히 무덤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처벌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에게는 죽은 형제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명령이었다. 그 소식은 곧 왕궁에 남은 두 자매에게도 전해졌다.
 
병사들에게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는 크레온
 
 
1.4 안티고네가 이스메네를 설득하다
 
금령을 들은 안티고네는 이스메네를 왕궁 밖으로 불러냈다. 그녀는 두 오빠가 모두 죽었는데 한 사람에게는 장례가 허락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매장조차 금지되었다며 분노했다. 그러고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함께 묻어 주자고 제안했다. 이스메네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만류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오빠를 잃은 지금 두 자매까지 죽음을 자초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스메네는 자신들이 힘없는 여인들이며, 왕의 명령을 거스른다고 해서 그를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죽은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겠지만 살아 있는 권력자의 명령을 어길 용기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죽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지낼 시간보다 훨씬 길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전쟁에 나서기 전 오빠가 남겼던 마지막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혼자서라도 장례를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이스메네는 안티고네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어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자신이 하려는 일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오빠에게 마땅한 의식을 치러 준 뒤 죽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두 자매는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면서도 끝내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 이스메네가 왕궁에 남자, 안티고네는 홀로 전장을 향해 떠났다.
 
왕궁 밖에서 이스메네에게 오빠의 매장을 제안하는 안티고네
 
 
 

제2장. 왕의 명령에 맞선 안티고네

2.1 금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신을 덮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전투가 끝난 들판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크레온의 명령을 받은 경비병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안티고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오빠의 시신에 다가갔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흘렀는데도 시신은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일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손으로 마른 흙을 모아 시신 위에 가볍게 뿌리고, 죽은 사람에게 베푸는 장례 의식을 행했다. 완전한 무덤을 만들거나 거창한 장례를 치를 수는 없었지만, 시신을 흙으로 덮어 죽은 이를 예우하려는 뜻만큼은 분명했다. 안티고네는 왕이 어떤 처벌을 내릴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오빠를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버려 둘 수는 없었다. 왕의 금령이 아무리 엄격하더라도 오빠에게 마지막 의식을 치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짧은 의식을 마친 안티고네는 그 자리를 떠났다. 거대한 무덤도, 장례 행렬도 남지 않았다. 시신 위에 얇게 덮인 흙만이 누군가 금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려 줄 뿐이었다. 경비병들은 처음에는 아무 일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날이 밝고 시신을 확인하던 병사 하나가 흙이 뿌려진 흔적을 발견했다. 왕이 가장 엄격하게 금지했던 일이 이미 벌어진 뒤였다.
 
홀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흙을 뿌리는 안티고네
 
 
2.2 경비병들이 매장의 흔적을 발견하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흙이 덮여 있는 것을 발견한 경비병들은 크게 당황했다. 주변 땅에는 삽이나 괭이로 판 흔적이 없었고, 누가 장례를 치렀는지 알아낼 만한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병사들은 서로 감시를 게을리했다고 비난하며 다투었다. 누구도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았지만, 끝내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을 보냈다. 그는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크레온 앞에 나아갔다.
 
경비병이 누군가 폴리네이케스에게 장례 의식을 행했다고 보고하자 크레온은 격노했다.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이 신들이 죽은 이를 가엾게 여겨 벌인 일일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크레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반역자의 시신을 신들이 보호할 리 없다며, 자신의 명령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돈으로 경비병을 매수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경비병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위협도 덧붙였다.
 
겁에 질린 경비병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시신을 덮고 있던 흙을 모두 걷어 내고, 누군가 다시 찾아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시신의 냄새가 닿지 않도록 바람이 불어오는 쪽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병사들은 서로 졸지 말라고 다그치며 주변을 살폈다. 범인을 붙잡지 못하면 자신들이 벌을 받게 될 처지였으므로, 이번에는 누구도 감시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시신을 덮은 흙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경비병들
 
 
2.3 다시 장례를 치르다 붙잡히다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오고 뜨거운 바람이 들판을 지나갈 무렵, 갑자기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나뭇가지가 흔들리자 경비병들은 눈을 감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먼지가 날렸지만, 이윽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때 병사들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곁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바로 안티고네였다.
 
