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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포 대리 지신밟기 구포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구포 대리 지신밟기는 낙동향토문화원의 고증을 거쳐 낙동민속보존회가 낙동민속예술제를 통하여 재현을 하였고, 1997년 5월 25일 제26회 부산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상쇠로서 지신풀이 선소리는 손운택(낙동민속보존회 고문)씨가 맡고 있다.
지신밟기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낙동강의 하류 지역인 부산의 북구 관내에는 동네마다 당산나무가 있고 새해가 되면 정월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당산나무 중에서도 구포의 대리 마을에 있는 팽나무는 부산·경남 일대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수령 500년이 넘었는데 국가의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구포에는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주지봉이 주산으로 솟아 있는데 이 봉우리 아래 음정골을 끼고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대리마을이 있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다른 마을처럼 이곳 구포 대리 마을에서도 풍물을 치는 사람이 앞장서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당산 앞에서 지신밟기를 시작하여 가가호호를 돌면서 지신풀이를 하던 풍습이 전해내려 온다.
지신밟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지던 민속놀이로서 잡귀잡신을 몰아 내고 각 가정의 안가태평과 무병장수, 풍농, 풍어를 기원하던 마을 사람들 전체의 놀이였다. 정초에 액을 막아야 일년 동안의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고래의 토속 신앙에서 비롯된 지신밟기는 동네마다 주산과 당산이 있어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나 거의가 비슷한 순서로 치러진다. 지신밟기 풍물패는 부잣집이나, 지난해 농사를 잘 지은 집부터 찾아가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 마당, 대청마루, 부엌, 우물, 소마굿간, 장독간, 칙간(변소) 등으로 돌면서 목청 좋은 선창자의 메김소리에 풍물소리를 반주 삼아 흥겹게 춤추면서 뛰어 논다. 지신밟기를 하면 주인집에서는 주식상을 차려내와 대접하고 곡식이나 돈을 내놓으면 다른 집으로 향한다. 이때 모아진 전곡은 동네를 위한 일이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썼다. 지신밟기는 모든 액이 소멸되고 한해의 복이 보장되는 것으로 믿어 온 민중들의 기원이 담긴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
◈ 구포 장터놀이 낙동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구포에는 조선시대 정부에서 받아들인 조세, 곡물 등을 쌓아 두는 남창이 설치되어 공물선, 상선, 어선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남창 근처의 강변일대에서 3일, 8일과 같이 닷새만에 섰던 구포장은 낙동강 유역의 생활물자를 집산하는 교역지로서 크게 번창할 수 있었다. 농어민들은 그들의 생산물인 곡물이나 가축, 생선, 소금, 수공업 제품 등을 가지고 와서 물물교환이나 또는 미포, 전화를 매개로 하여 필요한 물자를 살 수 있었다. 장터는 지방민이 하루 일을 쉬면서 물자조달을 위해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적인 기능과 함께 장날이 되면 서로 만나 교육하고 정보를 입수하는 등 백성들의 생활원천으로서 축제적 분위기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구포의 장터는 현재 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남창이 있던 강변 쪽에서 철도 건널목이 있는 구포파출소 앞의 넓직한 마당에서 장이 섰고, 부근의 골목마다 시장이 벌어졌다고 한다. 강변 쪽의 나루터에서부터 생선전, 젓갈전이 섰고 안쪽에는 짚신전, 포목전, 잡화점 등이 진열되어 매매되었으며 중국상인 골목도 있었고 쇠전, 나무전 등이 있었다.
장날이 되면 상품을 가지고 장터를 돌면서 행상을 했던 등짐, 봇짐 장수들이 찾아왔고 또 하나 밥을 빌어먹으면서 장바닥을 누비던 각설이들이 찾아와서 장타령을 부르면서 문전걸식을 하였다. 각설이들은 시장의 점포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문안을 드리면 주인은 무엇이든 조금씩 베풀어주었고 그러면 각설이들은 다음 집으로 찾아 나선다. 각설이타령은 서두에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는 가사를 반복하면서 갖가지 타령을 부르는데 전국에 찾아다닌 장이름을 붙여 재미있는 사설들을 늘어놓는 장타령을 부르게 된다. 장타령은 서북지방, 강원, 충청도 등지의 장타령이 있는데 구포장이 나오는 장타령은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재미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 구포 감동진(甘同津) 나루터와 별신굿 별신(別神)굿의 목적은 예로부터 어떤 특수한 사람이나 일정한 대상이 아닌 마을 전체의 평화를 위해 논, 밭, 산, 강, 들, 사람, 짐승, 바람, 비, 농업, 어업, 기타 사업의 흥성과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장수(長壽), 화목, 안전 등을 기원하는 데에 있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여 산 사람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다. 별신굿을 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단체가 중심이 되고, 그밖에 노인회, 청년회, 부인회 등의 각종 조직의 협력이 이루어진다.
