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洌上古典硏究 제37집
<觀優戱> 번역 상의 문제들* 이대형**
【국문초록】
<관우희>는 선인들의 놀이 문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귀한 문헌이다. 그러나 문헌이 발견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板橋初集이 발견되어 연세대 소장본의 오탈자들을 보완할 수 있게 되어 다시 번역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의문점들이 많이 남는다. <관우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판소리는 물론이요 줄타기나 꼭두각시놀이 등에 대한 정심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이를 과제로 남겨두면서, 몇몇 난해한 구절들에 대해 질정을 구한다.
핵심어 : 觀優戱, 板橋初集, 要令, 판소리, 줄타기.
* 열상고전연구회 정례학술발표회에서 초고를 발표할 때 김영봉 선생께서 질의를 맡아서 여러 가지 오류를 지적해 주셨다. 덕분에 여러 오류들을 수정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 동국대
차례 1. 머리말 2. 미상처 3. 맺는말
1. 머리말
<관우희>는 1955년 중앙대 논문집에 발표된1) 이후, 판소리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관우희>는 “礪山宋晩載 著”라고 하여 여산을 본관으로 하는 송만재가 찬술한 것이라고, 연세대 소장본에 기록되어 있다. 발문을 보면 찬술 이유에 대해, “과거 급제한 자식에게 잔치를 차려주지 못하던 차에, 도성 거리의 풍악 소리를 듣고는 흥이 얕지 않아서 소리와 모양을 모방하여 그저 몇 수의 시를 지어 모임의 벗들에게 화답하게 하였다(家兒今春聞喜, 顧甚貧不能具一場之戱, 而聞九街鼓笛之風, 於此興復不淺, 倣其聲態, 聊倡數韻, 屬同社友和之.)”고 하였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2) 송만재의 생몰 연대는 1788년-1851년이고, 맏아들이 진사시에 합격한 해는 1843년이라 하니, 1843년이나 늦어도 1851년 사이에 <관우희>가 찬술되었다고 추정하게 된다.
송만재에 대해 이렇다 할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최근에 발견된 『板橋初集』은 송만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다. 아직은 ‘板橋初集’이라는 제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紫霞 批評’이라고만 되어 있고 송만재가 찬술했다는 기록은 왜 없는지 등등 여러 의문점이 남지만, 송만재가 찬술한 것이라고 할 때 그가 교유한 인물들이 寢郞이라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존에 알려진 연세대 소장본에 비해 <관우희>의 서술에 있어서 비교적 오류 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우희>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3)
자료에 대한 세밀한 검토는 정확한 해석을 거쳐야 하므로 본고에서는 『板橋初集』을 해석하면서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모호한 부분을 제시하여 질정을 구하고자 한다.
1) 이혜구, 「宋晩載의 觀優戱」, 『논문집』 1, 중앙대, 1955. 2) 윤광봉, 「韓國演戱詩硏究」, 동국대 박사학위논문, 1985, 116면 등 참고. 3) 『판교초집』에 대해서는 구사회, 「새로 나온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와 한시 작품들」, 『열상고전연구』 제36집, 열상고전연구회, 2012, 143-178면 참고.
2. 미상처
『板橋初集』은 <玉田賸墨>과 <觀優戱五十絶>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두 부분에 모두 처음 시작할 때 ‘‘紫霞 批評’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연세대 소장본에는 <관우희> 이전에 「小樂府」가 기록되어 있는데 “東陽申緯漢叟著”라고 하여 紫霞 申緯(1769-1845)의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 해당 「소악부」는 신위의 문집 『警修堂全藁』 17책 「北禪院續藁三 辛卯 六月」에 기록되어 있어서 신위 작품임이 검증된다.4) 신위의 문집을 통해 그가 교유한 인물들을 보면 당색과 승속을 초월하여 4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5) 그러므로 충분히 송만재와 교유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둘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연세대 소장본의 경우 <관우희>와 연관성으로 보자면 「소악부」보다는 1826년에 신위가 칠언절구로 지은 12수 <觀劇詩>가 더 긴밀할 텐데, 왜 <관극시>를 놔두고 「소악부」를 같이 실은 것인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2.1. 玉田賸墨에서
<양호에서 배를 타고(楊湖舟行)>의 ‘草寒缸’
點點靑山澹澹江 勞歌聲裏臥篷窓 孤烟遠樹漁家一 綠草晴沙鳥影雙 岸送飛花春在水 帆迎駿浪雪翻矼 何來小艇輕於葉 柳貫銀鱗草寒缸
점점이 푸른 산과 고요한 강 이별가6) 소리 속에 뱃전에 누우니 외론 연기 먼 숲엔 어부 집 하나 푸른 풀 맑은 모래톱에 새 그림자 둘 기슭에서 꽃잎 날려 보내니 봄이 강에 있고 돛이 큰 물결 맞으니 징검다리에 눈 날리듯 어디서 온 거룻배인가, 잎보다 가벼우니 버들에 물고기 꿴 듯, 풀은 찬 심지인듯7)
寒缸은 찬 등잔인데 풀을 비유한 것으로 보아 ‘찬 심지’로 풀었지만 확실하지 않다. 봄이라 풀이 아직 많이 자라지 않은 짤막한 상태를 그렇게 비유한 것인지? 앞 구절과 연결하자면, 큰 배는 물살을 헤쳐 그 물살이 눈처럼 하얗게 부서지는데 작은 배는 물살 위로 빠르게 헤쳐 가는 모양이 하얗게 반짝이는 물고기의 은빛 비늘을 버들가지로 꿴 듯하다고 비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럴 때 ‘草寒缸’은 어떤 의미인지 맥락이 잘 닿지 않는다.
