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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도이와 백조 처녀 – 열한 씨족의 어머니
먼 옛날 바이칼호 주변의 사냥꾼 호리도이는 호숫가에서 아홉 마리의 백조가 처녀로 변하는 모습을 본다. 그는 한 처녀의 날개옷을 감추어 아내로 맞이하고, 두 사람은 열한 아들을 낳아 기른다. 오랜 세월 뒤 백조 처녀는 날개옷을 되찾아 하늘로 돌아가며 아들들에게 이름과 축복을 남긴다. 그 후손들은 호리 부랴트의 열한 씨족으로 이어지고, 백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어머니로 기억된다.
1.1 호리도이가 신비로운 호수를 찾아가다
먼 옛날 바이칼호 주변의 넓은 숲과 초원에 호리도이라는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호리도이는 활을 잘 다루고 먼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였다. 그는 사냥철이 되면 말을 타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으며, 짐승의 발자국과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여러 날을 보내곤 했다. 때로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을 넘고, 때로는 끝없이 펼쳐진 호숫가를 따라 사냥감을 찾아다녔다.
어느 날 호리도이는 사냥감을 쫓다가 낯선 호숫가에 이르렀다. 맑은 물은 하늘을 비추고 있었고, 호수 주변에는 키 큰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그는 물가에 말을 세우고 잠시 쉬기로 했다. 바람이 잦아들자 호수는 거울처럼 고요해졌고, 멀리서 새들이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호리도이는 물을 마신 뒤 풀밭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그때 하늘 저편에서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호리도이가 고개를 들자 커다란 흰 새들이 줄을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바위 뒤로 몸을 숨긴 채 새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새들은 호수 위를 한 바퀴 돌더니 천천히 물가로 내려왔다. 평소 수많은 새를 보아 온 호리도이였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새들은 처음이었다. 그는 활을 내려놓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조용히 기다렸다.
사냥 도중 신비로운 호숫가에 도착한 호리도이
1.2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백조가 내려오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아홉 마리의 눈부시게 흰 백조였다. 백조들은 호숫가의 부드러운 풀밭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었다. 그들이 서로 가까이 모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백조들이 하나씩 흰 깃털옷을 벗더니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새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아홉 명의 처녀가 서 있었다.
처녀들은 벗어 놓은 깃털옷을 물가에 가지런히 놓고 호수로 들어갔다. 그들은 맑은 물을 서로에게 뿌리며 웃었고,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떠오르며 즐겁게 놀았다. 햇빛이 물결에 부딪혀 반짝일 때마다 처녀들의 모습도 함께 빛났다. 호리도이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인간 세상이 아닌 신들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혹시 소리를 내어 처녀들을 놀라게 할까 봐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었다.
호리도이는 이들이 평범한 여인들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임을 깨달았다. 처녀들이 벗어 놓은 흰 깃털옷은 다시 백조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게 하는 신비로운 옷이었다. 그는 물가에 놓인 옷들과 호수에서 노는 처녀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한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호수의 물결까지 환해지는 것 같았다. 호리도이는 그녀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면 영영 만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호숫가에서 날개옷을 벗고 처녀로 변하는 아홉 백조
1.3 호리도이가 백조의 날개옷을 감추다
호리도이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바위 뒤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처녀들이 호수 깊은 곳에서 놀고 있는 사이, 그는 물가에 놓인 흰 깃털옷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옷은 새의 날개처럼 가볍고 부드러웠다. 그는 그것을 품속 깊이 감추고 서둘러 나무 뒤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처녀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가 하늘로 돌아갈 길을 빼앗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얼마 뒤 처녀들이 물에서 나와 각자의 깃털옷을 찾기 시작했다. 여덟 처녀는 옷을 입자 곧바로 백조로 변했다. 그러나 한 처녀는 아무리 주위를 살펴도 자신의 옷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풀밭을 헤치고 돌 틈을 뒤졌지만 날개옷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백조들은 그녀를 기다리며 물가를 맴돌았다. 마침내 여덟 마리의 백조가 날개를 펼치자 처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두고 가지 말라고 외쳤다.
그러나 백조들은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하나둘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그들의 모습이 멀어지자 호숫가에는 날개옷을 잃은 처녀만 남았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동료들은 구름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호리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자신의 날개옷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자 호리도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본 처녀는 자신의 날개옷을 감추었다고 짐작했다. 그녀는 옷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호리도이는 끝내 내놓지 않았다.
