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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인창의 독서여행 【 궁인창의 지식창고 】 2026.10.23. 21:35 (2026.10.23. 21:35)

칠보산도병풍과 와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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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23〉
국립고궁박물관은 2024년 3월 15일부터 5월 26일까지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19세기 10폭 《칠보산도병풍(七寶山圖屛風)》을 고화질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한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칠보산도병풍》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현해 함경북도 칠보산의 절경을 선보인 전시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개최되어 주목을 받았다.
〈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23〉
 
 
국립고궁박물관은 2024년 3월 15일부터 5월 26일까지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19세기 10폭 《칠보산도병풍(七寶山圖屛風)》을 고화질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한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칠보산도병풍》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현해 함경북도 칠보산의 절경을 선보인 전시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개최되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디지털 전시는 조선 시대에 유행했던 ‘와유문화(臥遊文化)’의 현대적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초기에 명산을 쉽게 다닐 수 없던 사대부들은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남긴 유산기(遊山記)나 와유록(臥遊錄)을 구해 즐기는 풍습이 한동안 유행했다. ‘누워서 노닌다.’라는 뜻의 와유(臥遊)는 직접 산수를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 대신에 방안에 산수화를 걸어두거나, 집안이나 정원에 돌과 흙으로 인공의 작은 산(가산, 石假山)을 만들어 자연을 축소하여 즐기는 동양의 전통문화이다. 선비들은 기행문을 읽거나 그림을 보며 간접 체험으로 자연을 감상하고 이상향을 꿈꾸며 정신적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칠보산도병풍》(사진:국가유산청)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학자이며 화가인 종병(宗炳, 375~433)의 자는 소문(少文)이다. 그는 남양군 섭양(涉陽, 현재의 허난성 난양시 덩저우)의 명망 있는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시씨(施氏)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현학, 불교, 거문고, 서화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전형적인 사대부 문인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종병은 평생 자연에 묻혀 사는 은거의 삶을 지향하며 은둔자(隱士)로 지냈다. 그는 지방관인 은중간(殷仲堪)과 환현(桓玄), 그리고 황제인 유유(劉裕)와 유의륭(劉義隆) 등이 내린 높은 관직 제의를 여러 차례 거절했다. 산수를 즐기는 데 열정이 지나쳐 30여 년 동안 명산을 거닐며 시냇물을 마시고 골짜기에 머물며 산림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 세로 26.4cm × 가로 47.6cm)(사진:타이완 국립고궁박물원)
 
종병은 불심이 매우 돈독해 고승 혜원(慧遠, 334~416)의 문하생이 되었다. 동진(東晉)의 승려인 혜원은 염불삼매를 수행한 정토종의 개조이다. 그는 여산(廬山) 동림사를 건립해 주석하며 승려와 유자(儒者), 처사 등 123명과 함께 수행공동체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했다.
 
혜원은 여산 동림사에 머무는 동안 평생토록 절 앞을 흐르는 호계(虎溪) 시내를 건너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어느 날 시인 도연명(陶淵明)과 도교 도사 육수정(陸修靜, 406~477)이 절을 찾아와 오랜 시간 정답게 대화하며 차를 마시고 손님을 배웅하러 나섰는데, 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그만 스스로 정한 경계를 넘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크게 웃으며 박장대소하여 호계삼소(虎溪三笑) 일화로 남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유교, 불교, 도교라는 서로 다른 사상과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깊은 교감을 나눈 화합을 상징하며, 형식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와 우정 앞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한편, 고승 혜원은 「沙門不敬王者論」에서 “인간의 육체가 소멸해도 정신은 사라지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장작불의 비유를 들었다. 불이 하나의 장작에서 또 다른 장작으로 옮겨가며 계속 타오를 수 있듯이 사람의 정신(神) 또한 하나의 몸이 사라져도 또 다른 몸으로 옮겨가며 영원히 지속된다.”라고 말했다.
 
 
【출전】
慧遠, 「沙門不敬王者論」, “火之傳於薪. 猶神之傳於形. 火之傳異薪猶神之傳異形. 前薪非後薪. 則知指窮之術妙. 前形非後形. 則悟情數之感深. 惑者見形朽於一生. 便以謂神情俱喪. 猶睹火窮於一木. 謂終期都盡耳.”
 
 
종병은 스승 혜원의 영향을 많이 받고, 불교의 불성론(佛性論)와 도가(道家, 玄學) 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명불론(明佛論)》과 《답하형양서(答何衡陽書)》 등 중요한 불교 저술을 남겼다.
 
