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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에서 낙화(落花)의 상징성과 주제적 의미 신 동 흔
2018. 5. 25.
바리공주님과 만신님들께
<바리공주> 신화에서 ‘낙화’의 상징성과 주제적 의미*1) 신 동 흔 (건국대학교)
<차 례> 1. 여는 말 2. <바리공주> 속의 낙화와 꽃 3. 낙화 화소의 신화적 상징 4. 낙화의 길과 구원의 실현 5. 바리공주와 만신, 그리고 낙화 6. 맺는 말
<논문 개요> 무속신화 <바리공주>에서 꽃은 생명 또는 존재의 상징으로서 성격을 지닌다. 이야기는 바리공주가 ‘낙화(落花)’를 던지거나 흔들어서 험한 길을 열고 지옥을 허물었다고 하는데, 삽화적으로 보이는 그 내용 속에는 <바리공주>의 주제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떨어진 꽃’이 길을 열고 생명을 피워낸다는 설정은 ‘화락능성실(花落能成實)’의 역설적 진실을 현시한다. 꽃의 떨어짐은 죽음으로 보이지만 거기 씨앗이 깃들어 있으니 새 생명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은 생명으로 거듭 나거니와, 인간의 생명 또한 그러한 영원한 순환 속에 있다는 것이 <바리공주>의 세계관이다. <바리공주>에서 특별히 주목할 바는 주인공 바리의 역정이 오롯한 ‘낙화의 길’이었다는 사실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 받은 상태에서 신령한 생명력을 지키고 키워서 죽은 부모를 살리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낙화의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바리가 낙화를 던져 길을 열고 지옥을 허무는 일은 곧 그가 감당해온 삶의 힘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 해당한다. 무참히 버림받은 고통 속에서 신령한 꽃으로 피어난 바리는 죽음을 극복한 존재였으며, 그리하여 죽음에 갇히지 않는 존재였다. 그가 지옥을 허물고 혼령들을 구원한 일은 곧 낙화적 삶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무상신과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아 키우는 과정 또한 낙화의 길이었으니, 그 형상에는 스스로를 희생하며 생명을 낳아 키우고 삶을 일궈낸 이 땅 여성들의 서사가 응축돼 있다. 일견 종속적으로 보이는 바리의 ‘낙화행’은 부모가 권하는 부귀를 마다하고 고통받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길을 선택하는 존재적 결단을 통해 주체적인 비약 내지 완성을 이루게 된다. 무당 만신들은 그 바리공주를 자신의 조상신 내지 몸주신으로 섬기는바, 만신들이 곧 낙화적 존재라고 하는 점에서 서로간의 서사적 합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바리공주>가 구송되는 진오기굿 의례의 현장은 이야기 속의 낙화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낙화, 이야기를 들으며 새기는 낙화들이 함께 어우러진 신령한 생명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 외에도 <당금애기>와 <원천강본풀이>, <이공본풀이>, <세경본풀이>, <숙영랑 앵연랑 신가> 등등 낙화의 길이 형상화된 또 다른 많은 신화들이 있다. 민중의 신화로서 본풀이 서사무가는 ‘낙화의 신화’였다고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함께 논의하면서 검증해 나가야 할 화두다.
주요어 : <바리공주>, 낙화의 길, 생명의 꽃, 생명수, 지옥과 극락, 무당 만신, 진오기굿, 영혼 천도, 낙화의 신화
* 이 논문은 2018년 5월 12일 한국구비문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좋은 토론 의견을 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1. 여는 말
<바리공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본풀이 무속신화로 100편에 가까운 자료들이 보고되었고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자료의 전승현황과 계보, 의례적 맥락과 신화적 특성, 교육적의의, 현대적 재창조 양상에 이르기까지 <바리공주> 연구사는 편폭이 넓고 다양하다.
일련의 연구를 통해 <바리공주>에 대한 이해가 꾸준히 진전되어 왔지만, 핵심적 과제라 할 신화적 성격과 가치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할 바는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집단적 의례의 장에서 구술되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을 위무해온 신령한 이야기로서 <바리공주>가 지니는 서사적 깊이와 무게감은 이루 측량하기 어렵다. 언술 하나하나에 거듭 곱씹어볼 의미요소가 깃들어 있으며, 행간 사이사이에 예기치 못한 의미들이 숨어 있다.
<바리공주> 텍스트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한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화소에 대한 상징적이고 맥락적인 고찰이다. 그 화소는 ‘낙화(落花)’다. 이야기에는 바리공주가 낙화를 던져서 길을 열고 지옥을 허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신화적 의미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설화의 화소는 부분적 삽화를 넘어 주제적 의미 구현의 기본 축을 이루곤 하거니와, <바리공주>의 낙화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를 통해 이 신화의 서사적 맥락과 세계관적 의미에 대한 새롭고 깊은 이해의 통로를 열 수 있다.
<바리공주>에 대한 기존 논의 가운데 낙화에 주목한 사례는 없었다. 신령한 원조자가 전해준 하나의 도구적 주물(呪物)로 인식해 왔을 따름이다. “낙화는 꽃의 일종으로 바리공주가 앞길을 나아갈 때 만나는 고난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물건이다”1)라는 진술이 그간의 인식을 집약한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의 이해다. 신화에서 꽃이 신령한 주화(呪花) 구실을 하는 경우는 많으나 그것이 하필 ‘낙화(落花)’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면이 있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그 설정 속에 역설적인 신화적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이 본 논의의 기본 착안점이 된다.
전국에서 보고된 수많은 <바리공주> 자료 가운데 낙화와 관련한 내용은 서울・경기와 충청 지역 자료에 담겨 있으며, 북한과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쪽 자료들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본 연구는 서울・경기・충청지역 자료를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 네 권으로 묶인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2)에 수록된 서울・경기・충청지역 <바리공주> 이본 44편 가운데 낙화가 언급되는 것은 28편인데, 그 중 서사적 짜임이 잘 갖춰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분석을 수행할 것이다. 인천 정영숙본과 서울 최명덕본, 김동욱 소장 필사본, 정신문화연구원 소장 필사본, 남양주 이영희본 등이 그것이다. 하나의 기본 자료를 든다면 인천 정영숙본 ‘말미’다.3) 다만, 서울・경기와 충청지역 <바리공주>는 서사적 전개와 의미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터라서 이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낙화 대신 낭화나 라화, 백화 등으로 언급되는 자료들도 주변적으로 포괄한다. 본 연구의 논의 결과는 <바리공주> 신화 일반에 대한 인식의 진전과 함께 여타 본풀이 신화를 이해하는데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9쪽. 2)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2, 민속원 1997; 홍태한・이경엽,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3, 민속원 2001; 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4, 민속원 2004. 3) 이 자료는 이선주가 1988년 4월에 채록해서 『인천지역 무속』 3, 미문출판사, 1989에 수록한 것인데, 여기서는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87~307쪽에 실린 자료로 살폈다.
2. <바리공주> 속의 낙화와 꽃
2.1. 영험한 주화로서의 낙화
<바리공주>에서 낙화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리4)가 부모를 살릴 약수를 구하기 위해 길을 가는 과정에서다. 일곱째 딸로 태어난 뒤 바다에 버려졌다가 석가세존의 인도로 비럭할미 할애비(비리공덕할미 할아비) 아래서 자라난 바리는 궁궐로 돌아와 병든 부모님과 상봉한 뒤 여섯 언니가 마다한 구약여행 험한 행로를 자처한다. 무쇠 두루마기 무쇠 패랭이에 무쇠신을 신고 남장을 한 채 무상신(무상신선, 무장승, 무장선관) 약려수(양현수, 약영수)를 찾아 홀로 길을 떠난 바리는 무쇠 주령을 던지며 길을 나아가다가 험지에서 부처 또는 신령을 만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낙화를 전해 받는다. 인천 정영숙본은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 산천초목 우거지고 들도 나도 못할 곳에 집채 같은 범이 앉아 /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잡아먹으려고 대드는구나. / 애기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부모님께 정성이 적어서 이러한가 / 내가 네게 잡혀먹이는 것은 섧지 않으나 부모소양 못하여 어찌 하리 / 그 말을 들은 범이 훌떡훌떡 삼세번 재주를 넘더니만 / 석가여래 세존님이 되옵시니 / 애기가 들어 숙배 나가 숙배 삼세번을 드린 후에 /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석가세존님이 물으시니 / 귀신이 아니오라 나라에 세자로서 부모소양 가나이다 / 오냐 나라에 칠공주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세자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거늘 / 나는 범이 아니라 이 산의 신령이다 네가 나에게 거짓말 하는 것은 괜찮으나 / 염라대왕께 가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옥안에 갇힐 것이 아닌가 / 네가 효성이 지극하여 낙화를 주리니 이 낙화를 품에 넣고 가다가 / 이곳보다 험한 곳이 닥칠 터인즉 / 바다가 닥치거든 이 꽃을 흔들면 육지가 될 것이고 / 가시덤불 억세거든 낙화를 흔들면 평지가 될 것이다5)
길에서 만난 신령한 존재가 바리한테 꽃을 전해주는 것은 서울・경기와 충청지역 <바리공주> 대다수 자료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그 신령은 대개 석가세존 부처님이며, 때로 지장보살이나 노승, 신령님이나 신선, 백발노인으로 나오기도 한다. 위의 자료처럼 동시에 석가세존과 산신령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 자료는 바리가 맞닥뜨린 큰 범이 부처 신령으로 변해서 꽃을 주었다고 하거니와, 아찔한 위기 상황이 신이한 원조로 역전되는 것이 특징이다.6)
이 장면에서 신령이 전해준 꽃은 대다수 자료에서 ‘낙화’로 되어 있다. 꽃이 등장하는 37편 자료 가운데 28편에서 이를 낙화로 명시하고 있다. 그 외에 ‘낭화’로 표현된 자료가 4편이고,7) 라화와 낫화, 백화, 불선화 등으로 돼있는 자료가 한두 편씩 보인다.8) ‘한 송이’나 ‘세 송이’로 숫자를 명시한 경우도 있으나, 그냥 낙화를 주었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령한테서 받은 낙화는 다시 저승을 향해 길을 떠난 바리가 험로를 열어 나가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2) 앞바다도 열두 바다 뒷바다도 열두 바다 앞뒤로 청천강이 둘러있고 / 들도 나도 못하는 곳에 가시덤불 칡넝쿨이 엉켜 들도 나도 못하게 되매 / 낙화를 꺼내 들고 이리저리 흔들으니 평지가 되더라9)
앞서 신령이 일러준 그대로다. 드넓은 바다와 강이 평지가 되고, 가시덤불이 엉킨 곳도 평지가 된다. 여기서 평지가 되었다는 것은 험한 곳에서 길이 막히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는 뜻이겠거니와, 저 낙화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자료는 바리가 바다를 만나 낙화를 던지가 일엽편주 배가 되었다는 식으로 그 기능을 더 구체화하기도 한다.10) 낙화로써 길을 여는 방법은 ‘던지는 것’과 ‘흔드는 것’이 대략 비슷한 비율로 나타난다. 낙화 외에 주령(무쇠주령, 금주령)을 함께 이용해서 길을 열고 나아간 것으로 서술된 경우도 많다. 주령(지팡이)을 짚으며 길을 가다가 길이 아득히 막혔을 때 낙화를 던지는 것이 정형적 전개다.
