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가르(Jangar) – 이상향 봄바를 지킨 영웅왕
「장가르」는 칼미크·오이라드 민족이 전해 온 영웅서사시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잃은 장가르가 시련을 이겨 내고 이상향 봄바를 되찾아 지키는 이야기이다. 죽음과 고통이 없고 사람들이 젊음을 잃지 않는 봄바에는 홍고르·알탄 체지·밍얀·사날·사와르 같은 영웅들이 모인다. 그러나 강대한 칸과 괴물들이 끊임없이 나라를 위협하고, 영웅들은 명예와 충성, 때로는 갈등 속에서 먼 전장으로 떠난다. 그들이 돌아올 때마다 황금 궁전에는 새로운 잔치가 열린다.
1.1. 장가르가 영웅의 혈통을 이어 태어나다
옛날 타키 졸라 칸은 사람들이 편히 살 수 있는 땅을 찾다가 넓은 목초지와 맑은 물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그곳에 가축을 풀고 천막을 세웠다. 타키 졸라는 그곳이 누구도 굶주리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평화에도 시련이 닥쳤고, 그의 뒤를 이은 후손들은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타키 졸라의 뒤를 이은 탕상 봄바는 조상들의 뜻을 이어 나라를 돌보았다. 가축이 쓰러지고 목축민들이 떠날 때도 그는 흩어진 사람들을 모았다. 그 뒤에는 위징 알다르가 칸의 자리에 올랐다. 젊은 칸은 나라를 이어 갈 후손을 기다리며 왕비와 함께 살아갔다. 마침내 왕비가 아들을 낳자 궁전에는 큰 기쁨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아이가 훗날 나라를 지킬 용사가 되기를 빌었다.
그 아이가 장가르였다. 그는 타키 졸라와 탕상 봄바, 위징 알다르로 이어지는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왕궁에서 편안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봄바의 풍요로운 들판을 노리는 적들이 국경 너머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말지기들이 들려주는 소식은 날마다 험악해졌고, 궁전의 전사들은 창과 활을 손질했다. 아이가 아직 무엇이 다가오는지 알기도 전에, 조상들이 일으킨 나라는 큰 재난을 맞을 운명에 놓였다.
갓 태어난 장가르를 품에 안은 왕비와 기뻐하는 위징 알다르
1.2. 부모를 잃은 어린 장가르가 시련을 겪다
장가르가 두 살이 되었을 무렵, 강대한 망가스의 무리가 봄바를 덮쳤다. 검은 말을 탄 적병들이 밀려오자 목축민들은 달아났고, 전사들은 잇달아 쓰러졌다. 장가르의 아버지 위징 알다르는 궁전 안에서 마지막까지 맞서려 했으나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성문이 뚫리자 왕비와 어린 아들의 목숨도 위태로웠다. 봄바의 잔칫소리는 사라지고 전쟁의 함성만 들려왔다.
위징 알다르는 아들이라도 살아남게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창과 준마 아란잘을 충직한 시종에게 맡기고, 장가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라고 명했다. 시종은 아이를 데리고 궁전을 빠져나와 먼 산으로 달렸다. 바위산 동굴에 아이를 숨긴 그는 전쟁의 결과를 알아보려고 돌아갔다. 그러나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간 시종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어린 장가르는 산속에 홀로 남았다.
그사이 봄바에서는 왕과 왕비가 목숨을 잃고 나라의 주인도 바뀌었다. 장가르가 알던 궁전과 그 안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모두 사라졌다. 동굴 밖으로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멀리서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 남은 것은 조상들의 준마와 무기,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고향뿐이었다. 사람들은 훗날 그를 '고아 장가르'라 불렀다. 그러나 작은 아이의 이야기는 그 산속에서 끝나지 않았다.
