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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이일걸의 지식창고 2020.10.05. 16:41 (2020.10.05. 16:41)

하바롭스크 행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세 강의 물줄기가 합해져서 만들어내는 바다 같은 흑룡강의 놀라운 풍경과 조우
드디어 연해주 동포들이 83년 전에 이유도 모르고 목적지도 모른 채 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오늘 타기로 하였다. 저녁식사 후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까운 대형 마트에서 필요한 먹거리를 사라고 한 시간의 자유 시간을 얻었다. 아마 하바롭스크 역까지는 11시간이 소요되기에 기차 안에서 필요한 먹을 거리를 준비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광덕과 나는 보드카와 맥주 여러 병 및 건포도 등 안주도 샀다. 오후 8시 어둠이 다가오자 횡단열차가 굉음을 내고 출발했다. 우리 열차 칸은 친구인 광덕, 온제, 황 배우와 같이 4명이 장시간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운명이었다. 온제는 감기가 들었다면서 위 칸에서 환자 노릇하듯 잠이 들었다.
 
창밖은 짙은 어둠이다. 스탈린의 강제이주명에 따라 마치 소, 말처럼 짐칸에 끌려갔던 연해주 한인들의 운명은 어떠하였을까. 자신의 처지를 하늘에 맡겨버린 양 체념하고 말았을까. 조국의 주권상실로 인한 나라 잃은 슬픔보다도 하루아침에 황야에 내동댕이쳐진 처자식의 얼굴 보기가 더 민망했을 것이다.
 
횡단열차는 북쪽 행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스탈린의 연해주 한인 강제이주에 대한 열차 칸의 분노의 열기도 뜨거워지듯 취기가 올랐다. 뒤늦게 합류한 장 팀장도 지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주장한다. 자정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늦도록 대화를 하다가 잠깐 조는 사이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어둠을 뚫고 달리더니 아침 8시 15분에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하였다.
 
무거운 여행 가방을 버스에 실으니 오전 9시다. 30분 후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10시 10분에 아무르스크 거리를 따라 시내 중심가를 돌고 흑룡강 강변 공원을 산책하였다. 흑룡강은 북쪽의 몽골지역에서 발원하는 눈강이 하르빈시 앞에서 송화강을 만나고, 하르빈시를 지나면 남쪽의 목단강 물을 만나 큰 하천을 형성하여 북류하여 오호츠크 해로 들어간다.
 
하바롭스크주의 인구는 200만명이며 하바롭스크시는 6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시가 역동적인 분위기라면 하바롭스크시는 다소 조용한 분위기다. 하바롭스크 역 부근에는 잣나무가 가로수이더니, 미루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또한 고급 수종인 전나무를 가로수로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르스크 거리의 건물들은 출입문가 창문들이 크지 않았으며 이중창으로 보인다. 아마 시베리아의 겨울 추위 탓으로 보인다. 연해주를 개척한 무라비에프 장군의 동상도 보인다. 큰 규모의 혁명내전 영웅 기념탑이 있었다. 하바롭스크시를 건설한 ‘제프체코’ 제독의 동상도 있다. 콤스몰 광장에서는 ‘성모승천’ 사원에 들렸다. 내부의 장식과 규모가 매우 웅장하였다. ‘프레오브 라줸스키’ 대성당도 보였다.
 
그리고 극동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향토박물관’을 관람했다. 구관 1층에는 동식물이, 2층과 3층에는 선사시대의 동식물이, 지하 1층에는 ‘사진으로 본 1,2차 세계대전과 공산혁명’이 전시되고 있었다. 신관 1층에는 바다생물이, 2층에는 연해주 러시아인의 생활상이 전시되고 있었다.
 
점심식사 후 하바롭스크 중앙 재래시장을 관람하였다.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밀집하였으며, 매장에는 벌써 추운 겨울용 옷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재래시장의 구석구석을 관찰해보니, 관객을 유치하려는 섬세한 부분이 부족하고 투박스럽고 소박한 면이 보인다. 실제로 부드러운 여자 점원보다는 러시아의 남자 점원이 더 많아 보였다. 겨우 털모자와 예쁜 ‘마트료시카’도 구입했다.
 
흑룡강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배에 승선하고 출항해보니 회원 1명이 늦게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강의 하류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데 1시간이 소요되었다. 눈강과 송화강 및 목단강의 세 강의 물줄기가 합해져서 만들어내는 바다 같은 흑룡강의 놀라운 풍경이다.
 
강의 좌측은 강폭이 매우 넓었다. 강물이 실어 나른 흙이 쌓여 만든 삼각주와 그 위에 저절로 자라는 나무들만 보인다. 강 건너편의 모습이 거의 희미하여 강물과 하늘 끝이 거의 맞닿아서 천애(天涯)라고 부르는 게 이걸 말하는 것 같다. 강 우측은 절벽이 이어지고 그 위에 붉은 벽돌 주택들과 아파트, 20여층 호텔 건물이 보였으며 깃발이 펄럭인다. 러시아인들도 풍경과 조망이 좋은 강변을 좋아하는 본성은 우리네와 같은 모양이다. 강바람도 제법 세다. 물빛은 짙고 검푸르다. 강물 위로 기러기가 홀로 날아 간다.
 
우리 일행은 하선하여 호텔로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렀다. 광덕과 나는 맥주와 보드카 여러 병과 스낵 안주도 샀다. 오늘 밤은 연해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회원 간의 마지막 소통의 기회를 염두에 두었다.
 
저녁식사는 한정식으로, 우리가 즐겨먹는 돼지고기 볶음, 육개장, 김치, 시금치 나물이 보였다. 9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하였으며, 10시부터 우리 방에서 이번 여행 중에 어울렸던 다섯 명과 최 교수 부부에다 윤 이사를 초청하니 8명이 되었다.
 
그 간 여행 중 못 다한 대화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하바롭스크의 밤을 지낸 기억이 새롭다. 준비했던 보드카와 맥주가 동이 나서, 내가 준비한 보이차를 들면서 한 시간 더 대화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여행은 연해주 항일투쟁가의 대부인 최재형 의사의 존재를 회원들에게 각인시켜준 답사여행인 동시에 1937년 피맺힌 강제이주로 내몰린 연해주 동포들의 실상을 실감한 체험장이었다.
 
뒤늦게 최재형 의사의 부인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1879~1952)의 묘가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의 비쉬퀘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음을 손정일 케인대 교수가 밝혀내었다. 1937년 강제이주당한 부인은 키르키즈스탄에서 살다가 돌아가셨으며 공동묘지에 묻혔다. 부인은 1920년 남편을 일본군에 잃었고 장남도 항일투쟁 중에 사망하였으며, 차남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부인인 최 엘레나는 19세 연상의 최재형 의사를 만나 8명의 자녀를 두었다. 연해주 항일투쟁의 대부였던 최재형 의사의 뒤에는 부인의 내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의군’에 무기와 의식주를 제공하고, 항일투사였던 이범윤, 이상설, 이위종, 안중근 등이 크리스키노의 최재형 대저택에서 여러 날 숙식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최재형의 부인인 최 엘레나의 내조의 공이었다.
 
험난했던 항일투쟁은 비록 최재형 일가를 비극으로 내몰았지만 이와 같은 귀중한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 대한민국의 광복이 가능하였으니, 최재형 의사와 최 엘레나 부인의 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금년은 최재형 의사가 순국하신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재형 의사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모든 재산과 목숨마저 내놓은 순국정신은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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