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는 금강이 젖줄처럼 내륙 사이를 가로지르며, 알맞게 발달한 산지와 그 사이사이에 펼쳐진 평야들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조건이 이름 높다. 그리하여 충남인들은 ‘순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로 불려지게 하였으며, 이러한 풍요 속에서 백제문화로 대표되는 다양하고 발달된 문화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지역의 문화적 전통은 이미 백제이전에 금강과 서해안 연안의 선사-고대문화로서 수준 높은 터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해미의 주거지를 비롯한 각종의 선사 유적지들은 그러한 흔적들이며, 백제문화는 이러한 문화 기반 위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청남도는 백제 문화의 본고장이다. 서기 475년 문주왕이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나서부터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기까지 200여 년간 충남은 백제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는 서해안을 따라 발달한 ‘바닷길’을 통해 중국남조의 선진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이를 꽃 피워 일본에 전파해줌으로써 일본 고대 문화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충청남도는 선비문화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 조선 중기의 한국 예학을 선도했던 사계 김장생이나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을 위시하여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초려 이유태, 탄옹 권시 등등 뛰어난 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이들 기호학파는 학문과 덕행으로 사회 분위기를 주도하고, 그러한 사회 분위기는 양반의 예절과 선비의 생활문화, 그리고 국난을 당하여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절을 실천하는 전통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충청도하면 충절과 예의, 선비의 풍채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 같은 선비정신은 충남지역의 실학, 한말의 위정척사운동이나 의병활동, 일제시기의 개화운동과 민족운동으로 되살아났다.
백제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충청남도에는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특히 많은 백제유적들이 남아 있다. 화려한 무령왕릉의 부장유물, 정교함과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금동용봉봉래산향로 등이 공주와 부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공산성과 부소산성, 송산리와 능산리 고분군, 그리고 여러 불교문화 유적들이 백제의 영광을 전해주고 있다. 한편 공주와 부여 이외에도 중국불교의 전파경로를 보여주는 은은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운산마애삼존불과 태안 삼존석불, 예산 사면불상 같은 유적들이 많다.
이 밖의 주요 관광지로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지라든가, 김시습이 머물렀던 부여 무량사, 그리고 선비의 고장답게 이름난 선비와 인물의 유적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신도안이 있던 계룡산 국립공원과 안면도 송림이 있는 태안 해안국립공원, 수덕사가 있는 덕산 도립공원 및 내포지역, 대천해수욕장 등등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특히 계룡산은 한반도 오악(五岳)중의 하나로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의 유서 깊은 사찰이 많이 있으며, 조선왕조를 건설한 태조 이성계가 계룡의 지세가 왕도로 적합하다 하여 신도안으로의 천도를 도모하기도 한 곳으로 후에 정감록이라는 예언서를 낳기도 하였다. 현재는 이곳에 계룡신도시 및 삼군 사령부가 자리잡아 새날을 예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