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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 【 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 2026.10.31. 23:14 (2026.10.31. 22:12)

동양고전 아카데미 440강 강의자료 요약(2026.10.29)

■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賦得古原草送別〉과 작자 白居易 및 주요 단어(賦得, 古原, 離離, 枯榮, 野火, 遠芳, 晴翠, 王孫, 萋萋.. 등)와 자연의 순환, 생명력의 강인함, 시각과 후각을 결합한 풍경, 자연의 묘사에서 이별의 감정 등 감상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 ; (2)《論語》〈公冶長〉「子貢曰:我不欲人之加諸我也,吾亦欲无加諸人。子曰:“賜也,非爾所及也。」의 내용과 非爾所及也라고 말한 이유 및 無와 仁, 勿과 恕의 관련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3)孔廟의 1聖4配12哲 등에 대하여 설명 ; (4)程顥와 程頤의 사상적 차이에 대하여 설명 ; (5)商末3賢(仁), 《論語》〈微子〉「微子去之,箕子爲之奴,比干諫而死。孔子曰:殷有三仁焉。」에 대하여 역사적, 철학적 분석 및 관련 朱熹, 《論語集注》〈微子〉「三人之行不同,而同出於至誠惻怛之意,故不咈乎愛之理,而有以全其心之德也。」 ; 《韓詩外傳》 ; ‌箕侯方鼎-箕侯亞 銘文 ; 肉袒面縛 ; 夏商周 3대의 歲,祀,年 등에 대하여 설명 ; (6)기타 강효백 교수의 桓檀古記와 金正浩의 大東輿地圖에 관한 특강을 청취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40강 강의자료 요약(2026.10.29)
 
 
2026년 10월 29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부득고원초송별(賦得古原草送別 )
2. 작자: 백거이(白居易, 772~846)
白居易는 당나라 중기, 字는 樂天, 號는 香山居士. 元稹과 함께 新樂府運動(古代의采詩制度 회복과 《詩經》과 漢魏樂府의 시사 풍자 전통을 확산)을 이끌음. 사회 현실과 백성의 고통을 시에 담고, 표현이 평이하고 자연스러움. 〈長恨歌〉, 〈琵琶行〉, 〈賣炭翁〉 등 작품. 〈賦得古原草送別〉은 10대에 지은 시, 과거 시험이나 시 짓기에서 주어진 제목을 따라 짓는 작품에 흔히 붙이는 말이 바로 賦得이다. 이 시는 옛 들판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의 생명력을 노래하면서, 풀의 이미지를 통해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한 五言律詩이고 古體詩이다.
 
 
* 1년의 표기 방법
고대 중국의 어휘 사전인 《이아(爾雅)·석천(釋天)》에 기록되어 전해집니다.“夏曰歲,商曰祀,周曰年,唐虞曰載。”
(당우[요순] 시절에는 '재(載)'라 하였고, 하나라에서는 '세(歲)'라 하였으며, 상나라에서는 '사(祀)'라 하였고, 주나라에서는 '년(年)'이라 하였다.)
 
고대 왕조별 '1년'의 명칭 비교
진나라의 학자 곽박(郭璞)은 《이아》 주석에서 각 왕조가 취한 1년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72강(2024,12,26) 강의 교안
 
*《論語》〈公冶長〉5-12.
子貢曰:“我不欲人之加諸我也,吾亦欲无加諸人。” 子曰:“賜也,非爾所及也”
"나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제하는 것은 원하지 않고, 나도 또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가(加)함이 없다."
그래서 공자가 말하기를, "자장아, 이것은 너가 미칠 바가 아니다."
 