불타는 왕궁에서 어린 장가르를 데리고 탈출하는 시종
1.3. 산속에서 살아남은 장가르가 영웅으로 자라다
산속 동굴에 남겨진 장가르를 지나가던 사냥꾼 묑겐 식셰르게가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는 동굴 곁의 준마와 아이를 보고 놀랐다. 아이가 장차 큰 칸이 되겠다는 뜻을 드러내자 사냥꾼은 자기 아들 홍고르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는 먹을 것을 남겨 두고 아이를 그대로 두었고, 장가르는 다시 외로운 산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장가르는 굶주린 채 쓰러지지 않았다. 한 전승에서는 암늑대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사슴이 먹이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아이는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을 찾아 마시고, 숲에서 짐승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호랑이처럼 소리치고 독수리처럼 멀리 바라보며 영양처럼 빠르게 달리려고 했다. 산과 숲은 아이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어느 날 장가르는 꿈속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그에게 부모가 잃은 나라를 들려주고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 노인은 사라졌지만, 아이는 몸속에 전에 없던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장가르는 바위를 밀고 나무를 흔들며 자신의 힘을 시험한 뒤 아란잘의 등에 올랐다. 아직 어린 나이였으나 그는 더는 산속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장가르의 눈앞에는 자신이 되찾아야 할 봄바로 이어지는 길이 펼쳐졌다.
산속 동굴에서 어린 장가르에게 젖을 먹이는 암늑대
1.4. 장가르가 강적들을 물리치고 봄바의 왕으로 성장하다
세 살이 된 장가르는 준마 아란잘을 타고 처음으로 원정에 나섰다. 앞을 가로막는 세 성채의 문을 무너뜨리고 강대한 굴진 망가스 칸에게 다가갔다. 적들은 어린 기수가 나타나자 비웃었지만, 장가르는 고삐를 당겨 곧장 적진에 뛰어들었다. 싸움이 끝나자 굴진은 장가르의 힘에 굴복했다. 소식이 퍼지자 흩어졌던 사람들도 돌아올 희망을 품었다.
장가르의 싸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네 살에는 또 다른 망가스 칸을 굴복시키고, 다섯 살에는 다섯 강적을 꺾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린 장가르가 언제나 이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산속에서 자신을 발견했던 묑겐 식셰르게와 다시 만나 힘을 겨루다가 붙잡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때 묑겐 식셰르게의 아들 홍고르가 나서서 장가르를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때부터 두 영웅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여섯 살의 장가르는 앞날을 꿰뚫어 보는 알탄 체지와도 맞섰다. 그는 강한 상대 앞에서 혼자 힘만으로 모든 적을 꺾을 수는 없음을 알았다. 장가르의 곁에는 차츰 그와 겨루었던 강자들까지 모여들었다. 그가 되찾아 넓힌 봄바는 여러 영웅이 지키는 나라로 자라났다. 어린 시절 나라와 부모를 잃었던 고아는 이제 초원의 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궁전에는 각지에서 찾아온 용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준마 아란잘을 타고 굴진 망가스 칸에게 돌격하는 어린 장가르
2.1. 장가르가 죽음과 고통이 없는 나라를 세우다
봄바를 되찾은 장가르는 전쟁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무너진 거처를 세우고 흩어진 말과 양 떼를 찾았다. 오래 비어 있던 초원에는 다시 천막이 늘어섰고, 밤마다 화톳불이 피어올랐다. 장가르는 백성들에게 전쟁이 지나간 뒤에도 편히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강한 전사들을 불러 국경을 지키게 하고, 나라 안에서는 사람들이 가축을 기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살폈다.
차츰 봄바는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라로 노래되었다. 그곳에는 혹독한 겨울도 뜨거운 여름도 없고, 따뜻한 봄과 풍요로운 가을만 이어졌다. 백성들은 병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오래 살았으며, 용사들은 스물다섯 살의 젊은 모습으로 머문다고 했다. 강가에는 물이 넘치고 초원에는 가축이 가득했다. 멀리서 찾아온 이들도 그 땅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봄바를 둘러싼 세상까지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이웃 나라의 칸들은 봄바의 기름진 초원과 훌륭한 준마를 탐냈고, 때때로 먼 국경에서 무장한 기마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가르는 황금 궁전에서 잔치를 열다가도 경계의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말에 오를 준비를 했다. 봄바의 평화는 늘 그 나라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힘에 달려 있었다. 그렇게 이상향은 초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죽음과 고통이 없는 풍요로운 봄바 초원을 바라보는 장가르
2.2. 장가르가 왕비를 맞이하고 황금 궁전을 이루다
장가르는 나라의 기틀을 세운 뒤 자신과 함께 봄바를 다스릴 왕비를 맞이하려 했다. 여러 칸의 딸들이 혼인 상대로 거론되었으나 그가 선택한 여인은 놈 퇴게스 칸의 딸 샤브달이었다. 혼인이 이루어지자 먼 나라에서 가져온 귀한 옷감과 보석, 갖가지 선물이 궁전에 쌓였다. 장가르는 샤브달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전사와 백성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사람들은 새 왕비에게 축복을 빌었다.
