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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면 향토사 (2018)null 2018.07.11. 09:22 (2018.07.11. 02:38)

제4장 다도면 연혁과 행정 구역

 
 
다도면은 원래 남평군에 속했다. 남평군(南平郡)은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남평군은 본래 백제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다.
757년 현웅현(玄雄縣)으로 개칭하고 무주(武州 : 광주광역시)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 남평현(南平縣)으로 개칭하고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 감무를 두면서 주현으로 승격하였다.
1392년 남평감무를 폐지하고 화순현의 속현이 되었다.
1394년 남평감무가 다시 설치되었다.
1409년 전라도의 모든 속현과 향·소·부곡이 폐지될 때 남평에는 속현이 없었으나, 1415년에 능성현의 속현이였던 철야현(鐵冶縣), 운곡소(雲谷所), 도민부곡(道民部曲) 지역이 남평과 가깝다 하여 남평에 편입되었다.
1895년에 나주부 남평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전라남도 남평군이 되었다.
군내에 군내면, 동촌면, 저포면, 다소면, 도천면, 덕곡면, 죽곡면, 욱곡면, 어천면, 금마산면, 두산면, 등포면이 있었다.
1914년 남평군이 폐지되어 나주군에 편입되었다.
군내면·동촌면·저포면을 남평면으로, 금마산면·어천면을 금천면으로, 두산면·등포면을 산포면으로, 다소면·도천면은 다도면으로, 덕곡면·죽곡면·욱곡면은 봉황면으로 통폐합되었다.
1975년 나주호 준공에 따른 면소재지의 수몰로 판촌리에서 신동리 현 위치로 면소재지가 변경 현재에 이르고 있음.
1995년1월1일 도농복합형 나주시로 통합됨.
1995년 남평면이 남평읍으로 승격하였다.
2014년 광주·전남혁신도시 부지에 편입된 금천면 일부와 산포면 일부를 관할로 빛가람동이 설치되었다.
옛 남평군 지역은 나주시의 남평읍, 금천면, 산포면, 다도면, 봉황면, 빛가람동 이상 1읍 4면 1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1899년경(광무3)에 편찬된 전라남도남평군읍지(全羅南道南平郡邑誌)에는
 
南平郡邑誌 : 建置沿革, 邑名, 官職, 坊曲, 道路, 姓氏, 山川, 堤堰, 土産, 戶口, 結摠, 公廨, 樓亭, 壇祠, 橋梁, 驛站, 寺刹, 古迹, 仕宦, 人物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편찬시기에 대한 단서는 사환(仕宦) 항목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에 이근홍(李根洪)이 기해(己亥) 2월 13일에 남평군에 부임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기해년은 1899년(광무3)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읍지는 1899년(광무3)에서 멀지 않은 시점, 이근홍이 남평군수로 재직할 당시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읍지의 책 크기, 종이 재질, 판식이 1899년 편찬된 읍지들과 유사하며, 대한제국기 의정부(議政府) 참사관실(參事官室)의 인장이 찍힌 것도 1899년 편찬된 다른 읍지들과 동일하다.
 
본 책은 필사본이며, 1책 11장으로 되어 있다. 표제가 ‘전라남도남평지도읍지(全羅南道南平地圖邑誌)’, 내제가 ‘남평군읍지(南平郡邑誌)’로 되어 있는데, 이는 1896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인한 변화가 반영된 표현들이다. 이 시기 전국의 군현(郡縣)이 ‘군(郡)’으로 통일됨에 따라 남평 역시 ‘남평현’에서 ‘남평군’이 되었고, 또한 전라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면서 남평군은 전라남도 소속이 되었던 것이다. 본문 앞에 남평군의 지도가 첨부되어 있는데, 남평군 소속 면리(面里)의 이름과 위치가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이(里)에 대한 정보까지 담고 있는 읍지도는 드물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지도라 하겠다.
 
본 읍지는 건치연혁(建置沿革), 읍명(邑名), 관직(官職), 방곡(坊曲), 도로(道路), 성씨(姓氏), 산천(山川), 제언(堤堰), 토산(土産), 호구(戶口), 결총(結摠), 공해(公廨), 누정(樓亭), 단사(壇祠), 교량(橋梁), 역참(驛站), 사찰(寺刹), 고적(古迹), 사환(仕宦), 인물(人物), 효자(孝子), 효녀(孝女), 열녀(烈女)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치연혁에 따르면, 남평은 본래 백제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는데, 후에 신라가 현웅(玄雄)으로 이름을 바꾸고 무주(武州)의 영현(領縣)으로 만들었다. 고려시대에 남평군(南平郡)으로 개칭되고 나주(羅州)에 소속되었으며,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서는 화순(和順) 감무로 하여금 겸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조선 태조 3년(1394)에 다시 별도로 감무를 두었다가, 후에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현감(縣監)으로 바꾸었다. 한편, 본 읍지의 관직 항목에 현감이 아닌 군수(郡守)가 등장하는 것은 1896년 남평이 현에서 군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남평군의 방곡(坊曲)에는, 군내면(郡內面), 동촌면(東村面), 저포면(猪浦面), 다소면(茶所面), 도천면(道川面), 덕곡면(德谷面), 죽곡면(竹谷面), 욱곡면(郁谷面), 어천면(魚川面), 금마산면(金馬山面), 두산면(頭山面), 등포면(等浦面)이 있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산포면, 봉황면, 금천면, 다도면 일대에 해당하며, 읍치(邑治)는 남평읍 남평리 일대에 있었다.
 