2.2. 觀優戱 五十絶에서
1) <관우희> 14번째 시의 ‘視獲驪’
遊俠長安號曰者 茜衣艸笠羽林兒 當歌對酒東園裏 誰把宜娘視獲驪
장안의 유협들을 왈짜라 하니 붉은 옷 초립 쓴 우림 패거리 동원에서 술 마시며 노래 하니 누가 의낭 잡아 여주 얻음에 비할까
<관우희> 50수에는 하위 분류 항목들이 있는데 위 시는 ‘打令’에 속한다. 4째 구절에 대해 ‘獲驪’는 ‘羽林軍의 검은 말’을 잡는다는 것으로, “친위대인 우림군의 위용, 또는 제 구실을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된 바 있는데,8)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서 동의하기 어렵다. ‘驪’를 ‘驪珠’의 줄임말로 보기도 하는데9) 이것이 근사한 듯하다. 大阪本 東野彙輯 권16 拾遺部3 風情 부분의 첫 이야기 <명사가 승부를 좋아하여 최고 기생을 차지하다(名士好勝占花魁)>에 이를 뒷받침할 만한 표현이 있다.
“자네가 이번 행차로 그 최고 기생을 독점할 테니, 驪珠를 먼저 얻었다고 할 만하네. 잘 해보게.(君之此行, 獨占花魁, 可謂驪珠之先獲. 須好爲之.)”10)
위 이야기의 주인공은 판서 李益輔(1708-1767)이다. 그는 친구 아무개와 어려서부터 어울렸는데 장성해서 같이 玉堂에 근무하기까지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남원에 최고의 기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기생을 먼저 차지하는 면이 이기는 것으로 약속했는데 친구가 호남좌도 京試官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이익보가 친구에게 한 말이다. ‘驪珠之先獲’을 ‘獲驪’로 표현할 수 있고, 비유하는 대상이 기생이라는 점에서도 시의 내용과 부합한다.
2) <관우희> 27번째 시의 ‘星語’
披袂當風步不齊 一肩乍聳一肩低 鼕鼕促鼓如星語 記得村巫始降乩
바람에 소맷자락 펄럭이고 걸음은 비틀비틀 한쪽 어깨 올리면 한쪽 어깨는 내려가고 둥둥둥 빠른 북은 영묘한 말[星語] 하는 듯 촌무당 처음 신 내리던 때 기억나네
‘要令’에 속하는 시다. 여기서 3째 구절의 ‘星語’가 의문이다. 書叙指南11)에는 “별을 아는 것을 일러 ‘성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知星曰, 能為星語) [王莽]”라 되어 있다. 이는 『前漢書』 <王莽傳>에 있는 ‘能為星語’라는 표현에 대한 해설이다. 이것으로 보면 별자리로 운수를 파악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조선조 말기의 문신 趙秉鉉의 문집 『成齋集』 권7 <賽神曲-압구정에서 山泉 兄弟․游觀․貞室․春山․錦洲․泊翁․黃庭․此山․蓉城․二酉와 함께>는 30수의 연시인데 그 가운데 27번째에 ‘星語’가 나온다.
洞簫紛徹接荒林 苦竹凄凉暗淡心 荷盖搖搖星語亂 古來靈魄水中尋
퉁소 소리 흩어져 숲으로 이어지니 고죽은 처량히 마음을 어둡게 하네 연잎 일산 흔들거리고 성어 어지러우니 예로부터 혼백은 물속에서 찾는다네
굿하는 광경을 보며 지은 시이므로 위 시구에서 ‘星語’는 무당이 하는 말에 속할 것이다. 무당이 신의 뜻을 대신 전하는 말을 ‘星語’라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어지럽다’ 했으니 <관우희>에서 빠른 북소리에 비유한 것과 일치한다.
한편, 이 시에 대해 ‘줄타기 하면서 음악에 맞춰 연출하는 모양이 무당신 내린 것과 같다’거나 ‘무당이 첫 점괘를 풀어내는 것처럼 신바람이 나기 시작한다는 비유’로 해석한다.12) 그런데 위 시가 줄타기가 아니라 ‘要令’에 속한다는 점이 문제다. 필사자가 분류를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시 내용이 줄타기가 아닌 다른 장면인가?