봄바의 궁전은 여러 층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빛나는 문과 넓은 마당을 지나면 영웅들이 모여 앉는 큰 전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귀한 그릇과 아름다운 장식이 가득했다. 궁전 밖에서는 말지기들이 수많은 준마를 돌보았다. 그중에서도 장가르가 아끼는 붉은 말 아란잘은 멀리 달릴 힘과 날카로운 눈을 지닌 특별한 말이었다. 전사들은 전투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궁전 앞에서 말을 내려 고삐를 넘겼다.
왕비 샤브달은 장가르의 출정을 앞두고 옷을 갖추어 주고, 귀환한 그를 궁전에서 맞이했다. 궁전의 문이 열리는 날에는 귀족과 전사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여 음악과 잔치를 즐겼다. 그러나 장가르가 가진 빛나는 궁전과 훌륭한 준마, 아름다운 왕비에 관한 소문은 나라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먼 곳의 강한 칸들이 그 소문을 들었다. 훗날 봄바를 향한 위협은 바로 그 소중한 것들을 빼앗으려는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황금 궁전에서 샤브달 왕비와 혼인 잔치를 여는 장가르
2.3. 지혜로운 알탄 체지가 장가르의 곁에 서다
장가르의 곁에는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로운 예언자 알탄 체지가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장가르를 따르던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는 자신의 세력을 거느리고 장가르와 맞섰으나, 두 사람이 대결한 뒤 봄바에 들어와 왕을 돕게 되었다. 알탄 체지는 먼 곳의 소식을 알아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을 헤아리는 능력으로 이름이 높았다. 장가르는 그에게 나라의 중요한 일을 묻고, 원정에 앞서 그의 말을 들었다.
궁전에서 큰 잔치가 열리면 알탄 체지는 장가르의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용맹한 전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왕은 그 가운데에서 나라의 일을 결정했다. 알탄 체지는 적국의 움직임을 예언하며 서둘러 출정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가르는 언제나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왕이 자신의 뜻을 고집하면 예언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앉았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봄바에는 알탄 체지와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용사들이 먼 나라로 떠날 때 어느 길이 위험하고 어떤 적이 속임수를 쓰는지 미리 아는 일은 창과 칼을 잘 쓰는 것만큼 중요했다. 적의 기마대가 사라진 뒤에도 알탄 체지는 바람의 방향과 먼 초원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아직 보이지 않는 위험을 이야기했고, 장가르는 그 말과 전사들의 용기를 함께 의지하며 나라를 이끌었다.
황금 궁전에서 장가르에게 앞날을 예언하는 알탄 체지
2.4. 붉은 사자 홍고르와 용사들이 봄바를 위해 맹세하다
봄바의 용사들 가운데 가장 용맹하기로 이름난 인물은 '붉은 사자' 홍고르였다. 그는 묑겐 식셰르게의 아들로,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앞서 달리는 사나이였다. 홍고르가 탄 준마는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렸고, 그가 창을 휘두르면 적의 대열이 갈라졌다. 그는 자신보다 힘센 적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술잔치에서도 자신의 용맹을 숨기지 않았다. 목소리가 높아지면 궁전 안의 다른 전사들까지 돌아볼 정도였다.
장가르의 궁전에는 홍고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모습과 뛰어난 재주로 알려진 밍얀, 신중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날, 무거운 팔의 사와르 같은 용사들이 여러 지역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좋은 말과 무기를 지녔고, 자신의 이름이 다른 전사보다 뒤처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때로는 공을 두고 다투거나 장가르의 명령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적이 봄바의 국경을 넘으면 모두 말을 탈 준비를 했다.