도로 항목의 기록에 따르면, 남평에서 동쪽으로 능주(綾州)까지는 20리, 화순(和順)까지는 10리이고, 북쪽으로 광주(光州)까지는 10리이다. 또한 남평은 나주(羅州)와 서쪽으로는 25리, 남쪽으로는 45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남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로 문씨(文氏)와 반씨(潘氏)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지역의 산으로는 덕룡산(德龍山) 풍산(楓山), 중봉산(中峯山)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19세기말 남평군에는 공해(公廨)로는 객사(客舍)인 영평관(永平館)과 동헌(東軒)인 선칠당(宣七堂) 등이, 누정(樓亭)으로는 망미루(望美樓)와 관덕정(觀德亭)이, 학교로는 향교(鄕校)가 있었다. 단사(壇祠)로는 사직단(社稷壇), 성황단(城隍壇), 여단(厲壇), 문묘(文廟)가 있다고 적혀 있으며, 본래 효종 1년(1650)에 건립되어 백인걸(白仁傑)을 제향하였던 봉산서원(蓬山書院)은 고종 8년(1871) 조령(朝令)에 따라 훼철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찰로는 불호사(佛護寺), 운흥사(雲興寺), 죽림사(竹林寺)가, 고적(古迹)으로는 성산고성(城山古城), 문암(文巖)이 있었다.
 
사회경제적인 부문과 관련된 기록들도 담겨있다. 제언(堤堰) 항목에는 교촌제(校村堤), 오골제(烏骨堤) 등 20여 곳의 이름과 규모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남평의 토산물로 면화(緜花)와 백목(白木)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호구(戶口) 기록에 따르면, 원호(元戶)는 3,712호, 인구는 13,374구이며, 이 중 남자가 7,384구, 여자가 5,990구이다. 결총(結摠)은 논과 밭을 모두 합쳐 4,122결(結) 43부(負) 1속(束)으로, 이 중 실수조(實收租) 면적은 3,848결 24부 9속이다.
 
지역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다. 사환(仕宦) 항목은 역대로 남평에 부임했던 지방관들의 이름과 부임 및 퇴임 시기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서, 다른 읍지들의 ‘선생안(先生案)’ 혹은 ‘관안(官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본 읍지에서 전체 분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기록이 자세하다. 인물 항목에는 남평 지역의 저명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데, 효자, 효녀, 열녀 등 세부 항목을 설정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남평 읍지는 현재 본 읍지 외에도 여러 종이 전해지고 있는데,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각 읍지들이 편찬되던 시기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본 읍지를 다른 읍지들과 비교해 보면, 본 읍지 역시 기존의 읍지를 그대로 베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읍지에 수록할 내용들을 새로 조사하고 변화가 생긴 부분을 수정, 보완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 편찬된 남평 읍지들이 남평의 토산품으로 잉어, 석류, 매실, 죽전(竹箭) 등을 적어 놓은 반면, 본 읍지에는 면화와 백목이 기록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본 읍지를 통해 확인되는 19세기말 남평 지역의 호구수 및 토지결수 변화도 주목된다. 이전 읍지들의 기록에 따르면 18~19세기 남평은 5천여 호, 2만여 구가 살던 지역이었는데, 본 읍지에 기록된 수치는 이보다 확연히 적은 3,700여 호, 13,300여 구이며, 토지결수의 경우 이전 읍지들이 5천여 결로 기록해 놓은 데 비해, 본 읍지에는 이보다 적은 4천여 결정도로 적혀 있다.
 
전체적으로 본 읍지는 다른 읍지들에 비해 기록이 소략한 편이다. 특히 조선후기 대부분의 읍지들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조세 내역 관련 정보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적인데, 이는 이 무렵 세제(稅制) 개혁이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도면 기본현황
행정구역 : 11개리 25운영마을 43개반
가구 : 1,108세대.
인구 : 2,199명 (남 1,114, 여 1,085)
면적 : 7,314ha
관광지 : 나주호, 중흥골드스파, 불회사, 벚꽃길 등
 
위치 및 자연환경
나주시청에서 동서쪽으로 24km떨어진 지점에 위치
화순군 도암면과 경계, 산포면과 봉황면에 접하고 있음
남부에는 국사봉이 솟아 있고, 기타지역은 산지로 그다지 높지 않으나,
면 전체는 남고북저의 지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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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