낙화의 더 중요한 쓰임새는 지옥에 들었을 때에 발현된다. 길을 가던 바리는 무쇠성 가시성 험한 지옥 속에 들게 되거니와, 지나던 중에 지옥을 만난 것처럼 서술되기도 하고 십대왕한테 세자라고 거짓말을 한 죄로 지옥에 갇혔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더 많은 자료에 나온 상황은 후자 쪽이다. 다음과 같은 형태다.
(3) 지부의 십대왕이 바둑 두고 계시기에 들이 숙배 나가 숙배 하니 / 십대왕이 하는 말이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 귀신이 아니오라 나라의 세자로서 부모소양 가나이다 / 십대왕이 하는 말이 나라에 칠공주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 세자 있다는 말은 못 들었거늘 네가 거짓말 한 죄가 있도다 / 지옥에다 집어넣고 옥문을 덜컥 채우니 / 옥안에 귀신들이 몇 천 몇만이 우굴우굴 / 애기가 하는 말이 이곳에 갇혔으면 몇 해나 갇혔느냐 / 귀신들이 하는 말이 사월 초파일날 석가여래 생신날에 나가면 모르려니와 / 몇 천년도 갇혀 있고 몇 만년도 갇혀 있답니다 / 애기가 그 말 듣고 부모님에 효성이 적어서 이러한가 / 갇힌 것은 섧잖으나 부모 소양 늦어져서 어찌 하나 / 죄인들이 하는 말이 원 낙화나 있으면 모르려니와 / 애기가 그 말 듣고 깜짝 놀라 낙화를 꺼내 흔들으니 / 옥문이 덜컥 열리며 성이 모두 무너지니11)
보듯이 낙화가 영험한 주화(呪花)로서 결정적 구실을 하고 있다. 낙화를 흔들자 지옥문이 열리고 성이 모두 무너졌다고 하니 엄청난 변혁이 펼쳐진 상황이다. 그 덕에 바리는 물론이고 지옥에 갇혔던 수많은 죄인들이 동시에 풀려나 극락으로 가는 길이 열리거니와 극에서 극으로의 역전이 된다. 죽은 혼령을 위무하고 구원하는 것은 바리공주의 핵심 신직이자 <바리공주> 무가의 기본 직능에 해당하는 바로서, 이 대목을 통해 ‘낙화’가 작품의 주제적 의미와 연결될 가능성을 보게 된다. 문제는 ‘떨어진 꽃’으로서의 낙화12)가 어떻게 그런 구원의 힘을 내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본 연구의 주요 논제로서 뒤에서 따로 논하게 될 것이다.
2.2. 낙화의 주변 : 꽃과 초목
<바리공주>에서 낙화에 대해 직접 서술된 내용은 위에서 본 것이 전부다. <바리공주>의 긴 서사 속에서 삽화적인 한 장면에 해당할 따름이다. 신화의 전체적 맥락과 연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바리공주>에는 낙화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내용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그 중에도 꽃과 초목에 관한 서술을 눈여겨볼 만하다. 주요 대목을 살펴본다.
먼저 주목할 바는 바리의 부모가 자식을 얻을 때에 꾼 태몽이다. 많은 자료들이 일곱 공주 탄생에 얽힌 태몽을 구체적으로 전하거니와, 그 꿈의 내용으로 금과 옥, 금거북, 일곱 개의 별, 청룡과 황룡, 보라매와 백매, 해와 달 등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그 꿈에서 한 축을 이루는 것이 꽃이다. 주로 언급되는 꽃은 홍도화와 청도화다. 일부 자료는 그 ‘꽃 꿈’을 바리공주 탄생의 태몽으로 제시하고 있다.
(4) 이번에도 중전마마 병석이 않이요라 / 석아열에 시주님이 진을 치고 / 삼신에 기록 바더 칠공주가 분명하다 / 그대로 탄산에 알외온즉 / 대왕마마 허시는 말씀 몽사를 어드실제 / 용산에 꽃이 피여 보였으니 수자가 분명하다13)
(5) 이번에도 중전마마 병색이 아니시라 / 석가여래 세존님이 진을 치고 삼신이 수기 받아 칠공주가 분명하다 / 그대로 탑상에 아뢰온즉 대왕마마 하시는 말씀이 몽사를 얻으실 제 / 오른손에 홍도 복숭아 가지를 꺾어 들어 보였으니 세자가 분명하다14)
꽃이 핀 꿈이나 꽃을 꺾어든 꿈을 꾸고서 자식을 낳았다는 것은 꽃의 신화적 상징과 관련하여 중요한 정보가 된다. 꽃은 생명의 상징이자 한 인간존재의 표상으로서 의의를 지니게 된다. 그 출생 과정에는 석가여래도 관여하고 있거니와, 이는 앞서 본 바 ‘석가여래가 낙화를 전해주는 일’과 의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요소다. 그 의미 연관에 대한 논의는 미루어 둔다.
칠공주로 태어난 뒤 버림받은 바리가 비럭할미 할애비 밑에서 성장하는 과정에 포함돼 있는 다음 내용 또한 꽃의 상징과 관련하여 유심히 살펴볼 사항이 된다. 바리가 할미 할아비한테 자기 부모에 대해 묻는 과정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6) 애기한테 졌습니다 전라 왕대나무가 아버지요 / 뒷동산 잎 많은 나무가 어머니요 / 그리도 섭시른 소리 마소 어이하야 산천초목이 인간을 낳으리요 / 거짓말이 아니오라 산천에 초목이 욱어지면 / 그 초목이 이슬을 내려서 인간을 탄생하느니라 / 아기가 그 말을 들으시고 전라도는 멀어서 못 가려니와 / 뒷동산에 잎 많은 나무에 삼시문안을 끊지 않으시니15)
(7) 비리공덕 할미 할아비가 하는 말이 / 아가 아가 그 말 마라 / 아버지가 승하하시면 전라도 왕대나무 양끝 잘라 / 삼년을 애고고 짚으시니 그것이 아버지 아니오리까 / 뒷동산 잎 넓은 머루나무 양끝을 잘라 팔모를 쳐서 / 삼년을 짚으시고 애고고 불르니 그것도 엄마 아니오리까 / 아기마마 전라도 왕대나무 베어서 삼시 문안 못 드리고 / 뒷동산 잎 넓은 머루나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 삼시 문안 드리신다 / 아기 우는 대로 산천이 슬퍼하는 듯 하더라 / 아기 눈물 받아 잎 넓은 머루나무 점점 번성하시더라16)
여러 편의 이본에서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거니와, 산천 초목과 인간의 근원적 관련성 내지 동질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비록 ‘꽃’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이러한 세계관적 인식체계는 자연적 생명의 정화로서의 꽃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관련성을 뒷받침한다고 할 만하다. 저 초목들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나고 지는 터다. 인간이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라고 죽는 것처럼 말이다.
