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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강서구 부산광역시 강서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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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정보
◈ 강서구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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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부산의 낙동강 서쪽인 강서구(江西區)는 강의 끝자락에서 동과 서로 갈라짐으로 이루어진 삼각주 지대로 강가에는 대부분 넓은 들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녹산동(菉山洞)의 일부와 천가동(天加洞)은 산지로 이루어졌다. 낙동강 아래 끝에 자리한 이곳은 오랜 옛날 주변에 산으로 둘러싸여 낮은 지대로 삼각주가 생기기 이전 거대한 만으로 된 바다였다. 빙하기가 지난 때부터 오랜 세월 낙동강 물에 씻겨 내려온 흙과 모래가 계속하여 쌓이면서 바다를 밀어내고 육지로 변한 곳이다. 이렇게 생겨난 삼각주는 대저도(大渚島), 대사도(大沙島), 덕도도(德道島), 제도(濟島) 등을 먼저 만들고 이어서 맥도(麥島), 명지도(鳴旨島), 둔치도(屯致島), 일웅도(日雄島), 을숙도(乙淑島) 등의 하중도(河中島)를 만들었다. 이 섬들이 1932년 낙동강 둑을 쌓은 뒤 지금의 모양으로 이루어졌고 그 크기는 남북 길이가 약 16㎞이고 동서가 약 6㎞이며 들의 넓이는 136㎢이고 모래밭 간척지가 약 37㎢에 달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고장은 세계인들이 부산을 드나드는 김해국제공항이 있고 가덕신항만이 펼쳐지고 녹산 국가산업단지와 삼성자동차공장이 들어섰으며 지사동에 부산 첨단과학산업단지와 아시안게임 조정경기 및 하키경기장과 승마경기장이 들어서게 되며 앞으로 가덕도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놓이게 될 것이며 농수산물로는 녹산 범방동의 청정미나리, 강동동의 꽃재배단지, 명지동의 대파재배단지, 가락동의 황금쌀, 가덕도의 숭어 등을 생산하는 곳으로 21세기 부산의 미래를 약속하는 땅이다.
 
 

2. 역사문화자원

 

2.1. 역사적 사건과 현장

◈임진왜란과 왜성(倭城) 강서구는 일본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므로 침략의 흔적이 어느 지방보다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구들이 침략하여 배가 닿을 수 있고 사방으로 관망이 좋은 곳의 낮은 산을 깎아서 성(城)을 쌓고 주둔하면서 그들이 전략기지로 만든 왜성이 4개소에 있다. 가락동 죽림마을에 있는 죽도왜성은 김해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가덕도의 눌차왜성과 성북왜성은 안골포 왜성과 함께 가덕도와 육지사이의 연안 바다를 장악하면서 웅천성(현 진해시)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이다.
 
◈러일전쟁과 가덕도 외양포 1905년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해 가덕도 외양포를 강점하여 그들의 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이 곳에서 당시 일본해군 함대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몰락시켜 일본사상 최대의 전과를 거두고 진해만을 침탈해 해군의 근거지로 삼게 된 일본최초의 전략기지이자 세계대전의 전적지이다. 지금도 이곳은 일본군 막사가 마을을 이루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에는 그 당시의 일본군 포대자리와 탄약고 그리고 관측소 자리가 남아 있다.
 
 

