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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석각(海雲臺石刻) 동백섬에는‘海雲臺’라고 쓰여진 석각이 있다. 이 석각은 신라 말의 시인이자 학자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썼다고 전한다.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가야산으로 입산하러 갈 때, 이곳을 지나다가 자연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대(臺)를 쌓고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주변을 거닐다가 암석에다 해운대란 세 글자를 음각함으로써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석각에 새겨진 해운대란 각자(刻字)가 최치원의 자필이라고 할 만한 확실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려시대의 문신인 정포(鄭 , 1309∼1345)의 시 가운데 ‘대는 황폐하여 흔적도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고 하는 구절을 볼 때, 이미 당시부터 동백섬에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동백섬 일주도로 아래쪽 군부대 해안초소 옆에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은 거의 봉쇄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씻겨 세 글자 중 ‘운(雲)’자가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 삼절사의 양씨(梁氏) 일문(一門) 삼절사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양씨 일문 세 사람을 향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양지(梁誌, 1553∼1592)는 경기도 파주사람으로 적선현감을 거쳐 삭녕군수로 성을 지키다 순절하였다. 1839년 삼절사 건립 후 합사하였는데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양조한(梁潮漢, 1555∼1592)은 동래 부곡 사람으로 동래 향교 유생으로서 임란 당시의 성현위패를 성 안의 정원루에 봉안 후 순직하여 호조정랑에 증직되었다. 양통한(梁通漢, 1558∼?)은 양조한의 아우로서 난을 피해 두 아들과 함께 화왕산성에서 의병활동 중 순절함으로 호조좌랑에 증직되었다. 이들 임란 순절 삼공신의 넋을 위로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약 300여년간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이어 오고 있다.
■ 보물 • 조숭 가정대부 상의중추원사 도평의사사 사왕지 제953호, 중1동 1394-27 • 조서경 무과급제 왕지 제1287호, 중1동 1394-27
■ 중요무형문화재 • 동해안 별신굿 제82-가호, 반여1동 1199-11
■ 유형문화재(이하 광역시 지정) •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 제24호, 좌동(시립박물관 보관)
■ 기념물 • 해운대 석각 제45호, 우1동 710-1 • 해운대 동백섬 제46호, 우1동783-1
■ 문화재자료 • 반송 삼절사 제1호, 반송2동 1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