다음으로, 바리가 무상신과 살림을 차리고 살다가 약수를 얻는 대목에서 꽃에 얽힌 또 다른 의미심장한 서사와 만날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삼색꽃에 얽힌 사연이 그것이다. 무상신과 결혼해서 물 긷고 나무하고 불을 때며 자식들을 낳아 키운 바리가 약수를 길을 때에 뼈살이꽃과 살살이꽃, 숨살이꽃 등을 꺾어서 품에 넣는 내용은 대다수 <바리공주> 이본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사람 살리는 꽃’은 꽃과 생명의 본원적 연관성을 단적으로 현시한다. 일부 자료는 이에 대해 바리가 그 꽃을 피워낸 것이라고 서술하기도 한다.
(8) 갈 적에 무장승이 하는 말이 / 산에 올라 꽃 구경이나 하고 가세 물구경이나 하고 가세 / (중략) / 무장승이 하는 말이 / 그대가 물 삼년 길어준 거는 살살이꽃이었고 / 나무 삼년 해준 거는 뼈살이꽃이었고 / 불 삼년 때주는 거는 숨살이꽃이었고17)
꽃이 생명의 표상이라는 것과 함께, 한 인간의 행위가 꽃을 피우는 일로 연결되고 있음을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행적과 꽃의 상호 관련성은 낙화의 영험한 힘에 대하여 그것을 꽃 자체의 주술적 힘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 인간 삶과의 연관성을 반추할 수 있도록 하는 실마리가 된다. 낙화와 인간의 존재적 연결 관계는 뒤에서 살피게 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 이외에도 <바리공주> 텍스트 곳곳에는 꽃에 관한 여러 언술들이 나온다. 인천 정영숙본만 보더라도, 굿거리가 시작되는 대목에서 망자 제도(濟度)와 관련하여 ‘홍모란 홍산주요 백모란 백산주요’라는 표현이 나오며(287쪽), 바리공주를 후원에 버린 뒤 ‘이화 도화 만발’할 때에 ‘뒷동산 화류구경’을 나갔다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는 대목이 나온다(295쪽). 아기를 발견한 왕비는 ‘연꽃 같은’ 얼굴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었던 왕과 왕비가 약수로 되살아난 장면은 ‘장안이 꽃밭 되어’로 표현되며, 자신을 살린 바리와 대면한 왕의 얼굴은 ‘꽃방석’으로 표현된다(306쪽). 굿거리 말미에서 망자를 축원하는 대목에는 “좁고 밝은 길로 가시다가 마늘 파 장작 위철조 진달래가 얼크러졌어도 뒤돌아보지 말으시고”(307쪽)라는 당부의 말이 전해진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꽃과 생명 또는 꽃과 인간의 친연성 내지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들이다. 예의 ‘낙화’ 대목과 모종의 의미적 연관성을 지니는 사항이 된다.
4) 서울・경기・충청지역 <바리공주>에서 주인공은 바리공주, 칠공주, 바리데기, 애기(아기) 등으로 지칭된다. ‘바리’를 이름으로 보아 인물 명을 이로 통일하여 서술한다. 5)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1쪽. 자료를 인용함에 있어 정서법상의 오기(誤記)와 띄어쓰기 등을 일부 조정한다. 이하 마찬가지다. 6) 이렇게 상황을 서술하는 자료가 6편 정도 더 확인된다. 평택 노재웅본과 천안 배명부본, 공주 노재웅본, 서울 주광석 필사본, 김포 장주억본, 이영희 소장 필사본 등이 그것이다. 7) 서울 문덕순본, 서울 새우젖집본, 서울 김경주본, 서울 박금순본 등이다. 8) ‘라화’는 서울 배경재본, ‘낫화’는 서울 김종길본, ‘백화’는 인천 도정희본, 불선화(불산하)는 구리 권정옥본과 서울 박명호본에서 보인다. 서울 박종복본은 ‘나발’과 ‘나와’가 혼효돼 있다. 박명호본의 경우 앞쪽의 ‘불산하’가 뒤에서 ‘낙화’로 바뀌어 눈길을 끈다. 9)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1-302쪽. 10) 성남 장성만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49쪽. 11)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2쪽. 12) <바리공주>의 ‘낙화’에 대해 학술대회 발표에서 토론을 맡은 서영숙 교수는 그것이 ‘낙화(落花)’가 아닌 ‘낙화(落火)’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불교의 낙화의례 등을 근거로 들었다. ‘불을 던져서 길을 열고 지옥을 허문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발상으로서, 이런 해석 가능성이 일정하게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전승자들 가운데 ‘낙화’에서 꽃보다 불을 연상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전체적 맥락에서 ‘낙화’는 ‘꽃’으로 봄이 더 자연스럽다고 본다. 상당수 자료에서 ‘한 송이’나 ‘세 송이’로 낙화 숫자를 말하는데, ‘송이’는 꽃을 세는 단위가 된다. 작품의 앞뒤에 꽃과 관련되는 서술이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나 바리공주 무신도에서 공주가 꽃송이를 들고 있다는 것 등도 낙화가 꽃임을 말해주는 요소가 된다. 다만, 구비전승 서사는 전승자에 따라 수용과 의미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낙화(落火)’로의 해석 가능성을 닫지 않고 열어 두고자 한다. 13) 서울 주광석 소장 필사본 ‘발이공주’. 홍태한・이경엽,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3, 민속원 2001, 146쪽. 이 내용은 정신문화연구원 소장 필사본과 이영희 소장 필사본 등에도 거의 동일하게 나온다. 14)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94쪽. 15)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97~298쪽. 16) 김동욱 소장 필사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2, 민속원 1997, 500~501쪽. 17) 김동욱 소장 필사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2, 민속원 1997, 506~507쪽.
3. 낙화 화소의 신화적 상징
3.1. 생명 또는 존재로서의 꽃
무속의례와 본풀이 신화에서 꽃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굿에서 꽃[紙花]은 중요한 장식물로서 의례적 상징을 뒷받침하며, 각종 본풀이 속에도 꽃이 폭넓게 등장해서 신화적 의미를 살려내는 구실을 한다. 본풀이 신화의 꽃에 대해서는 그것을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보거나18) 인간의 제반 감정을 표상하는 요소로 보는 시각19)도 있으나, 가장 일반적이고 설득적인 관점은 그것을 ‘생명’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꽃에 관한 신화적 서사의 한 원형으로 <창세가>와 <천지왕본풀이>나 <삼승할망본풀이> 속의 ‘꽃 피우기 시합’을 들 수 있거니와, 이때 꽃을 피우는 일은 명백히 ‘생명의 관장’이라는 함의를 지닌다.20) <삼승할망본풀이>와 <이공본풀이> 등에 나오는 서천꽃밭의 핵심 요소는 생불꽃과 환생꽃(또는 재생꽃)이거니와 그 핵심은 인간 생명을 점지하고 되살리는 ‘생명성’에 있다.21) <바리공주>에서 바리가 꺾어오는 뼈살이꽃과 살살이꽃, 숨살이꽃 또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생명성을 핵심적 기능으로 함유하고 있다. 신화에서 꽃이 나오는 모든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생명적 상징과 일정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보아도 좋다.
꽃의 신화적 상징과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할 견해는 그것이 인간의 생명 가운데 ‘영혼’ 을 표상한다고 하는 것이다. 김선자가 부각하여 강조한 관점이다. 그는 서천꽃밭을 ‘영혼의 꽃밭’으로 개념화하면서, 꽃으로써 영혼을 나타내는 관념이 중국 남부 소수민족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드러낸 바 있다.22) 인간 생명의 정화가 곧 영혼이며,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스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꽃과 영혼의 의미적 연관은 높은 설득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생명과 영혼을 넘어서 꽃을 ‘존재’의 상징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해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존재’와의 관련성에 주목할 만하다. 꽃이 곧 인간의 표상이 된다는 뜻이다. <삼승할망본풀이>에서 하나의 생불꽃이 한 명의 인간으로 구현된다고 하는 데서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거니와, 이와 통하는 관념을 <바리공주>에서도 볼 수 있다. 앞서 (4)와 (5)에 인용한바, 꽃을 태몽으로 하여 공주가 태어났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때 공주로 표현된 한 명의 인간은 한 떨기 꽃의 화생(化生)으로 이해된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존재를 펼쳐내고 세상을 떠나는 일련의 과정이 꽃이 맺혀서 피어나고 떨어지는 과정과 의미적으로 중첩되는 형국이다.
<바리공주>에서 생명과 영혼 또는 존재의 표상으로서의 꽃과 관련하여 중핵을 이루는 인물은 물론 바리공주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표상은 ‘낙화’다. 왜 하필 낙화인지, 그것은 어떻게 생명력 발현으로 이어지는지, 진짜 본론으로 접어들 시점이다.