(주석)
(1) 子貢 - 端木賜(前520년-前456년), 성은 端木, 이름은 賜, 字는 子貢이다. 儒商鼻祖이고 춘추 말년에 衛国과 魯國에서 재상을 역임한 정치가, 외교가이다. 공자 문하의 72賢이고 12哲(政事-冉求(子有)、仲由(子路); 言語-宰予(子我)、端木賜(子貢); 德行-顏回(子淵)-復聖、閔損(子蹇)、冉耕(伯牛)、冉雍(仲弓); 文学-言偃(子游)、卜商(子夏); 기타-顓孫師(子張), 有若(子若), 朱熹)에 해당한다. 공자 사후에 守墓를 6년 하였다. 孔子의 「先行後言, 言出必行」은 言行一致가 바로 君子인데, 자공은 말을 잘하지만 실천이 약함을 보고 공자가 깨우침을 준 글
 
 
(2) 欲 - ~하고자 하다
(3) 之 - 所加之事
(4) 加 - 加陵(欺侮, 欺壓, bully, 의롭지 못하게(非義) 못살게 구는, 압박, 모욕, 强制, 强行, 强加)
(5) 諸 - 저, 문장 중간에서는 之于의 合音, 문장 끝에서는 之乎의 合音, 대부분 于의 의미이다
(6) 賜 - 子貢
(7) 爾 - 汝, 子貢
(8) 所及 - 이르를 바, 미칠 바
 
* 程伊川은 위 본문은 仁에 관한 글이고, 《論語》〈衛靈公〉「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施予, 施加)於人」은 恕에 관한 글이라고 하였다.
 
* 朱子는 無는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고(힘써도 안 되는 것), 勿은 하지 말라는 말로써(힘쓰면 되는 것) 仁과 恕의 차이라고 하였다.
 
* 後外 - 孔子가 「賜也,非爾所及」이라고 한 것은 子貢에게 「加人之習慣」이 있어서 쉽게 바꿀 수 없음을 지적한 말이다.
 
 
 
비간(比干)은 중국 고대 상나라(은나라) 말기의 왕족이자 충신으로,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폭정을 목숨 걸고 간언하다 잔혹하게 처형당한 인물입니다. 동양사에서 ‘직언을 아끼지 않은 충신(諫臣)’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1. 가계와 신분
• 혈통: 상나라 제29대 군주 문정(文丁)의 아들이자, 제30대 제을(帝乙)의 동생입니다. 즉, 폭군으로 유명한 마지막 왕 제신(帝辛, 주왕)의 숙부(당숙)가 됩니다.
• 관직: 상나라의 최고위 관직인 소사(少師) 등을 맡아 국정을 보좌했습니다.
 
2. 비간의 죽음: 충언과 비참한 최후
상나라 말기 주왕은 달기(妲己)에게 빠져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고, 포락지형(褦烙之刑)과 같은 가혹한 형벌을 남발하며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 3일간의 간언:
미자계(微子啓)는 나라를 떠나 망명했고, 기자(箕子)는 미친 척하며 노비가 되어 화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비간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끝까지 왕 곁을 지켰습니다.
 
“군주에게 허물이 있는데 목숨이 아까워 간하지 않는다면 이는 충이 아니다. 신하 된 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간해야 마땅하다.”
 
비간은 주왕의 처소로 가 사흘 밤낮 동안 물러서지 않고 왕의 비행을 조목조목 직간했습니다.
 
• 심장을 도려내는 극형:
분노한 주왕은 다음과 같이 조롱하며 비간을 처형했습니다.
 
“내 듣건대,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七竅)가 있다고 하더구나. 과연 네 심장도 그러한지 확인해 보겠다.”
 
주왕은 잔혹하게 비간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죽였습니다.
 
3. 후대의 평가와 역사적 영향
 
• 공자(孔子)의 평가:
《논어(論語)·미자(微子)》 편에서 공자는 상나라 말기 나라를 지키려 했던 세 사람을 가리켜 “은나라에 세 명의 어진 이가 있었다(殷有三仁焉)”라고 칭송했습니다.
 
o 미자(微子): 떠나감(去)으로써 사직을 보전함
o 기자(箕子): 미친 척하여 노예가 됨(爲之奴)으로써 도를 지킴
o 비간(比干): 죽음으로써 충간함(諫而死)
 
