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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품은 아름다운 사람들 27〉
포항시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이 (주)대아고속해운이다. 창업자 황대봉(黃大峰, 1927~2015)은 1967년에 버스 7대로 포항버스를 설립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언론, 금융, 건설, 해운, 관광, 레저 등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아그룹을 일구어냈다. 그는 지역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1974년 포항의 상징이었던 ‘오거리 시민의 탑’ 건립과 1977년 죽도시장 확장 사업 등을 이끌며 지역 사회 발전과 장학 사업에 공헌했다. 1983년 6월에는 대아고속해운을 설립해 동해안 해상교통의 중심축인 포항~울릉 항로 등을 개척했다. 1990년에는 진천훼리를 창업해 중국 텐진(天津)을 잇는 여객 및 화물 항로를 개척했다. 그는 제12·13대 국회의원(1985~1992)을 지내며 정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황대봉 명예회장(사진:대아그룹)
(주)대아고속해운의 황인찬 회장은 울릉도 해상교통의 고속화와 현대화를 이끌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진행했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호주 인캣(Incat) 조선소에서 알루미늄 쌍동선형 초고속 여객선 K-클래스(Incat 37)를 주문해 배를 인도받아 울릉 항로에 투입했다.
1995년 8월 15일, 썬플라워(Sun Flower)호가 울릉~포항 항로를 시속 47노트(약 87km/h)라는 경이로운 속도로 항해해 바다의 KTX’로 불렸다. 운항 시간을 당초 6시간에서 2시간 50분으로 단축하여 울릉도 해상교통에 큰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때부터 울릉도 관광객은 20만 명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썬플라워호는 국내 연안여객선에 적용되는 선령 제한 25년이 되어, 아쉽게 2020년 2월 28일 포항행 운항을 마치고 많은 아쉬움 속에 퇴역했다.
썬플라워(Sun Flower)호(사진:대아그룹)
황대봉 창업자는 2005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이 주요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이어갔다. 그는 대한항공이 포항-서울 간 항공 노선을 2016년 개설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3년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 태성해운에 신규 면허를 발급하면서 해운 독점 체재가 깨지고 선사들 간의 치열한 여객 유치 경쟁이 시작되어 ㈜대아고속은 수익 구조를 유지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태성해운의 ‘우리누리 1호’가 취항하고 나서 얼마 있다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여 국민들의 해상안전에 대한 우려가 극도로 높아졌다. 이후 울릉도와 독도를 찾는 관광객 발길이 아예 끊기다시피 했다. 여기에 동해의 기상 악화까지 겹쳐 모든 여객업계가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되자, 2014년 울릉도 관련 여객 사업을 전면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울릉 노선 사업권을 대저해운에 매각하는 등 울릉도 노선에서 대부분 철수하였다.
썬플라워(Sun Flower)호(사진:대아그룹)
울릉도를 항해하던 썬플라워호는 부산항에 장기 정박하다 2022년 우루과이(Uruguay)의 루마리(Lumary SA) 선사가 인수하여 2023년 1월 1일 12,700해리(23,500km)에 달하는 긴 항해를 시작해 항해 도중 연료 보급 및 물자 보충을 위해 네 차례 기항하고, 2023년 4월경에 현지에 도학했다. 도입처는 항로 여건에 맞춰 배를 개조되어 여객 정원을 600명으로 줄이고, 1층 공간을 차량 적재 공간으로 변경해 차량 수송 능력을 16대에서 70대로 늘리고 하역을 위한 선미 램프와 여객 편의 시설도 보강됐다. 선명을 몬테비데오 익스프레스(Montevideo Express)로 개칭하고, 승객 및 차량 수송이 가능한 고속여객·화물겸용선(Passenger/Ro-Ro Cargo Ship)으로 등록하였다.
