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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2.07. 11:40 (2017.12.07. 11:40)

파주 보광사 방문기 (어실각, 지장전,무영탑 등) (2016. 3. 6)

 
파주 보광사 방문기 마지막은 어실각, 지장전, 무영탑 등이다.
파주 보광사 방문기 마지막은 어실각, 지장전, 무영탑 등이다. 어실각(御室閣)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명복을 위한 사찰인 보광사에 위패(位牌)를 모신 곳이다. 옆에는 향나무가 300년 세월이 힘겨운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자란다.
 
보광사 방문기를 정리하다보니 파주에는 영조와 관련된 장소가 3곳이 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묻힌 ① 소령원(비공개로 입장 불가)이 보광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② 모친를 위한 사찰인 보광사의 대웅보전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라 전하고, 영조의 모친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이 있으며, 영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300년 된 향나무도 있다. 그뿐 만이 아니라 파주에는 ③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와 세자빈의 무덤인 파주 영릉이 있으므로 차량을 가져온 경우라면 영릉이 있는 파주삼릉(입장료 1,000원)도 방문하면 좋을 것이다.
 
 
보광사를 둘러보면 단청색이 바래서 고색창연한 느낌이 나는데 사찰 주변에 등산객들이 보인다. 아마 보광사 도솔암과 뒷산인 고령산(앵무봉, 622m)과 개명산을 산행하면서 사찰도 구경하는 것으로 보인다.
 
 
▼ 보광사 배치도
 
▼보광사 측면 전경
 
▼어실각(御室閣)과 향나무
 
대웅보전 오른편 위쪽에 정면, 측면 1칸 사모지붕 건물로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어실각 바로 앞에 영조가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영조의 애틋한 효심을 엿볼 수 있다.
 
 
 
 
▼보광사 홈페이지에 있는 어실각내 위패 사진
 
▼영조가 심었다는 300년 된 향나무
 

 
▶숙빈 최씨에 대하여
 
보광사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와 관련 있는 절이다. 숙빈 최씨는 이곳에서 5~6km 북쪽에 있는 소령원(昭寧園)에 잠들어 계신다. 가까운 절 보광사는 자연히 숙빈의 원찰이 되었다. 보광사 한켠에는 지금도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御室閣)이 있으며 그 앞으로는 영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늙은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른바 무수리였다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사극(史劇)에 등장했으니 긴 이야기는 거두고 두 가지만 짚고 가려 한다. ①숙빈 최씨는 무수리였나? ②장희빈(경종의 생모)을 결정적으로 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숙빈 최씨가 무수리였다는 역사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또한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는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와 광화당 이씨가 고종에게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라고 하여 숙빈 최씨는 본래 침방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조선의 궁녀에 대해 이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영화나 TV 극에서와는 달리 궁녀는 왕과 잠자는 것이 주 임무는 아니었다. 그들은 지밀나인(至密內人: 왕의 시중), 침방나인(針房內人: 바느질), 수방나인(繡房內人: 수놓기), 소주방나인(燒廚房內人; 음식, 잔치)…등으로 궁중살림 전문가 집단이었고 이들의 취사와 세탁 등을 담당하는 하인 성격이 무수리, 취반비, 방자, 파지 등이었다. 최씨가 침방출신이라면 무수리가 아니다.
 
한편 숙종 27년(1701년) 9월 23일 실록 기록은 의미심장하다.
 
외간(外間)에서는 혹 전하기를, 숙빈 최씨가 평상시에 왕비(민비)가 베푼 은혜를 추모하여, 통곡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에게 몰래 고(告)하였다’하였다. (外間或傳, 淑嬪 崔氏, 追慕平日逮下之恩, 不勝痛泣, 密告於上). 무엇을 고한 것일까? 장희빈이 취선당에 신당(神堂)을 차려 놓고 수시로 민비를 저주했다는 내용이다. 이 일로 장희빈은 갔다. 숙빈 최씨는 베갯머리 송사로 연적을 꺾었으며 세 아들을 낳아 둘째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사랑과 인생에 성공한 여인이었다. - 이한성 동국대 교수
 
 
▼영조(英祖, 1694 ~ 1776, 재위 52년) 어진이다. 영조는 조선 왕중에서 최장 52년간 재위하였으나 자식(효장세자와 사도세자)복은 없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장자인 효장세자는 일찍 죽었고(파주 영릉), 사도세자(정조의 부친, 수원 융릉)는 뒤주에 갇혀 죽었으니 영조는 평생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살았을 것이다.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서 1994년에 지어졌다. 안에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해서 시왕상, 판관, 녹사, 인왕상, 동자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 앞에는 무영탑이 조성되어 있다.
 
 
 
 
▼무영탑(無影塔)
 
 
 
 
▶보광사 후문으로 뒤에 보이는 건물이 지장전이다.
 
 
▼권선각
 
1999년 창건된 권선각은 각종 법회를 진행하고 있는 ‘설법전’과 찻집 ‘도솔천’그리고 ‘봉향각’이 위치하고 있다
 
 
 
 
도솔암과 수구암은 생략한다.
 
 
▼ 보광사 옆에 있는 영묘암으로 대웅전 편액이 세로로 쓰였다.
 
 
 
▼ 보광사 찾아가기
대중교통은 지하철 구파발역이나 삼송역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보광사 정거장에서 하차후 도보로 10분 소요된다.
 
 
 
마지막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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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광사홈페이지, 문화재청, 민족문화대백과,위키백과,이한성,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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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