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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이일걸의 지식창고 2020.12.15. 09:24 (2020.12.15. 09:24)

몽골 적석총의 구조 형식과 타리아트군(郡)의 적석총 사슴돌 비석을 탁본하다

 
[스카이데일리 연재] 그림으로 의사표현을 했던 태초의 신비와 조우하다
일반적인 몽골의 적석총의 특징을 앞 편에서 대략 서술하였다. 몽골의 중형 이상의 적석총은 원형의 작은 동산 봉우리 형태의 돌무지로 남아있었다. 다만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돌무지가 무너지고 도굴되어 그 원형을 대부분 잃었을 뿐이다. 고구려의 장군총처럼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몽골 적석총은 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몽골 적석총이 고구려의 적석총보다 시기적으로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고구려 적석총에 없었던 일정 형식의 원형 부속 유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하튼 초기 몽골 적석총을 축조한 비정시기의 문제는 몽골에 펴져있는 여러 종류의 적석총을 답사한 자료가 나온 후에야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답사단은 도로변에 차량을 모두 세운 뒤 탁본 도구를 가지고, 500m 정도 떨어진 적석총을 향해 걸어갔다. 적석총 구조 측량팀은 적석총 주위에 흩어진 유구의 위치와 폭과 길이를 재었으며, 탁본 뜨는 팀은 사슴돌 주위에 한지를 붙이고 물을 품는 등 탁본을 뜨기 시작하였다. 특히 탁본 경험이 많은 최성미 원장님의 지시에 따라 회원들은 사슴돌 4면의 삽화 그림을 향해 먹물 봉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사슴돌 머리에 새겨진 북두칠성까지 탁본을 뜨는데 무려 두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더구나 사슴돌 삽화 위쪽은 해와 달과 28수의 별자리를 새겨진 것을 발견한 답사팀 회원들은 터져 나오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느 듯 해는 서산에 지려고 하는 5시를 넘겼다. 사슴돌 비석의 탁본을 마친 답사단은 다시 승차하여 숙소가 있는 카라코룸으로 향했다.
 
▲ 몽골 타리아트군 적석총 사슴돌 비석 탁본 (2018.6.25.) [사진=필자제공]
 
일반적인 큰 형태의 몽골 적석총은 권위의 상징인 사슴돌 비석이 배치되어 있다. 이 사슴돌 비석에는 문자 대신에 동물 및 활, 칼, 해, 달, 별들이 그려져 있고 문자가 없다는 점이 특이하였다. 그렇다면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 사슴돌이 세워진 것으로 가정한다면 적어도 서기전 25~30세기에 적석총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몽골과 알타이 지역에 거주했던 종족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아시아의 중원지역에서 나타나는 초기 문자는 서기전 26세기경에 그림글자인 고금문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답사단이 조사한 ‘오르도 호오라인 암 사슴돌’ 비석은 우리가 답사한 대형 적석총들 중에서 중형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대형 적석총이 반드시 갖고 있는 앞 뒤 좌우의 석렬을 배치하였으며, 적석총 윗부분은 움푹하게 동서 방향에 두 부분이 파진 부분은 도굴당한 흔적으로 보였다. 이곳의 적석총 역시 부속 유구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훼손되어 석렬의 일부분은 흔적만 남은 것도 보인다. 적석총 전면에 배치한 흰색 화강암의 사슴돌 비석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훼손이 덜 된 상태였다.
 
몽골 적석총은 봉우리 형태의 돌무지와 그 바깥에 있는 방형 및 원형 테두리로 이루어지며, 이에 부속된 크고 작은 규모의 석재 구조물로 구성된다. 주변 테두리는 방형이나 원형으로 큰 돌로 나란히 쌓아올려 조성한다. 그러나 이 적석총은 원형 돌무지 형태이고 바깥 역시 원형 형태로 석재를 둘러쌓았다.
 
