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는 선사 이후 백제 때에는 노사지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에는 유성현, 고려 때에는 공주부에 속해서 명학소(鳴鶴所)가 있었던 노전(爐田)으로 망이·망소이난(亡伊·亡所伊亂) 때는 충순현 지역에 해당하였다.
1895년(조선 고종 32)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공주군, 회덕군, 진잠군의 각 일부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대전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 대전읍 당시에는 대덕군 유천면에 속해 있었고, 1935년 대전부로 승격하였고, 1949년 대전시로 개편되었다.
1962년 11월 1일 법령 제1,167호로서 대전시 지역 확장에 따라 대덕군 유천면 지역이었던 안영리, 복수리, 도마리, 정림리, 변동리, 가장리, 내동리, 용두리, 괴정동, 탄방리, 삼천리, 갈마리, 월평리, 둔산리를 편입하였고 리를 법정동명으로 불렀다. 1977년 9월 1일에는 중구에 속했으며, 1983년 2월 15일에는 기성면의 관저리, 도안리, 가수원리가 편입되었다.
1985년 4월 10일 건설부 고시 제151호로 대전행정구역상 중심지인 둔산지구 225만 5천 평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고시되어 신흥 둔산 신시가지 조성사업이 착수되었으며, 1988년 1월 1일 서구를 신설하였다.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49호(1988년 12월 31일 공시)로 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대덕군 기성면 일원을 서구에 편입하였고, 유성 출장소 관할 일원과 관저동 일부를 유성구에 편입 분리하였으며, 서구 안영동 일원을 중구에 편입 분리하였다.
1993년 11월 1일 둔산지구 탄방, 둔산, 월평동, 1994년 7월 1일 월평1동, 1996년 1월과 8월 둔산 2동 내동, 1998년 1월 1일 갈마 2동, 월평 3동 만년동을 분동하여 21개 동에 이르고 있다.
◈ 권시(權媤, 1604∼1672) 만회 권득기의 다섯째 아들로 호는 탄옹이며, 학문이 뛰어났다. 57세에 한성부윤에 임명되었으나 인조 때에 왕위 정통성 문제로 낙향하여 학문에만 힘썼다. 1627년 공주 유성의 탄방리(현 탄방동)로 이사왔다.
◈ 윤흡(1580∼1633) 조선후기의 문관으로 여진족을 정벌하고 구성을 쌓은 윤관 장군이 그의 선조가 된다. 1627년 정묘호란으로 나라가 크게 위태로워져 임금의 강화도 피난길에 함께 하였다. 1633년 장수현감 때의 선정으로 한성부 서윤으로 특별영전 되었다.
◈ 박진(朴秦, 1366∼1422)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그의 부친 때부터 서구 괴정동(지치울)에서 살았다. 병조참의를 지냈고 형조판서 임건의 사위이다.
◈ 박순(朴淳, 1523∼1589)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1583년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 유형문화재(이하 시지정)
◈ 만회집 탄옹문집 - 목판 제17호 탄방동 274-1
◈ 상제집략 판목 - 제21호 흑석동 산97
◈ 용천련 고판목 - 제22호 흑석동 산99
■ 기념물
◈ 월평동 산성 - 제7호 월평동 산 12-3
◈ 흑석동 산성 - 제15호 봉곡동 산 26-1
◈ 둔산 선사유적지 - 제28호 월평동 281
■ 문화재자료
◈ 도산서원 - 제3호 탄방동 233
◈ 송준길의 묘 - 제14호 원정동 60-2
◈ 김여온의 묘 - 제16호 괴곡동 12
◈ 유혁연의 묘 - 제28호 평촌동 산 18
◈ 수정재 - 제30호 변동 250
◈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 제34호 괴곡동 466
■ 무형문화재
◈ 불교조각장(이진영) - 제6호 월평동 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