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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19〉
명나라 정화 함대는 본국에서 생산한 특산품비단과 도자기 등을 싣고 나가,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및 열대지방의 보석과 금, 향료(정향, 침향), 광물 등과 교환하며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다. 함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각국에서 사자, 표범, 타조, 기린 등 희귀한 동식물을 왕실에 바쳤다. 대양 항해를 계기로 여러 남방국가와 문화 교류가 시작되어 명나라 관리들은 남해(南海) 지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화교(華僑)가 동남아시아로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이주하고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난징 우수산 정화 가묘(사진:Wikiwand)
1431년 12월, 정화 제독은 선덕제(宣德帝)의 명을 받아 선박 100여 척과 2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제7차 원정길에 올랐다. 이 항해에서 정화의 함대 중 일부는 이슬람 성지 메카(현재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으며, 본대는 아프리카 케냐 동부 스와힐리 해안 말린디(Malindi)까지 항해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정화는 고령이고 오랜 항해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 1433년(선덕 8년) 4월경에 인도 서해안의 작은 항구도시 코지코드(Kozhikode, 캘리컷) 근처 말라바르 해상에서 향년 62세로 병사하였다.
부하들은 정화 제독의 시신을 원정대의 관례에 따라 인도양에 수장(水葬)하였고, 머리카락과 신발 등 유품을 일부 보관하여 난징 가묘(衣冠墓)에 안치했다. 정화가 사망과 함께 명나라의 위대한 해양 원정도 막을 내렸다. 이후 조정의 보수적인 문신들이 환관의 세력을 견제하며, 막대한 비용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대형 선박의 건조를 금하며, 바다 대신 운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학자들은 명나라 중기의 관료 유대하(劉大夏, 1436~1516)가 해외 원정은 국력을 낭비하고 실속 없는 대외 팽창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당시 병부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정화 제독의 항해 일지 및 해도, 배 설계도를 모두 숨기거나 불태웠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477년 궁중 환관들이 항해 사업을 재개할 목적으로 정화의 원정기록을 요청했지만, 기록 담당자는 해당 문서들이 모두 분실되었다고 보고했다.
중국 항해일 7.11(바다의 날)(사진:바이두백과)
중국 정부는 명나라의 항해탐험가 정화(鄭和, 쩡허) 제독이 첫 대원정을 시작한 지 6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2001년부터 국가적 전시회 및 국제해양박람회 전담 조직을 구성했다. 이어서 정화의 함대가 처음으로 닻을 올린 날인 1405년 7월 11일(양력)을 기려, 2005년 7월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항해일(바다의 날)’로 공식 선포했다. 아울러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4개월간 대원정 전시회를 개최하고, 상하이 국제해양박람회를 함께 진행하였다. 이때 개최된 마린텍 차이나(Marintec China 2005)는 매년 30여 개국에서 1,000여 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조선·해양·해운 산업 전문 박람회이다.
정화의 남해 원정 船型 복원한 明代 福船(사진:중국 항해박물관)
중국 상하이 항해박물관(中国航海博物馆, China Maritime Museum)은 국무원이 주관한 정화의 남해 원정 60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건립되었다. 상하이시 인민정부가 교통운수부와 공동으로 추진하여 2006년 상하이시 푸둥신구 린강 신구의 디수이 호수(滴水湖) 인근에서 박물관 기공식을 개최하였다. 2007년 4월에는 교통운수부가 국가문물국과 공동으로 유물 수집 작업을 시작해 기증식을 거행했다. 이후 2009년 9월 박물관 토목공사가 완공되었고, 2010년 7월 5일 중국 최초의 국가급 중국항해박물관(中国航海博物馆)이 공식 개관하였다.
