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기(金琦) 공의 휘는 기이고, 자는 화경이며, 관은 광주이다. 공은 나면서 충의로움이 하늘에서 뿌리 박은 듯하였으며, 영민하고 비범함이 남보다 훨씬 뛰어났다.
임진왜란 당시에 동래출신의 의병으로 죽은 뒤에 어회장군 훈련원첨정으로 추증되었다. 그의 묘는 만덕동에 있고, 묘비에는 그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고 묘비의 규모는 높이 1.33㎡, 폭 34㎝, 두께 11㎝이다
◈ 권상덕(1904∼1975) 화명에서 태어나고, 교육으로서 학교와 고장을 발전시킨 애향교육자이다. 평생을 봉사정신으로 학교와 학생을 돌보며, 마을 걱정을 자신의 걱정처럼 생활하였고, 지순한 사랑과 성실한 정신으로 후진양성에 몸을 바쳤다.
◈ 만덕사지(萬德寺地)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3호, 1972년 지정, 소재지 북구 만덕동 543번지(사기마을) 일원.
구포에서 동래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 중턱에 있는 이 절터의 주위에는 사기마을이 있어 옛날부터 대규모의 절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2년 절터 중앙부의 장방형 축대(동서 68m, 남북 54m, 높이 4m)가 있는 금당지(金堂址)가 부산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 축대는 금당지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되었으며, 이 축대를 중심으로 뒤편과 동북 및 서북쪽 200m 지점에도 법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의 초석이 있다.
1990년과 1996년 2차에 걸쳐 부산시립박물관에서는 금당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방형 축대의 내부를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동서 길이 24.9m, 남북 길이 20.4m의 금당지가 확인되었다. 금당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평면구조는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금당지에서는 두 개의 축대가 조사되었는데 하나는 함석을 이용한 축대이며 다른 하나는 규격화된 정방형의 화강암으로 쌓은 축대이다. 전자는 초축된 것이며 후자는 증개축시 만들어진 것이다. 증개축시의 기단은 초축 기단의 바깥쪽에 만들어졌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다양한 연화문 숫막새, 당초문과 귀목문 암막새, 대규모 치미(망새), 팔각 좌대석, 연화문 좌대석, 청자와 분청사기 등의 도자기류, 화강암제 초석(礎石), 석등(石燈)의 보주(寶珠), 석탑의 노반(露盤) 등이다. 출토유물 중‘기비사(祈毗寺)’라는 명문기와가 나왔다. 이는 절터의 명칭을 알 수 있는 명문인데 문헌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절 이름이다. 기비사와 관련된 명칭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비현(其比峴)’이라는 현재의 만덕고개를 지칭하는 지명이 있어 한자는 다르지만 기비사와의 관련성을 시사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190m 지점에 당간지주(幢竿支柱) 1기가 있으며, 금당지(金堂址) 바로 뒤편과 동북방 200m 지점 그리고 서북방 170m 지점에는 칠성당지(七星堂址)를 비롯한 여러 당지(堂址)의 축대와 주춧돌(礎石)이 남아 있다. 또한 현 만덕동 네거리 서쪽에서 국장생표(國長生標)가 발견되었다. 그뿐 아니라 사지(寺址) 주변에는 탑(塔)을 비롯한 석등(石燈)·연자방아 등의 석재(石材)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사지(寺址)에서는 지붕 끝을 장식하는 치미 모양의 기와 조각과 연화문(蓮花紋)이 있는 숫막새기와 및 무늬가 없는 방형전(方形塼)을 비롯하여 청동보살입상(靑銅菩薩立像) 등이 출토된 바 있다.
◈ 만덕사지(萬德寺地) 당간지주(幢竿支柱) 부산시 지방유형문화재 제14호, 1972년 6월 26일 지정, 소재지 북구 만덕동 470-7번지.
만덕터널의 만덕동쪽 진입로 아래에 위치하며 2개의 석주(石柱) 중 1기(基)만 남아 있다. 기단부(基壇部)는 파손되었으며 간대로 보이는 석재가 석주의 안쪽 하단에 놓여 있다. 석주(石柱)의 규모는 가로 40cm, 세로 60cm에 높이 350cm이다.
