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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이일걸의 지식창고 2020.09.21. 16:58 (2020.09.21. 16:58)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교’와 ‘바틀리나 곶’을 답사하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니콜라이 2세에 의해 설립돼 스탈린에 의해 폐교되었다가 부활한 역사의 현장을 가다
아무르만 해안가의 해안시민공원을 둘러보고 아르바트 거리를 따라 올라왔다. 도로 양편에 세워진 벽돌과 돌로 지어진 중세풍의 건물들은 높아야 4~5층이다. 안내를 담당한 가이드인 담양댁의 블라디보스토크 자랑 이야기 중에는 ‘서태지 공연’이 ‘지신허’ 마을에서 2004년 5월 8일에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연추(煙秋)의 지신허 마을은 한인들이 1863년 최초로 이주하여 개척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한국인의 첫 공연이 열려 이를 기념하는 비를 세웠다고 하였다.
 
또한 미국인 배우로 알았던 ‘율 브린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으며, 영화 ‘십계’와 ‘왕과 나’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이 명배우의 생가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어 생가 앞에 동상도 세워져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우리 탐사일행은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극동연방대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금각대교를 지나서 루스키 섬으로 이동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는 연해주 지역의 경제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극동과학센터‧국립극동대학 외에도 과학기술‧의학‧미술‧무역‧수산 등의 여러 대학이 있었지만 2011년에 극동연방대학교로 통합되어 루스키 섬에 대규모 캠퍼스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는 극동지역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이곳에서 APEC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극동연방대학교는 태평양어업‧해양학연구소와 부속해양박물관이 유명하다. 그리고 해외 최초의 5년제 과정의 한국학대학이 1995년에 설립되었으며, 한국어학과‧한국역사학과‧한국경제학과의 세 개 학과로 구성되었다. 본래 국립극동대학은 니콜라이 2세의 특별지시에 의거해 1899년에 동양학대학으로 설립되었지만 1930년대 후기의 스탈린 통치기간에 폐교되었다가 1956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극동지역에선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루스키 섬의 바닷가에 면한 언덕에 세워진 극동연방대학교는 실제로 규모도 크고 캠퍼스가 넓었다. 대학 주차장에 주차시킨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은 다시 대학 셔틀버스를 탔다. 학기 중이라 가방을 든 남녀 대학생들이 가득 찼다. 러시안이 아닌 동양계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대학 본부건물 부근에서 하차하였다. 잔디로 잘 가꾸어진 교정을 보면서 도로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동쪽 해변에 이르렀다.
 
작은 원형의 저수지도 만들어 둔 것 같았다.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루스키 섬에는 대학교 건물 외의 유흥시설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학생들에겐 잡념을 버리고 학문에만 몰두하라는 푸틴의 전략으로 보였다.
 
타원형의 동북방향 해안선을 따라 배치한 대학 건물들은 동쪽 바다로 향해 있었다. 잔디밭 가운데 드문드문 놓인 바위에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학생들도 보였다. 한 시간 정도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가 우리 일행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정문 입구에 하차하였다.
 
탐사회원들은 전용 버스에 승차하여 ‘바틀리나 곶’으로 이동하였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 차창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맑은 공기로 인해 모두들 들뜬 기분이다. 30분 정도 버스가 남쪽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멈춘 곳은 주변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언덕지대다. 남쪽 방향에 바틀리나 곶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른쪽으로 끝부분이 굽은 형태의 막대 모습이었다. 바틀리나 곶 뒤에도 여러 형태의 해안선이 층층으로 나타나는 배경이어서 찍는 사진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다. 이번 일정에 빠진 ‘토비지나 곶’의 해안이 저들 중에 있을 것이리라 추측해본다.
 
바닷물에 이어진 수십 미터 되는 바위절벽이 나타났고 우측 언덕에는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흰 갈대꽃이 만발하여 보기도 좋아 사진도 찍었다. 갈대꽃을 배경으로 일행 중 한 명인 이석홍 장군의 독사진도 찍어드렸다. 이윽고 바닷물이 출렁이는 바틀리나 곶 끝부분에 도착하여 맑은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이렇게 맑은 바다가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일행 중에는 해안절벽 아래 바닷가에 내려가서 조개를 줍는 이들도 보였다.
 
늦은 오후의 바닷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버스에 승차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돌아오는 중에 서쪽으로 지고 있는 붉은 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오후 7시경에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식당으로 모였다. 오늘 저녁식사는 특식인 모양이다. 식탁 앞에는 킹크랩이 가득 쌓여 있다. 나 역시 워낙 시골 출신이라 영덕대게는 먹었지만 킹크랩은 먹어 본 일이 없었다.
 
김철종 단장님의 인사말씀과 김수필 이사장의 건배제의 등이 끝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정담을 나누는 회식이 시작되었다. 여하튼 킹크랩으로 배를 채운 저녁만찬이었다. 식사 후 절친인 구‧박 두 친구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의 야경을 구경하자는 나의 제안에 모두 좋아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인 황‧장 두 팀장을 데리고 번화가인 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 거리로 내려가니 5평 정도의 작은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 주인은 20대 젊은 여성으로 매우 상냥했다. 우리 일행 5명이 카페에 들어가니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한때 민간인출입금지 구역이었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심 시가지에서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보드카를 마시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구‧박 두 친구는 어젯밤 호텔 바에서 현지 러시아인들과 자연스레 대화하면서 맥주를 마셨다고 하였다. 150여 년 전 한인들이 개척했던 이곳 연해주 신한촌의 역사와 황폐해진 현지에서 느낀 나그네의 씁쓸한 마음까지 보드카가 달래줄 수는 없었다. 문득 19세기 말 네 번이나 조선팔도를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기록을 남긴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 남긴 기사들이 떠오른다.
 
비숍은 당시 조선의 정치상황을 예리하게 꼬집었다. 이 책은 조선 지도층을 하층 평민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관료’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비숍은 ‘조선인들은 잘 생기고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인데도 게으르고 가난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며 그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연해주의 이주 한인마을에서의 풍요롭고 근면한 한인의 모습을 보고서는 ‘주체성과 독립성이 강하고 영국인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들로 변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숍은 조선을 4회(1894년~1897)나 방문하면서 연해주 한인마을에 들렀다. 이 마을은 연해주 이주 한인들이 첫 신한촌을 이루었던 개척리 마을이다. 1863년에 연추의 지신허 마을에 첫 이주한 한인들은 이주자들이 증가하자 1874년 개척리에 첫 신한촌을 개척하였으며, 1911년 러시아 정부에 의해 철거될 때까지 47년 동안 평화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항일투쟁의 요람이 되었음을 비숍은 기록으로 증명하였다.
 
비숍이 여행한 조선 후기의 기록은 정치적 지도자가 어떤 형태의 지도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다르게 나타났음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지도층의 위정자들은 조선 후기의 부패한 지도자들보다 나은가 못 한가 반문해본다.
 
내일은 연해주 항일투쟁의 대부였던 최재형 선생의 고택이 있었던 우수리스크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참석한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답사를 기대해본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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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