목욕하는 처녀들 몰래 흰 날개옷을 집어 드는 호리도이
1.4 백조 처녀가 호리도이의 아내가 되다
백조 처녀는 호리도이에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이며, 날개옷이 없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료 백조들이 사라진 하늘을 가리키며 옷을 돌려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그러나 호리도이는 그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함께 가서 아내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처녀는 오랫동안 거절했지만, 날개옷을 되찾지 못한 채 낯선 땅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마침내 백조 처녀는 호리도이를 따라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호수를 떠나 숲과 초원을 지나 호리도이가 살던 곳으로 향했다. 호리도이는 그녀를 위해 따뜻한 자리를 마련하고 먹을 것을 구해 왔다. 백조 처녀는 하늘에서 살던 때와 전혀 다른 인간 세상의 생활을 하나씩 배워 나갔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며 계절에 따라 옷을 준비하는 일도 익혔다. 호리도이는 사냥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내에게 숲과 호수에서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한 가정을 이루었다. 백조 처녀도 남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하늘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봄과 가을에 백조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갈 때면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오래도록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호리도이는 아내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다시 떠날까 두려워 날개옷을 감춘 장소를 오랫동안 비밀로 했다.
날개옷을 잃은 백조 처녀와 함께 숲길을 걷는 호리도이
2.1 백조 처녀가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다
백조 처녀가 호리도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여러 계절이 지나갔다. 여름이면 초원에 풀이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산과 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겨울에는 호수에 얼음이 얼었고, 봄이 돌아오면 남쪽으로 떠났던 새들이 다시 날아왔다. 백조 처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남편이 사냥에서 돌아오면 따뜻한 음식을 준비했고, 호리도이는 아내가 추위와 굶주림을 겪지 않도록 부지런히 일했다.
두 사람은 함께 집안을 돌보며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었다. 때로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고, 거센 눈보라 때문에 며칠씩 밖에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호리도이는 불가에 앉아 사냥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백조 처녀는 하늘에서 바라보았던 산과 호수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호리도이가 평생 돌아다닌 곳보다 더 멀고 넓은 세상을 담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새삼 깨닫곤 했다.
그러나 봄이 되어 백조 떼가 돌아올 때면 백조 처녀의 표정은 달라졌다.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면 그녀는 문밖으로 나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호리도이가 다가와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그저 고향이 생각난다고 대답했다. 남편과 함께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인간 세상의 생활은 소중해졌지만, 하늘을 날던 시절의 기억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눈 덮인 초원의 게르에서 함께 생활하는 호리도이 부부
2.2 백조 처녀에게 자손들이 태어나다
세월이 흐르자 호리도이와 백조 처녀 사이에서 첫아들이 태어났다. 호리도이는 크게 기뻐하며 아기를 품에 안았고, 백조 처녀는 아들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이는 두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다. 얼마 뒤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이어 셋째와 넷째 아들도 태어났다. 조용하던 집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활쏘기와 사냥하는 법을 배웠다. 호리도이는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과 짐승의 흔적을 읽는 법을 가르쳤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서로 다투지 말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힘을 합치라고 일렀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호숫가로 나가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유난히 백조를 오래 바라보는 까닭을 알지 못했지만, 새들을 놀라게 하거나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 호리도이의 가정에는 열한 아들이 자라나게 되었다. 어떤 아들은 사냥을 잘했고, 어떤 아들은 말을 잘 다루었으며, 또 다른 아들은 가족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썼다. 형제들은 서로 성격이 달랐지만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호리도이는 장성해 가는 아들들을 바라보며 뿌듯해했고, 백조 처녀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기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식들이 자랄수록 자신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하늘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아기를 품에 안은 백조 처녀와 가족들
2.3 열한 아들이 어머니에게 하늘의 이야기를 듣다
열한 아들이 자라자 호리도이의 집은 날마다 떠들썩해졌다. 형제들은 사냥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곁에 모여 그날 숲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다. 아버지는 짐승의 발자국을 구별하는 법과 낯선 길에서 별을 보고 방향을 찾는 법을 가르쳤다. 함께 나선 사냥에서는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며 힘을 합쳤다. 호리도이는 아들들이 자기 몫을 해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느 봄날, 멀리 호수 쪽에서 백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뛰어나간 아이들은 하얀 새들이 긴 줄을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어머니가 하던 일을 멈추고 문밖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들 하나가 어머니에게 왜 저 새들을 그토록 오래 바라보느냐고 물었다. 백조 처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자신도 오래전 저 새들처럼 하늘을 날았다고 들려주었다. 아들들은 믿기 어렵다는 듯 어머니의 얼굴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날 밤 형제들은 불가에 둘러앉아 어머니에게 하늘의 이야기를 더 들려 달라고 졸랐다. 백조 처녀는 푸른 호수 위를 스치던 날개와 구름 사이로 보이던 산들을 이야기했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날개옷의 행방은 알지 못했다. 백조 처녀도 그 이야기를 마치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밖에서는 돌아온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불가에 둘러앉아 어머니의 하늘 이야기를 듣는 아들들
2.4 장성한 아들들이 새로운 삶을 준비하다
세월이 더 흐르자 열한 아들은 한집에서 함께 지내기에는 모두 훌쩍 자라 있었다. 사냥을 떠나면 형제들은 저마다 맡은 일을 해냈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형제들이 힘을 모아 땔감과 먹을 것을 모았다. 호리도이는 이렇게 가족이 커지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지만, 아들들이 언젠가 각자의 살림을 꾸리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호리도이는 장성한 아들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앞으로 가정을 이루면 새로운 터전과 넓은 사냥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들은 강이 흐르는 들판과 산기슭의 숲, 풀이 많은 골짜기를 떠올리며 저마다 살고 싶은 곳을 이야기했다. 호리도이는 어디로 가든 서로 다투지 말고 어려운 형제를 도우라고 당부했다. 백조 처녀도 말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훗날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일렀다.