2.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독립운동가 남강 조정환(曺正煥)선생(1875∼ ? ) 녹산동 분절마을에서 태어나 1906년 개성풍덕학교를 세우고 조선역사를 가르치다가 파주에서 인성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교육하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가서 조병준, 신우현, 변장근, 김승학과 더불어 민국독립당을 조직하여 자의부장으로 광복운동에 헌신하였다. 1923년 임시정부 국민 대표자회에 참석하고 항일단체를 만들었으며, 북경대학에서 『장자』를 강의하기도 했다. 1927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동생 조성환에게 ‘단심한일월 백골한산천 어각인간사금조독립년(丹心韓日月 白骨漢山川 御却人間事 今朝獨立) 나의 일편단심은 조국의 해와 달 같은데 내 몸은 중국 땅에 묻히는구나 이제 인간사를 뿌리쳐 내리니 오늘 아침이 독립의 해로구나’라는 시를 남기고 만주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외길 음악가 금수현 선생(1919∼1992) 대저1동 사덕마을에서 태어나 부산 제2상업학교(현 부산상고)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음악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하고 1941년 귀국하여 동래여고와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후 1947년 8월 경남도립극장 장으로 취임하여 본격적인 음악문화보급운동에 나섰다. 「노래하자 회」를 만들어 계몽운동을 하고 1948년 9월 부산사범학교 교감으로 있으면서 음악협회를 조직하여 학생음악 콩쿠르를 열어 많은 음악도를 양성하였다. 훗날 부산음악교육연구회를 창립하여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 많은 음악도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경남여중, 통영고교 교장을 거쳐 문교부 편수관으로 있을 때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의 개편 검열과 음악용어표기법 등을 새로 만들고 영 필하모니악단 조직과 「월간음악」지를 발간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그네」, 「녹음을 찾아」, 「고향」 및 오페라 「장보고」가 있고 저서로 「가곡집1, 2」, 「음악교과서」, 「표준음악사전」, 「음악의문」 등이 있고 그의 생가 앞 낙동강둑에는 그의 노래비가 서있다. 아들 3형제 중 장남 금난새는 지휘자, 차남 금누리는 조각가, 삼남 금노상은 지휘자로 예술가의 가문을 이루었다.
 
◈한국체육을 발전시킨 정치가 김택수 명지동 출신으로 경남중학교를 다닐 때 스포츠와 웅변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그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한 수재였다. 학창생활을 마치고 백씨인 김한수(金翰壽)가 경영하는 경남모직주식회사 전무를 맡아 기업을 경영하면서 불우한 향리의 새싹들을 위하여 경일중학교(慶一中學校)를 설립하였다. 5·16 후 정계에 투신하여 민주공화당 경남도당위원장에 선출되어 제6대 국회의원으로 초선에 국회건설분과위원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원내총무를 역임했다. 체육향상에 남다른 정열을 기울여 1961년 경남체육회장, 1966년에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부위원장, 1971년 대한체육회 회장(3선) 대한올림픽위원 14대 회장(2선), 1974년 모스코바 유니버시아드 하계대회 한국선수단장, 1974년 국민체육진흥재단 이사장, 1975년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 집행위원, 1977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면서 스포츠 외교에 많은 공적을 남겨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청룡상을 수훈 받았고 죽은 후에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훈장 은장(銀章)을 받았다.
 
 

2.3. 내 고장의 문화유산

◈철새도래지 천연기념물 제179호, 낙동강 하류일대
 
◈범방3층석탑 유형문화재 제23호, 범방동1344
 
◈천성진성 기념물 제34호, 천성동1613
 
◈가덕도 척화비 기념물 제35호, 천가초등학교
 
◈가덕도 자생동백군 기념물 제36호, 대항동 일대
 
◈생곡동 가달고분 기념물 제43호, 생곡동 일대
 
◈범방동패총 기념물 제44호, 녹산동 일대
 
◈가락동 죽도왜성 기념물 제47호, 죽림동 787
 
 

2.4. 전통생활민속

◈가덕도 기우제 가덕도 기우제는 6월에 비가 오지 않고 가물 때 집집마다 사립문에 금줄을 치고 물병에 솔잎을 꽂아 금줄 위에 거꾸로 매달아 물이 솔잎을 타고 떨어지게 하고 또 마을사람들은 가덕도에서 제일 높은 곳인 연대봉에 올라가 제물을 차리고 기우제를 지낸 다음 솔가지를 모아 불을 질러 검은 연기를 피운다.
 
◈가덕도 숭어들이와 고사 대항마을의 숭어들이는 매년 양력 3월에 산신과 여서낭 및 고인이 된 어로장에게 감사기원제를 올리면서 시작이 된다. 혜덕사 스님으로부터 제의 날을 받되 마을에 초상과 출산 또는 결혼식이 있으면 다음 정하는 날로 연기하여 백설기, 메, 과일, 마른명태, 술을 준비해 어촌계원, 어로장, 선원이 참석하여 어촌계장이 각 제단에 제주를 붓고 제신 위의 가호에 대한 감사와 선원의 무사고, 숭어의 만선잡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숭어를 잡는 배는 무동력선 1톤 내지 2톤 짜리 6척이며 밖목선, 밖잔등, 밖귀자잡이, 안목선, 안잔등, 안귀잡이로 그물을 깔고 숭어가 들기를 기다려 산 위의 어로장 지휘에 따라 그물을 걷어 올려 숭어를 잡는다. 잡는 시기는 3월에서 6월까지이다.
 
