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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 별전 【 가담항설의지식창고 】 2026.10.28. 10:25 (2026.10.28. 10:25)

플레게톤과 코퀴토스 – 불길과 통곡의 강

■  
그리스 신화의 명계에는 불길을 품은 플레게톤과 통곡의 이름을 지닌 코퀴토스가 흐른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두 강이 아케론으로 모이는 곳을 알려 주었고, 플라톤은 죄를 지은 영혼들이 두 강을 따라 떠밀려 와 용서를 구하는 운명을 전했다. 베르길리우스의 명계에서 플레게톤은 타르타로스를 에워싼 불의 강이 되었으며, 단테의 지옥에서는 끓는 피의 강과 얼어붙은 호수로 모습을 달리했다. 두 물줄기를 따라 죽은 자들의 길과 심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목   차
[숨기기]
플레게톤과 코퀴토스 – 불길과 통곡의 강
 
 
 

개요

 
그리스 신화의 명계에는 불길을 품은 플레게톤과 통곡의 이름을 지닌 코퀴토스가 흐른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두 강이 아케론으로 모이는 곳을 알려 주었고, 플라톤은 죄를 지은 영혼들이 두 강을 따라 떠밀려 와 용서를 구하는 운명을 전했다. 베르길리우스의 명계에서 플레게톤은 타르타로스를 에워싼 불의 강이 되었으며, 단테의 지옥에서는 끓는 피의 강과 얼어붙은 호수로 모습을 달리했다. 두 물줄기를 따라 죽은 자들의 길과 심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1장. 명계의 깊은 곳에서 두 강이 흐르다

1.1 오디세우스가 명계로 가는 길을 듣다
 
키르케의 섬에서 긴 시간을 머문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동료들과 고향 이타케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여신 키르케는 아직 떠날 길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먼저 죽은 자들의 나라로 가서 테바이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령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몸으로 하데스의 나라를 찾아가야 한다는 말에 오디세우스는 기운을 잃었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어떤 배가 그곳으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키르케는 길잡이도 뱃길을 아는 사공도 필요 없다고 답했다. 돛을 올려 북풍에 배를 맡기고, 세상을 둘러 흐르는 오케아노스의 물길을 건너라고 일렀다. 그 너머에는 페르세포네에게 바쳐진 숲이 있으며, 높이 솟은 포플러와 열매를 일찍 떨어뜨리는 버드나무가 서 있다고 했다. 배를 물가에 묶어 두고 숲을 지나면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명계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할지는 더 중요한 문제였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서로 다른 두 강이 아케론으로 흘러드는 곳을 찾으라고 했다. 하나는 피리플레게톤, 다른 하나는 스틱스의 물에서 갈라진 코퀴토스였다. 두 물줄기가 부딪치는 큰 바위가 그가 찾아야 할 표지였다. 오디세우스는 여신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죽은 자들의 땅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키르케에게 명계로 가는 길을 듣는 오디세우스
 
 
1.2 아케론으로 모여드는 두 강의 물줄기
 
키르케가 가리킨 곳은 피리플레게톤과 코퀴토스가 아케론으로 흘러드는 명계의 경계였다. 스틱스에서 갈라진 코퀴토스와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불의 강은 큰 바위 곁에서 물소리를 합쳤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그 바위를 찾아가 죽은 자들을 부르는 의식을 치르라고 일렀다. 길을 잘못 들면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어두운 땅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면 가로세로 한 규빗쯤 되는 구덩이를 파고, 먼저 우유와 꿀을 섞은 음료를, 다음에는 포도주를, 마지막으로 물을 부어야 했다. 그 위에 흰 보릿가루를 뿌리면서 이타케로 돌아가면 죽은 자들을 위해 새끼를 낳지 않은 암소를 바치고, 테이레시아스에게는 검은 숫양을 따로 바치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는 숫양과 검은 암양을 희생하고 피를 구덩이에 모아 혼령들을 불러내도록 했다.
 