마을사람들에게 별신굿은 사회관계를 확대 심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식, 비공식 조직을 통해서, 평소에 소원(疏遠)했던 사람들끼리도 이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또, 마을을 공개함으로써 마을을 방문한 외지인들과도 접촉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場)이 되기도 한다. 별신굿이 행해지는 기간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여기저기에서 구경꾼이 모이고 굿을 하는 무악(巫樂)소리가 온 마을에 울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가무음주(歌舞飮酒)가 행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정서적 통합이 이루어진다. 넓게 보아 별신굿도 마을의 문화행사인 만큼 이런 행사를 통해서 유대를 통한 일체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무당이 별신굿을 하면서 여러 신(神)들을 모시고, 신에게 인간의 소망을 고하고, 신의 대답을 듣고, 신을 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신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것으로 믿었고,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와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얻게 되어서 죽은 자에 대한 죄의식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넋과 신들에게 삶의 바른 인도를 기원하는 가운데 사회질서가 은연중에 회복되는 것으로서 별신굿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에게 삶의 자세와 윤리를 가르치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별신굿에는 주민들의 참여도 적극적이어서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는 놀이굿으로 끝내는 축제적(祝祭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
감동진(甘同津) 별신굿의 유래는 낙동강 수로(水路)교통의 출발지였던 구포지역 나루터의 이름인 감동진(甘同津)에서 찾아야 한다. 감동이란 지명은 신의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정부에서 받아들인 조세(租稅)곡물과 물품을 쌓아 두는 남창(南倉)이 설치되어 감동진 나루에는 공물선, 상선, 어선 등이 많이 드나들었고 강변의 장터는 크게 번창하였다.
구포지방의 별신굿에 대해서는 일제시대에 구포출신의 손진태(孫晋泰)씨 등 민속학자들 사이에 많이 연구되어 왔으며, 1938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하여 간행한 『석전(釋奠, 기우(祈雨), 안택(安宅)』이라는 책에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구포에서는 매년 혹은 격년(隔年)으로 별신굿을 지낸다고 되어 있다. 만약 별신굿을 하지 않으면 마을에 화재(火災)나 수해(水害) 또는 그 밖의 재앙(災殃)이나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별신굿은 여러 사람의 무녀(巫女)가 맡아서 하는데 “앞 당산(堂山) 골목이 남당산(男堂山), 여당산(女堂山)님(主) 제물(祭物)을 많이 잡수시고 동네의 집집마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이 있게 해 주시고 가뭄도 홍수(洪水)도 없으며 잡귀(雜鬼), 잡신(雜神)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 마을을 지켜주시라”는 사설(辭說)을 외우며 춤을 춘다. 별신굿은 당산제(堂山祭)와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안정(生活安定)과 재화방지(災禍防止)를 위한 것으로 한해의 성사(盛事)이며, 굿의 결과로 마을 사람들에게 행복이 초래되고 재앙(災殃)을 막자는 소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겠다.
구포에는 현재 대리(大里)에 당산이 있어 여기에서 강신(降神)의례를 치른다. 당산나무는 높이 약 10m의 소나무 2그루와 거목(巨木)인 팽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수령(樹齡)은 약 600년에 이른다고 하며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날 구포에서는 별신굿을 할 때 먼저 산신(山神)을 위하고 다음에 동구(洞口) 앞에 세워진 솟대와 장승을 위하는데 제전 3일 전부터 솟대와 장승의 주위를 청소하고 황토(黃土, 일명 禁土)를 뿌리고, 금줄을 이들의 신체(身體)에 돌려 묶은 다음, 부정(不淨)을 막기 위해 그 앞에 제상(祭床)을 차리고 제물(祭物)을 갖추어 동네의 안과태평(安過太平)을 무녀(巫女)가 빌게 되어 있으며 이것도 같은 시간에 솟대와 장승의 양쪽을 향해 행하여졌다.
◈ 학사대(學士臺) 수정마을의 철길건너 강변쪽에 학성산(鶴成山)이 솟아 있다. 이 산의 정상 부위의 바위에 학사대 대명과 경관을 나타내는 글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양산군지(梁山郡誌)』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학사대 - ‘在 左耳坊水亭里 後 金載鎭 臺名 曰 一心秋月 四面春風’(좌이방 수정리 뒤에 있으니 김재진이 대명에 가로되 ‘一心秋月이요, 四面春風이라’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一心秋月 四面春風’이란 글은 금정산에 가을달이 환히 떠오르는 경치와 낙동강과 산을 끼고 사방에 봄바람이 부는 경치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선비의 근본정신인 지조(志操)와 너그러운 기풍(氣風)을 선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예조좌랑 김재진(禮曹佐郞 金載鎭)은 과거 급제자로 『양산읍지』에 소개되어 있다. 이곳 학사대를 일명 학수대(鶴首臺)라고 하여 풍수지리상 상학산(上鶴山)에서 양 날개를 편 학(鶴)의 머리 부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상학산에서 학이 강으로 날아가는 형상의 지형을 나타내 주고 있다. 앞쪽 수정마을이 학의 목이 되는 곳으로 수정목이라는 지명이 전해 오는데,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놓으면서 풍수상 명당자리인 학의 목 부분을 자르기 위해 철도에 편입시켜 공사를 벌였는데 이 곳 일대에서 피가 나오듯 붉은 물이 고였다고 전해온다.
