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단동 풍물계 검단동은 25년 전까지만 해도 동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때 당내림 굿을 하고, 동제가 끝나면 지신밟기를 하였다고 한다. 이런 행사 때에는 풍물계에서 풍물을 동원하였는데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안종열(남 83세)외 5명의 예능 보유자가 있다.
◈ 검단동 모내기 노래 아침과 오후, 저녁 때 부르는 소리로 구분된다. 4음절 형식으로 1음절이 5자로 구성되어 있다. 선소리와 뒷소리가 있다.
◈ 도남동 어사용 어사용은 나무꾼이 나무할 때 부르는 소리이다. 도남동의 어사용은 흔히 부르는 ‘구야구야 갈가마구∼’ 하는 노래이다. 4음절 형식이고 1음절이 4자로 구성되어 있다.
◈ 팔달동 연날리기 정월보름과 2월에 주로 날렸다고 한다. 특히 2월에 영등고사를 지내면서 바람내고 소지를 올리고 난 뒤, 소지종이로 연을 만들어 날렸다고 한다. 이런 연을 액막이연이라고 한다. 액막이연을 무태 연경마을, 칠곡 포남동, 검단동, 칠산동 등의 금호강변 마을에서 행해졌다.
◈ 견훤이 승리한 ‘견훤덤’ 복현동의 지명유래를 보면 특이할 뿐 아니라 전국 지명에서도 하나뿐이다. 충북 청원 오창마을을 복현동이라 하지만 그 유래는 다르다.
고개 너머에 보(洑)가 있으므로 복고개 또는 보현, 복현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 북구 복현동은 견훤덤, 복현덤, 복현암, 복현리, 복흥동 등으로 불려어 오고 있는데, 본래 대구부 동중면의 지역으로서 927년 후백제 견훤(?∼936)이 신라 궁궐에 침입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신라의 왕으로 삼고 돌아가는 길에 군사를 이 고개에 매복시켰다가 추격해 오는 고려 태조 왕건을 맞아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싸워서 크게 고려군을 무찔렀으므로 견훤덤 또는 복흥동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경주이씨 논북공파 세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복현동 야산에 경주이씨의 묘지가 있었는데 이 묘지는 7대조 무실공이 영조(1728)에 분무 1등공신으로 봉해지면서 영조가 하사한 땅으로 ‘엎드려(伏) 현모한다(賢)’는 뜻으로 이곳의 지명을 복현동으로 불렀다고 하나, ‘견훤덤’이 더 오래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한국사 연표를 찾아보면 927년에 후백제에서 견훤이 금성에 침입하여 경애왕을 자살케 하고 경순왕을 세웠다고 되어 있고, 또한 견훤이 공산에서 왕건을 대파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전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복현동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복흥동이라 하였는데 달성군 성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66년 대구시 조례에 의하여 복현동회를 두었다. (자료제공 : 박동희, 시나리오작가)
전통적인 마을신앙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 현재 주민들의 종교생활은 개신교 교회 136개소, 천주교 성당 11개소, 불교 사찰 37개소, 유교 1개소, 원불교 1개소, 기타종교 4개소가 활동하고 있다.
◈ 3공단 대구 경제발전의 역사와 함께 한 유서깊은 3공단은 첨단 자동차 부품, 섬유, 안경산업 등의 꾸준한 성장으로 지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특히 안경산업은 우리나라 안경 제조업체의 약 80%가 3공단에 집중되어 있어 북구 경제를 이끌어 온 대표산업 중 하나로 그 디자인과 품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 대구종합유통단지 약25만평의 부지에 무역센터, 도매단지, 물류단지 등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상업적 유통 및 물적 유통의 기능이 종합적으로 수행되는 국내 최대의 종합유통단지로 국내 4대 고속도로와 연계한 내륙교통의 요지이자,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량을 처리하는 부산, 마산, 포항과 이어지는 중추적 물류 거점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 상가지역 칠곡 동아하이퍼마트, 동아델타클럽, 홈플러스, 코스코홀세일 등의 대형 할인점과 칠성시장, 팔달시장 등 재래시장,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형성되어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 칠곡 3지구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칠곡 3지구는 대구의 대표적 신도시 지역으로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과 동시에 학교, 병원, 대형할인점 등 지역주민의 집단적인 생활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 인구 30만명을 헤아리는 거대한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