3.2. 낙화의 역설적 생명력
꽃이 생명의 표상이라고 할 때, 그 생명성이 가장 힘차게 발휘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모름지기 꽃송이가 활짝 피어나는 순간일 것이다. 또는 봉오리를 맺은 상태에서 막 피어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시점을 생명력이 고조된 때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리공주>에서 신령이 바리한테 전해준 꽃은 활짝 피어난 꽃도 아니고 꽃봉오리도 아닌 ‘낙화’ 곧 ‘떨어진 꽃’이었다. 낙화는 ‘소멸’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명력 발현과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다수 자료가 낙화를 말하고 있으니 의아한 일이 된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고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 무학대사의 시구로 알려져 있고 <춘향전> 해몽 대목에도 나오 는바 ‘화락능성실(花落能成實)’의 이치가 그것이다. 꽃이 떨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의 소멸이지만 그를 통해 열매가 맺히게 되니 생명을 완성하는 과정이 된다. 그 열매 속에 씨앗이 들어 있어 또 다른 싹을 틔워 꽃을 피울 수 있으니 생명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바리공주>에서 신령이 바리한테 낙화를 전해주는 것은 이러한 생명적 이치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새 생명은 시작되고, 길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새 길은 시작된다. 그렇게 낙화는 막힌 길을 열고 또 지옥의 영혼들에게 새 생명을 열어주는 것이다. 낙화 속의 씨앗에 함유된 새 생명은 미래로 열린 것이고 무한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니 이미 피어난 꽃보다 더 큰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낙화 화소의 핵심적인 신화적 의미가 된다.23)
이와 관련하여 <바리공주>의 다른 대목에 나오는 ‘꽃을 꺾는 일’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태몽에서 홍도화나 백도화를 꺾는 일이나 삼색 환생꽃을 꺾는 일을 말 그대로 ‘꽃을 꺾는[折]’ 행위로 볼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또한 꽃이 지는 일로, 그를 통해 새 생명을 기약하는 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이루거나 죽어 쓰러진 생명을 되살리게 된다는 데서 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낙화’와 궤를 같이하는 신화적 의미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바리공주>의 다음과 같은 대목으로부터 주제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9) 삼단에 지노귀 새남이요 치어다 백제일에 피우나 피운 꽃에 / 지우나 지운 꽃에 사줄대틉 인개 곡성 잔잔 촛불 불전 발심 받아 / 극락세계 시왕세계 연화대로 가시는 날로서이다24)
(10) 극락세계를 가시면은 선관선녀가 되어 가고 칠성제자 되어 가고 / 인도 환생 되어 가옵니다 부처님 제자가 되옵니다 / 꽃밭으로 가고 선관선녀가 된답니다25)
(9)에서 주목할 것은 ‘핀 꽃’과 ‘진 꽃’을 연결해서 함께 말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꽃의 피고 짐을 시왕극락 왕생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낙화의 상징적 맥락을 단적으로 현시하는 동시에 그것이 오구굿(지노귀) 의례의 주제적 의미를 표상함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0)에서 사람의 죽음이 ‘꽃밭’에서의 선관 선녀 환생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승에서 진 꽃이 저승에서 더 크고 좋은 꽃으로 피어나는, 생명의 역전적 순환이다. <천지왕본풀이>에서 이승 대신 저승을 맡은 대별왕이 꽃을 더 잘 피워낸 존재였다고 하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사실은 이러한 생명의 순환적 발현이 영원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꽃이 떨어져 맺힌 열매에 씨앗이 있고 그 씨앗이 싹터서 생겨난 꽃에 또 다른 씨앗이 있다. 눈앞의 개화는 한순간이지만, 낙화를 통해 이어져 가는 개화는 끝이 없다. 인간의 생명 또한 마찬가지다.
3.3. 버려진 딸과 낙화 사이
앞서 꽃과 인간존재의 관련성을 말했고 그 중핵을 이루는 인물이 바리공주라 했다. 바리와 낙화의 관련성은 <바리공주> 서사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그 관계 또한 단순 명백하다. 바리가 곧 낙화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고귀한 생명으로 세상에 났으되 무참히 떨구어진 삶, 그 떨구어짐 속에서 신령한 생명의 기운을 지켜낸 삶, 그 기운을 펼침으로써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낸 삶. 바리가 삶의 역정은 그 자체 오롯한 ‘낙화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가 곧 낙화였다고 할 때, 그가 구약여행의 길에서 신령한테 낙화를 받는 일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텍스트는 그것을 ‘신령의 도움’으로 서술하고 있거니와, 기실 그것은 바리가 ‘스스로 찾아낸 힘’이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동해안본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산신령에게 부모에 대해서 묻는 일련의 과정을 ‘자기 자신과의 대면 및 대화’로 풀이한 바 있거니와,26) 바리가 부처 신령에게 낙화를 받은 일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해석이 가능하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바리공주> 텍스트로 돌아가서 바리가 부처 신령을 만나는 대목을 보자. 앞에 인용한 (1)에서 바리데기가 신령을 만난 것은 ‘산천초목 우거지고 들도 나도 못할 곳’에서였으며,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잡아먹으려고 대드는, 집채 같은 범’으로서였다. 길이 꽉 막힌 상황이며, 존재가 절멸될 위기의 순간이다. 그대로 주저앉으면 길은 끝나고 존재도 마감될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바리는 물러서지 않고 범한테로 다가간다. 그리고 ‘부모 소양(효양)’이라는 소명을 환기한다. 범이 부처 신령으로 변해서 낙화를 전해준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대목을 상징의 차원에서 읽으면 다음과 같이 된다. 죽음과 대면한 절망의 상황에서 저 갸륵한 소녀는 주저앉아 쓰러지는 대신 움직여 나아갔다. 이는 곧 바리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절망의 상황에서 일어나 움직인 것이, 가없는 고독과 고통 속에서 뒷동산 나무에 정성껏 문안을 올린 것이, 부모 살릴 약수를 구하려고 무쇠옷을 입고서 홀로 머나먼 길을 나선 것이 곧 바리였다. 무참히 떨어졌으되 그대로 스러지지 않고 신령한 생명의 씨앗을 맺은 낙화의 삶. 저 험한 곤경 속에서 바리는 다시금 ‘졌으되 지지 않는 꽃’으로서 움직인 것이었다. 그 순간 그에게 ‘낙화’라는 신물(神物)이 주어진다. 자신 안에 있는 힘의 재발견이다. 늘 그러했듯이, 낙화로서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바리가 낙화를 가지게 된 일을 자기정체성 내지 자기서사의 표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바리공주> 자료들을 보면 이야기 속에서 낙화를 ‘바리공주의 꽃’으로 명시한 사례는 보기 어렵다. 앞서 인용한 (3)에는 ‘원 낙화’라고 돼있거니와,27) 다수 자료에서 그것을 ‘부처의 낙화’라는 식으로 말한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11) 그러면 이 문을 무엇으로 여는가 / 부처님 낙화로 여느니다28)
(12) 그러면 어떻게 풀려 나가느냐 하오시니 / 억만 구종들이 부처님 낙화를 얻어야 풀려 나가노라29)
이러한 대목은 그 낙화가 ‘부처님의 것’이라고 진술함으로써 바리와 낙화의 존재적 연관에 반(反)하는 것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바리가 낙화 자체라기보다 ‘낙화의 피증여자’에 해당하는 존재로 그려진 형국이다. 표면적 언술상의 문제로 넘어갈 수도 있으나, 맥락상 걸림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바리와 부처(석가세존) 사이의 근원적 연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 인용한 (5)에 나타나 있듯이, 작품에서 바리는 석가세존 부처의 조화로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 말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부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환기되기도 한다.
(13) 애기 한 번을 짚으시니 부처님 서기로 한 천리가 되셨거늘 / 그 애기 점지하시던 석가 세준을 만났더라30)
바리가 석가세존 부처가 점지한 생명이라는 것은 표현을 달리하면 부처가 세상에 낸 꽃이 곧 바리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바리가 피바다에 버려졌을 때 석가세존이 그를 인도하여 살려낸 것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바리는 하나의 낙화이되 부처 신령이 아는 낙화이며, 부처 신령의 인도 속에 생명력을 지켜낸 낙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위의 (11)나 (12)에서 말하는 ‘부처님 낙화’는 그 자체로 바리공주일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바리가 지옥문을 연 것을 ‘부처의 조화를 내재한 낙화적 존재의 힘’으로 볼수 있다는 말이다. 낙화가 버려진 딸로서 바리의 자기정체성의 표상이라는 해석은 여전히 유효성을 지닌다.
이와 관련해서 남양주 이영희본의 다음과 같은 서술을 눈여겨볼 만하다.
(14) 소녀가 부모소양 가서 / 삼년 석달 석삼년이 되어 아니 와도 / 나라 국상 나면 부모 인상 거동 모시지 마라 명하시고 / 국왕문을 썩 나서고 낙화 한 쌍을 품에 품고 / 황천강을 건너 첩첩산중을 가오시니 / 낙화가 춤을 추고 백학 청학이 날아들더라31)
이 자료에서 바리는 부처나 신령한테서 낙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것을 지니고 가면서 스스로 길을 열어 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자신 버려짐에서 일어난 신령한 꽃으로서 ‘낙화의 길’을 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비록 표면적 서술은 다르지만, 다른 자료들에서 바리와 낙화의 의미적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입장이다.
바리는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모진 바람에 떨어진 꽃송이로서 세상에 새로운 큰 생명을 피워낼 ‘씨앗’으로 거듭 났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러한 거듭 남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꽃이 알찬 씨앗을 맺는 것은 아니며, 모든 씨앗이 생명을 싹 틔우는 것도 아니다. 그리할 만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하여 <바리공주>는 석가세존의 인도를 말하고 비럭할미와 할아비의 공덕을 말하지만, 역시 관건은 바리 자신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6)과 (7)에 인용했던바, 가없는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뒷동산 나무를 부모로 여기고 삼시문안을 잊지 않은 그 갸륵한 생명적 정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제 힘으로 부모를 살리겠노라고 나서는 생명적 결단을 두고 하는 말이다.