장가르는 잔치 자리를 마련해 영웅들을 모으고 나라를 함께 지킬 뜻을 다졌다. 예언자 알탄 체지가 오른쪽을 지키고 홍고르가 왼쪽을 이끄는 가운데, 수많은 전사들이 황금 궁전에 둘러앉았다. 궁전의 술잔은 높이 들렸고, 말지기들은 밖에서 준마의 안장을 손질했다. 그들의 이름은 봄바의 위용을 드높였지만, 곧 그 용맹을 시험할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황금 궁전에서 장가르 앞에 모여 봄바 수호를 맹세하는 영웅들
제3장. 봄바를 지키는 영웅들이 전장에 나서다
3.1. 홍고르가 혼인을 위해 위험한 여정에 나서다
봄바의 궁전에서 큰 잔치가 열리던 날, 홍고르는 술잔을 앞에 두고도 좀처럼 웃지 않았다. 장가르가 까닭을 묻자 그는 여러 전장을 다녔지만 아직 아내를 맞이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장가르는 젊은 용사의 혼인을 성사시키겠다며 잠발 칸의 딸 잔단을 떠올렸다. 그러나 알탄 체지는 그 여인의 아름다운 겉모습만 보고 혼인을 정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장가르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먼 나라로 길을 떠났다.
장가르는 준마 아란잘을 타고 잠발의 궁전으로 갔다. 오랜 길을 지나 도착한 그는 잔치에 초대받아 잠발과 이야기를 나누고, 홍고르의 혼사를 넌지시 꺼냈다. 잠발도 홍고르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장가르가 봄바로 돌아오자 홍고르는 혼인을 위한 여정에 나섰다. 그 길에서는 거센 적들이 앞을 막았고, 홍고르는 말에서 내려 상대와 힘을 겨루어야 했다. 싸움이 길어질 때에는 충직한 준마가 주인의 용기를 일깨웠다.
마침내 홍고르는 먼 나라에 이르렀지만, 알탄 체지가 경고했던 잔단과의 혼사는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정에서 만난 또 다른 공주 게렌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홍고르가 겪은 우여곡절을 알게 된 장가르는 그를 찾아 나섰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 봄바로 돌아왔다. 영웅들의 혼인 잔치가 열리자 궁전에는 말발굽 소리 대신 축하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먼 나라에서 공주 게렌젤과 혼인하는 홍고르
3.2. 홍고르가 철머리 망나 칸과 격돌하다
봄바의 황금 궁전에 잔치가 열리던 날, 철머리 망나 칸의 사신이 들이닥쳤다. 그는 장가르의 준마 아란잘과 왕비 샤브달, 사날의 준마, 밍얀과 홍고르를 내놓으라 했다. 거절하면 망나 칸의 군대가 봄바를 짓밟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알탄 체지는 망나 칸이 장가르의 아버지조차 고전하게 한 강자라고 경고했다. 장가르는 잠시 망설였고, 사람들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홍고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느니 싸우겠다고 외쳤다. 적이 두렵다는 이유로 봄바의 왕비와 준마, 동료를 내줄 수는 없었다. 사날과 밍얀, 사와르도 그의 뜻에 호응했다. 홍고르는 먼저 말을 달려 망나 칸의 나라로 향했고, 적진에 이르러 붉은 깃발을 세운 군사들과 맞섰다. 홍고르는 싸우다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소식을 들은 봄바의 영웅들이 뒤따라 출정했고, 장가르 역시 아란잘을 몰아 전장으로 달려갔다.
사와르가 도끼로 적을 내리쳤으나 망나 칸의 단단한 머리는 깨지지 않았다. 장가르가 창을 던져 적장을 찔렀지만 그 역시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상처 입었던 홍고르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났다. 그는 말을 몰아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망나 칸을 끝까지 몰아붙였다. 마침내 철머리 망나 칸이 굴복하자 적군의 기세도 꺾였다. 장가르와 홍고르는 봄바로 돌아와 승리의 잔치를 열었다.