남송 화가 마원(馬遠, 1160~1225) 《秋江漁隱圖》(사진:국립고궁박물원)
 
《송서(宋書)》와 《남사(南史)》의 〈종병전(宗炳傳)〉에는 “好山水, 西涉荊巫, 南登衡嶽”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종병은 젊었을 때 산천을 두루 유람하며 서쪽으로는 형산(荊山)과 무산(巫山)에 오르고, 남쪽으로는 형산(衡山)에 올랐다. 그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다 말년에 이르러 늙고 병들어 명산대천을 유람할 수 없게 되자, 강릉(江陵)으로 돌아왔다. 그는 산수를 접할 수 없게 되어 탄식하기를 “늙음과 질병이 함께 이르니 명산을 두루 보기 어려울까 두렵구나! 오직 마음을 맑게 하여 도를 관조하면서 누운 채로 그곳에서 노닐리라. 그리고 그동안 돌아다녔던 곳을 모두 방안에 그려놓으리라.”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평생 유람하며 보았던 산수를 붓으로 집 안 벽에 그려 넣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도 마치 산수 사이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재현하였다. 거문고를 타며 거처의 벽에 그림을 누워서 감상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는 “맑은 마음으로 도를 관찰하고, 누워서 그 도를 유람한다.”라는 와유(臥遊)라는 유명한 미학적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수많은 아름다운 산천 경관을 직접 겪으며 산수미(山水美)의 진리를 깨달아서 화가가 산수를 그릴 때 자연의 형상을 빌려 ‘형상으로 도를 아름답게 표현’ 즉 의경을 표현하는 이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며 그 신묘한 운치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다.
 
그는 동양 미술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산수화 이론서인 《화산수서(畫山水序)》를 저술했다. 책에 외부 세계를 반영하면서 도(道)를 구현하는 것과 마음을 비워 사물의 본질을 음미하는 것,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 같은 개념들을 담았다.
 
“3촌(寸) 길이의 수직 획으로 1천 인(仞, 매우 높은 높이)을 나타낼 수 있고, 몇 자(尺) 길이의 수평적인 먹선으로 1백 리(里, 매우 넓은 거리)를 담아낼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산수화에서의 원근법 원리와 마음과 물리적 세계 사이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런 원근법의 형태와 원근의 기본 원리 및 검증 방법은 이는 이탈리아 화가 프리니페 브룬리스코(Pmilippe Brunlles co, 1377~1446)가 창립한 원근법보다 무려 천 년이나 앞선 것이다.
 
겸재 정선, 국보 《仁王霽色圖》(사진:국립중앙박물관, 2021년 기증)
 
《화산수서(畫山水序)》의 핵심은 창신(暢神)이다. 종병은 “산수화 속에 생동하는 정신(神)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화산수서(畫山水序)》는 성당(盛唐)의 시인이자 화가인 마힐(摩詰) 왕유(王維, 699~759)의 《서화(敍畫)》와 더불어 초기 산수화 이론의 중요한 저술로서 ‘형상을 통해 도(道)를 불러일으키는’ 자연주의적 관찰 방식을 강조한다. 그는 산수화를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닌 정신적 수행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산수화는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적인 취향(神靈)을 담고 있어 질유도지(質有而趣靈)라고 보았다. 또한. 징회미상(澄懷味象), 마음을 맑게 하여(澄懷) 자연의 형상 속에 담긴 도를 음미(味象)한다는 뜻으로 산수화를 그리고 감상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했다.
 
눈앞에 손가락을 대면 비단결 같은 산도 가릴 수 있으며, 멀리 있는 큰 산을 작은 화폭에 축소하여 담아내는 회화적 비례와 원근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설명했다. 종병 이전의 회화는 주로 인물이나 종교적 교훈을 담은 인물화 중심이었지만, 종병에 이르러 산수화가 인물화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제시한 이론과 정신은 이후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아시아 문인 화가들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미학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는 동양회화사에서 산수화의 이론적 틀을 정립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종병(宗炳)은 서예와 금(琴, 거문고류 악기) 연주에도 뛰어나 유실되었던 고대 악곡 《금석농(金石弄)》을 복원해 전수했다. 종병에서 시작된 와유 개념은 곽희(郭熙, 1020?~1090?), 동기창(董其昌, 1555~1636), 석도(石濤, 1642~1720?)를 지나 보편화 되면서 동양 산수화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사진:국립고궁박물관)
 
글을 쓰다가 연세대 강여을 박사가 2019년 발표한 〈종병(宗炳)의 「畫山水序」와 예술 본질〉 논문과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의 양희정 선생이 2021년 2월 《한국철학논집》 제68집에 발표한 〈종병(宗炳)의 ‘와유(臥遊)’ 개념에 관한 연구〉 논문을 읽고 참고했다. 양희정 선생은 논문에서 “‘유(遊)’는 《장자》에서 정신의 자유·해방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칠보산은 조선 시대 전국 6대 명산 중 하나로 《칠보산도병풍》 우측에는 칠보산을 탐험한 문신 금호 임형수(林亨秀, 1514-1547)의 함경도 칠보산 유람기인 《유칠보산기(遊七寶山記)》의 내용이 적혀있다. 병풍 뒤에 마련된 전시 공간에서는 그림을 실감이 나게 표현한 디지털 몰입형 영상을 상영하며 배우 류준열의 흡인력이 있는 목소리로 담아냈다. “먼저 다다른 개심사(開心寺), 날이 흐려 주변을 살피기 위해 올라간 개심대(開心臺), 지팡이를 버리고 올라간 산의 모든 형상을 볼 수 있다는 회상대(會象臺), 회상대 건너편에 보이는 천불봉(千佛峰)과 나한봉(羅漢峯),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다는 금강굴(金剛窟), 금강굴 아래로 길게 흐르는 폭포, 절의 기와지붕을 닮은 사암), 그 아래 민가의 집처럼 초가지붕을 닮은 바위군. 그 외에도 만사봉(萬獅峯), 종각봉(鍾閣峯), 망해대(望海臺), 두열암(兜率菴), 사암(寺巖), 책암(冊巖), 주암(舟巖), 만사봉(萬寺峰)이 더 있다.”
 