3) 要令의 의미
<관우희> 21번째 시부터 시작하여 28번째 시까지를 포함하는 설명으로 28번째 시 다음에 “右要令”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연세대본에는 없다. 연세대본에는 35번째 시 다음에 ‘右緪戱(줄타기)’라고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기존 해석에서는 25번째 시까지가 ‘판소리’와 관련되고 26번째 시부터 줄타기에 해당한다고 하였다.13) 두 문헌 모두 20번째 시에 ‘右打令’이라고 하여 그 이후와 구별하고 있는데 시의 내용에 따라 25번째 시까지 ‘打令’에 속한 것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연세대본의 분류는 오류가 있다고 보는 셈이다. 『판교초집』의 경우에는 28번째 시까지를 ‘요령’으로 분류하였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21번부터 28번까지는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내용으로 보아 21번째부터 25번까지는 서사적 요소가 보이므로 판소리 연행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26번과 27번, 28번 시가 줄타기 부분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拍處扇開五十疊 騰時袖拂一雙衫 劃然響入春空裡 片片桃花落半巖
탁 칠 때 오십살 부채 펴지고 올라갈 때 한 쌍의 적삼 흩날리니 휙 소리가 봄 하늘 속을 가르고 점점이 복사꽃이 바위에 지네
披袂當風步不齊 一肩乍聳一肩低 鼕鼕促鼓如星語 記得村巫始降乩
바람에 소맷자락 펄럭이고 걸음은 비틀비틀 한쪽 어깨 올리면 한쪽 어깨는 내려가고 둥둥둥 빠른 북은 영묘한 말[星語] 하는 듯 촌무당이 처음 신 내리던 때 기억나네
夜闌酒盡哄堂餘 一曲將終乍斂裾 得意當階飜一拜 爲之四顧爲躕躇
밤 깊고 술 다해도 마루엔 웃음 가득 노래 한 곡 끝나가니 옷을 여미고 자신있게 계단에서 선뜻 절하고 사방을 돌아보며 머뭇거리고 있네
기존에 26번째 시 둘째 구절의 ‘騰時’를 줄에 올라 갈 때로 해석하고, 27번째 시 첫 구절을 줄 위에서 비틀거리는 모양으로, 28번째는 밤에 줄타기를 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의아함을 드러내기도 했으나14) 26번째 시가 줄타기임이 분명하고 35번 째 시에 이상의 시들이 줄타기 내용임을 밝혔다는 것에 의거하여 밤에도 줄타기를 한 것 같다고 해석하였다.15)
그런데 “右要令”이라는 기록을 신빙한다면 위 시들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26번째 시는 창자가 부채를 치고 펼치며 소리높이 노래 부르는 모습, 27번째는 창자가 타령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을 흉내 내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요령’의 의미 또한 문제인데, 1852년에 尹達善이 칠언절구 108疊으로 지은 <광한루악부>에 ‘要令’이라는 어휘가 나와서 주목된다. 1첩과 2첩에 ‘要令’이라 적혀 있고, 3첩은 ‘轉語’, 4첩부터 9첩까지는 ‘李生唱’, 10첩은 ‘官僮唱’ 등 아무개의 창으로 되어 있고, 107첩은 ‘總論’, 108첩은 ‘結局’이라 되어 있다.16) ‘總論’과 ‘結局’은 <춘향가>에 대한 평가로서, 앞에 나오는 ‘唱’ 등 演行 방식에 대한 표시와는 달리 내용과 관계된 언급으로 보이고, ‘요령’이나 ‘전어’는 ‘창’과 같은 연행 방식을 지칭한 것으로 여겨진다. <관우희>에서 ‘요령’을 포함한 하위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靈山 1-8번째 시 打令 9-20번째 시 要令 21-28번째 시 緪戱 29-35번째 시 場技 36-42번째 시 總評 43-50번째 시
위 항목들에서 총평을 제외한 다른 항목들은 연행 종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요령은 어떠한 연행을 가리키는가. <광한루악부>라는 판소리에서 ‘요령’ 항목이 사용되었으므로 연행은 창이나 전어와는 구별되는 판소리 연행 방식에 속한다고 하겠다.
<광한루악부> 1첩의 내용은 호남의 산수 가운데 남원의 풍물이 지금까지 전하다고 하여 <춘향가>의 장소를 소개했고, 2첩은 오작교와 광한루를 언급하면서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인연을 누가 다시 잇겠느냐며 흥을 돋우고 있다. 3첩의 내용은 남원 사또의 자제가 경치 구경을 나서게 된다고 하여 바야흐로 <춘향가>로 전환하는 부분이다. ‘轉語’를 ‘전환하는 말’로 이해한다면 ‘要令’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요령 있게 소개하는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요령’이라는 서술을 신뢰한다면 26, 27, 28번째 시는 줄타기가 아니라 판소리 연행 방식에 속하는 ‘요령’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관우희> 34번째 시의 ‘游絲’
屐步折旋西復東 游絲歷亂燕橫空 傞傞舞處搖搖影 不怕樓頭弱絮風
뒤뚱대며 돌아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아지랑이 어지러운데 제비 허공을 날듯 비틀비틀 춤사위에 흔들리는 그림자 다락의 약한 바람 따위는 두려워 않네
줄타기[緪戱]에 속하는 시이다. ‘游絲’는 ‘공중에서 흔들리는 거미줄’을 가리키나17) 우리 선인들의 문집에서는 대체로 아지랑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18) 위 시에서도 거미줄보다는 아지랑이가 제비와 어울린다. 그런데 뒤에 실린 서문과 관련지어 보면 거미줄의 의미로 볼 여지도 있다. 서문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살판이 끝나자마자 출렁거리는 줄에 선뜻 오른다. 거꾸로 거미가 줄을 타듯 장대를 나눌 때 완희가 북을 울리고, 부딪쳐 제비가 물 차듯 줄 위를 달릴 때 도로는 장대를 찾아 타네(活版才罷, 舞緪旋登, 跌蛛絲而擘竿, 宛姬播鼓, 衝燕濯而走索, 都盧尋橦.)