철머리 망나 칸에게 창을 겨누며 맞서는 홍고르
3.3. 밍얀이 먼 적국으로 들어가 명마를 빼앗다
황금 궁전의 잔치 자리에서 장가르는 문득 눈물을 흘렸다. 영웅들이 까닭을 묻자 그는 먼 투륵 나라의 알탄 임금이 만 마리의 얼룩무늬 준마를 길러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들에 기병을 태워 몰려오기 전에 먼저 빼앗아야 봄바를 지킬 수 있었다. 장가르는 여러 전사를 둘러보다가 용모가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밍얀에게 그 일을 맡겼다.
밍얀은 명령을 듣고 망설였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봄바에 왔는데, 또 홀로 먼 나라로 가야 했다. 낯선 땅에서 위험을 맞아도 곁에 함께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장가르는 그에게 반드시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밍얀은 자신의 준마에 안장을 얹고 동료들과 작별했다. 길을 달리면서 그는 말 떼를 몰아낼 방법과 돌아올 길을 궁리했다.
투륵의 초원에 도착한 밍얀은 적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만 마리의 얼룩무늬 준마를 몰고 달아났다. 그러나 알탄 임금의 두 용사가 뒤쫓아 왔고, 봄바 국경에 가까워졌을 때 밍얀은 끝내 붙잡히고 말았다. 궁전에서 이 일을 알아챈 알탄 체지가 위험을 알리자 홍고르와 사와르가 급히 출정했다. 사와르는 적장 한 명을 도끼로 쓰러뜨리고, 홍고르는 다른 추격자를 창으로 제압했다. 두 영웅은 밍얀을 구하고 말 떼를 되찾았다. 세 사람은 함께 봄바로 돌아왔고, 장가르는 위험한 원정을 마친 용사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적에게 붙잡힌 밍얀을 구하러 달려드는 홍고르와 사와르
3.4. 사날이 거인들의 나라를 굴복시키다
어느 날 장가르는 사날을 불러 먼 나라에 사는 거인 같은 적들을 굴복시키라고 명했다. 그러나 사날은 기뻐하지 않았다. 고향의 부모와 아내를 떠나 봄바에 왔는데, 다시 홀로 적국에 가야 했다. 돌아오지 못하면 가족이 소식조차 듣지 못할 거라며 한탄했다. 장가르는 그의 공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알탄 체지도 사날의 지혜와 힘을 믿는다며 출정을 권했다.
마침내 사날은 회색 준마에 올라 장가르의 궁전을 떠났다. 산을 넘고 끝없는 들판을 건너자 사람과 거인을 닮은 자들이 사는 나라가 나타났다. 사날은 먼저 적진으로 들어가 움직임을 살폈다. 그곳의 전사들은 봄바의 영웅들을 낮추어 말하며 자신들의 힘을 자랑했다. 사날은 모욕을 참다가 마침내 자신이 장가르의 사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적들이 봄바에 복종하기를 거절하자 그는 물러서지 않고 싸움을 받아들였다.
적들은 수많은 기병을 내보내 사날을 포위했다. 사날은 말을 돌려 적을 흩뜨리고 다시 뛰어들었으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사와르가 도우러 오자 사날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말을 듣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전장에서 등을 돌리지 않았다. 사날과 봄바의 용사들이 힘을 합치자 거인들의 군세가 무너지고 적국은 굴복했다. 돌아온 사날을 장가르는 궁전에서 맞았고, 그의 먼 원정과 승리를 기리는 술잔이 높이 들렸다.
거인 전사들에게 포위된 채 창을 들고 싸우는 사날
제4장. 장가르와 영웅들이 영원한 봄바를 지키다
4.1. 적들이 장가르의 황금빛 말 떼를 훔쳐 가다
봄바의 황금 궁전에 영웅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던 날, 알랴 몽홀랴라는 거친 전사가 나타났다. 그는 궁전 문 앞까지 말을 몰고 와서 자신이 장가르의 황금빛 거세마 만 팔천 마리를 훔치러 왔다고 외쳤다. 붙잡을 용기가 있으면 따라오라며 왕과 전사들을 조롱한 뒤, 거대한 말 떼를 몰고 달아났다. 너무나 대담한 도둑의 행동에 잔치 자리에 있던 용사들조차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장가르는 곧 영웅들에게 추격을 명했다. 알탄 체지는 몽홀랴가 여러 나라에서 싸워 이름을 떨친 강한 상대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전사들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말을 끌어냈다. 장가르의 아란잘과 홍고르의 준마가 앞서 달리고, 수많은 기병이 먼지를 일으키며 뒤따랐다. 도둑을 쫓는 동안 전사들은 사방에서 싸워야 했고, 사날과 사와르는 깊은 산속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장가르는 동료들을 찾아 구할 방법을 찾았다.