오케아노스를 건너 어둠의 해안에 닿은 오디세우스는 동료들과 함께 키르케의 지시를 실행했다. 짐승들의 피가 구덩이에 고이자 죽은 자들의 혼령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는 칼을 뽑아 들고 테이레시아스가 나타날 때까지 다른 혼령들이 피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토록 멀리 찾아온 명계의 문턱에서 그는 이제 예언자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강이 모이는 바위 곁에서 제의를 올리는 오디세우스
 
 
1.3 불길이 흐르는 플레게톤
 
명계의 길을 일러 주던 키르케는 두 강 가운데 하나를 피리플레게톤이라고 불렀다. 이름에 불길을 품은 강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이름을 기억했지만, 여신은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어디에서 솟아나는지까지 말해 주지는 않았다. 그저 아케론으로 흘러드는 물줄기와 큰 바위를 찾으라고 일렀다. 죽은 자의 땅에서는 그 이름이 길잡이였다.
 
구덩이 곁에서 오디세우스가 처음 마주한 혼령은 뜻밖에도 동료 엘페노르였다. 그는 키르케의 집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지만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남겨졌다. 엘페노르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키르케의 섬에 남겨진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고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디세우스가 약속하는 사이에도 다른 혼령들은 피가 고인 구덩이로 몰려들었다. 불의 강이 눈앞에서 타올랐는지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죽음의 땅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윽고 테이레시아스가 황금 지팡이를 들고 다가와 자신에게 먼저 피를 마시게 하라고 말했다. 오디세우스가 물러서자 예언자는 피를 마시고 포세이돈의 분노와 귀향길에 닥칠 위험을 알려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말을 들으며 이곳까지 온 이유를 되새겼다. 피리플레게톤이라는 불길의 이름은 그의 여행에서 명계의 길목을 가리키는 표지로 남았다. 강이 품은 더 기이한 모습은 훗날 다른 이야기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엘페노르의 혼령에게 장례를 약속하는 오디세우스
 
 
1.4 통곡이 흐르는 코퀴토스
 
키르케가 말한 다른 강은 코퀴토스였다. 그것은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맹세의 강 스틱스에서 갈라진 물줄기였다. 피리플레게톤의 이름에 불길이 담겨 있다면, 코퀴토스의 이름에는 울부짖음과 통곡이 담겨 있었다. 두 강은 서로 다른 이름과 길을 가졌지만 아케론 가까이에서 만났다. 오디세우스가 찾아야 할 바위는 바로 그 물소리가 겹쳐지는 곳에 있었다.
 
그 물가에서 오디세우스가 마주한 것은 강 자체보다 먼저 죽은 자들의 목소리였다. 피가 담긴 구덩이 주위로 젊은이와 노인, 전장에서 쓰러진 전사, 삶을 마치지 못한 여인들의 혼령이 몰려들었다. 트로이로 떠날 때 살아 있던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령도 그 가운데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지만,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듣기 전까지 그녀가 피에 가까이 오도록 허락할 수 없었다.
 
예언이 끝난 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오디세우스는 세 번이나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혼령은 매번 그의 팔 사이로 빠져나갔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산 사람의 손에 붙잡히지 않았다. 코퀴토스라는 이름에 담긴 통곡은 이런 이별의 슬픔과 겹쳐 들렸다. 호메로스는 그 강에서 실제로 울음소리가 솟아났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명계의 문턱에서 오디세우스가 들은 목소리들은 강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했다.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혼령을 끌어안으려는 오디세우스
 
 
 

제2장. 불길과 통곡 속에서 영혼들이 심판받다

2.1 플레게톤이 불타는 대지를 지나 흐르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날 벗들에게 땅속 깊은 곳에서 강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하에는 수많은 틈과 커다란 구덩이가 이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 가장 깊은 심연을 타르타로스라 불렀다. 물은 그곳으로 쏟아졌다가 다시 밀려 나오며 지하의 강과 호수를 채웠다. 어떤 물길은 뜨겁고 어떤 물길은 차가웠으며, 땅속의 불과 진흙을 실어 나르는 강도 있었다.
 
그 가운데 세 번째 큰 강은 거대한 불의 지역으로 흘러갔다. 강물이 그곳에 모이자 넓은 호수가 생겨났고, 호수 안에서는 물과 진흙이 끓어올랐다. 호수에서 다시 빠져나온 물줄기는 탁한 진흙을 품은 채 굽이굽이 땅속을 흘렀다. 불길이 땅의 틈으로 솟는 곳마다 뜨거운 물질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소크라테스가 그 이름을 피리플레게톤이라고 밝히자, 벗들은 눈앞에 펼쳐진 듯한 불의 풍경을 떠올렸다.
 