(15) 여섯 언니 다 못 가고 신하상궁 못 가는 길 / 전들 어찌 가리오만 아버님께 하루저녁 신세 지고 어머님 뱃속에서 / 열 달을 빛을 넣어 이 세상 구경하는 것도 얼마라고 부모 소양 아니 가겠습니까32)
자기를 버린 부모를 살리겠다고 나서는 선택에 얽힌 의미맥락에 대해서는 새삼 길게 논하지 않는다.33) 하나의 낙화 속에 깃든 씨앗이 저렇게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는 사실만을, 자신에게 씨앗을 주고서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낙화의 길을 그렇게 새로이 이어가게 된다는 사실만을 말해 둔다.
18) 이나미, 『심리학이 만난 우리신화』, 이랑, 2016, 48쪽. 19) 신동흔, 『살아있는 한국신화』, 한겨레출판, 2014, 202쪽. 20)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1994, 167쪽. 21) 생불꽃과 서천꽃밭 등에 관한 논의로 다음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 현승환, 「생불꽃 연구」, 『 백록어문』 제13집, 제주대 국어교육연구회, 1997; 류효철, 「서천꽃밭의 형상과 의미 연구」, 건국대 석사학위논문, 2003; 김창일, 「무속신화에 나타난 꽃밭의 의미 연구」, 『한국무속학』 제11집, 한국무속학회, 2006; 이수자, 「무속의례의 꽃장식, 그 기원적 성격과 의미」, 『한국무속학』 제14집, 한국무속학회, 2007; 김선자, 「중국 남부 소수민족 신화에 나타난 꽃의 여신[花婆]과 민속, 그리고 서천꽃밭」, 『비교민속학』 제45집, 비교민속학회, 2011; 강명혜, 「제주도 신화 속 꽃의 의미 및 상징성」, 『온지논총』 제48집, 온지학회, 2016. 정진희는 <삼승할망본풀이>의 꽃밭이 본원의 자연적 생명력을 나타내는 데 비해 <이공본풀이>의 꽃밭은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생명력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정진희, 「제주 무가 이공본풀이의 신화적 의미에 관한 일고찰」, 『 국문학연구』 제7집, 국문학회, 2002. 이렇게 보더라도 꽃이 생명력의 표상임은 변하지 않는다. 22) 김선자, 「중국 남부 소수민족 신화에 나타난 꽃의 여신[花婆]과 민속, 그리고 서천꽃밭」, 『비교민속학』 제45집, 비교민속학회, 2011. 23)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한 가지 따져볼 것은 일부 자료에서 ‘낙화’ 대신 나오는 ‘낭화’의 함의이다. ‘낭화(浪花)’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이라는 것이다. <바리공주>의 ‘낭화’에 대해서도 이런 주석이 달려 있는 것을 보거니와, 뜻을 이렇게 풀면 ‘화락능성실’의 함의와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에 대한 본 연구자의 시각은 ‘낭화(浪花)’를 문자 그대로 ‘물결치는 꽃’ 내지 ‘바람에 흩날리는 꽃’으로 보자는 것이다. ‘낭화’를 ‘흩날리는 꽃’으로 볼 경우 그 맥락적 의미는 ‘낙화(落花)’와 거의 동일한 것이 된다. 바람에 실려 흩어지면 멀리 날아가 싹을 틔우게 되므로 오히려 더 적극적인 낙화가 될 수도 있다. 다만, 현재로서 이런 해석을 확정하기는 어려우며, 가능성 수준으로 남겨 둔다. 24) 김동욱 소장 필사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2, 민속원 1997, 491쪽. 25) 공주 노재웅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424쪽. 26) 신동흔, 「21세기 사회문화적 상황과 고전문학 연구의 과제 - 자본과 욕망의 시대 존재와 가치의 근원으로」, 『고전문학과교육』 제22집,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11, 134~136쪽. 27) 서울 최명덕본, 평택 노재웅본, 성남 장성만본, 천안 배명부본, 공주 노재웅본, 서울 주광석 필사본, 정신문화연구원 소장 필사본, 남양주 이영희본, 김포 장주억본, 연천 김봉순본, 이영희 소장 필사본 등에서도 그냥 ‘낙화’나 ‘원낙화’로 말해진다. 28) 서울 반승업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60쪽. 29) 김동욱 소장 필사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2, 민속원 1997, 505쪽. 30) 서울 김경주본 ‘말미거리’. 홍태한・이경엽,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3, 민속원 2001, 67쪽. 31) 남양주 이영희본 2 ‘말미’. 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4, 민속원 2004, 440~441쪽. 32)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1쪽. 33) 이에 대해서는 기존에 많은 논의가 베풀어졌거니와, 본 연구자 또한 ‘화해와 치유의 울음’을 축으로 해서 그 의미맥락을 살펴본 바 있다. 신동흔, 「서사무가 속의 울음에 깃든 공감과 치유의 미학 - 특히 <도랑선비 청정각시>를 중심으로」, 『한국무속학』 제32집, 한국무속학회, 2016, 42~45쪽 참조.
4. 낙화의 길과 구원의 실현
4.1. 낙화를 통한 길 열기
<바리공주>에서 ‘낙화’가 신화적 의미맥락을 집약적으로 함축하는 서사 요소일 수 있음을 보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 신화의 주제적 의미로 연결된다. 이야기가 말하는 ‘낙화의 길’ 을 통해 신화적 주제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 일차적인 의미는 ‘길 열기’일 것이다. <바리공주>에서 낙화의 기본 기능은 막힌 길, 끊어진 길을 여는 것이다. ‘가시덤불’이나 ‘태산준령’이 막힌 길이라면, 열두 바다나 청천강은 끊어진 길에 해당한다. 그때 낙화를 던지거나 또는 흔듦으로써 길을 열어내는 것이 곧 바리가 펼쳐내는 ‘낙화의 길’이다. 이때의 길은 물론 ‘인생행로’의 표상이 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무쇠 같은 결심과 행보로 나아간다 하더라도,34) 감당하기 어려운 벽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도저히 오르거나 우회할 수 없는 깎아지른 절벽이 딱 막아서거나 아득히 넓고 깊은 물이 다리도 배도 없는 상태로 앞을 가로막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인력으로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상황에서 길을 열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낙화’다. 죽음 같은 절망적 상황에도 생명의 길은 있다는 것이고, 다 내려놓으면 새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또는 버려짐의 가없는 고통 속을 헤쳐온 역사 속에 그것을 이겨낼 힘이 있다는 것이다.
존재의 가장 밑바닥으로 돌아갈 때, 그리하여 ‘신(神)’이라는 이름의 본원적 생명력과 만날 때,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일은 가능한 일이 된다. 태산준령이나 층암절벽, 가시덤불 칡넝쿨과 청천강 열두바다는 물론이고 가시성 쇠성 팔만 무간지옥도 예외가 아니다. 무참히 버려져 고통받는 모든 이들한테, 길이 막혀 방황하며 쓰러져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한테 <바리공주> 신화가 전해주는 구원의 메시지다.
4.2. 지옥으로부터의 해방
<바리공주>에서 낙화의 가장 극적인 힘은 지옥문을 열고 성을 무너뜨리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단번에 지옥을 허물어뜨릴진대 저 낙화로써 행하지 못할 바는 없다고 보아도 좋다. 지옥을 허무는 일은 막힌 벽을 허물어내는 행위의 일환이면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바리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혼령들이 함께 풀려난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많은 <바리공주> 자료는 바리가 십대왕 등의 신령에 의해 지옥에 갇힌 것으로 상황을 전한다. 그 죄목은 그가 세자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저 갸륵한 존재가 작은 악의도 없는 거짓말로 지옥에 갇힌다는 것은 세상 섭리의 엄중함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저 바리는 갇혔으되 갇히지 않은 존재였다. 가둘 수 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의 ‘낙화’였기 때문이다. 무참히 꺾이어 떨어진 상태에서 스스로 생명을 지키고 키워온 저 갸륵한 사람에게, 그렇게 절망으로부터의 해방을 스스로 실현해온 저 사람에게 세상은 더이상 감옥이 아니다. 어떤 험한 감옥도 그를 가둘 수 없다. 바리는 그렇게 낙화의 힘으로써, ‘낙화의 서사’ 로써 지옥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바리가 그렇게 지옥을 허물어뜨림으로써 그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 어둡고 궂은 감옥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길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한 인간의 신성한 빛이, 하나의 신령한 서사가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바꿔내고 있는 상황이다.
