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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18〉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서 예술 편집장 및 국제 뉴스 책임자(1997년~2014년)로 오래 활동한 찰리 잉글시(Charlie English) 작가는 2012년 말리 내전 당시 팀북투의 소중한 고문서들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구출해낸 역사적 사건을 취재하며 여러 차례 압델 카데르 하이다라 박사를 만나 인터뷰하였다. 작가는 2017년 《팀북투의 책 도둑들》(The Book Smugglers of Timbuktu)(2017년 작, 미국 제목: The Storied City)를 펴냈다. 그는 왕립지리학회(Royal Geographical Society)의 회원으로 팀북투의 모하메드 타하르 원본 도서관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찰리 잉글시 著《팀북투의 책 도둑들》(사진:아마존)
9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택배 기사들은 4륜구동 차량을 빌려 보통 두세 권의 원고가 실린 트렁크를 두 도시를 오가며 수백 차례 왕복했다. 그 여행은 좀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모하메드 투레는 첫 남쪽 여행 중 말리 정부 검문소에서 여섯 차례나 제지당했다. 군인들이 그를 괴롭히며 그의 트렁크 자물쇠를 부수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뒤졌다. 그의 차량은 두 번 고장이 났고, 운전자는 가는 도중 길을 잃었다. 일주일간의 여정 끝에 그는 바마코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다시 체포되어 열악한 감옥에 수감되었다. 운전수가 증언하기를 “압델 카데르가 도착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마침내 원고들과 함께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어요. 계속 일해야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쉬워졌어요. 나는 이 여행을 여러 번 했어요. 나는 군인들과 경찰들에게 계속해서 빚을 갚았고, 그들이 나를 알게 되면서 일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인류의 지식(human knowledge)(사진:내셔널지오그라피)
프랑스 군대가 말리에 도착하기 몇 주 전, AQIM은 남쪽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하이다라는 대안으로 수십 척의 배를 조직해 원고들을 니제르강을 따라 운반해야 했다. 2013년 2월 말까지 그는 45개 도서관에 있던 거의 모든 원고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2014년 2월 중순, 바마코의 바코 지키로니 골프 지역에 있는 4층 아파트 건물 최상층에서 하이다라는 취재기자를 만나 지난 일을 설명했다. “우리는 지난달 끝난 우기 동안 새로 얻은 금고로 수십 개의 궤짝을 옮겼고, 그 안에 있는 원고들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집을 더 잘 보존하기 위해 지면에서 띄워 놓고 에어컨이나 제습기가 설치된 집을 찾아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팀북투의 산코레 도서관에 소장된 500년 된 책을 넘기며 기자에게 설명했다. 그 책은 짙은 갈색 염소 가죽 표지로 묶인 누렇게 변한 페이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이다라는 “이 책이 일종의 중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다. 이슬람 학자들의 삶을 기록한 것으로, 각 섹션의 시작을 알리는 초록색, 빨간색, 금색 양각 글자 같은 섬세한 장식이 있는 짧은 전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사람의 필체가 여백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는 시대를 거쳐 연구를 위해 이 책을 참고한 상코레의 학자들이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16세기 작품인데도 여전히 읽을 수 있고, 많은 지식인들이 참고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 덕분에 큰 가치를 지닌다.”라고 조용하게 말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377,491통의 원고가 지하디스트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전투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의 수도 바마코(Bamako)의 안전한 가옥 10곳에 분산 보관했다. 그들은 9개월 동안 목숨을 걸고 이 비밀 작전을 통해 필사본의 95%(35만 점 이상)를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한 사람들 덕분에 광범위한 인류의 지식(human knowledge)과 아프리카의 유산(African heritage)을 광신적인 파괴 행위(fanatical obliteration)로부터 지켜냈다.
당시 고문서 구출 작전은 사건은 단순한 책을 지키는 일을 넘어, 무지와 파괴에 맞선 대담한 저항이었다. 압델 카데르 하이다라 박사와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용기와 지식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다시 일깨워준다. 그들은 진정한 전설이자 문화의 수호자로 세계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사하라 사막의 건조한 기후와 달리 말리 수도 바마코는 습도가 높아 문서가 부식될 위험이 있어 철저한 습도 제어와 보존 처리가 진행되었다.