그날부터 형제들은 앞날을 다르게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아버지 곁에 머물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먼 초원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 부모와 가까이 지내며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백조 처녀는 장성한 자식들을 바라보면서도 때때로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해 온 날개옷을 이제는 한 번쯤 다시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넓은 초원을 가리키며 장성한 아들들과 이야기하는 호리도이
3.1 백조 처녀가 감춰진 날개옷을 되찾다
아들들이 저마다 새로운 앞날을 준비하던 어느 화창한 날, 백조 처녀는 게르의 천창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남편 곁에 앉았다. 그녀는 처음 만났던 호숫가와 그날 잃어버린 흰 날개옷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호리도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수많은 해가 지났어도 그 옷을 감춘 일을 잊은 적은 없었다.
백조 처녀는 이제 아들들이 다 자랐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옛 날개옷을 입어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봄과 가을마다 하늘을 지나는 백조들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호리도이는 옷을 돌려주면 아내가 날아가 버릴까 두려웠다. 그는 지금처럼 함께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백조 처녀는 날개옷이 자신의 지난 삶과 이어진 마지막 물건이라며 다시 청했다.
호리도이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오랫동안 숨겨 두었던 흰 날개옷을 꺼내 아내에게 건넸다. 깃털은 세월이 지나도 처음 보았을 때처럼 희고 부드러웠다. 백조 처녀는 두 손으로 옷을 받아 들고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호리도이는 잠깐 입어 보기만 하라며 거듭 당부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옷을 어깨에 걸쳤다. 그 순간 깃털 사이로 희미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게르 안에서 호리도이에게 흰 날개옷을 건네받는 백조 처녀
3.2 백조 처녀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다
백조 처녀가 날개옷을 입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두 팔은 커다란 흰 날개로 변하고, 몸에는 부드러운 깃털이 돋아났다. 잠시 뒤 아름다운 처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눈부신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백조는 날개를 펼쳐 여러 번 움직이더니 게르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하늘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었다.
호리도이는 놀라 아내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백조는 이미 날개를 크게 펼치고 게르의 천창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호리도이는 급히 곁에 있던 숯검정 묻은 행주를 집어 들어 백조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날아오르는 힘을 이기지 못했다. 그의 손에서 행주가 미끄러지며 백조의 다리에 검은 자국만 남았다. 전승에 따르면 백조의 다리가 검은 까닭은 바로 이때 묻은 숯검정 때문이라고 한다.
백조는 천창을 빠져나와 푸른 하늘로 올라갔다. 호리도이는 서둘러 게르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하늘을 향해 아내를 부르며 돌아와 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백조는 이미 지붕보다 높이 날아올라 있었다. 오랫동안 땅에 머물렀던 그녀는 다시 넓은 하늘을 향해 날개를 움직였다. 호리도이는 두 손을 뻗은 채 백조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아내가 인간 세상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본래 하늘에 속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숯검정 묻은 행주를 피해 게르 천창으로 날아오르는 백조
3.3 하늘로 떠나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이름을 남기다
호리도이는 멀어져 가는 백조를 향해 마지막으로 외쳤다. 자신을 떠나는 것은 막을 수 없더라도 열한 아들을 생각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백조에게 자식들이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려 주고 떠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백조는 하늘 높이 날아가던 것을 멈추고 게르 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호리도이와 자식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백조는 하늘에서 열한 아들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 갈 이름을 불러 주었다. 갈주드와 하르가나, 후아사이와 후브두드, 바타나이와 샤라이드, 보동구드와 구샤드, 사가안과 후다이, 그리고 할빈의 이름이 전해졌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서로를 잊지 말고 각자의 가문을 굳건히 이어 가라고 당부했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남긴 말을 마음에 새겼다. 백조는 이름과 함께 자손들이 번성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축복도 남겼다.