5) <관우희> 37번째 시의 ‘散不收’
擦掌齊趺奮一投 靑山倒影水橫流 盤旋風撇空中舞 林木樓臺散不收
손 비비며 뒤꿈치 모았다가 휙 솟구치니 청산 그림자 거꾸러지고 물은 가로 흐르네 빙그르르 바람 일으키며 공중에서 춤추니19) 나무들과 누대 흩어진 채 걷히지 않네
땅재주[場技]에 속하는 시이다. 공중제비를 선보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4째 구절에서 뭐가 흩어졌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6) <관우희> 38번째 시의 ‘儂’
彎腰節節一橫縱 伎不驚人懊殺儂 滿地芳陰看似海 跳空魚變轉身龍
허리 젖혀 마디마디 종횡으로 움직이니 그 재주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나만 애타리 가득히 우거진 녹음은 바다처럼 보여서 공중에 솟구치니 고기 변하여 용이 되네
역시 땅재주에 속하는 시인데, 둘째 구의 ‘나(儂)’가 누구인지 의문이다. 재주를 부리는 당사자를 시적화자로 설정하여, 자기 재주가 관객들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애가 탈 것이라는 말인지, 땅재주 판에서 심상히 볼 수 있는 재주들이라서 다른 관객들은 놀라지 않는데 땅재주를 볼 기회가 없었던 시인만 놀란 것인지. 위에서는 재주꾼을 시적 화자로 보고 해석했는데, 그럴 때 갑자기 시적 화자가 다른 시에서는 줄곧 관객의 입장이었는데 별다른 과정 없이 재주꾼으로 바뀌는 것이어서, 정말 그러한지 의문이 남는다.
7) <관우희> 43번째 시의 ‘丸劒’
鷄林之世有黃昌 丸劒煙飛舞一場 餘二千年遺俗在 妙才高選屬名倡
계림의 시대에 황창이 있어서 칼로 연기 날리며 한 바탕 춤추었지 이천 년 넘도록 남은 풍속이 있어 묘한 재주 발탁하여 광대 계보 잇네
‘總評’에 속하는 시이다. ‘丸劒’은 『성호사설』 권5 <줄타기와 장대놀이(踏索緣橦)> 항목에 인용된, 한나라 때 張衡이 지은 「西京賦」에, “跳丸劍之揮霍, 走索上而相逢”이라고 나오는데, 이 표현에 대해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총서에서는 “양쪽 손에 공과 칼을 쥐고 휘두르면서 뛰는데, 밧줄 위로 달리다가 서로 마주 닿는구나.”라고 하여 ‘공과 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靑莊館全書』 「耳目口心書」에 인용된 李匡呂(1720-1783)의 <彈琴臺에서 三淵의 운을 따라 지은 시(彈琴臺用三淵集韻)>의 구절 “교활한 오랑캐가 휘두르는 칼에, 배수진도 헛되이 자취만 남았구나(狡虜逞丸劍, 背漳空踐跡)”를 보면 그냥 칼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선인들의 문집에서는 그저 칼을 뜻하는 어휘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李載亨(1665-1741)의 『松巖集』 권4에 있는 <鶴峯金先生龍蛇事蹟>의 “새벽이 되자 적들이 모두 나와서 크게 돌진을 하며 칼을 휘두르니 군사들이 모두 물러났다(及曉, 賊悉出, 大肆豕突, 丸劒交飛, 軍皆退北)”에서도 ‘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인들이 ‘丸劒’을 칼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고, 아울러 ‘黃昌’은 검무로 유명하므로 위 시에서도 ‘칼’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해석했다. ‘연기 날린다’는 표현도 검무와 어울린다. 그런데 발문에서 ‘공놀이와 칼춤(跳丸舞劒)’이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히 ‘공과 칼’을 가지고 재주를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 시에서도 칼과 공을 같이 지니고 재주를 펼쳤을 가능성도 있다.
8) <관우희> 48번째 시의 ‘弄中鼓笛若平生’
昌容姣態少年情 乍顧能令四座傾 歌榭舞臺當一局 弄中鼓笛若平生 고운 얼굴의 교태, 청춘의 정감 살짝만 돌아봐도 좌중이 마음 빼기네 가무가 누대에서 한 판 벌어지니 재담 속 북과 피리 평소와 같구나
‘總評’에 속하는 시이다.20) ‘弄中鼓笛若平生’에 대해 “사설 속의 우스갯 소리가 북과 피리 속에 섞여 있는 것이 옛날과 다름없다는 뜻”으로 풀어 “사설 속에 북과 피린 한결같구나.”라고 했는데21) ‘弄’이 사설이나 재담을 뜻하는 것인지, 또한 ‘若平生’은 어떤 의미인지 의문이다. 재담과 악기 연주의 어우러짐이 변함없는 방식이라는 뜻인지, 자연스럽다는 것인지, 한결같이 늘 있어서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의미인지?