안티고네는 시신을 덮었던 흙이 모두 치워진 것을 보고 새끼를 잃은 새처럼 울부짖었다. 그녀는 누가 오빠의 마지막 장례마저 훼손했는지 원망하며 다시 손으로 흙을 모았다. 그러고는 가져온 청동 그릇으로 시신에 세 차례 액체 제물을 부어 바쳤다. 주변을 감시하던 병사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장례를 멈추지 않았다. 죽은 오빠에게 해야 할 일을 마치는 것이 먼저였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안티고네를 붙잡았다. 그들은 앞서 시신을 덮었던 일과 지금 다시 장례를 치르는 일을 모두 추궁했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행동을 조금도 부인하지 않았다. 경비병들은 마침내 범인을 붙잡았다는 안도감 속에 그녀를 왕궁으로 끌고 갔다. 오이디푸스의 딸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체포되었다는 사실에 테바이의 원로들도 놀랐다. 이제 안티고네는 외삼촌이자 새로운 왕인 크레온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했다.
 
시신에 제물을 바치다 경비병들에게 붙잡히는 안티고네
 
 
2.4 크레온 앞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다
 
크레온은 끌려온 안티고네에게 매장을 금지한 명령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왕이 어째서 금령을 어겼느냐고 추궁하자, 안티고네는 그 명령이 제우스가 내린 것도 아니며 명계의 신들이 정한 법도 아니라고 맞섰다. 인간인 왕의 명령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어진 신들의 법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죽는 것보다 오빠를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버려 두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크레온은 자신의 명령을 어긴 데다 조금도 굽히지 않는 안티고네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는 이스메네 역시 장례를 함께 계획했을 것이라 의심하며 불러오게 했다. 이스메네는 안티고네가 죽을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죄를 함께 짊어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이스메네가 장례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그 요청을 거절했다. 자신이 선택한 일 때문에 이스메네까지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이스메네는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왕은 명령을 거역한 여인을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안티고네 역시 자신이 오빠를 묻은 일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크레온은 두 자매를 시종들에게 맡겨 데려가게 했다. 왕의 명령과 안티고네의 뜻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고, 두 사람의 대립은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크레온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행동을 밝히는 안티고네
 
 
 

제3장. 죽음으로 향하는 안티고네

3.1 하이몬이 아버지에게 간청하다
 
안티고네에게 죽음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하이몬은 아버지 크레온을 찾아갔다.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존중하는 태도로 말을 꺼냈지만, 곧 테바이 시민들이 안티고네의 처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전했다. 사람들은 왕의 분노가 두려워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할 뿐, 죽은 오빠를 장사지낸 여인에게 사형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이몬은 아버지에게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크레온은 아들이 한 여인 때문에 왕의 명령에 반대한다고 여겼다. 그는 아버지에게 복종하지 못하는 아들이 어떻게 국가의 질서를 존중하겠느냐고 꾸짖었다. 그러나 하이몬은 자신이 안티고네만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테바이를 위해 간청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나라는 진정한 도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점점 격해졌다. 크레온은 아들이 자신을 가르치려 든다며 분노했고, 하이몬은 아버지가 정의를 저버리고 있다고 맞섰다. 마침내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하이몬의 눈앞에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하이몬은 그녀가 죽는다면 또 다른 죽음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는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였지만, 아들은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왕궁을 떠난 것이었다.
 
크레온 앞에서 안티고네를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하이몬
 
 
3.2 산 채로 무덤에 가두라는 명령
 
하이몬이 떠난 뒤에도 크레온의 결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안티고네에게 내릴 형벌의 방식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금령을 어긴 사람을 시민들 앞에서 돌로 쳐 죽이겠다고 선포했지만, 이제는 그녀를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바위 동굴에 산 채로 가두기로 했다. 약간의 음식만 넣어 두고 입구를 막아, 테바이가 직접 그녀의 피를 흘렸다는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가 그토록 섬기는 명계의 신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라고 냉소했다.
 
이스메네는 장례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안티고네에 대한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왕의 명령을 받은 시종들은 그녀를 왕궁에서 끌어내어 도시 밖의 외딴 동굴로 데려갈 준비를 했다. 그곳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감옥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무덤이 될 장소였다. 안티고네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녀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테바이의 원로들은 하이몬과 안티고네의 혼인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크레온은 아들의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명령을 거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종들에게 더는 시간을 끌지 말고 여인을 데려가라고 재촉했다. 안티고네는 다시는 왕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오빠를 위해 장례를 치르기로 했던 그녀는 이제 자신을 위한 장례조차 치러지지 않은 채 어두운 동굴에 갇히게 되었다.
 