 

2.5. 구전설화

◈명지도와 공민왕 어필 『세종실록』 「지리지」 해부에 나오는 섬으로 ‘부의 남쪽 30리 바다 가운데 평평한 모래가 둘레 20리쯤이나 되는 섬이 있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명지동이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려고 할 때면 울었고 또 오랜 장마 끝에 비가 개려고 할 때도 울었으니 그 소리가 우뢰 같다고 하여 이곳을 명지(鳴旨)라고 한다. 이 곳에 공민왕의 어필 이야기가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복주(지금의 안동)에 내려와 있을 때 그곳에서 풍광을 즐기다가 영호루(映湖樓)라는 글을 크게 써서 내려주고 걸도록 하였다. 공민왕 17년(1368) 안동판관 신자전(申子展)이 영호루를 중수하고 액자에 금을 입혀 현판을 걸었다. 그러나 공민왕 이후 낙동강이 범람하여 7번이나 새로 고쳐지었지만 선조 38년(1605) 대홍수로 누(樓)까지 강물이 범람하여 이 편액(篇額)마저 떠내려 가버렸다. 그 뒤 이 곳 명지동에서 서광이 하늘에 비치므로 섬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땅을 파보니 영호루(映湖樓)의 편액이 이곳까지 떠내려와 파 묻혀 있었다. 이것을 안동으로 보내어 다시 누(樓)에 걸었다고 한다.
 
 

3. 생활문화자원

◈생거죽동(生居竹洞) 사거수안(死去水安) 옛날 김해 대동면 수안리(水安里=물안리)에서 한 사람이 죽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군 가락면 죽동(竹洞)에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한 사람이 죽었다. 죽동 사람들은 먼저 초상(初喪)을 치렀으므로 죽동 사람의 혼(魂)이 수안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서 다시 살아났다. 이에 수안 사람은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났으므로 상주와 사람들이 놀라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소생한 사람이 자꾸만 죽동으로 가려고 하면서 “나는 죽동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죽동 상제는 자기 부친의 혼이 수안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부활하였으니 우리 부친이므로 모시고 가겠다고 하니 수안의 상제는 분명히 자기의 아버지라고 하여 두 집안간에 싸움이 벌어져 쉽게 해결이 나지 않으므로 관가에 호소하였더니 원의 판결이 생거죽동(生居竹洞) 사거수안(死去水安)이라 하여 수안의 상제로 하여금 모시게 하였다.
 
 

3.1. 주민의 종교생활

우리 강서구에 처음으로 종교시설이 된 곳은 남방불교의 시원(始原)인 지사동의 옛 가야 사찰 명월사지의 흥국사이다. 이곳에는 사왕석이 있는데 열반한 자세의 부처를 뱀이 싸고 있는 석상이다. 가락국 창건 당시 인도 아유타국에서 전래된 가야불교의 상징이다. 근세에 세워진 종교시설로는 1906년도 명지동 들판에 세워진 청량사를 비롯하여 20여 곳의 사찰이 있으며 개신교가 전래된 후 1905년 호주출신 예원배 선교사에 의하여 설립한 소덕교회(공항제일교회)를 비롯하여 1906년에 명지교회, 1907년에 대지교회, 1908년에 평강교회 1912년에 생곡교회 등이 있으며 지금은 40여 곳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다. 녹산동 봉화산 밑 생곡 마을 뒤엔 천주교 성지가 있으니 1870년까지 김해지역에서 유교와 천주교를 비교·연구하고 선교하다가 병인년 흥선대원군의 종교 박해 시에 참형 당한 형제 순교자 조석정(曺錫禎)과 조석빈(曺錫賓)의 묘가 있다. 형은 두 팔을 올려 십자로 서서 미소 지우면서 목이 잘려 피가 솟을 때 동생은 형의 목에서 솟아오르는 피를 두 손으로 받아들고 “형님의 목에 십자가의 꽃이 피었다” 하며 절을 한 후 하늘을 우러러 찬미와 기도 속에 목이 잘렸다고 한다. 그 당시 갈대에 싸여진 형의 거구와 이엉에 덮어진 동생의 약소한 시신은 죽은 뒤에도 조씨 문중의 후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의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정3품 배정문(裵禎紋)공에 의해 집 뒤 언덕 밭에 암장하여 120여 년 동안 배문한(裵文漢) 신부의 본가에서 4대에 걸쳐서 보호되고 있다.
 