마침내 홍고르가 몽홀랴를 따라잡았다. 그는 준마의 등에서 몸을 일으켜 창으로 적을 들어 올린 뒤 동료들에게 던져 버렸다. 도둑은 붙잡혔고, 빼앗긴 말 떼도 되찾았다. 장가르는 상처 입은 사날과 사와르에게 신성한 영약을 내리고 치유의 비를 불러 회복시켰다. 승리한 일행이 황금빛 말들을 몰고 돌아오자 봄바 사람들은 환호했다. 궁전에서는 다시 잔치가 열렸고, 몽홀랴는 봄바에 복종할 것을 약속한 뒤 풀려났다.
황금빛 말 떼를 훔쳐 달아나는 몽홀랴를 추격하는 홍고르
4.2. 사와르가 강대한 킬간 칸을 무찌르다
또 다른 날, 킬간 칸의 사신이 봄바에 나타나 왕비 샤브달과 아란잘, 영웅 밍얀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홍고르가 앞장서서 굴욕적인 요구를 거절하자 장가르는 그의 용기를 칭찬했다. 그 말을 들은 사와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자신도 수많은 전장에서 나라를 지켰는데 왕은 홍고르만 높이 평가한다고 항의했다. 분노한 사와르는 자신의 명마 퀴렝 갈잔을 타고 궁전을 떠나 다른 칸들의 진영으로 향했다.
사와르가 떠난 뒤 봄바에 큰 재난이 닥쳤다. 킬간 칸이 대군을 몰고 쳐들어와 장가르의 영웅들을 차례로 사로잡았다. 멀리 있던 사와르에게는 준마 퀴렝 갈잔이 봄바의 소식을 전했다. 장가르가 자신을 그리워하며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와르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분노했던 일을 뒤로하고 말에 올라 적군이 둘러싼 봄바로 달려갔다.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 준마가 마침내 전장에 도착했다.
사와르는 홀로 킬간 칸의 군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거센 공격에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들기를 거듭하던 그는 적군 한가운데의 킬간 칸을 발견했다. 사와르가 무거운 도끼를 휘두르자 강한 적장은 말 위에서 힘을 잃었다. 붙잡혀 있던 장가르와 동료들이 구출되었고, 봄바의 군사들은 다시 모였다. 궁전으로 돌아온 사와르를 장가르는 반갑게 맞이했다. 영웅은 자신의 이름이 잊히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두 사람은 함께 승리의 잔치에 앉았다.
무거운 도끼를 휘둘러 킬간 칸을 쓰러뜨리는 사와르
4.3. 세 영웅의 아들들이 바드민 올란을 사로잡다
전쟁을 치른 뒤 궁전에는 다시 잔치가 열렸다. 홍고르는 적진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고, 사날과 사와르는 서로의 공을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밍얀은 먼 나라에서 돌아온 준마들을 자랑했고, 알탄 체지는 다음에 찾아올 위험을 헤아렸다. 그 가운데 장가르는 새로운 세대의 용사들을 바라보았다. 봄바에는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싸울 젊은 영웅들이 자라고 있었다.