몬테비데오 익스프레스(Montevideo Express, 구 명칭: Lumary)(사진:Lumary SA)
우루과이 페리 업체 콜로니아 익스프레스(Colonia Express)는 배의 증편을 위해 2026년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잇는 라플라타강(Río de la Plata) 항로에 몬테비데오 익스프레스호를전격 투입했다. 최신 선박 자동식별시스템(AIS) 기록에 따르면, 이 배는 2026년 10월 중순 이후 우루과이 콜로니아항을 출발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항에 입항하며 정기 운항에 돌입했다.
배터리추진 여객선 차이나 조릴라(China Zorrilla)호(사진:Incat Tasmania)
최근 우루과이에는 배터리추진 여객선(Battery-Electric Ferry)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우루과이의 대형 여객선사 부케부스(Buquebus)는 대형 고속 쌍동선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앞서 있는 선사이다. 부케부스 선사는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조선소 인캣(Incat Tasmania)에 의뢰해 배터리 전기 선박인 차이나 조릴라(China Zorrilla)호를 호바트조선소에서 건조했다.
2026년 10월 22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루과이 콜로니아 델 새크라멘토(Colonia del Sacramento)까지 55km(34마일)의 플라타 강(Río de la Plata) 횡단 첫 상업 운항을 1시간 15분 만에 성공적으로 완수해 이제는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해졌다. 이 선박은 41.2MWh 용량의 배터리 시스템(무게 약 250톤 이상, Corvus Energy 공급)을 탑재하여 디젤 엔진 없이 100% 전기력과 8기의 전기 워터젯 추진력으로만 운항하여 탄소 배출과 소음·진동을 혁신적으로 줄였다. 선박 선체는 130m, 최대 2,100명의 승객과 225대의 차량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다.
필자는 호주의 인캣(Incat) 회사가 개발한 배가 궁금해 회사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인캣은 호주 태즈메이니아주 호바트(Hobart) 인근 더윈트 파크(Derwent Park)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 베이(Prince of Wales Bay)에 위치한 세계적인 고속 알루미늄 선박 전문 제조기업이다. 인캣은 파도 관통형(Wave-piercing) 쌍동선 및 고속 알루미늄 페리 건조 분야의 세계적인 선두 주자로 한국에도 초쾌속 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 산타모니카호 등이 도입되었다.
태성해운의 우리누리 1호(사진:경북매일)
제주 기점 여객·화물 수송률 1위 선사 씨월드고속훼리㈜(대표이사 회장 이혁영)는 세월호 사고 이후 강화된 국내 여객선 검사규제 및 안전기준, 선령 제한의 여러 가지 요인을 극복하고자 최첨단 선박 기술력의 글로벌 기업인 네덜란드 다멘사로부터 새로 건조된 쾌속선 퀸스타 2호를 인수하여 2015년 9월 25일부터 해남우수영~추자~제주 항로를 운항했다. 퀸스타 2호는 총톤수 364톤, 길이 40m, 너비 10.7m, 깊이 3.8m, 속력 36노트의 빠른 속도로 운항되며 정원 45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여객선으로 서남해안 다도해 해상의 아름다움과 멋진 절경을 만끽하며 빠르고 편안한 제주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비행기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승객 감소가 계속 이어져 누적된 적자가 커졌다. 기상 악화로 자주 결항해 2024년 4월 7일까지 운항하고 면허를 반납했다.
울릉크루즈(주) 조현덕 대표는 울릉도와 독도를 연계할 새로운 쾌속선을 찾고 있었다. 그는 자매회사 독도크루즈(주)를 설립하고 2025년 2월 4일 퀸스타 2호를 용선하기로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2025년 3월 13일에 대아고속해운으로부터 해상여객운송사업 면허 승계 신고 수리를 완료하고, 4월 11일 해상여객운송사업 면허증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4월 12일에 ‘독도드림호(DOKDO DREAM)’를 독도 항로에 취항시켰다.