■사찰
◈흥국사 지사동478, 법화종 가락국
 
◈청량사 명지동445, 조계종 1906년
 
■기독교회
◈공항제1교회 대저 2동1247 고신 1905년
 
◈명지교회 명지동 1-403 고신 1906년
 
◈대지교회 대저 1동752 통합 1907년
 
◈평강교회 대저 1동1748 통합 1908년
 
◈가락교회 죽림동 876-33 고신 1910년
 
◈생곡교회 생곡동 207 통합 1912년
 
 

3.2. 주민의 생활권역

◈범방미나리 재배지 남해고속도로 가락 IC에서 내려 남쪽으로 1㎞쯤 가면 범방동과 미음동을 잇는 50여 만 평의 평야 일대가 미나리 재배단지로서 이곳 청정수에 길러진 미나리는 서울 가락동 시장에서 특급상품으로 대우받는 우수품질로 수십 년간 미나리를 재배하는 집단지를 이루고 있다.
 
◈명지대파 재배지 낙동강 하굿뚝 서쪽 명지 IC 서남쪽 들판은 옛날 명지염전으로 영남의 소금 공급지였으나 염전이 폐지되면서 대파재배단지로 변하여 연중 생산된 대파가 서울시장에서 유명상품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명지평야 100여 만 평이 넘는 대단지에서 생산되는 대파는 한때 전국의 약 40% 가량을 공급했다.
 
◈가덕대항어촌 가덕신항만 공사가 펼쳐지고 있는 가덕도의 대항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맛있고 비싼 대구를 잡는 곳이며 이곳의 숭어잡이는 15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특수한 방법의 어로작업으로 배 6척이 그물을 깔고 있다가 산 위에서 망보는 어로장의 지시에 따라 그물을 올리는 방법으로 지금도 이렇게 숭어를 잡는 전통적인 어촌마을이다.
 
 

3.3. 지역의 별미음식

◈명지시장 횟집골목 명지시장은 낙동강 하구뚝 서쪽 명지인터체인지 옆에 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설 채소시장이다가 감전동 새벽시장이 생기고부터 활어시장으로 바뀌어 지금은 부산에서 가장 싼 값으로 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촌으로 130여 집이 모여 명물골목으로 되었다.
 
◈조만포 민물요리집 남해고속도로 가락인터체인지 옆 조만강에 민물요리집이 모여있다. 옛날 조만포 나룻터인 이곳에 장어구이와 메기탕의 전문음식점으로 민물고기 매운탕은 전국에 이름이 나 있어 옛 나루터 자리의 정취를 느끼며 식도락가들이 많이 찾는다.
 
 

3.4.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전통불교조각 강서구에는 많은 공예가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 불교조각은 전통과 첨단의 기법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불상의 옷 모양이라든가 금도금 불상 및 괴목장은 매우 우수하여 감탄하게 한다. 그밖에 문갑·목각·영등·다도상 등 각종 공예품이 있으며 특히 탱화나 목각은 그 규모가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금강불교조각연구소, 강서구 대저 2동 6095번지 ☎ (051)972-3912, 971-3384
 