9) <관우희> 序의 문제들
① 秦楯 “말하노니, 광대의 양성과 골계의 명성은 진나라 방패보다 훌륭하지만 초나라 철검보다는 졸렬하다(述夫. 俳優之畜, 滑稽之名, 偉于秦楯, 拙於楚鐵.)”
‘楚鐵’이란 『史記』 「范雎列傳」 중 ‘초나라의 철검은 예리하나 배우는 졸렬하다(楚之鐵劍利而倡優拙)’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秦楯은 ‘진나라 방패’가 아닐까 짐작되는데 전고를 찾지 못했다.22)
② 開府官, 儒者戱 “서량의 가면극 대사에서는 오랑캐 아이가 사자를 희롱하고, 동국의 처용무 춤에서는 신선이 鶴汀23)에서 노닌다. 간혹 ‘開府官’24)이라고 비난 받기도 하고 ‘儒者戱’라고 배척당하기도 하는데, 풍속은 따르지만 숭상하는 것은 다르고 길은 다르지만 귀결되는 바는 같다. 이로써 ‘倡’에는 ‘선창하고 호응한다(倡和)’의 뜻이 들어있고, ‘優’에는 ‘한가로이 지내다(優游)’의 뜻이 있음을 알겠다.(西凉假面之詞, 胡兒之弄獅子; 東國處容之舞, 仙人之遊鶴汀. 或以開府官招譏, 或以儒者戱見斥, 隨俗異尙, 殊塗同歸. 是知倡寓倡和之名, 優有優游之義)”
‘開府官’과 ‘儒者戱’ 부분에 대해 ‘관원 놀이 즉 模擬官廳놀이’라 하기도 하고, “혹 開府의 문관을 기롱하고 혹 선비를 희롱하다가 배척을 당하기도 하니”라 하기도 했다.25) 그런데 ‘儒者戱’라는 표현은 탈춤에서 ‘양반과장’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위 문장이 정확하게 對句를 맞추어 서술되어 있으므로 ‘開府官’도 놀이의 명칭으로 보인다. 고위 관료를 등장인물로 하는 놀이도 있었던 것인가? 꼭두각시놀이에서 6막 ‘매사냥’과 7막 ‘평양감사 재상’에 평양감사가 등장하는데26) 그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③ 聲以貌爲 “거문고 타고 피리 불며, 촛불 밝히고 밤새 노는데, 서늘한 정자와 높은 누대의 꽃 떨어지는 바람 속에서 정신은 북과 함께 울리고 목소리는 모양 따라 꾸미네. 웃음 속에 해학 물결이 일고, 입 안에서 말의 샘이 흘러나오네.)(彈絲品竹, 秉燭夜遊, 凉榭高臺, 落花風裏, 神與鼓動, 聲以貌爲, 謔浪起於笑敖, 言泉流於唇齒.)”
‘聲以貌爲’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27)
④ 萬壽神靈 “가인이 낭군을 그리워하고, 무당의 제석이 처음 내려오며, 천리의 소식은 병풍에 그린 닭처럼 소리가 없고, 만수산 신령은 산머리의 푸른 소나무처럼 빛을 발한다. 이제 여인들의 노랫가락을 멈추고 기생집의 춘향 이름을 들어보니, 옥가락지 이별할 때는 악창처럼 거울 나누며 눈물 뿌리고, 수의 사또 가무할 때는 성 남쪽에 꽃을 반기는 봄이 돌아오도다.(佳人之郎君相思, 巫姑之帝釋初降, 千里消息, 屛間之畵鷄無聲, 萬壽神靈, 山頭之靑松生色. 且停女流之俚曲, 試聽妓院之香名, 玉環別離, 淚洒樂昌之分鏡, 繡衣歌舞, 春回城南之笑花.)”
위 대목에서 가인 부분은 <상사별곡>, 병풍의 닭 부분은 <黃鷄歌>를 가리킨다고 해석되었다.28) 두 작품이 12가사에 해당하므로 이는 ‘女流之俚曲’이라는 표현에도 부합한다. 그렇다면 남은 두 작품도 12가사 부류에 해당하는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데 해당 작품이 무엇인지 미상이다.
⑤ 擘竿, 宛姬 “跌蛛絲而擘竿, 宛姬播鼓; 衝燕濯而走索, 都盧尋橦. 거꾸로 거미가 줄을 타듯 장대를 나눌 때 완희가 북을 울리고, 부딪친 제비가 물 차듯 줄 위를 달릴 때 도로는 장대를 찾아 탄다.”
위 내용은 <관우희> 33, 34번째 시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跌’이 제대로 쓰인 것인지 의문이다. 顧况의 <險竿歌>에 “머리 위에서 치는 북소리 듣지 못할 때, 손 놓치고 발 어긋나도 거미줄이라네(頭上打皷不聞時, 手蹉脚跌蜘蛛絲)”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으나 의미가 순조롭지는 않다.