(16) 그러면 오단에 들어가니 / 팔만지옥 무간팔만 되인들이 득실득실하더라 / 그때 낙화를 흔들으며 극락 문을 열어놓고 / 시왕 가옵소사 극락 가옵소사 / 팔만지옥 무간팔만 죄인들을 / 극락으로 인도환생하고35)
(17) 애기가 그 말 듣고 깜짝 놀라 낙화를 꺼내 흔들으니 / 옥문이 덜컥 열리며 성이 모두 무너지니 / 죄인들이 애기를 따르면서 악머구리 끓듯 하며 나도 극락 보내주오 / 우여 슬파다 선후망제 / 썩은 귀 젖은 입에 자세히 들었다가 제보살님께 외우시며 / 바리공주 뒤를 따라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가시는 날이로소이다.36)
이는 곁에 귀인이 있으면 함께 덕을 본다고 하는 수준에서 이해할 바가 아니다. 이 대목이 발현하는 주제적 의미는 그 이상이다. 심리학자 정혜신 박사는 늘 말하기를 “누군가 진심으로 고통을 함께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죽을 사람이 살아난다”고 한다. 이를 빌려서 위의 대목을 풀이하면, “누군가가 진심으로 죄와 고통을 함께 하며 자신을 위해 빌어줄 때 그곳은 더이상 지옥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바리는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죄업과 원한과 고통이라는 지옥을, 어두운 죽음의 벽을 허물고 있는 중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바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팠던 사람이며 그 아픔 속에서 스스로 일어난 사람이다. 일컬어 한 떨기 신령한 낙화. 지옥의 혼령들이 그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며, 과장이 아닌 진실이다.
잘 알듯이 바리공주는 뒤에 사람들의 혼령을 저승으로 천도하는 구실을 맡게 된다. 바리가 저승에서 넋을 맞이한다는 것은, 바리가 저승길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이다. 바리가 있는 한 그곳은 더이상 지옥일 수 없다. 바리가 세상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저승으로 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저 바리를 저승에 있게 하는 것은 엄격한 필연이다. 그는 거기 있어야 한다. 한 떨기 지지 않는 꽃으로. 아니, 끝없이 새롭게 피어나는 꽃으로.
덧붙이자면, 지옥에 갇힌 혼령들의 구원은 ‘바리의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바가 아니다. 바리는 곁에서 스스로 빛나는 가운데 그들을 지켜보고 보듬어줄 따름이다.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결국은 제 자신의 몫이다. 바리가 지옥문을 열고 성을 허물어뜨렸어도 거기서 나가는 대신 주저앉아 머무르면 그곳은 계속 지옥일 것이다. 스스로 걸어 나가야 구원이다. 바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둠 속에서 생명의 씨앗을 찾아 키워서 새로운 꽃을 피워내야 한다.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모든 떨어진 꽃에는 씨앗이 배태되어 있으므로.
4.3. 저승에서 피워낸 생명
낙화를 던져 지옥문을 열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만으로도 바리의 ‘생명의 길’은 충분히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바리공주> 신화는 그에 이어서 또 하나의 무거운 서사를 배치한다. 바리가 무상신을 만나 긴 세월 동안 나무하고 물 긷고 불 때면서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일이 그것이다. 약수를 구하기 위한 ‘부당한 수단’처럼 보이고 또 여성의 ‘억울한 희생’ 으로 보이는 그 과정에 대하여 이 또한 ‘낙화’의 상징을 통해 그 의미맥락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핵심은 그 일련의 과정이 또 하나의 ‘낙화의 길’이라는 것이다. 구원을 기다리는 부모 앞에서, 그리고 자신을 원하는 한 남자 앞에서 바리는 다시금 제 존재를 내려놓거니와 일컬어 ‘낙화행(落花行)’이다.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일방적 희생이겠으나, 바리의 입장에서는 제 존재의 길일 따름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땅에 씨앗으로 떨어져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고 있는 중이다. 어찌 보면 헛되고 무의미한 것 같은 그 나날의 일상적 삶은 그 자체 신령한 생명의 과정이었으니, 그를 통해 신령한 생명의 꽃이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었다. 앞서 (8)에서 보았던 바, ‘물 삼년을 긷고 나무 삼년을 하고 불 삼년을 땐 것이 살살이꽃, 뼈살이꽃, 숨살이꽃이었다’는 말에 그 이치가 단적으로 집약되어 있다. 하나의 씨앗이 꽃을 이루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과 조화가 필요한 법, 지금 바리는 그렇게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한 걸음씩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18) 저 꽃 이름이 다 무엇이요 / 그 꽃 이름은 그대가 나무 삼 년 베어준 것이 뼈살이 꽃이 피고 / 물 삼 년 길어준 것이 살살이 꽃이 피고 / 불씨 삼 년 묻어 준 것이 쉼살이 꽃이 피었으니 / 꽃 꺾어 품에 품고 무장수 양여수는 무쇠 두멍에다 질머지고 / 어린 자손 업으시고 자란 자손 걸리시고 / 행길마루 꽃밭 걸어 한 고개를 넘어가니37)
보듯이 그 일련의 일상이 생명을 빚어내는 과정이었거니와, 그를 통해 피워낸 생명의 서사적 표상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자손’이다. 잘 알듯이 바리는 무상신과 사이에서 여러 자식들을 낳는다. 서울・경기본에서는 대개 칠형제이고, 동해안본에서는 삼형제이며, 일부 지역 자료에서는 구형제나 열두 형제라고 한다. 하나의 씨앗이 여러 개의 어린 꽃들을 피워낸 상황이다. 뒤에 시왕이나 칠성 같은 귀한 직임을 받게 되는 신령한 꽃들이다.
하나의 꽃이 떨어져 더 많은 꽃들을 이루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은 새로운 생명으로 넘실대게 되는 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바리가 구해온 약수를 통해 죽은 부모가 살아났다고 말하거니와, 어찌 보면 이렇게 새로운 생명들을 낳아서 키운 일 자체가 곧 부모를 살린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이어진 생명의 길이 그렇게 활짝 되살아나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컬어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순환’이다.
그럼에도 바리가 무상신의 배필이 되어 궂은일을 하면서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이 구원보다는 억울하고 부당한 희생처럼 다가온다면, 이 <바리공주>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굿판에서 의례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가운데 저 신령한 서사를 마음으로 새기고 또 새겨온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이 든 여성들이다. 나무 하고 물 긷고 불 때는 일을 나날의 업으로 삼는 가운데 자식을 낳아 키우는 궂은일을 평생의 삶으로 살아온 그 사람들 말이다. 그들에게 저 바리는 곧 그들 자신이다. 바리가 펼쳐내는 저 ‘낙화의 길’은, 신령한 생명의 길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다. 그들은 저 바리의 ‘낙화행’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하면서, 그 자신이 살아온 길이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하나의 갸륵한 생명의 길이었음을 눈물 속에서 되새기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가 이 세상의 신령한 주인공임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 길 너머에 ‘극락왕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믿으면서.
그렇게 이 신화는 신성(神聖)이란 것이 멀리 특별한 곳에 있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나날의 평범하고 궂은 일상이 곧 신성의 길임을 깨우쳐 준다. 저 신령한 이야기로 영혼을 적시며 멀리 저편 하늘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은 모두 ‘바리’다. 한 떨기 신령스런 꽃이다. 비바람에 져도 마침내 지지 않는.
4.4. 영혼 천도의 존재적 결단
낙화를 던져 막힌 길을 열고 지옥을 허묾으로써, 나아가 스스로 낙화가 되어 새 생명을 피워냄으로써 바리는 구원의 존재가 된다. 그 서사의 끝자락에 놓이는 ‘죽은 부모의 회생’은 구원의 한 결정체가 된다. 그러나 그 일련의 구원행은 무언가 수동적・종속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서대석은 바리의 행적을 ‘영웅의 일대기’로 설명하면서도 ‘부모를 살리는 일’이 그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종속적 영웅’의 면모를 지닌다고 했거니와,38) 폭넓은 공감을 얻은 설명이었다. 바리가 걸어간 일련의 ‘낙화의 길’에 늘 빠지지 않는 말이 ‘부모 효양’이거니와, 비록 그 길을 스스로 감수한 것이라 해도 ‘부모에 속한 존재’의 정체성이 그림자처럼 따르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바는 바리가 무상신 약려수로 죽은 부모를 살리는 일이 <바리공주> 서사의 궁극적 결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며, 더 정확히는 ‘시작’일 따름이다. 바리의 진짜 삶이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이다.
(19) 죽은 부모 살았으니 국가 반을 띠여 주랴 만하봉을 비어 주랴 / 국가 반도 나는 싫고 만하봉도 나는 싫고 / 죽어서 모두 이성에서 역적하고 / 저승에서 지옥으러 가는 사람들 종 은들어 보내겠습니다39)
(20) 너희가 천성배필이로구나 죽은 부모 살렸으니 / 국가 반을 떼어주랴 만호봉을 내오주랴 / 국가 반도 나는 싫소 만호봉도 나는 싫소 / 소녀 부모 슬하에서 치레를 모르고 호의호식 못하얏으니 / 만신의 인위왕이 되겠나이다 / 치어달아 백재일은 산 이 제도하고 내려달아 우제일은 죽은 이 천도하고40)
일련의 기나긴 고행을 거쳐 자기를 버린 부모를 살린 일련의 ‘낙화의 길’은 바리가 ‘신이 되는 과정’이었다. 신(神)으로서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그 시작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 부모한테 바리가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 효양’을 숙명처럼 되뇌었던 바리는 지금 나라를 반을 떼어준다는 아버지 말에 아니라고, 싫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것으로 나의 주어진 소명은 일단락됐다는 말이다. 이제 진정한 ‘나의 길’을 찾아서 ‘나의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종속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었던 바리의 서사가 극적 전환을 이루는 장면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바는 이때 바리가 선택하는 삶이 ‘부귀영화’와 같은 일반적 가치와 상반되는, 국가사회와 권력의 패러다임에 반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이다.41) 바리의 선택은 산 이를 제도하고 죽은 이를 천도하는 일이었다. 죄를 지어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었다. 약수를 구하러 가던 길에 지옥을 허물고 영혼들을 구원했던 그 일을 자신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소명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바리가 오롯한 자기 의사와 의지로써 선택한 그 길이 ‘낙화의 길’임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죄 지은 혼령들이 있는 지옥은 어둡고 험한 죽음과 고통의 공간일진대, 스스로 그곳에 나아가기를 선택했으니 바리는 한 떨기 낙화처럼 제 자신을 던진 것이었다. ‘스스로 떨어짐의 존재적 결단’이라 칭할 만한 그것은 더이상 슬픈 선택이 아니다. 그렇게 한 떨기 꽃이 떨어짐으로써 죄와 고통은 스러지고 죽음은 생명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은 허물어져 극락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낙화의 삶’을 통해 온몸으로 확인한 진실이다. 바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며,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바리는 ‘영원히 지지 않는 낙화’가 되었으니, 우리는 이를 일컬어 ‘신(神)’이라 부른다. 생명의 신. 그리고 구원의 신!