◈인물도예 한 지역작가에 의해 우리 고유의 전통 토우에 그 뿌리를 둔 한국인물토우라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고 있다. 주술적인 면보다는 인형의 사실적인 표정을 강조하여 그 시대의 삶과 정서를 알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자연 그대로의 인물표정을 재현하기 위해 테라코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생활에 묻혀 잊혀진 서민들의 모습으로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십 년 전의 시공을 넘나들게 하여 금방 향수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여러 번의 국내 전시회와 일본 후쿠오카 등지에서 순회전시회를 갖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시민과 학생들과의 참여 체험학습을 통하여 작품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인물도예원 강서구 명지동 1763-3 ☎ (051) 271-0304, 1934
 
 

4. 예술문화자원

 

4.1. 지역문화예술행사

◈강서축제 [상세정보] △개최시기 : 10월 초순 △장소 : 다목적 운동장 △주관 : 강서문화원·생활체육협의회 △행사 : 봉수제, 풍년제, 고유제례, 문화체육행사 등
 
◈정월대보름 민속제 △개최시기 : 정월 대보름 △장소 : 구포다리 △주관 : 강서문화원·당리청년회 △행사 : 월령기원제·구포다리밟기·연날리기 등 민속행사
 
◈가덕도 숭어축제 △개최시기 : 4월 하순 △장소 : 가덕도 대항 △주관 : 대항어촌계 △행사 : 전통 숭어들이의 전승을 위한 관광축제
 
◈강서축제 [상세정보] 매년 10월 초 부산시민의 날을 기념하기위한 각 구단위 축제행사로서 봉수제, 풍년제, 및 각종 문화체육행사를 함.
 
 

4.2. 지역문화예술단체

◈강서예술인연합회 강서구 대저 1동 2376-5 ☎ (051)972-6369
 
◈한국서화협회부산지회 강서구 대저 1동 2376-5 ☎ (051)973-9973
 
 

4.3. 지역출신 예술인

◈금난새 작곡가, 지휘자
 
◈현철 대중가수
 
 

4.4. 지역소재 예술작품

◈정종수의 『삼각주』, 『평강리』, 『고향 까마귀들』 (단편소설)
 
◈서재수의 『벼포기 크는 재미』 (시조집)
 
◈윤병태의 『산난의 뜨락』
 
◈최시병의 『강마을 저녁노을』, 『칠석물에 오는 비』, 『초가 한 채』 (동시집)
 
◈박문하의 『혼자 가기엔 너무 먼 길』 (시집)
 
 

5. 관광, 여가문화자원

 

5.1. 관광자원

◈가덕도 천혜의 해안 절경과 맑은 바다, 인공동굴, 일본군사령부 터, 봉수대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천연기념물 제179호
 
◈신호대교 공원 녹산국가공단 및 신호지방 공단과 연계하여 건립한 바다위를 가로지르는 대교 주위에 조성된 솔밭공원
 
◈녹산수문공원 부산과 진해를 잇는 국도 2호선 가운데 낙동강을 가로막은 한국 최초의 하굿둑 및 노적봉과 주위 수변공원
 
 

5.2. 관광쇼핑

◈명지 회센터 각종 생선회를 싱싱하고 싸게 맛볼 수 있는 130집의 전문 회센터로 매년 3∼5월 사이에 숭어회가 인기있다.
 
 

5.3. 관광안내소

◈강서구 총무과 문화관광계 ☎ (051)970-4061
 
 

5.4. 여가시설

◈가덕도 해안낚시터 강서구 천가동(11개 도 서)의 갯바위 낚시가 일품. 진해시 용원 선착장에서 정기도선 운행(1시간 간격)
 
◈서낙동강 민물낚시터 김해시∼강서구를 가르는 낙동강의 지류로 각종 민물고기 낚시가 성행
 
 

6. 문화시설자원

 

6.1. 도서관

◈강서도서관 997㎡(지상2, 지하1층), 장서 32,000권, 강서구 대저2동 2011-2 ☎ (051)970-4067
 
 

6.2. 전수회관

◈허경혜 물도예원(토우) 강서구 명지동 1763-3 ☎ (051)271-0304, 1934, 원장 허경혜
 
◈금강불교연구소(불교조각) 강서구 대저2동 6095번지 ☎ (051)972-3912, 971-3384
 
 

6.3. 문화원

◈부산강서문화원 강서구 대저1동 2376 ☎ (051)972-6369 원장 서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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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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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