상하이 항해박물관은 두 개의 거대한 돛이 맞물린 독특한 건축 디자인으로 항해 관련 유물, 학술 연구, 과학 대중화 교육을 담당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항해를 주제로 항해역사관, 선박관, 해양 환경관. 항해와 항만, 해양안전전시관, 선원관, 군사항해관과 항해 스포츠 및 레저를 소개하는 2개의 특별 전시구역을 두었다. 특히 항해박물관 내부에는 정화의 남해 원정을 기반으로 한 선형(船型)을 복원한 명대(明代) 福船(Fu Ship)을 통로와 직접 연결해 관람객이 상판 위에서 거대한 돛을 볼 수 있게 했다. 항해박물관에는 해양 강국의 부활을 알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해양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항해박물관(사진:중국 항해학회)
중국 정부가 대원정 6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정화(鄭和) 열풍을 조성한 것은 과거 아시아 중심의 활발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역사적 주도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현대 중국의 해양 진출 및 세계화 전략 일대일로 정책의 모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국가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정화 함대의 출항지였던 장쑤성 타이창(太倉)에서는 ‘정화, 항해의 날 축제’가 열렸으며, 중국 여러 도시에서 대대적인 국가적 기념 활동과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아울러 학술적으로 《정화 남해 원정 기념총서》(전 4권)를 발간하고,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정화 함대 남해 원정(사진:궁인창, AI이미지 생성)
중국 정부는 600년 전 명나라 영락제 시기 아프리카 해역까지 진출했던 정화(鄭和) 함대의 난파선을 찾기 위해, 2010년 7월 26일 베이징대학교 고고학과의 친다슈 교수 등 고고학자 11명을 케냐 현지로 파견했다. 조사단은 정화 함대가 1418년 제5차 항해 당시 말린디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라무(Lamu) 섬 인근 앞바다에서 난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케냐 정부 및 케냐 국립박물관의 아이들 파라(Idle Farah) 관장과 협력하여 3년간 약 300만 달러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공동 수중발굴을 진행했다.
영락통보(永樂通寶)(사진:BBC)
2010년 10월 18일, 영국 BBC 방송은 정화 선단의 난파선 수색 공동 조사단이 동아프리카 케냐의 북부 해안 만다(Manda)섬의 작은 어촌 맘브루이에서 15세기 중국 명나라의 구리 화폐 영락통보(永樂通寶, 융러퉁바오, Yongle Tongbao)를 처음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영락통보는 동그란 모양에 네모 구멍이 파진 형태이다. 조사단 연구팀장인 베이징 대학 고고학과의 친다슈 교수는 “1403년에서 1424년 사이 중국에서 제조된 이 화폐는 명나라 황제의 사신들이 이곳까지 운반했고, 아마도 케냐의 누군가에게 하사한 선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BBC는 수년 전 케냐 북쪽의 마을에서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15세기의 화병을 건져 올렸고, 중국 과학자들은 이 마을에서 중국인 조상을 가졌다는 사람들을 상대로 DNA 조사를 한 결과 중국인 혈통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DNA 시험의 결과는 정화의 선단 중 일부가 케냐 인근 해안에서 폭풍우로 인해 침몰했고, 살아남은 선원들이 케냐 땅으로 상륙해 현지인들과 결혼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정화가 남긴 기록에 선단이 이 해안에 상륙해 가장 강력한 지배자였던 말린디(Malindi) 왕국의 왕을 방문했다고 기록한다. 맘브루니의 옛 공동묘지에 세워진 묘비에는 400여 년 된 명나라 초기 왕실용 룽취안(용천요) 청자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베이징대학교 고고학과 교수의 발굴 보고서는 고고학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맘브루니(Mambrui) 묘지 기둥 청자 파편(사진:베이징대학교 고고학과)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현재의 케냐, 탄자니아, 소말리아 등) 지역의 도시국가 지배층과 상류층인 왕와나(Wangwana)는 자신들의 막강한 경제적 부와 선조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산호석으로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이들은 무덤 위에 최고 15m의 높은 돌기둥 모양의 묘비(Pillar Tombs)를 세우고 인도양 해상 무역을 통해 수입한 매우 귀하고 이국적인 명나라 청자(롱취안 가마요)와 청화백자 대접, 접시 등을 무덤 정면(Façade)이나 기둥 표면에 통째로 박아 넣거나(Immured) 홈을 파서 조각으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꾸몄다.