강원도 Eco-Peace(사진:유네스코)
 
북한 지역의 천하절경인 칠보산은 명승 제17호로, 2014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생물관보호지역(Biosphere Reserve)’으로 지정되었다. 칠보산 사진을 볼 때마다 분단의 벽으로 못 가는 것이 그저 가슴 저리고 안타까울 뿐이다. 2026년 유네스코는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14곳의 새로운 생물권 보전 지역을 지정해 전 세계 ’생물권보전지역 네트워크‘는 145개국 797곳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은 설악산, 제주도, 신안, 광릉숲, 고창, 순천, 강원도 Eco-Peace, 연천, 완도, 창녕 10곳이 선정되었다.
 
거거(硨磲·대왕조개)(사진:나무위키)
 
불교 《아미타경전》에서 극락세계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등장하는 칠보(七寶)로 금, 은, 유리(瑠璃), 거거(硨磲·대왕조개), 산호(珊瑚), 마노(瑪瑙), 진주(眞珠) 일곱 가지를 꼽는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28권 ‘사자후 보살품’에는 칠보는 대열반(大涅槃, 깨달음의 세계)이 아니라 중생이 불도를 성취하기 위해 일으키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이 수행 과정에서 물러나지 않는 마음인 불퇴전심(不退轉心)을 설명하기 위해 칠보산 비유를 들어 자주 설하셨다. 온갖 보물이 가득하고 감미로운 샘물이 솟아나는 산의 감미로운 샘물을 한 번 마시면 영원한 해탈과 부처의 지혜를 얻어 수명이 연장되며, 높고 깊은 산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험한 지형과 도적들은 중생이 윤회하며 겪는 생사(生死)의 고통과 네 가지 마군(煩惱, 五蘊, 死魔, 天魔)으로 비유한다. 이미 산에 다녀와 보물을 얻었다며 길을 안내해 주는 존재는 중생을 인도하는 부처님을 상징한다.
 
충북 괴산 칠보산(七寶山, 778m)(사진:충북 괴산군)
 
불교에서 칠보산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온갖 번뇌와 생사의 험난한 고개를 넘어 마침내 도달해야 하는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키는 상징이 되는 산이다. 우리나라 충북 괴산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한 칠보산(七寶山, 778m)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산이다. 칠보산에는 일곱 개 봉우리가 불교의 칠보를 상징하듯 웅장하게 솟아있으며 수려한 암릉과 기암괴석이 참으로 아름답다. 칠보산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비경을 넘어 인간의 번뇌를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수행자의 청정한 마음의 경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포항영일만항 크루즈터미널(사진:이사부기념사업회)
 
영덕 칠보산 휴게소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저녁 8시 30분경에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포항영일만항 크루즈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했다.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이 정기 선박검사로 6월 28일부터 10일간 휴항하고 7월 9일부터 정상 운항을 재개해 크루즈터미널은 울릉도로 가려는 단체 관광객, 학생, 울릉도 주민들이 모여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며 활기가 넘쳤다. 동아지도 안동립 대표와 김두환 교장을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포항영일만항 크루즈터미널 조감도(사진:포항해수청)
 
 
이사부기념사업회 기획실장이 승선표와 신분증을 건네주어 개찰구에서 신분증 확인을 하고 크루즈에 몸을 실었다. 10만 톤이 넘는 코스타세레나호를 타고 부산에서 출항해 타이완의 지룽(基隆)항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포항에서 울릉도를 잇는 동해에 2만 톤의 울릉크루즈 여객선은 처음이라 선실 구조가 궁금해 밤 11시경 배가 출항하기까지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1970년대 울릉도로 갈 때는 포항 시내에서 가까운 포항여객선터미널(迎日臺 옆, 포항시 북구 행안로 44)에서 청룡호(380톤급), 동해호(200톤급)를 이용해 12시간이나 걸려 울릉도로 갔다. 1977년에 취항한 한일호(1,000톤급)는 운항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해 본격적인 울릉도 관광 시대의 문을 열었다. 대저페리의 쾌속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는 오전 9시 50분에 출항해 약 2시간 50분 만에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한다.
 
독도 항해, 코리아나호, 2024.9.3.(사진:궁인창)
 
범선 코리아나호(선장: 정채호)가 이사부기념사업회 초청으로 이사부 항로 탐사 대원들과 함께 동해 울릉도와 독도를 탐방할 때는 여수 소호요트장에서 출항하여 한려수도를 지나 부산 용호부두 다이몬드베이 선착장, 후포항, 정라항을 주로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삼척 정라항에 복귀해 호미곶 등대 남쪽에 있는 구룡포항과 거제도에 정박하고 여수 소호요트장에 입항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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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