강은 긴 굽이를 돌아 아케론의 호수 가장자리에 이르렀지만 물을 섞지는 않았다. 다시 여러 갈래 지하 통로를 따라 흘러내려 깊은 타르타로스로 떨어졌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물길은 단순히 뜨거운 강이 아니었다. 심판을 받고 심연에 떨어진 영혼들 가운데 일부가 훗날 그 흐름을 따라 다시 떠밀려 나올 예정이었다. 아직 아무 혼령도 보이지 않았지만, 불의 강은 죄지은 이들이 지나갈 길을 마련하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진흙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불길의 강
 
 
2.2 타르타로스에서 죄지은 영혼들이 벌받다
 
죽음을 맞은 영혼들은 저마다 자신을 이끄는 존재를 따라 심판의 자리로 갔다. 살아 있을 때 남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신성한 것을 짓밟지는 않았는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는지가 그곳에서 드러났다. 평범한 삶을 산 영혼들은 아케론으로 향해 배를 타고 호수로 건너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정화되며, 행한 선에 따라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영혼이 같은 길을 얻지는 못했다. 거듭 신전을 더럽히거나 무고한 사람을 죽인 이들 중에는 더 이상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정받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아케론의 호수는 허락되지 않았다. 판결이 내려지자 영혼들은 타르타로스의 깊은 심연으로 던져졌다. 그곳은 죄를 씻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정거장이 아니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깊은 곳으로 내려간 영혼들은 지상에서 누렸던 권세도 변명의 말도 가져갈 수 없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숨길 수 있었던 행동들이 죽음 뒤에는 심판의 이유가 되었다. 불의 강과 어두운 물길은 거대한 심연의 가장자리를 지나며 쉬지 않고 흘렀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그 물길을 따라 밖으로 나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전한 명계에서는 죽음이 모든 죄를 지워 주지 않았고, 가장 무거운 잘못에는 끝없는 형벌이 기다렸다.
 
타르타로스의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죄인들의 혼령
 
 
2.3 코퀴토스가 지하 세계의 깊은 곳을 흐르다
 
불의 강과 반대편에서도 또 하나의 물줄기가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강이 먼저 거칠고 황량한 지역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곳은 온통 짙푸른 빛에 잠겨 있었고, 그 강물이 이룬 호수가 스틱스였다. 물은 호수에 닿아 두려운 힘을 얻은 뒤 다시 땅 아래로 스며들었다. 지상에서 신들이 맹세할 때 부르던 이름이 깊은 땅속에서는 차갑고 낯선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물줄기는 피리플레게톤과 반대 방향으로 굽이쳐 흘렀다. 지하의 길을 따라 돌고 돌아 아케론의 호수 맞은편까지 이르렀으나, 다른 물과 섞이지는 않았다. 다시 깊은 곳으로 돌아간 강은 불의 강과 마주 보는 방향에서 타르타로스로 떨어졌다.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이 마지막 물길을 코퀴토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것은 처음 키르케가 이름을 알려 주었던 바로 그 통곡의 강이었다.
 
두 강은 하나의 명계에 있었으나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심연으로 내려갔다. 한쪽에는 불과 끓는 진흙이, 다른 쪽에는 짙푸른 호수와 어두운 물길이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죽은 자들의 운명이 두 물줄기를 통해 다시 갈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퀴토스라는 이름은 아직 누구의 울음도 들리지 않는 어두운 강가에 머물렀지만, 곧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영혼들이 그 물길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될 터였다.
 
짙푸른 스틱스의 호수를 지나 지하로 흐르는 코퀴토스
 
 
2.4 죄지은 영혼들이 고통과 속죄의 시간을 보내다
 
심판받은 영혼 가운데에는 큰 죄를 지었으나 끝내 뉘우친 이들도 있었다. 분노에 휩싸여 부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가 평생 후회한 자, 사람을 죽인 뒤 잘못을 깨달은 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의 죄는 가볍지 않았지만 고칠 수 없는 죄로 판정되지는 않았다. 심판은 그들을 먼저 타르타로스로 떨어뜨렸다. 그곳에서 한 해를 보낸 뒤에야 거친 물결이 영혼들을 다시 밖으로 밀어 올렸다.
 