이 돌기둥은 멀리서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기념비적인 시각적 효과를 주는 스와힐리 문화의 고유의 픙습으로 이슬람 신앙과 아프리카 전통의 원혼을 달래거나 가문을 축복하는 조상 숭배의례가 결합한 형태였다. 케냐의 맘브루이(Mambrui), 게디 유적(Gedi Ruins), 탄자니아의 킬와 키시와니(Kilwa Kisiwani), 쿤두치(Kunduchi) 등의 역사적 여러 유적지에서 명나라 도자기가 박혀 있던 선명한 흔적과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탄자니아의 쿤두치(Kunduchi) 유적(사진:탄자니어 투어리즘)
2012년 출범한 중국 시진핑 정부는 해양 강국 건설이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중요한 국정 과제 중의 하나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우회하여 해양 진출을 확대하고자 추진하며 남중국해 문제를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의 문제로 규정하고 황얀다오를 기습 점유했다. 이에 필리핀이 자국의 실효 지배를 근거로 2013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PCA)에 중재를 요청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스프래틀리 제도(난사군도) 내의 항해 보장, 해상 수색 구조, 항행 안전 등 국제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인공섬 4곳에 등대를 건설하고 가동하며 이 해역을 자국이 실제 점유하고 통제하는 실효 지배 상태임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그러나 2016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남중국해 영유권 중재 판결에서 중국이 남중국해 90%를 차지하는 '남해구단선'을 그어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아무런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PCA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필리핀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주요 판결 내용은 바위나 암초를 인공섬으로 만들어 영해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주장할 수 없으며, 스프래틀리 제도 등의 해양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중국이 인공섬을 짓고 필리핀의 어로 및 석유 탐사를 방해해 필리핀의 EEZ 주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PCA의 중재 결정이 무효이며, 구속력이 없고, 수용하지 않으며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대규모 해상군사훈련을 하였다.
자장성 영파(寧波) 중국항구박물관(사진;궁인창)
중국 정부는 저장성 닝보(寧波)시에 중국 내륙과 해양의 항구 문화를 집대성하고자 중국항구박물관(中国港口博物馆) 건립 프로젝트를 2008년에 추진하여 2014년 10월에 개관하였다. 외관 디자인은 중국공정원 청타이닝(程泰宁) 학사의 설계로, 바다의 해(螺. 소라)와 풍범(风帆, 돛)에서 영감을 얻어 독특한 나선형의 현대적 구조로 완성되었다. 전시는 중국 항구의 고대 역사부터 현대 기술까지 아우르는 6개의 상설 전시관을 운영하고, 침몰선 유물(샤오바이자오 1호 등) 복원 과정을 유리창 너머로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중국항구박물관(中国港口博物馆)은 항통천하(港通天下)라는 구호 아래 해상 실크로드의 역사적 가치를 전파하고 학술 교류를 지원하는 국가 핵심 문화 시설로 자리 잡았다.
항통천하(港通天下)(사진;궁인창)
중국 정부는 명나라 정화 함대의 첫 원정 620주년을 맞이하여 2025년 내내 중국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다양한 해양전시회를 개최했다. 특히 2025년 7월 1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성대한 전시회 제목은 〈멀리 있는 친구들: 정화의 서해 항해 및 중국-인도네시아 문화 교류 620주년 기념〉이었다. 이날 개막식에는 인도네시아 관광부, 국립유산보존청, 국립박물관, 인도네시아 국립미술관, 각국 외교관 등 많은 내빈이 참석했다.
정화 함대의 원정 620주년 전시회(사진;駐인도네시아 中國大使館)
중국은 고대부터 대륙과 바다를 아우르는 해양 강국이었으나, 명나라 중기 이후 조정의 정책 변화로 해양 진출을 스스로 억제했다. 그 결과 1840년 바다를 통해 들어온 침략해온 서구 열강의 군사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졌고, 아편전쟁을 계기로 일부 영토를 뺏기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중국은 ‘굴욕(屈辱)의 100년’이라는 암흑기를 극복하고,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우주와 바다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에 매진하고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