병사들에게 이끌려 바위 동굴로 향하는 안티고네
 
 
3.3 마지막으로 햇빛과 작별하다
 
시종들에게 이끌려 무덤으로 향하던 안티고네는 마지막으로 테바이의 하늘과 햇빛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 혼인하지도 못했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도 누리지 못했는데 벌써 죽은 사람들의 세계로 떠나게 되었다며 슬퍼했다. 하이몬과 함께 맞이했을 혼인식 대신 자신에게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바위 동굴이었다. 그녀는 살아 있으면서도 산 사람들 사이에 머물 수 없고,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도 아직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했다.
 
안티고네는 오래전 시필로스산에서 바위로 변한 니오베를 떠올렸다. 자식을 잃고 돌이 된 뒤에도 눈물을 흘린다는 여인처럼 자신도 바위에 갇혀 죽음을 맞으리라고 생각했다. 원로들이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불행을 언급하자 그녀는 다시 가문의 저주를 떠올렸다. 부모와 두 오빠를 모두 잃은 뒤 이제 자신마저 그 뒤를 따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나 자식은 다시 얻을 수도 있지만, 부모가 모두 죽은 지금 새로운 형제가 태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폴리네이케스를 끝까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신들의 뜻에 어긋났다면 죽어서 그 잘못을 알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 형벌을 내린 사람들이 책임을 지게 되리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상의 신들과 테바이 시민들을 부른 뒤, 그녀는 동굴로 향했다. 무거운 돌문이 닫히면서 안티고네는 세상과 단절되었다.
 
동굴 앞에서 마지막으로 하늘과 햇빛을 바라보는 안티고네
 
 
3.4 테이레시아스가 불길한 예언을 전하다
 
안티고네가 끌려간 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어린 안내자의 손을 잡고 크레온을 찾아왔다. 그는 새들이 서로 싸우며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고, 제단에서도 희생 제물이 제대로 타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먹은 새와 짐승들이 도시의 제단까지 더럽혔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테바이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언자는 그 원인이 크레온의 명령에 있다고 경고했다.
 
테이레시아스는 죽은 사람은 매장하고 살아 있는 사람은 무덤에서 풀어 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크레온은 예언자마저 자신을 비난하자 분노했다. 그는 누군가 돈을 주고 테이레시아스를 매수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러자 예언자는 크레온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의 세계에 가두고, 죽은 사람은 지상에 버려 두었다고 꾸짖었다. 이런 잘못에 대한 대가로 머지않아 왕은 자신의 자식 가운데 한 사람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테이레시아스는 명계의 복수 여신들이 크레온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의 집안에도 통곡이 울려 퍼질 것이라고 경고한 뒤 떠났다. 크레온은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원로들은 테이레시아스가 테바이에 거짓 예언을 전한 적이 없다며 왕을 설득했다. 크레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령을 거두는 일이 두려웠지만, 예언을 무시하고 버티는 것은 더욱 두려웠다. 마침내 왕은 원로들에게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어린 안내자의 손을 잡고 크레온에게 경고하는 테이레시아스
 
 
 

제4장. 뒤늦은 후회와 왕가의 파멸

4.1 크레온이 뒤늦게 명령을 거두다
 
원로들은 크레온에게 서둘러 안티고네를 동굴에서 풀어 주고, 아직 매장되지 못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도 장례를 치르라고 권했다. 크레온은 마침내 자신의 결정을 바꾸었다. 그는 지금까지 고집했던 명령을 거두겠다고 선언하고, 시종들에게 연장과 도구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안티고네를 가두라고 명령한 사람이 자신이었으므로 이제 풀어 주는 일도 직접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은 사람들을 이끌고 서둘러 왕궁을 떠났다.
 
그러나 크레온 일행이 먼저 도착한 곳은 안티고네의 동굴이 아니라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이 버려진 들판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시신은 이미 짐승들에게 훼손된 상태였다. 크레온과 시종들은 명계의 신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남아 있는 시신을 정결한 물로 씻었다. 그런 다음 나뭇가지를 모아 장례의 불을 피우고, 의식을 마친 뒤 고향의 흙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왕이 내렸던 매장 금령은 이렇게 뒤늦게 철회되었다.
 