‘擘竿’은 무엇을 형용한 것인지,29) ‘宛姬’는 ‘都盧’와 대비되는 표현이므로 도로처럼 나라나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인 듯한데 용례를 찾지 못했다.30)
⑥ 鼓笛浮生 “(줄에) 올라 빙빙 도니 무인도 아닌데 용맹하고, 즐거이 웃다가 성내며 꾸짖으니 능히 그 소리를 꾸미는구나. 꼭두각시의 북과 피리는 기술이 이에 멈출 따름이니 꼭두각시 무명실의 기묘한 변환이 도리어 낫겠는가. 갑자기 허공을 걸어 공중을 가로지르니 뭇사람들이 넋을 잃어 어리둥절한데 주저하거나 서두르는 모습이 없어 칭찬이 대단하다.(騰踏盤旋, 不武而勇; 嬉笑怒罵, 能文其聲. 傀儡之鼓笛浮生, 技止此耳, 窟磊之木絲奇幻, 反復勝耶. 忽步虛而橫空, 衆佚魂而游目, 貌無停趣, 賞有亟稱.)”
위 대목은 34․35․36․37번째 시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줄타기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그 사이에 꼭두각시에 대한 언급이 끼어 있다. 줄타기가 꼭두각시놀이보다 더 낫다고 평가한 것으로 해석한 경우가 있는데,31) 문맥상 그러해야겠으나 ‘技止此耳’에서 ‘此’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등 표현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鼓笛浮生’은 뒤 구절의 ‘木絲奇幻’과 對句 관계에 있는 표현일 텐데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다.32)
⑦ 令人傷遲, 相詭 “더딤을 관객들이 애석하게 하니 시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갑자기 곡조가 바뀌니 일시에 봄바람 부는구나. 변변찮은 재주를 부려도 오히려 필시 그러하거니와 고의로 변화를 주어 현혹시키니 공손대랑의 劍器 혼탈무33) 처럼 그 기묘함은 신통한 경지에 들어섰고, 포정의 여유로운 칼솜씨처럼 지극한 이치가 깃들어 있도다.(令人傷遲, 愁雲四起, 驀地變調, 春風一時. 操末技猶必然, 變化故而相詭. 如孫劒之渾脫, 其妙入神, 若庖刃之恢遊, 至理所寓.)”
‘遲’의 주체는 무엇인지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34) 아마도 위험한 줄타기 재주를 보여줄 때 관객들이 조마조마 하게 되므로 시간이 더디게 가고 어서 빨리 그 상황이 지나가기를 바라도록 빌게 된다는 것을 ‘令人傷遲, 愁雲四起’라 하고, 아슬아슬 천천히 줄타기를 하다가 후다닥 그 상황을 벗어나게 되면 관객들이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것을 ‘갑자기 곡조가 바뀌니 일시에 봄바람 부는구나.(驀地變調, 春風一時)’로 표현한 듯하다.
뒷 문장도 해석이 쉽지 않다. ‘末技’라는 표현은 늘 하는 줄타기를 지칭한다면 ‘變化故而相詭’는 그저 훌륭한 줄타기라는 일반적인 상황일 수도 있으나, 뒤에 나오는 포정의 비유에 비추어 볼 때 劍舞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35) 그렇다면 왜 줄타기를 변변찮은 재주라 하고 검무는 더 높게 평가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저 글쓴이의 취향일 뿐인지, 당시 사람들의 평가가 그러한 것인지.
⑧ 荊公忘庭優之嬉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황금을 중히 여기니 柳曾이 줄타기를 경계하는 글(險竿行)을 지었고, 웃음 지으며 자리에 있으니 荊公이 庭優의 즐거움을 잊었다(輕命重金, 柳子作竿兒之戒; 發笑當席, 荊公忘庭優之嬉)”
‘荊公이 庭優의 즐거움을 잊었다’는 대목에 대한 출전을 찾지 못했다.