2014 독일 아프리카상(사진:독일 아프리카 재단)
팀북투는 2013년 1월에 해방되었지만, 압델 카데르 하이다라 박사는 소중한 원고들을 원래 고향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 인류 유산의 영구적인 보존과 귀중한 보물의 디지털화 및 목록화를 위해 구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2014년 독일 아프리카 재단에서 수여하는 ‘독일 아프리카상’을 수상했다. 그는 후원자들을 설득하여 2000년에 새 건물인 마마-하이다라 도서관을 개관했다. 그의 개인 도서관의 소장 장서는 42,000권으로 이런 개인 도서관이 팀북투 도시에는 약 40곳 정도 있었다. 이 도서관에는 쿠란에 관한 서적은 물론 별자리에 관한 책, 남편들이 아내와 성관계를 갖는 방법에 대한 조언서까지 포함하여 문학적, 과학적 보물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하이다라 박사는 계속되는 불확실한 상황이 큰 부담이 되고 아는 이에게 “항상 걱정과 책임감에 둘러싸여 있어서, 가끔은 가족까지 잊을 때가 있다. 내 유일한 목표는 팀북투에 있는 이 모든 도서관을 복원하여, 나에게 맡긴 모든 가문에 원고들을 돌려보내는 것이예요. 그게 나에게 조금의 평화를 줄 거야.”라고 어눌하게 털어놓았다.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는 2022년 3월 10일, 말리의 문화유산 보호 단체인 SAVAMA-DCI와 협력하여 말리 매직(Mali Magic)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후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진행해 고문서 복원 및 디지털화 작업을 수행해 4만 권 이상의 필사본이 온라인 가상 갤러리를 통해 전 세계 학자들과 대중에게 온라인으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
수년간 팀북투 시 당국과 종교지도자들은 당국에 바마코에 보관된 문서들의 반환을 요청했다. 팀북투 부시장 디아하라 투레는 “이 유명한 문서들은 우리 문명과 정신적, 지적 유산을 반영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당국은 바마코의 습기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문서를 보호하기 위해 반환이 요청되어 2025년 2월에 군사 정부가 반환을 약속했다. 당시 부라메 칸사예 교육부 장관은 “이 유물들을 팀북투 도시의 지적 위대함과 문명의 교차점을 증언하는 유산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이다.”라고 표현했다.
말리 군사 정부는 바마코의 습기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고문서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하라 사막 가장자리에 위치해 건조한 기후를 가진 팀북투로 빠른 반환이 필요했지만, 결정을 빨리 내릴 수가 없어 고민했다.
말리 내전과 두 차례 군부 쿠데타 등 지속적인 불안정 속에서도 온전하게 보존되던 고서적들은 2025년 8월에 이르러 정부와 군대의 삼엄한 호위 속에 바마코에 있던 고문서들을 특수 제작된 금속 상자에 담겨 항공편을 통해 원래 자리인 팀북투 아흐메드 바바 연구소로 공식 반환되었다. 13년 만에 이루어진 이 귀환은 아프리카의 찬란한 지적 역사와 정체성을 되찾은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 번째 항공 화물은 200개가 넘는 상자로 구성되어 무게는 약 5.5톤 이상이었다. 나머지는 며칠 내에 배송되었다.
2025년 8월 팀북투 아흐메드 바바 연구소로 공식 반환(사진:아랍뉴스, AP)
2025년 8월 11일(월) 부라메 칸사예 교육부 장관은 문서 반환식에서 “이제 우리는 이 보물들을 보호하고, 디지털화하며, 연구하고, 알리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말리와 아프리카, 그리고 전 세계에 계속해서 깨달음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종교지도자에게 말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 필사본들은 이슬람 신학과 법학, 천문학, 의학, 수학, 역사, 지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유물들은 서아프리카 말리와 송가이 제국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증명한다. 현재 전 세계의 문헌학자와 인류학자들이 모두 나서고, 전 세계 문화계 인사들의 도움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은 보존되고 체계적으로 목록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재 말리 북부 팀북투 도시는 정부 통제하에 놓여 있지만, 여러 무장 세력이 도시 공격을 감행하는 등 여전히 도시 외곽 지역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다. 2026년 4월 말리 정부군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남부 및 중부 주요 거점을 유지하고 있으나 사헬 지역 북부 영토 통제력에 타격을 입었다. 최근 반군(CSP-PSD 등 북부 독립·자치 세력 및 이슬람 극단주의 연합 JNIM 등)의 대규모 공세가 이어지며 수도 바마코 인근까지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현재 북부 및 반군 세력들은 키달 등 북부 요충지를 중심으로 투아레그족 반군 및 알카에다 연계 세력(JNIM) 등의 영향력으로 영역이 혼재되어있다.
말리 전쟁 상세 전황 지도(2026년 5월 2일)(자료:Balkan Mapper)
말리 내전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AOF, 1895~1958)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프랑스령 영토는 프랑스 본토 면적의 8배 크기로 광활했다. 프랑스는 부족장을 이용한 간접 통치를 통해 자원 및 경제 수탈을 시도하고, 환금 작물 재배를 강요하며 각종 자원을 유출했다. 투아레그족(Tuareg)은 과거 사막 카라반 무역을 주도하며, 고대 리비아인들의 문자와 유사한 고유 문자 ‘티피나흐(Tifinagh)’를 보존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모계 중심 사회로 여성의 지위가 높고 사회적 남녀평등 성향이 강하다. 투아레그족은 가축을 이끌고 목초지와 오아시스를 찾아 이동한다. 남성들은 인디고(남색) 염료로 물들인 터번과 베일(타겔무스트)로 얼굴을 가리는 독특한 관습이 있어 피부가 파랗게 물들기도 해 ‘사하라의 푸른 사람들 (Blue Men)’이란 별칭이 있다.