34) 본 연구의 기본 논제에서는 다소 벗어나는 내용으로, <바리공주>에서 바리가 무쇠옷에 무쇠신을 신고서 무쇠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서는 장면은 무쇠 같은 의지와 행동력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무쇠옷과 패랭이가 강철같은 신념과 의지를 상징한다면 신발과 지팡이는 강한 행동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35) 남양주 이영희본 2 ‘말미’. 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4, 민속원 2004, 440~441쪽. 36)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2쪽. 37)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4쪽. 38) 서대석, 『한국 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1980, 243-247쪽. 39) 정신문화연구원 소장 필사본 ‘발이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2, 민속원 1997, 571쪽. 40)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6쪽. 41) 조현설은 <바리데기>의 신화적 특별함으로 바리가 국가사회에 편입되는 대신 그 외부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을 든 바 있다. 그를 통해 가부장적 국가질서와 길항관계를 이루는 힘을 발현한다는 것이다. 조현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한겨레출판, 2006, 162-163쪽 참조.
5. 바리공주와 만신, 그리고 낙화
잘 알듯이 신화로서의 본풀이와 의례로서의 굿은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본풀이를 의례로 펼쳐내면 굿이 되고, 굿을 서사로 풀어내면 본풀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와 진오기굿(또는 새남굿, 지노귀굿, 오구굿)의 관계가 곧 그러하다.
진오기굿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서 베푸는 의례다. 죽은 이를 저승 극락으로 편안히 보내기 위한 과정이며,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죽은 이에게 저승에서의 새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 의례에는 ‘도령돌기’ 같은 역동적 몸짓도 포함되지만, 특히 길고 장엄하게 펼쳐지는 것이 말미거리의 <바리공주> 구송이다. 국외자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구송 과정은 진오기 의례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 구송을 들으면서 망자는 바리공주의 손을 잡고서, 바리공주와 한몸이 되어서 ‘낙화의 길’을 떠나게 되거니와, 그것은 소멸과 종말이 아닌 새 생명의 길이 된다. 남은 이들 또한 망자를 바리공주 손에 넘겨서 떠나보내면서 이별을 넘어선 새롭고 긴 생명을 기약한다. 진오기굿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영생을 기약하는 의례라 할 때 그 중심 축에 <바리공주> 서사가 있다.
이때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바는 무당 만신의 자리이다. <바리공주>는 바리가 세상 갖은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사람들의 넋을 천도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거니와, 대다수 자료는 그것을 ‘만신의 길’로서 표현한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21) 소녀는 국가 반도 싫습니다 만학천봉도 싫습니다 / 부모 슬하 떠나 호의호식 못했으니 만신의 이누왕이 되겠나이다 / 인중입중 인중옥중 은하저고리 입단치마 / 너부나 홍때 한림학사 신세방울 만신 몸주가 되었구려42)
(22) 일곱 아기 칠공주는 궁안에서 고히 먹지 못하고 / 고히 자라지 못하고 위엄도 못받아서 만신 되시어서 / 큰 머리 단장 수저고리 수치마 은하 몽두리 넓으나 홍띠 / 쉰대 부채 쥘 새 방울 만구름 채일 속에 그 일가 찾을 적에 떡 받아가 / 일곱 사제 갈망하고 산이는 성불하고 / 열두혼전에 이씨의 남망제님 극락 갈 리 극락 가고 시왕 갈 리 시왕 가고43)
보듯이 바리공주가 ‘저승의 신’이나 ‘구원의 여신’이 되었다고 말하는 대신 ‘만신의 인위왕’이 되었다거나 그 자신 ‘만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만신의 몸주신’이 되었다는 것도 전형적 진술이 된다. 신화의 문학적 맥락으로 보면 지고의 신격이 되는 대신 무당의 조상신이 되었다는 것은 격이 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국외자의 감각일 따름이다. 의례적 맥락 및 현실적 배경에서 볼 때 바리가 만신 무당의 신이 된 것은 꼭 어울리는 일이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일이다.
먼저 주목할 바는 진오기굿이 무당 만신들에 의해 베풀어진다는 사실이다. 굿에서 바리공주 역할을 하는 것은 무당이다. 바리공주 신이 그에게 내려 그가 망자의 손을 잡고 죄와 한을 씻기면서 저승극락으로 천도하게 된다. 의례를 집전하는 무당 사제가 곧 바리임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망자들과 산 사람들에게, 저 바리의 서사와 바리의 의례는 온몸으로 보고 느끼는 ‘현실’이 된다. 바리와의 서사적 교감과 일체화가 현재적이고도 총체적으로 구현된다. 그리함으로써 <바리공주>에 깃든 바 ‘낙화의 길’은, 신령한 생명의 길은 사람들 자신의 것으로 화하게 되는 것이다. 만신이 단순한 신의 대리자나 신을 모시는 집전자 구실을 할 때와 다른 차원의 의례적 힘이다.
이와 함께 주목할 사실은 무당 만신의 삶이 곧 ‘낙화의 삶’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이 땅에서 무당 만신은 전통적으로 하층 천민이었으며, 십중팔구 경시와 배제의 대상이었다. 무당의 자손으로 태어나거나 신병(神病)이 들어 강신무가 되는 일은 일종의 천형(天刑)이었다. 그런 천대 속에서 그들이 하는 일이란 산 닭의 목을 비틀거나 작두에 오르는 등 온몸을 던져 험한 몸짓을 다하면서 사람들의 액과 원을 풀어내는 일이었다. 크고 두려운 신령이나 죽은 귀신 등과 상대하면서 그들을 달래거나 어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든 존재를 던지는 낙화의 길의 무당의 삶이었고, 굿이었다. 세상에서 무참히 버림받은 존재로서 자신을 버린 세상을 온 몸으로써 구원하는 삶. 그것은 바리공주의 삶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무당들은 바리를 몸주신으로 섬기고 바리와 하나가 됨으로써 기꺼이 그 낙화의 삶을 감수했거니와, 그것은 타인의 삶을 구원하는 길인 동시에 자신을 구원하는 몸짓이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 속에서 삶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위에 인용한 대목들을 보면 바리가 ‘호의호식을 못했으므로’, 또는 ‘고이 먹고 고이 자라면서 위엄(위함)을 받지를 못했으므로’ 부귀영화가 아닌 만신의 길로 나아가겠노라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생명을 일궈내는 일이 그들의 존재적 정체성이자 숙명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바리가 저승에 가서 약수를 구해오는 것은 슬프고 억울한 일이지만,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 일을 못내 행할 수가 없다. 낙화의 삶을 살아온 바리만이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그 지난한 과업을 감당할 수 있다. 무당 또한 마찬가지다. 호의호식으로 편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밑바닥 민중들의 깊은 고통에 진정으로 접속해서 그것을 풀어낼 수는 없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한 존재로서의 무당 만신이 그 일을 오롯이 해낼 수 있다. 불공평한 일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신(神)의 소명인 바에야 어찌하겠는가. 그 길을 따를 따름이다. 그 결과는 신성의 펼쳐냄이고 고통과 죽음의 넘어섬이니 슬픈 일이라 할 바가 아닐 것이다.
도령돌기가 베풀어지고 <바리공주>가 구송되는 진오기굿의 현장. 저 너머 초월적 세계 속에 바리가 있다. 그 바리와 한몸이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 또 하나의 바리가 있다.
(23) 칠공주 입시를 들었으니 양전마마 옥루를 쌍쌍이 흘리시며 / 아가 아가 우지 마라 내가 너를 홧김에 버렸던지 / 역정 끝에 버렸던지 동절이면 추워서 어찌 살았든가 / 하절이면 더워서 어찌 살았는가 / 아기가 허는 말이 하월동절이면 헌 누더기 헌 지직에 살았나니 / 하월하절이면 헌 누더기 헌 지직에서 삼칠일 연명해서 살았느니다 / 엄마아빠 잊기가 어렵디다44)
(24) 애기 정신을 가다듬어 나는 미친년이 아니오라 / 나라에 칠공주로 약여수를 구해 왔나이다 / 에구머니 어서어서 상상들에 오르시요 / 애기 뼈살이꽃을 흘려넣고 살살이꽃 흘려넣고 피살이꽃 흘려넣고 / 약여수를 흘려넣으니 한날한시에 생환하시였나이다45)
그리고 거기, 저 신령한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둘이면서 하나인 바리의 몸짓과 마음결을 따라서 영혼을 착착 움직여 가고 있는 수많은 바리들이 있다. 신령한 꽃은 그렇게 맺히고 피어나고 졌고, 다시 또 피어날 것이다.