4) ‘북선원’은 아내를 사별한 후에 거처했던 곳을 가리키는 듯하다. 『警修堂全藁』 15책 「九十九菴吟藁一 庚寅八月. 至九月」 중에 칠언율시 <사찰에서 돌아오는 길에 멀리 자하산장을 보니 여전히 또한 하나의 선원 분위기여서 이 시를 완성한다(寺門歸路, 遙見紫霞山莊, 尙亦一禪境也, 遂成此篇)>의 주석에 “근년에 조 부인을 장례 지내고 난 후 나는 자호를 ‘북선원에서 낙엽을 쓰는 두타’라 했다.(頃年葬曺夫人後, 余卽自號曰, 北禪院掃落葉頭陀.)”는 기록이 있다. 경인년은 신위의 생몰년을 기준으로 할 때 1830년이고, 『소악부』가 기록된 신묘년은 1831년에 해당한다. 5) 탁효영, 「자하신위의 한시 연구 : 선사상과 차문화를 중심으로」, 원광대 박사학위논문, 2009. 2, 22면 참고. 6) 원문의 ‘勞歌’는 송별의 장소로 유명한, 南京 남쪽에 있는 勞勞亭의 노래를 가리킨다. 일찍이 <孔雀東南飛>에서 “손을 들어 오랫동안 흔드니, 두 사람의 정은 같이 연연해 하네(舉手長勞勞, 二情同依依)”라고 하여 焦仲卿과 아내 劉蘭芝의 이별을 표현한 데서 유래했다. ‘勞勞’가 기존에 주로 ‘슬퍼하는 모양’으로 해석되었고 ‘흔들다’로 해석되기도 했는데 李智海의 『孔雀東南飛故園拾穗』(安徽大學出版社, 2008)를 인용하여 ‘動’ 즉 움직이는 모양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송인주,「 <공작동남비> 難句 연구」, 제주대 석사학위논문, 2011. 8, 27면 등 참고. 7) 원문의 ‘寒缸’은 본래 차가운 기름이 없는 등잔으로, ‘寒燈’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白居易의 시 <잠 못 들다(不睡)>에서 “불꽃 짧아져 찬 등잔 다하고, 소리 길어 새벽은 더디도다(燄短寒缸盡, 聲長曉漏遲)”라고 한 바 있다. 8) 윤광봉, 앞의 글, 159면. 9) 이혜구, 「송만재의 관우희」, 『논문집』 1, 중앙대, 1955, 105면. 驪珠는 『莊子』 「列禦寇」에 “천금의 구슬이 깊은 연못 속 여용의 턱 아래에 있다(夫千金之珠, 必在九重之淵, 而驪龍頷下.)”고 한 데서 나온 표현이다. 10) 보고사 영인본, 807면. 11) 송나라 任廣 찬술, 四庫全書에 수록. 12) 이혜구, 앞의 글, 108면 ; 윤광봉 앞의 글, 183면. 13) 이혜구, 위의 글 ; 윤광봉, 앞의 글, 180면 등 참고. 14) 줄타기에 광대줄타기와 어름줄타기가 있는데, 광대 줄판은 궁궐이나 관아, 양반들 집에서 낮에 차려지고, 어름 줄판은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밤에 차려진다고 한다. 송석하, 「줄타기」,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http://folkency. nfm. go.kr/sesi/) 15) 이혜구, 앞의 글, 109면. 16) <광한루악부>에 대해서는 「역주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 『열상고전연구』 제24집, 199-300면, 열상고전연구회, 2006년 12월 ; 정선희, 「<광한루악부> 연구」, 『이화어문논집』 제16집, 이화어문학회, 1998년 12월, 113-131면 참고. 17) 용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南朝 梁 沉約의 <3월 3일에 급히 완성하다(三月三日率爾成篇)> “거미줄 공중에 비쳐 흔들리고, 키 큰 버들이 땅에 스치듯 늘어졌네(遊絲映空轉, 高楊拂地垂)”. 18) 용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張維의 『谿谷集』 <안양 길가에서(安陽道上)> “꽃들 따스하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네(花暖惹遊絲)”. 李應禧의 『玉潭詩集』 <신춘新春> “눈 가득한 아지랑이 가장 좋구나(最愛遊絲滿眼浮)”. 19) ‘盤旋風撇’은 당나라 顧况의 <險竿歌>에서 가져온 듯하다. 『全唐诗』 卷265에 보면 “휘도는 바람이 나는 새 흔드니, 놀란 원숭이 휘돌아 나뭇가지 흔들리네(盤旋風撇飛鳥, 驚猿遶 樹枝褭)”라는 구절이 있다. ‘撇’은 ‘飛鳥’를 목적어로 하는데 <관우희> 시에서는 맥락이 잘 닿지 않는다. 20) 발표할 때 ‘姣態少年’의 조합이 어색하다고 했는데, 질의자가 ‘子都’ 즉 춘추시대 鄭나라의 미남자와 관련하여 『孟子』 「告子 上」에 “자도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는 눈이 없는 자이다.(不知子都之姣者, 無目者也.)”라는 표현이 있음을 일러주었다. 21) 윤광봉, 앞의 글, 290면. 22) 이에 대해 질의자는 『사기』 「골계전」에 나오는 ‘진나라 陛楯’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陛楯은 황제가 있는 곳 섬돌에서 방패를 잡고 호위하던 관원이다. 진시황이 연회를 하고 있을 때 폐순들은 비를 맞고 있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난장이 광대 優旃이 그들을 쉬게 해주려고 말하길, “너희 키가 크지만 무슨 소용이냐? 비나 맞고 서있지. 나는 작아도 편히 쉰단다.”라고 했다. 이를 들은 진시황이 폐순을 교대로 쉬게 했다. 그러므로 위 구절은 ‘광대 우전이 폐순보다 낫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23) 鶴汀에 대해 질의자는 鶴城 즉 울산의 물가를 뜻한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삼국유사 紀異 處容郎 望海寺 에 처용이 학성 근처인 開雲浦에서 나타났다고 하였다. 처용무가 鶴舞와 같이 연행된 것도 관련 있을 것이다. 24) 開府官은 開府의 의미인 듯하다. 開府는 정승 집에 官府를 여는 것으로서, 漢나라 때 三公만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25) 앞의 것은 이혜구, 앞의 글, 96면, 뒤의 것은 윤광봉, 앞의 글, 215면. 26) 꼭두각시놀이 脚本은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동문선, 2012. 202-203면 참고. 27) 이에 대해 질의자는 “以가 聲을 받는 것으로 보고, ‘목소리로 모양을 낸다’ 즉 聲帶模寫가 아닌지?”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28) 이혜구, 앞의 글, 97면. 29) 이에 대해 질의자는 “장대를 두 개 합하여 가지고 있다가 쫙 갈라지게 하는 장대타기의 한 장면으로 보임”이라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30) 이에 대해 질의자는 “宛丘의 여자. 