사람을 죽인 영혼들은 코퀴토스로, 부모에게 폭력을 저지른 영혼들은 피리플레게톤으로 떠밀려 갔다. 그들은 물길에 휘말려 아케론의 호수에 다다르자 자신이 해친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죽인 사람에게는 용서를 청하고, 상처 입힌 사람에게는 자신을 받아 달라고 애원했다. 호수로 나아가려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승낙이 필요했다. 아무리 크게 외쳐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용서를 얻은 영혼은 물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거절당한 영혼은 다시 타르타로스로 되돌아갔고,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강을 따라 떠밀려 나왔다. 그들은 몇 번이고 같은 곳에 이르러 자신이 해친 이를 향해 손을 뻗어야 했다. 불의 강과 통곡의 강은 이렇게 되풀이되는 형벌의 길이 되었다. 심판관들이 정한 끝은 단 하나였다. 자신에게 잘못을 당한 사람이 마침내 용서를 허락할 때까지 그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아케론의 호수에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죄인들의 혼령
 
 
 

제3장. 명계의 두 강이 후대에 전해지다

3.1 소크라테스가 명계의 이야기를 남기다
 
감옥의 마지막 날, 소크라테스는 벗들에게 명계의 강과 영혼의 행로를 들려준 뒤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자신이 묘사한 지하 세계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영혼이 죽음 뒤에도 운명을 맞이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벗들은 곧 스승을 잃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크리톤이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하느냐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니라 몸을 묻게 될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어 그는 죽은 뒤 남들이 몸을 씻기는 수고를 하지 않도록 미리 목욕하러 갔다. 어린 자식들과 가족이 들어와 작별했고, 소크라테스는 다시 벗들 곁으로 돌아왔다. 해가 기울 무렵 관리가 들어와 독약을 마실 때가 되었음을 알리자, 관리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했다.
 
소크라테스는 독이 든 잔을 받아 침착하게 마셨다. 크리톤을 비롯한 벗들은 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는 조용히 있으라고 일렀다. 잠시 뒤 다리부터 감각이 사라졌고, 몸이 차가워지면서 숨이 멎었다. 마지막 순간 그는 크리톤에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는 일을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 명계의 강을 이야기하던 스승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곁에 있던 이들은 그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오래 기억했다.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와 눈물짓는 제자들
 
 
3.2 베르길리우스가 명계의 강을 노래하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를 죽은 자들의 나라로 내려보냈다. 아이네이아스는 쿠마이의 시빌라를 길잡이로 삼아 아버지 안키세스를 찾아갔다. 강가에는 배를 기다리는 혼령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사공 카론은 일부만 배에 태웠고, 장례를 치르지 못한 이들은 물가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빌라는 그런 혼령들이 백 년 동안 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말했다.
 
무리 가운데 아이네이아스는 조타수 팔리누루스를 알아보았다. 팔리누루스는 배에서 떨어진 뒤 사흘 밤을 거친 바다에서 버티다가 나흘째 아침 이탈리아 해안을 보았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바위에 손을 걸었지만 낯선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죽였고, 시신은 바닷물에 떠밀려 다녔다. 그는 자신을 묻어 주거나 명계의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시빌라는 법을 어길 수 없다고 답하면서도 그가 장례를 치르고 이름을 남기게 되리라고 위로했다.
 
아이네이아스가 더 깊이 나아가자 길은 엘리시온과 타르타로스로 갈라졌다. 타르타로스 쪽에는 세 겹의 성벽과 단단한 철문이 서 있었고, 플레게톤의 불타는 급류가 그 둘레를 감싸고 흘렀다. 문에서는 무서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빌라는 그 안에서 죄인들이 형벌을 받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아이네이아스는 닫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가 기다리는 길을 택했다.
 