장가르의 아들 하라 질간, 홍고르의 아들 호숀 올란, 알탄 체지의 아들 알랴 숑호르가 그들이었다. 세 젊은이는 오래전 장가르를 싸움에서 이긴 적이 있는 바드민 올란을 사로잡으러 떠났다. 바드민 올란은 한때 장가르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성장해 다시 겨룰 기회를 남겨 준 강자였다. 세 아들은 먼 길을 달려 적국으로 들어갔고, 힘을 모아 바드민 올란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포로를 이끌고 봄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봄바로 끌려온 바드민 올란은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장가르보다 낮은 자리에 앉히려 하자 그는 거절하고 당당히 상석으로 올라갔다. 예전에 장가르의 목숨을 살려 준 일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장가르는 옛 적수의 자존심을 인정했고, 바드민 올란도 봄바의 번영을 빌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궁전에는 다시 잔치가 열렸다. 세 아들은 아버지들과 같은 자리에서 모험을 이야기했고, 봄바의 영웅담은 다음 세대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바드민 올란을 사로잡아 봄바로 돌아오는 세 영웅의 아들들
4.4. 장가르와 봄바의 이야기가 초원의 노래로 전해지다
봄바의 황금 궁전에서 열린 잔치는 끝나지 않을 듯 이어졌다. 장가르와 홍고르, 알탄 체지와 여러 용사들이 서로 마주 앉아 전장에서 돌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금빛 말 떼는 넓은 들에서 풀을 뜯었고, 백성들은 봄과 가을이 이어지는 땅에서 살아갔다. 하지만 봄바를 노리는 적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사신이 나타나고 또 다른 원정이 시작되면, 영웅들은 술잔을 내려놓고 새로운 전장으로 향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장가르의 모험을 잊지 않았다. 초원의 한 천막에 사람들이 모이면 노래꾼은 장가르가 어린 고아로 살아남아 나라를 되찾은 일부터 들려주었다. 이어 홍고르가 망나 칸과 맞선 이야기, 밍얀이 먼 나라의 말 떼를 몰고 온 이야기, 사날과 사와르가 싸우고 돌아온 이야기를 불렀다. 듣는 이들은 때로 환호했고, 영웅이 적에게 둘러싸이는 대목에서는 숨을 죽였다. 노래가 끝나면 다음 모험을 청했다.
이 노래를 이어 온 사람들은 장가르치라 불렸다. 그들은 스승에게서 배운 긴 이야기를 기억해 다음 세대에게 전했고, 지역마다 서로 다른 모험과 인물의 이야기가 덧붙었다. 어느 가수는 홍고르의 용맹을 길게 노래했고, 다른 가수는 장가르와 봄바의 찬란한 잔치를 더욱 풍성하게 그렸다. 노래 속에서 장가르는 여전히 말을 타고 달렸으며, 그를 따르는 영웅들은 끝없이 봄바를 지켰다. 이상향은 그렇게 초원의 사람들 사이에 남았다.
초원의 천막에서 장가르의 영웅담을 노래하는 장가르치
• 칼미크·오이라드 민중 구전, 유원수 주해, 『장가르 1』, 한길사, 2011. • 칼미크·오이라드 민중 구전, 유원수 주해, 『장가르 2』,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 칼미크·오이라드 민중 구전, 유원수 주해, 『장가르 3』,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 칼미크 구전 서사시, Saglar Bougdaeva 옮김, Jangar: The Heroic Epic of the Kalmyk Nomad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23.
• 조현설, 「유목적 유토피아의 구조와 그 영웅들 — 몽골 구전영웅서사시 『장가르』의 경우」, 『인문논총』 제76권 제4호, 2019, 13~41쪽. • 최원오, 「몽골 영웅서사시 『장가르』에서의 ‘영웅의 코드’와 ‘행위패턴’」, 『인문논총』 제76권 제4호, 2019, 43~89쪽. • 이소윤, 「영웅의 눈물과 전쟁의 기억들 — 칼미크 오이라드 민중의 구비서사시 『장가르』를 중심으로」, 『인문논총』 제76권 제4호, 2019, 91~119쪽.
「장가르」는 칼미크·오이라드 민족 사이에서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영웅서사시로, 지역과 연창자에 따라 사건의 내용과 순서가 다르게 전해진다. 이 글은 엘렌 오블라 계열의 주요 영웅담을 중심으로 하되, 어린 장가르의 성장에 관한 다른 오이라드 전승도 참고하여 4장 16절로 재구성하였다. 마지막 4.4절은 원전의 단일한 결말이 아니라 서사시가 후세에 전해지는 모습을 서술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