울릉도 해상 날씨(사진:궁인창)
설레는 마음으로 여객선에 오르니 1층 중앙 좌석에 서울 송파구에서 온 보성중학교 학생들이 타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학생들이 이렇게 큰 배를 처음 탄다고 말해 독도드림호의 제원을 상세하게 “이 배의 길이는 38.91m, 선폭 10.40m, 높이 3.8m, 흘수 1.65m, 국내 총톤수 364톤, 국제 총톤수 552톤, 기관 출력 2,240kW, 2Set (엔진: MTU 16V4000), 최대 속력 35노트, 승선 정원은 450명(여객 444명, 선원 6명)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선원이 멀미에 대비해 큰 비닐봉투를 중학생들에게 건네주며 멀미할 때 봉투를 사용하는 요령을 설명했다. 쾌속선이 터미널을 출항하여 넓은 바다에서 32노트로 속력을 내자, 일부 학생이 극심한 뱃멀미로 힘들어했다. 급기야 2명의 중학생이 의자와 바닥에 음식물을 토해 선원이 빠르게 처리해 객실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승객들은 모두 의자에 기대여 깊은 잠을 청했다.
2026년 7월 10일 독도 동도(사진:궁인창)
필자 역시 40여 분간 달콤한 꿀잠을 자고 일어나 독도 접안이 가능한지 궁금해 기상 앱을 열어 확인하니 바다 날씨가 거칠고 심상치 않았다. 미리 해상 날씨를 알았지만, 생각보다 강풍이 불고 파도가 1.6m로 높았다. 독도 해상은 지리적 특성상 날씨에 무척 민감해 조금만 파도가 쳐도 접안이 힘들다.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니 백파(白波)가 보였다. 바람이 반대로 불어오면 좋은데, 정면으로 남풍이 불어 독도 접안이 어렵다고 느낄 무렵에 배는 독도 앞 해상에 이르렀다.
그때 갑자기 웅장하던 배의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장이 배를 동도 부두에 접안을 시도하려던 찰나, 강한 파도가 밀려와 선체가 크게 요동쳤다. 배의 정상적인 접안이 힘들어 선장은 “기상 악화로 접안이 어려워 배 안에서 독도를 관람하겠다.”라고 안내 방송을 두 번 반복했다. 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일제히 창문 쪽으로 몰렸다. 한 선원이 승객들에게 “갑자기 일어나면 균형이 안 잡혀 배가 위험하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했다. 승객들은 선원들의 통제를 잘 받아들였다. 학생들이 창문에서 독도를 바라보았다. 선장은 안내 방송을 다시 하였다. 배가 시동을 끈 채 조류를 따라 독도 뒤편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독도 근처에는 작은 바위가 많아 배가 섬에 가까이 접근하기가 힘들다.
독도 탐방(사진:궁인창)
다행히 독도 뒤쪽에는 파도가 세게 치지 않아 배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백파가 전혀 없고 비교적 안전했다. 선장이 “2층 갑판 문을 잠시 개방하려고 하니 안전한 관람을 위해 한꺼번에 나가지 말고 천천히 이동해주십시오.”라고 안내 방송을 하며 당부했다. 100여 명의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가 다시 외부 갑판으로 한 명씩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나 좁은 통로에 사람이 많고 미세한 너울로 배가 흔들려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독도 탐방(사진:궁인창)
외부 가판에 있는 선원들이 파도가 심하니 넘어지지 말고 난간을 잘 잡으라고 계속 알려주었다. 나는 독도를 10번이나 방문해 독도의 지형을 잘 알아 맨 나중에 일어났다. 창문을 통해 독도를 바라보니 강한 태풍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고 절벽이 많이 무너져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좋은 위치를 잡아 독도 사진을 찍도록 한 발 뒤로 물러나며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였다. 내 모자에 있는 범선 마크를 보고 신기해해 “사람들이 육지에 살아 대부분 지구(Earth)러 부르지만, 실상은 지구 표면에 3분의 2가 바다(Ocean)로 뒤덮여 있어 해양학자들은 해구(海球)라고도 부른다. 바다는 시원한 여름철 휴양지로만 인식하지만, 식량과 에너지와 생명 유지의 핵심을 이루는 시스템으로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고갈을 생각하면 미래의 위기와 해결책으로 드넓은 바다를 깊이 관찰하고 공부해야만 한다.”라고 바다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2026년 7월 10일, 독도(사진:궁인창)