투아레그족(Tuareg. Blue Men)(자료:reddit)
투아레그족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초기부터 프랑스 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을 요구하며, 1916년에 카오센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반란이 진압된 후 투아레그족은 프랑스 식민 당국으로부터 엄중한 감시를 받았다. 1960년 말리 연방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투아레그족은 인구가 약 400만 명으로 사하라 시막에서 가장 많은 베르베르계 유목민으로 사하라 사막과 사헬(말리, 니제르, 알제리, 리비아, 부르키나파소 등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경계 지대)에 흩어져 산다. 이들은 끊임없이 독립이나 광범위한 자치를 요구했으나, 말리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1962년에 제1차 투아레그 반란이 시작되어 1964년에 끝났다. 그들은 제2차 투아레그 반란(1990~1995), 제3차 투아레그 반란(2007~2009)을 일으켰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때 용병으로 전투경험을 쌓고 무기를 획득했다.
투아레그 분리주의자들은 사헬 지역에 아자와드(Azawad)라는 이름으로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12년 1월 16일, 제4차 투아레그 반란이 일어난 이후 2013년 프랑스가 개입하고, 유엔에서는 유엔평화유지군이 투입되었다. 2022년, 프랑스 군대가 철수하고, 2023년 유엔평화유지군이 철수하여 말리에서 서방의 개입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러시아와 바그너 그룹이 공백을 차지했다. 2025년 6월 6일 말리의 바그너 그룹은 말리에서 철수했다. 반군은 오토바이를 이용해 강공을 펼치는 자치를 요구하는 JNIM 세력으로 약 6,000명 선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의 날(2025.5.21.)(사진:한·아프리카재단)
대한민국은 말리와 1990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2025년 기준 한국의 대(對)말리 수출액은 794만 달러, 수입액은 500만 달러 규모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 아프리카를 소개하는 책들이 출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개별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다.
현재 아프리카는 가장 젊고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며 성장 잠재력이 큰 대륙으로 UN 회원국 기준 아프리카 54개국 14억 인구가 있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 청년의 4분의 1일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한다.
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AfCFTA)(사진:PRODAFRICA)
2021년 1월 1일 공식 발효된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AfCFTA)는 본부 사무국을 가나 수도 아크라에 두고 첫 교역을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로 거대한 단일 시장이 형성되어 빠른 인프라 확장과 함께 신흥 소비시장으로 주목을 받아 아프리카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한편,
2026년 10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이집트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두 나라 관계를 ‘전략적 포괄적 경제동반자 관계(CEPA)’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고 에너지, 인프라, 제조, 디지털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방안 논의를 하였다.
한국-이집트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공동선언문 기념촬영(사진:연합뉴스)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한-이집트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이집트 현지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이집트 내 ‘한국 전용 산업단지(공단)’ 조성을 공식 제안했다. 이집트 대통령은 특히 전용 공단에 입주하는 한국 기업들이 이집트의 현지화 혜택과 이집트가 맺은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망을 활용해 중동, 아프리카, 유럽 시장으로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집트 정부는 K9 자주포 공동생산 등 방산 분야 협력 확대, 수소트램, 청정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과의 구체적인 인프라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이집트 터널청과 ‘이집트 신행정수도(NAC) 수소전기트램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집트 정부는 카이로 동쪽 45km에 위치한 신행정수도(NAC)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2015년 3월부터 중국의 투자(약 22억 달러)를 받아 아프리카 최고층 빌딩인 아이코닉 타워(385.8m)를 포함한 고층 빌딩 20개 동을 건설했다. 현재 이집트의 신행정수도(가칭 멤피스)에 전체 정부 부처 및 국무총리실(내각), 의회, 대통령궁 등이 이전을 완료하여 약 5만 명의 공무원이 출근하고 있다. 앞으로 이 신도시에 모스크, 중앙공원, 특급 호텔, 은행 및 금융 기관의 본사, 오페라 하우스, 예술적 창의성 센터, 현대 미술 박물관, 도서관, 대형 경기장, 12개의 통합 병원, 30개의 병원, 3개의 공립학교와 56개의 사립학교, 7개의 외국대학 캠퍼스, 21개의 주거 구역에 아파트가 건설되면 6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UAE, 스위스, 알제리 등 20개국 이상의 외교 공관이 신도시 외교지구(Diplomatic District)로의 이전을 합의하였다.
이집트 신행정수도 청사진(사진:上海 卓歐建築)
한-이집트 양국은 2027년을 ‘한-이집트 상호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장학사업, 한국어 교육과 청년 연수 사업을 포함한 교육 프로그램을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