불의 강이 에워싼 타르타로스를 바라보는 아이네이아스와 시빌라
 
 
3.3 단테가 끓는 피의 강을 건너다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은 단테는 지옥의 일곱째 원으로 내려갔다. 바위비탈 아래에는 붉은 피가 끓어오르는 강이 넓게 휘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른 영혼들이 그 물속에 잠겨 있었고, 강가에는 활을 든 켄타우로스들이 오갔다. 정해진 깊이보다 머리를 높이 내미는 자에게는 화살이 날아갔다. 단테는 피 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켄타우로스 키론은 단테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의 여행이 허락받은 일이라며 강을 건널 길을 안내해 달라고 청했다. 키론은 네소스에게 두 사람을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네소스는 물가를 따라가며 피에 깊이 잠긴 폭군들과 살인자들을 하나씩 가리켰다. 어떤 이는 눈썹까지 잠겨 있었고 어떤 이는 가슴을 드러냈다. 강은 죄의 무게에 따라 깊이를 달리하는 듯했다.
 
마침내 피가 발목 높이까지 얕아지는 여울에 이르렀다. 네소스는 단테를 등에 태우고 건널 수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건너편에서도 물길은 다시 깊어져 수많은 죄인을 삼키고 있었다. 네소스는 단테를 건네준 뒤 돌아갔다. 단테는 자살자들의 숲을 지나 뜨거운 모래벌판에 이르러 다시 붉은 물줄기를 만났다. 베르길리우스의 설명을 듣고서야 앞서 건넜던 끓는 피의 강이 플레게톤임을 깨달았다. 타르타로스를 에워싼 불의 강은 이제 폭력을 저지른 자들이 형벌을 받는 끓는 피의 강으로 나타났다.
 
켄타우로스 네소스의 등에 올라 끓는 피의 강을 건너는 단테
 
 
3.4 코퀴토스가 얼어붙은 호수로 남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거인 안타이오스가 두 사람을 아래로 내려놓자 드넓은 얼음 호수가 펼쳐졌다. 그곳은 코퀴토스였다. 물결은 움직이지 않았고, 영혼들은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어떤 이는 목까지 갇혀 고개를 떨구었고, 어떤 이는 눈물이 얼어붙어 눈꺼풀조차 움직이기 어려웠다. 통곡의 강은 소리마저 얼어붙은 호수가 되어 있었다.
 
단테는 가족과 조국을 배신한 자들을 지나 우골리노 백작을 만났다. 그는 굶주림과 감금 속에서 겪은 참혹한 일을 들려주었다. 더 깊은 곳에는 손님과 은인을 배반한 자들이 갇혀 있었다. 호수의 한가운데에서는 거대한 루치페르가 얼음에 붙잡힌 채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그 바람이 호수를 더욱 얼게 만들었다. 루치페르의 가운데 입에는 유다가, 양쪽 입에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붙잡혀 끊임없이 고통받았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이끌고 루치페르의 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지구의 중심을 지나 방향이 뒤바뀌자, 두 사람은 좁은 동굴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상의 별빛이 보였다. 단테는 끓는 피의 강과 얼음 호수를 지나 살아 있는 세계로 돌아왔다. 코퀴토스는 더 이상 흐르는 통곡의 강이 아니었지만, 그 가장 깊은 얼음 속에는 배신의 대가를 치르는 영혼들이 남아 있었다.
 
코퀴토스의 얼음 속에 갇힌 루치페르와 배신자들
 
 

 
 

출전

 
1. 호메로스(Homeros), 『오디세이아(Odysseia)』 제10~11권. 키르케가 설명한 명계의 길과 두 강의 합류 지점, 오디세우스의 혼령 방문.
2. 플라톤(Platon), 『파이돈(Phaidon)』 112e~114c 및 종결부. 피리플레게톤과 코퀴토스의 흐름, 영혼의 심판과 속죄,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날.
3. 베르길리우스(Vergilius), 『아이네이스(Aeneis)』 제6권. 아이네이아스의 명계 여행, 코퀴토스와 카론, 타르타로스를 에워싼 플레게톤.
4.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신곡(Divina Commedia)』 「지옥편」 제12곡, 제14곡, 제31~34곡. 끓는 피의 강 플레게톤과 배신자들이 갇힌 얼음 호수 코퀴토스.
 
※ 본문은 원전의 주요 사건과 묘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호메로스·플라톤의 고대 그리스 전승과 베르길리우스·단테의 후대 문학적 재해석을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피리플레게톤은 플레게톤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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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