동해 독도는 지표면의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고 화산활동에 의한 화산암으로 토양과 암석은 어두운 빛깔을 띠고 있다. 응회암주, 현무암, 조면암주 등 화산재와 암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해수면 부근에 다양한 해양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동도의 정상은 땅이 비교적 평탄해 유인 등대와 독도경비대 건물이 있다. 동도의 해안은 대부분 높이 30m 내외의 경사가 급한 해식애로 이루어져 있어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서도의 정상부는 날카로운 암석의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도의 북쪽에는 물골이 있어 어부들이 이곳에 머물며 생활했다. 해식동굴을 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독도 동도 해식동굴(사진:궁인창)
아스라이 사라지는 독도를 바라보며, 필자의 마음은 1964년에 입도하고 1965년부터 독도에 이주하여 22년간 수산물을 생산했던 최종덕(1925~1987) 선장과 그의 부인 조갑순 여사를 생각했다. 최종덕 선장은 1981년에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겨 영토 수호의 의지를 다졌다. 그는 1987년 9월 초, 태풍이 독도 서도의 집과 선박 보관 창고를 모두 망가트려 이를 복구하려고 자재를 사러 육지에 나갔다가 뇌출혈로 별세하였다. 이후 김성도, 김신렬 부부가 독도에서 어로 활동하며 독도를 지켰다. 필자는 코리아나호를 타고 독도에서 김성도 이장을 만나 인사했지만, 이장님도 고인이 되었다.
울릉도 태하 항목관광모노레일, 최영석 부선장(사진:궁인창)
코리아나의 독도 항해길에 바다를 보면서 최영석 부선장님과 오랜 시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최 부선장님은 1960년대 부산해양대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이후 해군에서 3년간 복무하고 제대한 후, 한국해양대학 실습선 갑판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영어를 잘해 까다로운 영어 장비 부품을 한글로 모두 번역해 교재를 만들었다. 이후 노르웨이 선박 회사에서 7년, 독일 스테이트 마리나에서 4년간 근무하였다. 정년을 맞이하여 퇴직한 후인 2002년부터 코리아나호 부선장으로 계시면서 일본 나가사키 범선축제에 참여하고 러시아, 중국, 일본, 호주, 독일, 유럽 등 여러 나라 요트인과 폭넓게 국제교류를 이끌었다.
코리아나호 최영석 부선장(사진:궁인창)
최 선장님은 항해할 때면 항상 배의 밧줄과 항해 장비를 단정하게 손보며, 배에 탄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니도록 정비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배를 처음 탄 젊은이가 있으면 젊은 날의 바다 경험담을 들려주고 요트와 범선 항해술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다. 국내 요트 면허 제5호인 영원한 요트인이었던 고인은 생전에 “이담에 내가 죽으면 독도에 내 사진을 가져가, 꼭 한 번만 독도를 보여주세요.”라고 정중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남기셨다. 고인은 2026년 2월 18일(수) 오전 07시 28분 향년 90세로 별세하여 일산 메모리얼 파크 ‘자연애 숲’에 모셔졌다. (추모목 고유번호 B-D-2029)
최영석 부선장 추모목(사진:최순영)
필자는 최 부선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인의 독도 방문 사진을 가슴에 품고 동해 독도에 와서 독도를 보여드렸다. 사진 속의 선장님은 독립문바위, 한반도바위, 탕건봉, 물골, 등대, 갈매기 등을 물끄러미 오래오래 바라보는 듯했다. 독도 드림호가 힘차게 시동을 걸고 돋고를 떠날 때 괭이갈매기가 배를 계속 따라와 괭이갈매기에게 최영석 선장님과 다시 찾아오겠다고 나지막이 약속했다.
코리아나호 최영석 부선장(사진:궁인창)
최영석 부선장님은 이제 저 넓은 우주에서 거대한 범선에 올라 이사부 탐사 대원들을 이끌며, 태양계와 은하수(銀河水, the Milky way)를 향해 끝없는 항해를 하고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