42) 공주 노재웅본 ‘바리공주’.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448쪽. 43) 서울 최명덕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40~241쪽. 44) 서울 최명덕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33쪽. 45) 인천 정영숙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305쪽.
6. 맺는 말
‘낙화’라는 하나의 화소로 시작된 이야기가 이리 뻗고 저리 뻗으며 길어졌다. 그 또한 꽃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움튼 싹이 이리저리 줄기와 가지를 뻗으면서 크고작은 꽃송이를 맺는 것이니 말이다. 아무쪼록 그 꽃이 실한 열매를 지닌 좋은 꽃이면 좋겠다. 그 꽃이 떨어져 또 다른 많은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좀 무리한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굿에서 <바리공주>를 부르고 듣는 사람이 진짜로 이런 의미를 실감했으리라고 믿기지 않을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옛 시절에 굿판에서 본풀이 무가를 만났던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는 삶 자체였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으면 늘 진오기굿이 펼쳐지고 <바리공주>가 구송된다. 수십 번일 수 있고 수백 번일 수도 있다. 굿판에서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사람들에게 저 이야기는 몸에 깊이 배어 하나였다고 보아도 좋다. 의식이 아닌 무의식으로라도 이 신화에 깃든 의미들은 오롯이 감지되고 실현되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미처 짚어내지 못한 또 다른 숨은 의미들까지도. 만약에 무당 만신을 포함한 오늘날의 우리들이 그 의미맥락을 놓치고 있다면, 찾아내고 키워내서 꽃피워냄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룬 구체적 자료는 서울・경기와 충청지역 <바리공주>로서, 동해안이나 기타 지역 자료는 따로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부연한다면, 비록 텍스트에 ‘낙화’라는 말이 없고 낙화로써 지옥을 허무는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그들 다른 바리들의 길 또한 낙화의 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로서 그 부모를 살리기 위해 서천서역 머나먼 길을 떠나서 마침내 생명수를 구한 바리의 길은 그 자체로 어김없는 낙화의 삶이다. 서울・경기지역 <바리공주>에 범을 만난 바리가 그를 감동시켜 길을 여는 내용이 있다면 동해안 <바리데기>에는 밭가는 할아버지와 빨래하는 할머니를 만난 바리가 냉정한 뿌리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밭을 갈고 빨래를 하는 정성을 통해서 서천서역 가는 길을 여는 내용이 나온다. 문면에는 없으되 행간에 예의 신령한 낙화가 있는 상황이다. 동수자와 짝을 이루어 자식을 낳고 약수를 구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 각종 꽃을 얻는 내용은 문면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인간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는 대신 저승으로 가서 험한 귀신들을 인도하는 오구신이 된다는 전개 또한 영락없는 낙화의 길이다.
바리공주 바리데기뿐만이 아니다. 떨어진 꽃으로서 새 생명을 피워낸 또 다른 주인공들이 본풀이 신화 속에 더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부친을 잃은 채 종이 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이공본풀이>의 할락궁이도 하나의 낙화였다. 구체적인 서사 맥락은 다르지만, 그 또한 낙화로 시작하여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으니 신령한 낙화의 길을 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천강본풀이>의 오늘이도 그러하다. 적막한 들에서 외롭게 방황하는 모습은 속절없이 져서 사라질 꽃과 같았으되 원천강 여행을 통해 영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길을 찾아냈으니 말이다.46) 그리고 당금애기. 사랑과 보호 속에 활짝 피어난 꽃과 같았던 그는 하루아침에 무참히 꺾인 존재가 되었거니와 그대로 쓰러지지 않고 죽음과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식들을 낳아 신령으로 키워냈으니 갸륵한 낙화의 길이었다. 이 외에도 얼마든지 더 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 버림받았던 <숙영랑 앵연랑 신가>의 거북이와 남생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졌던 <칠성풀이>의 일곱 쌍둥이, 사랑하던 사내에게 외면당하고 폭력에 핍박당하고 부모한테 쫓겨나 방황했으되 끝내 귀한 꽃으로 피어난 <세경본풀이>의 자청비 등등. 어찌보면 본풀이 구전신화는 ‘낙화의 신화’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민중 신화로서의 정체성이 그렇게 발현된 것일 터이다.
본풀이 신화만이 아니다. 오래 된 이야기들 속에, 또는 새로 만들어진 이야기들 속에 ‘낙화의 길’을 펼쳐낸 많은 주인공들이 있다. 속절없이 바다에 던져졌다가 한 떨기 연꽃으로 피어난 심청, 궂은 감옥 속에서 쑥대머리가 된 채로 더 아름다운 꽃으로 거듭난 춘향, 산에 버려지고 물에 던져지고 불길에 휩싸였으되 변함없이 귀한 꽃이었던 숙향, 이름 속에 이미 꽃이 들어 있는 장화와 홍련 등등. 따로 언급하지 않지만, 현대의 소설과 영화, 드라마, 웹툰 등에도 갸륵한 낙화의 길을 가고 있는 주인공들이 있다. 모름지기 지난날보다 훨씬 많을 터이다. 하나의 꽃에 여러 개 씨앗이 있고 그 씨앗은 여러 송이 꽃을 피우는 터이니 그러한 확장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우리 사는 이 세상, 21세기의 이 현실 속에, 버림과 억압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떨어진 꽃과도 같은 갸륵한 생명들. 그 떨어짐은 끝이 아닐 것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생명으로 거듭 피어날 것이다. 어느 날 차가운 바닷물 속에 속절없이 까뭇 잠겨버리고 만 그 갸륵한 낙화들도……
<바리공주>가 전해주는 엄중한 경계 한 가지. ‘나’라고 하는 꽃이 귀하다고 해서 다른 꽃을 함부로 꺾거나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홍모란 홍산주요 백모란 백산주요 / 여철죽 진달래요 노간주 상나무 맨드래미 봉숭아 / 극락으로 가는 길에 산 가지 꺾지 말고 / 극락으로 가는 길에 날짐승 길버리 잡지 말고 / 극락으로 가는 길에 담배밭 밟지 말고 파밭 밟지 말고 / 극락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 보지 말고 / 칠공주의 말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47)
그렇다. 세상 모든 생명은 똑같이 값지고 소중하다. 무시해도 그만인 생명은 없다. 저 신령한 칠공주의 말, 어느 한 마디 빼놓을 바 없다.
46) <원천강본풀이>에는 <바리공주>의 낙화와 통하는 구체적 화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유일하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을 꺾어서 처음 만난 이에게 주는 연꽃나무’가 그것이다. 신화는 그렇게 꽃을 주자 수많은 꽃송이들이 피어났다고 말하거니와, 이는 그 꽃이 떨어져 씨앗을 맺고 싹이 틈으로써 더 많은 꽃이 피어나게 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할 만하다. 47) 서울 최명덕본 ‘말미’.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241쪽.
참고 문헌
<자료>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1, 민속원 1997. 김진영・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2, 민속원 1997. 홍태한・이경엽,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3, 민속원 2001. 홍태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4, 민속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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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ymbolic Meaning of ‘Fallen Flower’ in Korean Shaman Myth Shin, Dong-Hun (Konkuk University)
In the Korean shaman myth , flowers are symbols of life or existence. In the story, princess Bari opens a rough road with fallen flowers and hurls hell. It contains the thematic meaning of this myth. The fact that a fallen flower opens its way and gives life brings a paradoxical truth. The fall of the flower looks like death, but it is the beginning of a new life with its seeds embedded in it. Such a life cycle also applies to human beings. In , the life of the main character Bari was like a fallen flower. As soon as she was born, she kept the spiritual vitality in her abandoned state, and it is like a new life bloomed in a fallen flower. The way Bari throws the fallen flower was the process of going through the hardships with the power of life he had been through. Bari, who bloomed as a spiritual flower in aband oned suffering, overcame death. It was the power of life, which was like a fallen flower, to break down hell and save souls. The process of marrying a man in the other world and giving birth to children was also a way of fallen flower. In the image, the lives of women who have raised their sons and sacrificed themselves have been condensed. Bari’s life like a fallen flower accomplishes her subjective leap and completion through her decision to give up the riches of the world and to save the souls of the underworld. Korean shamans serve Princess Bari as their ancestor. The mutual cohesion is natural in that the shamans live like fallen flowers. The scene of the ceremony where is sent is a place of spiritual life where the fallen flowers share their hearts together. In addition to , there are many other stories in the Korean shaman myth that depict vividly the way of flowers that have fallen. As a myth of the lower-class people, it may be said that the Korean shaman mythology is ‘myth of fallen flowers’. It is a topic to discuss and verify together.
Key Words: , way of a fallen flower, life flower, water of life, hell & paradise, shaman, Jinogi Gut, soul salvation, myth of fallen flow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