◈ 조대(釣臺) 수정마을은 예로부터 양택(집터)의 명당으로서 누대승람(樓臺勝覽) 등 많은 문화유적들이 있다. 적색(赤色)을 띤 암벽(巖壁)에는 ‘釣臺主人 林景澤’라는 글이 새겨져 내려오고 있다.
이 조대(釣臺)는 조선시대 『경상도지(慶尙道誌)』 누대승람(樓臺勝覽)편에 ‘釣臺 林景澤 所築’으로 나와있다. 그리고 『양산군지』에는 임경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괄의 난 때 전사한 공신의 6대손이다. 성품이 총명하고 다감(多感)하여 영리(營利)를 도모하지 않고 만시(晩時)에 적석(赤石)의 강변에 조대(釣臺)를 쌓고 자적(自適)하였으며 천성(天性)이 독효(篤孝)하여 세평(世評)이 높았다. 그리고, 이곳 조대의 암벽 상층부에는 네모난 돌에다 ‘金之觀’ 이름을 새겨서 올려놓았다. 이곳을 마을에서는 철도가 돌아가는 모퉁이라서 돌비석의 글대로 김지관 모랭이라고 부른다.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수정 마을에 뿌리를 내린 집안 중에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다. 김지관(金之觀)은 수정 마을에 정착하여 동네를 일군 공적이 있는 인물로서 후세에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동네에서 조대(釣臺) 바위 위에 비명(碑銘)을 새겨 올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김씨 집안 족보에 의하면 김지관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802(순조 2) 수정 마을에서 태어났던 인물로 나와있다.
북구의 종교는 아직도 민간신앙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나,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함께 확산된 기독교의 교세가 우세한 구에 속한다. 종교단체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가 있으며, 각각 93개소, 3개소, 39개소, 1개소의 교당이 있으며, 기타가 3개소 자리잡고 있다. 성직자수는 196명, 11명, 63명, 5명 순이다.
대형규모의 백화점이나, 도소매점은 없지만, 일반시장이 6개 있다. 전체 부지면적은 11,060㎡, 건물면적은 15,097㎡를 차지한다. 구포1, 2동, 화명동, 덕천1, 2동, 만덕 1동에 시장이 위치하여 생활의 편리함을 돕고 있다.
◈ 민물장어 매일장 ☎ (051)335-1122 / 은행나무집 ☎ (051)332-2929 / 행운장 ☎ (051)334-1407 / 늘봄 ☎ (051)332-1743 / 부산집 ☎ (051)332-9569 / 삼만석 ☎ (051)332-2247 / 웅촌집 ☎ (051)332-8751 / 광양집 ☎ (051)335-4768
◈ 구포국수 거북제면 ☎ (051)32-2865 / 역전제면 ☎ (051)332-4259 / 천일제면 ☎ (051)332-1743
◈ 염소·오리불고기 녹원장 ☎ (051)332-4553/계곡산장 ☎ (051)333-9292 / 한일장 ☎ (051)332-2828 / 대림장 ☎ (051)331-6219 / 서울집 ☎ (051)332-5917 / 백운장 ☎ (051)332-9311 / 만포장 ☎ (051)333-2929/청산별장 ☎ (051)334-3807 / 동래장 ☎ (051)332-4684 / 하와이가든 ☎ (051)31-8822 / 김해집 ☎ 332-9959 / 그린가든 ☎ 342-1144 / 만덕집 ☎ (051)332-4454 / 천우장 ☎ (051)337-0007 / 성광집 ☎ (051)332-3902 / 만덕회관 ☎ (051)332-2842 / 목화장 ☎ (051) 335-3366 / 메아리산장 ☎ (051)342-8491/우리장 ☎ (051)332-1609 / 청기와집 ☎ (051)334-5200 / 정원집 ☎ (051)332-7711 / 우수가든 ☎ (051) 335-4216 / 산장집 ☎ (051)332-0797 / 오동나무집 ☎ (051)332-2506 / 오양집 ☎ (051)332-6622 / 송림공원 ☎ (051)333-3399 / 만수장 ☎ (051) 333-5252 / 오아시스 ☎ (051)334-6644 / 금하장 ☎ (051)336-1050 / 만덕별장 ☎ (051)333-3939 / 구포장 ☎ (051)337-9886 / 서라벌장 ☎ (051) 335-5454 / 부산가든 ☎ (051)342-9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