『詩經』 <陳風 宛丘> 「둥둥 북을 치며, 완구 아래에서 노는구나(坎其擊鼓, 宛丘之下)」에서 나온 표현”이라 지적했다. 한편 송만재가 <관우희>를 쓰면서 참고한 顧况의 <險竿歌>의 주인공이 ‘宛陵女’라는 점에서 완릉의 여자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완릉의 여자는 줄타기 예능인으로서, “완릉의 여자가 손을 날려, 장대를 허공에 비껴 상하로 달리네(宛陵女兒擘飛手, 長竿横空上下走)”라고 하였다. 완릉은 安徽省에 있는 宣城을 가리키고, 宛丘는 河南省 淮陽縣에 해당한다. 31) 이혜구, 앞의 글, 99면. 32) 이에 대해 질의자는 “꼭두각시놀음에서 북과 피리로 덧없는 인생을 놀리는 것은 기술이 여기에서 멈출 뿐이고, 꼭두각시놀음에서 무명실로 기묘한 변환을 하는 것도 도리어 이보다 낫겠는가.”라는 번역을 제안하고, 꼭두각시놀음에서 인형을 浮生에 빗댄 것은 『전국책』 「齊策」의 孟嘗君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사의 내용은 孟嘗君이 秦에 들어가려 하자 蘇秦이 비유로 ‘土偶人’과 ‘桃梗’의 대화를 들어 설득한 것이다. 33) ‘渾脫’은 본래 북방민족 말에서 나온 것으로 모자를 가리킨다. 혼탈무란 혼탈 모자를 쓰고 추는 춤을 말한다. 후에 劍器와 합쳐져 ‘劍器渾脫’이 되었으니 公孫大娘의 춤이 그것이다. 韩宁, 「《浑脱舞》考」, 『民族文学研究』, 河北大学文学院, 2012년 11월 29일, 5期 참고. 34) 이에 대해 질의자는 “誤字가 아니라면 날이 저무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고 의견을 피력함. 35) 劍器舞가 실제 칼을 들고 추는 것인지 맨손으로 추는 것인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우희>에서는 황창무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검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王克芬의 『中國舞蹈發展史』에 실린 혼탈무 도판(윤지원, 「중국 무용 복식을 통해 본 이국적 취향의 이입 현상에 관한 연구 : 한대부터 수․당대를 중심으로」, 서울여대 박사학위논문, 2004, 145면)을 보면 양손에 무엇을 쥐고 춤을 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3. 맺는말
<관우희>는 선인들의 놀이 문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귀한 문헌이다. 그러나 문헌이 발견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板橋初集』이 발견되어 연세대 소장본의 오탈자들을 보완할 수 있게 되어 다시 번역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의문점들이 많이 남는다. <관우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판소리는 물론이요 줄타기나 꼭두각시놀이 등에 대한 정심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이를 과제로 남겨두면서, 몇몇 난해한 구절들에 대해 질정을 구한다.
참고문헌
『警修堂全藁』 大阪本 『東野彙輯』 『板橋初集』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동문선, 2012. 「역주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 『열상고전연구』 제24집, 열상고전연구회, 2006년 12월, 199-300면. 구사회, 「새로 나온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와 한시 작품들」, 『열상고전연구』 제36집, 열상고전연구회, 2012, 143-178면. 송석하, 「줄타기」,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http://folkency.nfm.go.kr/sesi) 송인주, 「<공작동남비> 難句 연구」, 제주대 석사학위논문, 2011.8. 윤광봉, 『韓國演戱詩硏究』, 동국대 박사학위논문, 1985. 윤지원, 「중국 무용 복식을 통해 본 이국적 취향의 이입 현상에 관한 연구 : 한대부터 수․당대를 중심으로」, 서울여대 박사학위논문, 2004. 이혜구, 「宋晩載의 觀優戱」, 『논문집』 1, 중앙대, 1955. 정선희, 「<광한루악부> 연구」, 『이화어문논집』 제16집, 이화어문학회, 1998년 12월, 113-131면. 탁효영, 「자하신위의 한시 연구 : 선사상과 차문화를 중심으로」, 원광대 박사학위논문, 2009.2. 韩宁, 「《浑脱舞》考」, 『民族文学研究』 2012년 5期, 河北大学文学院, 201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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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2013. 4. 24. 게재확정일: 2013. 6. 7.
Abstract Problems on interpretation of Kwan-uhui觀優戱 Lee, Dae-hyung*
Kwan-uhui觀優戱 is literature which contains information of Chosun's entertainment culture. But still it's meaning does not have been decoded entirely. Recently Pangeo-chojip板橋初集 was discovered, it includes other version of Kwan-uhui. Therefore we can read more exactly than before. But interpretation of it is still very difficult. In advance we must investigate pansori, tightrope etc. Here I mentioned some problems which we did not interpret, and hope to other scholar's interpretation.
key words Kwan-uhui觀優戱, Pangeo-chojip板橋初集, yoryung要令, pansori, tightrope
* Dongguk Univers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