• 주(周) 무왕의 추존과 임(林)씨의 시조:
주나라 무왕(武王)은 상나라를 멸망시킨 뒤, 가장 먼저 비간의 무덤을 찾아 흙을 돋우며 봉분을 쌓아 예우(封比干之墓)했습니다.
또한 비간이 처형당할 당시 임신 중이던 그의 부인 진씨(陳氏)가 숲속(長林)으로 피해 아들 천(泉)을 낳았는데, 주 무왕이 그 아들에게 숲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수풀 림(林) 자를 성씨로 하사(임견, 林堅)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비간은 오늘날 장림 임씨(한국의 모든 임씨 및 중국 임씨)의 비조(鼻祖)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 민간 신앙 (문재신, 文財神):
후대 민간에서는 비간이 마음(심장)을 빼앗겼기 때문에 사심(私心)과 편견 없이 공정하게 재물을 관리해 줄 것이라 여겨, 학문과 상업의 번창을 관장하는 ‘문재신(文財神)’으로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 정호와 정이
북송(北宋) 시기 도학(道學, 성리학)의 기초를 다진 정호(程顥, 명도선생, 1032~1085)와 정이(程頤, 이천선생, 1033~1107) 형제는 흔히 ‘이정(二程)’으로 병칭되지만, 리(理)를 이해하는 관점과 수양론에서 뚜렷한 학문적 개성과 지향점의 차이를 보입니다. 정호는 훗날 육구연과 왕수인(왕양명)의 심학(心學)으로, 정이는 주희(주자)의 이학(理學, 성리학)으로 계승·발전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1. 핵심 사상 요약 비교
 
 
2. 리(理)와 본성에 대한 인식 차이
 
• 정호: 천리(天理)의 자득과 인(仁)의 일체감
o 정호는 "나는 하늘의 이치(天理)를 스스로 체득했다"고 자부했을 만큼 '천리'를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활발한 생명력으로 파악했습니다.
o 마음(心)과 이치(理), 그리고 만물이 본래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는 '만물일체(萬物一體)'의 관점을 가졌습니다.
o 리(理)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해 탐구하기보다는, 내면의 참된 마음에서 생생하게 체득하는 주관적·직관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 정이: 성즉리(性卽理)와 리·기의 분별
o 정이는 "본성이 곧 이치다(性卽理也)"라는 명제를 확립하여, 주자학의 핵심 토대를 세웠습니다.
o 리(理)를 형이상(形而上)의 절대 불변하는 보편적 법칙으로, 기(氣)를 형이하(形而下)의 변화하는 질료로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o 인간의 본성 역시 순선(純善)한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의 맑고 탁함에 따라 달라지는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어 분석적으로 접근했습니다.
 
3. 수양론(修養論)의 차이
• 정호: 식인(識仁)과 정성(定性)
o 식인(識仁): 《식인편(識仁篇)》에서 "학자는 모름지기 먼저 인(仁)을 알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인은 만물과 내가 본래 하나임을 자각하는 것이며, 이를 억지로 찾거나 조장(助長)하지 않고 성(誠)과 경(敬)으로 온전히 보존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o 정성(定性): 마음에 동요가 없이 평정을 유지하는 수양으로,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거울이 사물을 비추듯 자연스럽게 응대하는 무심(無心)의 경지를 지향했습니다.
 
• 정이: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
o 거경(居敬):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잡념을 없애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엄격한 내면 수양을 강조했습니다.
o 궁리·격물(窮理·格物): 《대학》의 '격물치지'를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한다(卽物窮理)"로 해석했습니다. 한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마침내 활연관통(豁然貫通)에 이르는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지적 탐구를 요구했습니다.
o 앎(知)과 행함(行)의 관계에서도 "알고 난 뒤에야 행할 수 있다(知先行後)"는 입장을 확고히 했습니다.
 
4. 후대 유학사에 미친 영향
• 정이의 길 (정주학·성리학): 남송의 주희는 정이의 성즉리설과 격물치지론을 정교하게 집대성하여 관학(官學)이자 정통 성리학(주자학)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조선 왕조 500년의 지배 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 정호의 길 (육왕학·양명학): 정호의 만물일체론과 직관적 마음공부는 남송의 육구연을 거쳐 명나라 왕수인(왕양명)의 "마음이 곧 이치다(心卽理)"라는 심학(心學) 체계로 발전했습니다.
 
정호가 춘풍(春風)처럼 온화하고 활달한 내면의 직관과 생명력을 중시했다면, 정이는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정하게 사물의 보편 원리와 객관적 규범을 추구하여 유학의 양대 줄기를 형성했습니다.
 
 
 
2026.10.29. 강의 요약: 주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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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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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