범어사 당간지주에 비하여 치석(治石)이 훨씬 잘된 편이며 장치수법도 뛰어난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주의 외측면(外側面) 중앙에는 상하로 융기된 선대를 나타내어 조각하였으며 기둥의 꼭대기 부분은 외각을 깎아 호선(弧線)을 그리면서 2단의 굴곡을 두어 공간의 미를 나타내었다. 돌기둥 상단내면(上段內面)에는 장방형(長方形)의 간구(杆溝)를 두었으며 간공(杆孔)은 없다. 당간지주의 건립연대는 만덕사의 창건과 같이 고려 초기로 보고 있으며 주변의 만덕사 국장생표와 더불어 만덕사지의 경계를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구포동의 팽나무 천연기념물 제309호, 1982년 11월 3일에 지정, 면적 314㎡, 소재지 북구 구포동 46번지.
구포동의 팽나무는 구포역에서 동쪽으로 약 1㎞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하며 나무 높이 17m에 가슴둘레가 5.5m나 된다. 이 나무의 가지가 뻗어내린 폭은 약 30m에 이르며 수령은 약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수종(樹種)의 노거수(老巨樹)이다. 이 팽나무는 부산지방에 있는 노거수 중에서 생장이 가장 왕성하며 나무 모양은 우산 모양의 타원형으로 둥치에는 큰 혹이 달려 있다. 이 나무는 구포사람들의 당산목(堂山木)으로 신봉되고 있다. 해마다 정월 보름날이면 마을 주민 중에서 제주(祭主)를 뽑아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 구포왜성(龜浦倭城) 부산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6호, 1972년 6월 26일 지정, 면적 5,940㎡, 소재지 북구 덕천동 510, 511, 산 93번지 일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김해와 양산간의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김해 죽도성의 지성으로 쌓은 일본식 성이다. 일명 의성(義城), 또는 감동포성(甘同浦城)이라고 하며 상학산의 한 지맥이 끝나는 구법곡(仇法谷)의 표고 약 60m의 동산에 축조되어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낙동강을 끼고 그 밑에 선박이 정박할 수 있으며 멀리 서쪽으로 김해 죽도성(竹島城)과 북쪽으로 물금 증산성(甑山城)을 상망(相望)하고 있는 전략상의 요지에 해당되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과도군병(鍋島軍兵)이 수비하였다고 하며 일본성(日本城)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한번 보면 왜성이라고 알 수 있는 형태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성의 상단부의 석축지(石築址)는 거의 완전하고 누각지(樓閣址) 1개소와 성벽(城壁)은 최고 높이 10m, 회전높이 8m로 남겨져 있다.
◈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 천연기념물 제179호, 1966년 7월 13일 지정, 면적 약 127,000,000㎡(공유수면 포함 247,000,000㎡), 소재지 북구 구포동∼사하구 다대동까지의 낙동강 하구일대.
우리나라 최남단인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서 장림동, 하단동, 사상구 엄궁동, 감전동, 삼락동 등을 경유하여 북쪽으로는 북구 구포동 구포교에 이르기까지 또 서쪽으로는 강서구 명지동과 녹산동, 천가동 경상남도 김해시와 진해시 용원동 등을 포함하는 광활한 낙동강 하구 일대의 공유수면(公有水面)을 지정하여 이를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특히 낙동강의 넓은 하구에는 을숙도를 비롯하여 일웅도, 사자도, 장자도, 신호도, 진우도 등의 크고 작은 삼각주(三角洲)가 발달해 있고, 이들 삼각주와 하안(河岸) 일대에 우거진 줄풀과 일대의 숲은 철새들의 좋은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또 삼각주의 주변은 수심이 얕은 개펄이 넓게 형성되고 육수와 해수가 교차하므로 많은 프랑크톤과 각종 어류, 패류, 가각류 및 수초와 조류 등 철새의 먹이가 풍부하다.
그리고 이곳 낙동강 하류는 지리적으로 대양을 향하여 돌출한 반도부의 최남단에 위치하므로 바다를 건너서 이동하는 수많은 철새들의 출입관문이 될 뿐만 아니라 기후적으로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철새들의 번식 및 월동지로서 호적(好適)하다. 이와 같이 낙동강 하류는 지리적, 기후적으로 또 먹이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철새들이 강과 삼각주를 뒤덮고 날아오르는 모습은 우리나라 외의 타 지역에서는 유례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철새의 보고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