몽골국립박물관에는 12개 형식의 적석총이 보이나 이 적석총은 지름 36m, 높이 3.4m의 원형 적석총에서 8.5m 거리의 간격을 두고 작은 돌로써 바깥 원형 테두리를 둘렸다. 또한 적석총에서 3.3m 앞에 사슴돌 비석을 세웠으며, 비석 좌우에 3~4개의 석렬을 배치하였고, 이 석렬에 맞추어 원형 적석총 좌우에 희미하게 5~9개 내외의 석렬 형태가 보인다. 적석총 후미에도 2개의 석렬 유구가 있다. 비석에서 2.7m 앞에 14m 길이의 또 다른 석렬을 배치하고 양끝에서 좌우 대칭 형태로 비스듬히 석렬을 세워 사슴돌 비석의 권위를 표현하였다.
 
이 적석총은 사슴돌 비석이 없는 적석총과는 다른 복합형의 적석총 구조로 보인다. 즉 원형의 적석총을 두고, 원형의 주변 테두리에 앞면 사슴돌 비석 석렬에 맞추어 동서 좌우 9개 정도의 부속 석재를 배치하였으며, 뒤쪽에 2개의 부속 석재 유구가 테두리에 붙어 있다. 원형의 적석총과 앞 쪽의 부속 석재 유구 사이에 위치하는 사슴돌 비석은 가로 0.30m, 세로 0.26m, 높이 1.35m이다. 비석의 방위각은 동남향 120도이다.
 
타리아트군(郡)의 넓은 평원의 적석총 앞에 사슴돌 비석에 새겨진 삽화의 구성과 의미는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 눈에 익숙한 이미지가 나타내려는 상징적인 이미지의 의미를 추측할 뿐이다.
 
적석총에 세워진 사슴돌 비석은 청동기시기(B.C 3,000 ~ B.C 2,000)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문자 발생이 시작될 무렵으로 당시 몽골지역은 문자가 미보급된 지역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시기 몽골에서는 자신들의 의사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사슴돌 비석은 3등분으로 나누어진다. 원래 대부분의 학자들은 윗부분 두 개의 면에 대해, 태양, 달, 거울, 원형의 이미지나 별과 행성처럼 원형의 이미지나 둥근 비석의 아래 많은 타원형의 움푹 파진 것처럼 원형의 이미지로 이해한다. 사슴돌의 다른 윗부분은 두 개 내지 세 개의 경사진 선이나 서로 다른 크기의 원형, 작은 패인 자국의 선들이 그려져 있다.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묘사를 우주의 믿음에 속하는 것처럼 설명하였다. 소수의 사슴돌 비석에는 해와 달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사슴돌 비석의 삼등분 분할의 요소들이라 주장했다.
 
사슴돌 비석의 윗부분에 그려진 목걸이의 묘사는 하늘을 지향하는 것이며, 별과 하늘과 연관된 것으로 상징화했다. 중간 세계의 묘사처럼 사슴이나 다른 발굽동물들의 이미지로, 사슴돌 비석의 중간 부분은 가득 채워진다.
 
오늘날 해, 달, 별, 행성들의 묘사처럼 윗부분에 있어서 원형이나 패인자국(divet)으로 특징짓는 설명들은 더 많은 포괄적인 연구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삽화들이 인간 개인적인 위 부분의 장식품에 더 가깝게 기인하는데 동의한다. 사슴돌 비석은 사회적 단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정치적이거나 절차이거나 둘 다 어떤 사람에게 헌신적이었던 기념물인 것은 확실하다. 돌에 새겨진 삽화들과 그들이 모두 자리 잡았던 경기장에의 의식 제물들은 목축 유목민과 샤머니즘적인 전통의 이념을 참고 견딘 셈이다.
 
이와 같이 사슴돌 비석에 새겨진 삽화들은 문자가 창제되기 전인 청동기시기의 몽골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우주 철학인 동시에 삶의 지혜와 일상생활의 양식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몽골답사단으로 참여하여 몽골 적석총의 사슴돌 비석에 새겨진 이미지를 어렵게 탁본하였다. 사슴돌 비석에 새겨진 삽화 이미지에 대한 서술은 다음 편으로 미루어야겠다.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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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