장례를 마친 크레온은 곧바로 안티고네가 갇힌 동굴로 향했다. 그는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무덤 가까이 이르렀을 때 동굴 안쪽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레온은 그 목소리가 아들 하이몬의 것처럼 느껴지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시종들에게 서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라고 명령했다.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마치고 안티고네를 구하러 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뒤였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장사지내는 크레온과 시종들
 
 
4.2 무덤에서 안티고네와 하이몬을 발견하다
 
시종들이 동굴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는 이미 돌이 치워진 틈이 있었다. 그 안쪽에서 하이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레온은 아들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깊숙한 곳에는 이미 목숨을 끊은 안티고네가 있었고, 하이몬은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 채 통곡하고 있었다. 안티고네는 자신을 가두었던 무덤 안에서 옷감으로 만든 끈을 이용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크레온이 명령을 거두고 찾아왔을 때는 이미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크레온은 그에게 다가가 밖으로 나오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하이몬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안티고네의 죽음을 아버지의 잘못으로 여겼고, 크레온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은 뒤 칼을 뽑아 들었다. 놀란 크레온이 몸을 피하자 칼은 그를 빗나갔다. 하이몬은 절망과 분노 속에서 다시 칼을 돌려 자신의 몸을 찔렀다.
 
크레온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막지 못했다. 하이몬은 마지막 힘을 다해 안티고네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혼인을 약속했던 두 사람은 살아서는 부부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무덤에서 죽음을 맞았다. 안티고네를 살리러 왔던 크레온은 오히려 아들의 죽음까지 지켜봐야 했다. 테이레시아스가 예언했던 자식의 죽음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크레온은 자신이 내린 명령이 두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졌다.
 
죽은 안티고네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하이몬과 이를 발견한 크레온
 
 
4.3 에우리디케마저 목숨을 끊다
 
왕궁 앞에서 크레온의 귀환을 기다리던 원로들에게 사자가 찾아왔다. 그는 왕이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고 안티고네를 구하러 갔지만, 이미 모든 일이 늦었다고 전했다. 안티고네가 무덤 안에서 죽었으며 하이몬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왕비 에우리디케가 여신 아테나에게 기도하러 나가려다가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아들의 이름이 들리자 걸음을 멈추고 사자에게 다가갔다.
 
에우리디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빠짐없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자는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부터 동굴에서 벌어진 일까지 차례로 전했다. 특히 하이몬이 죽은 안티고네를 끌어안고 울다가 아버지 앞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울부짖거나 사자를 원망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몸을 돌려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 침묵을 불길하게 여긴 사자가 뒤따라 들어갔을 때, 에우리디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앞서 죽은 또 다른 아들 메가레우스와 이제 세상을 떠난 하이몬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했다. 그러고는 두 아들의 죽음을 남편 크레온의 탓으로 돌리고, 제단 곁에서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티고네의 죽음으로 시작된 비극은 하이몬을 거쳐 에우리디케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던 크레온은 아직 아내에게 닥친 불행을 알지 못했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에우리디케
 
 
4.4 모든 것을 잃은 크레온만 남다
 
크레온은 죽은 하이몬의 시신을 거두어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자신이 내린 명령을 후회했다. 테이레시아스의 경고를 더 일찍 받아들였더라면 두 젊은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왕궁에 도착한 그에게 또 다른 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자가 에우리디케마저 목숨을 끊었다고 알린 것이다. 궁전의 문이 열리자 크레온은 아내의 시신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크레온은 아들의 시신을 안은 채 아내를 바라보며 통곡했다. 사자는 에우리디케가 죽기 직전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남편을 원망했다고 전했다. 크레온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아내마저 잃게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며 절망했다. 한때 누구도 자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고 선언했던 왕은 이제 시종들에게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테바이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왕궁에는 다시 죽음과 슬픔이 찾아왔다. 폴리네이케스는 뒤늦게 장례를 치렀고, 안티고네와 하이몬은 같은 무덤에서 죽음을 맞았으며, 에우리디케까지 세상을 떠났다. 크레온은 결국 자신의 명령을 철회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원로들이 신들을 경외하고 오만한 말을 삼가야 한다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크레온은 시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왕궁 안으로 사라졌다.
 
죽은 하이몬을 안고 절망에 빠진 크레온
 

 
※ 출전:
주요 출전
- 소포클레스(Sophocles), 《안티고네(Antigone)》 전편.
참고 출전
- 소포클레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Oedipus at Colonus)》 — 두 형제의 갈등과 폴리네이케스의 마지막 부탁.
- 아이스킬로스(Aeschylus),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Seven Against Thebes)》 — 테바이 전쟁과 두 형제의 죽음.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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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