마지막 말을 마친 백조는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호리도이와 아들들은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얀 날개는 햇빛을 받아 빛났고, 백조의 울음소리는 한동안 초원 위에 길게 울려 퍼졌다. 마침내 백조는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아들들은 어머니가 내려 준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훗날 그들의 자손은 각각의 이름을 이어받아 서로 다른 씨족을 이루었다. 그렇게 하늘로 떠난 어머니의 마지막 축복은 열한 씨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하늘에서 열한 아들에게 이름과 축복을 전하는 백조 어머니
3.4 백조가 열한 씨족의 신성한 조상으로 남다
백조 처녀가 하늘로 돌아간 뒤에도 호리도이와 자식들의 삶은 계속되었다. 아들들은 저마다 가정을 이루었고, 자손들은 산과 강을 따라 새로운 땅으로 퍼져 나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열한 아들의 이름은 여러 씨족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씨족에 속하는지 이야기할 때면 조상 호리도이와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 처녀를 함께 떠올렸다.
호리 부랴트 사람들은 백조를 평범한 새로 여기지 않고 신성한 조상의 모습으로 대했다. 봄이 되어 백조 떼가 마을 위를 지나가면 여인들은 우유를 담은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우유를 뿌리며 가족의 평안과 자손의 번영을 빌었다. 가을에 백조들이 먼 남쪽으로 떠날 때에도 같은 마음으로 새들의 여행을 축복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백조가 자신들의 먼 어머니이므로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백조 처녀의 이야기는 후손들의 생활과 풍습 속에 살아남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호리도이와 그의 아들들이 살던 시대는 아득한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바이칼호와 그 주변의 숲과 초원에는 여전히 백조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하얀 날개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하늘로 돌아간 어머니를 기억했다. 그녀가 남긴 열한 이름은 여러 씨족의 뿌리가 되었고, 호리도이와 백조 처녀의 이야기는 세대를 넘어 전해졌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백조는 인간의 아내이자 열한 씨족의 어머니로 기억되며, 호리 부랴트 사람들의 신성한 시조가 되었다.
하늘을 나는 백조 떼를 향해 우유를 뿌리는 부랴트 여인들
※ 출전 및 참고 자료
1. 이쉬 가담바·데. 체레소드놈 공편, 『몽골구비문학 선집』(울란바타르, 1978), 214쪽. 호리 투메드 메르겐과 고니 아내의 혼인, 열한 아들의 탄생, 날개옷을 되찾은 아내의 귀환과 씨족의 기원을 다룬 전승이 수록되어 있다. 2. 데. 체렝소드놈, 『몽골의 민간신화』(울란바타르, 1989), 177~178쪽. 호리 투메드 메르겐 전승과 관련 변이형을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이다. 3. 장장식, 「한·몽 '나무꾼과 선녀 설화'의 비교 연구」, 『민속학연구』 제9호(2001), 179~206쪽. 호리 투메드 메르겐의 열한 아들 전승을 소개하고 한국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와 비교한 연구이다. 4. 데베노바 Z. A.·이사코프 A. V., 「바이칼호 주변 부랴트 민속에 나타난 호리도이 전승의 지역적 특징 — S. P. 발다예프 자료를 중심으로」(2022), 『부랴트 국립대학교 학보·문헌학』 제4호, 62~68쪽.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호리도이 전승을 다룬 연구이다. 5. 다시예바 L. D., 「부랴트 전통문화의 백조 숭배」(2021), 『International Research Journal』, 제12호. 호리 부랴트의 백조 시조 전승과 백조를 맞이하는 의례, 백조를 해치지 않는 금기 등 전통 신앙을 다룬 연구이다.
※ 전승 및 편집 참고
이 작품은 호리 투메드 메르겐 전승 가운데 아홉 마리의 고니와 열한 아들이 등장하는 판본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호리도이는 호리 투메드, 호리도이 메르겐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지며, 일부 부랴트계 전승에는 세 마리의 백조와 여섯 자녀가 등장하기도 한다. 원전의 핵심 사건은 유지하되 일상생활과 인물의 대화, 자녀들의 성장 과정 등은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문학적으로 보완하였다. 열한 씨족의 명칭과 한글 표기는 전승 지역 및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