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구는 대전광역시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북으로는 금강이 흘러 대청호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갑천, 동쪽으로는 동구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중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덕구 중앙에는 비교적 완만하게 보이는 계족산이 있고 그 아래로는 들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옛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회덕현이 소재하고 있었다. 대덕구의 중앙에는 일찍이 경부선 철도가 가로지르며 뻗어 있고, 그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철도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고속전철도 그 옆으로 나란히 하고 있다. 오정동에서는 호남선 철도가, 읍내동에서는 고속도로가 갈라진다. 대덕구는 이처럼 국토의 대동맥이 지나고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 대전 톨게이트와 신탄진 톨게이트, 회덕역과 신탄진역이 소재하고 있는 교통의 요지로 되어 있다.
대덕구를 기능별로 보면 신탄진은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타이어, 풍한방적 등 대기업체와 대전 3·4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회덕역 주변에는 한국수자원공사와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주거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일찍이 대전 1·2산업단지가 자리잡고 있는 대화동 지구는 중소기업체들이 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오정동에는 농수산 도매시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농수산물 유통산업이 발전하고 있으며 그 외 지역은 대체로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서고 있다.
대덕구는 새로운 주거 환경과 공업단지 확충으로 인하여 인구가 계속 증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나 신탄진을 감싸고 흐르는 금강과 푸른 숲으로 둘러 싸인 계족산이 있기 때문에 쾌적한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선사 시대 - 용호동 구석기 유적 - 신대동·비래동 지석묘 - 송촌동 토관묘, 대화동 토광묘
마한 - 신혼국(진잠)
삼국시대 백제 - 우술군(雨述郡 : 일명 후천(朽淺) 이라함)
501 - 탄현 목책설치
통일 신라 663 - 옹산성(계족산) 우슬성(연축동)에서 백제부흥군 활동
757 - 비풍군(比豊郡)으로 개칭
822 - 웅진도독 김헌창 반란으로 혼란
고려 초 - 회덕현(懷德縣)으로 개칭
1018 - 공주에 예속
1172 - 감무 설치
1176 - 망이·망소이, 명학소에서 반란
1235 - 몽고군 침략으로 혼란
1375 - 10월 왜구 회덕 침범
조선시대 1413 - 회덕현 설치
1454 - 호수 300가구, 인구 1266
1592 - 회덕향교 숭현서원 임진왜란으로 전화
1600 - 회덕향교 복원 중수
1636 - 병자호란 중 회덕출신 이 직, 송시영, 강화도에서 김상용, 김익겸과 함께 순절
1658 - 송준길 병조판서, 송시열 이조판서 제수 - 효종과 북벌계획
1684 - 정절서원 건립
1697 - 종회사 건립 - 용호사 건립
1718 - 미호서원 건립
1760 - 회덕 7면 20리에 인구 9,994명 호수 2,350호(여지도서)
1862 - 나무꾼 김진옥 송만길 송일원이 주도. 회덕민란의 중심지(74채 방화)
1894 - 동학농민군 회덕 공격후 무기확보 신탄진으로 진격
1895 - 공주부 회덕군으로 변경 - 을미사변 단발령 문석봉 의병 봉기
1900 - 활빈당 출몰, 동학농민군 관청 공격
1905 - 송병선 송병순 을사조약 반발 자결
근대 1914 - 회덕군 진잠군 공주군 일부 대전군으로 병합
1919 - 4월 회덕인 만세운동 회덕역 진출
1921 - 대전청년구락부조직 대동예배당에서 활동 - 대전소년회 조직 야학 실시 - 대전금주단연회 조직 활동
1923 - 대전 우리물산장려회 창립 활동
1935 - 대덕군 설치
현대 1945 - 8·15 해방으로 일본인 귀국
1945 - 미군정하에 방두환 초대 대전부윤
1948 - 좌익 30여명 신탄진 지서 습격
1959 - 대전대학(한남대 전신)개교
1969 - 대전 제1산업단지 조성
1973 - 신탄진 읍으로 승격
1975 - 대전 제2산업단지 조성
1980 - 대청 다목적 댐 준공
1987 - 담배인삼공사 신탄진 공사
1989 - 대전직할시 대덕구로 변경 - 대전 제3산업단지 조성
1991 - 대전 제4산업단지 조성
1995 - 대전광역시 대덕구로 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