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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연수구 인천광역시 연수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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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일자별)
인천광역시 연수구 정보
◈ 연수구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내 고장의 역사
인천의 옛 지명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기록된 백제 건국의 전설에 따르면 백제시조 온조(溫祚)의 동복형(同腹兄) 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그 발상이라 하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간 쟁탈의 목표가 되었던 곳이었다.
3국간의 영토로 번복, 변천을 거듭하다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신라의 신주(新州)인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고 경덕왕때에는 소성(邵城)이라 불러 율진군의 영현(嶺縣)이 되었다.
그 후 고려 현종 9년(1018년)에는 수주(樹州)에 속하였으며, 숙종때에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의 고향이어서 경원군(慶源郡)으로 올리었고 인종때에는 또 순덕왕후(順德王后) 이씨의 고향이 되어서 지인주사(知仁州事)로 고쳤다.
공양왕 2년(1390년)에는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고, 조선왕조의 태조 원년(1392년)에 다시 인주(仁州)로 되고 태종13년(1413년)에 이르러 인천군(仁川郡)이 되었으며 세조 6년(1460년)에는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외향이므로 해서 도호부(都護府)로 삼았다.
연수구 지역은 1413년 인천도호부 먼우금면의 옹암리(甕岩痢), 먹암리, 망해리(望海里), 동막리(東幕里), 척전리(尺前里), 한진리(漢津里), 함박리(咸朴里), 야동(冶洞), 옥동(玉洞)지역으로 1914년 부천군(富川郡) 문학면(文鶴面)에 편입되었으며, 인천부역 확장시 인천부로 재편입되었고, 1968년 남구에 편입되었다가 1994년 12월 16일 법률 제4802호에 의거 옥련(玉蓮), 선학(仙鶴), 연수1(延壽1), 연수2(延壽2), 청학(靑鶴), 동춘(東春)동을 분할, 1995년 3월 1일 5 개 법정동과 8개 행정동으로 연수구를 개청하게 되었다.
현재 연수구는 신도시로 인천항과 연계한 신항만을 새로이 건설하여 동북아의 중추 물류 기지로 발전하고 있다.
 
<연수구 연표>
시대 및 연대
주 요 사 항
 
1968
법률 제 1919호(1967.3.30 공포)로 구제 실세에 따라 남구 편입
- 옥련동, 관교동, 문학동, 선학동, 연수동, 청학동, 동춘동
 
1977
시조례 제 1075호(1977.4.18 공포)로 행정동 명칭 변경
- 남촌 · 선학동을 선학동으로 변경
- 연수 · 청학동을 연수동으로 변경
 
1981
법률 제 3424호(1981.4.13 공포)로 직할시로 승격
 
1988
대통령령 제 12376호(1987.12.31 공포)로 남구에서 남동구 분구
- 선학동 관할구역이던 남촌동을 남동구로 편입
 
1994
남구조례 제 323호(1994.7.1 공포)로 2개 행정동 분동
- 연수동 → 연수 1동, 연수 2동, 청학동
 
1995
법률 제 4802호(1994.12.16 공포)로 남구에서 연수구 분구
남구조례 제 343호(1995.3.1 공포)로 2개 행정동 분동
- 연수 1동 → 연수 1동, 연수 3동
- 동춘동 → 동춘 1동, 동춘 2동
 
1996
구조례 제 107호로 1개 행정동 분동
- 동춘 2동 → 동춘 2동, 청량동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병자호란과 탁(卓)청년의 용맹 인조 14년(1636년)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왕실과 정부는 강화도로 긴급피난을 하였으나, 인조 임금은 뒤늦게 궁을 떠났고, 적은 이미 양천평야와 한강을 차단하여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점령하고 2월 초 통진, 김포, 부평해안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집결하던 호적들이 인천 동막(연수구 옥련동)을 통과할 때, 이 마을의 부자집 애국지사 탁청년이 이 마을 장정들을 인솔하여, 호적과 대항했다. 그러나 그 수가 많았고 총기를 갖고있어 승산이 없어 후퇴하여야 했다. 탁청년은 뒤늦게 피신하여 바닷가 바위 틈에 숨어 간신히 죽음을 면했다고 하며, 그 후 탁청년의 용맹스런 애국심은 높이 평가되었다.
 
◈부자 이재익의 억울한 죽음 조선조 철종때 연수구 연수동에서 출생한 이재익은 부자였다. 가깝게 지내온 벼슬아치가 제주목사가 되려고 교섭하다,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익은 의리를 생각해서 돈을 꾸어주었고, 그는 제주목사가 되어 임지로 떠났다 한다. 어느날 인편으로 기별하기를 그 돈을 갚겠다고 제주도 구경도 할 겸 다녀가라는 기별이 왔다. 이재익은 기쁜 마음으로 제주관영에서 그를 만났고 빌려준 돈을 받아 배에 싣고 떠났으나, 그 후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의좋게 지내던 친구를 살해한 제주 목사는 그 후 죄값을 받았을 것이다.
◈연수구는 불과 5년 된 신설구로, 그 전에는 산과 밭으로 미개발지역이었다. 역사적 사건과 현장자료는 별로 없는 곳이기도 한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이광재 미상, 강계부사.
 
◈이상재 병자호란때의 충신이다.
 
◈이덕일 미상, 황해도 감사, 시호는 정절공이다.
 
◈이홍재 미상, 병조정란을 지냈다.
 
◈이근배 미상, 통정대부를 지냈다.
 
◈이근소 미상, 수군검사이다.
 
◈이병의 미상, 통정대부이다.
 
◈이한경 미상, 통정대부이다.
 
◈이필반 미상, 군자통정을 지냄.
 
◈이춘의 미상, 공조참의를 중직.
 
◈이종익 미상, 한성좌윤에 중직.
 
◈김겸의 미상, 동지중구부사를 지냄.
 
◈김선운 미상, 희선대부 중직.
 
◈김중기 미상, 통정대부에 중직.
 
◈이병석 미상, 자헌대부에 중직.
 
◈하중길 미상, 문관이다.
 
◈이시영 조선조, 판서, 세자사전이다.
 
◈이세봉 미상, 어해장군, 용양위부호군이다.
 
◈이기종 미상, 효자이고, 통덕랑이다.
 
◈이원옥 근세, 인천고등학교 교장.
 
◈이효례 미상, 현감, 예조판서중직.
 
◈최세준 임진왜란때, 장군이고, 학림군 공신.
 
◈최효생 미상,무관, 동림군에 봉해졌다.
 
◈정시온 미상, 승정원 좌승지이다.
 
◈정시성 미상, 사조판서이다.
 
◈정시창 미상, 형조정란이다.
 
◈정시광 미상, 사조참판에 중직.
 
◈정종보 미상, 왕자사전, 대사헌에 중직.
 
◈정일보 미상, 무과급제, 영장을 지냄.
 
◈정현보 미상, 제주목사.
 
◈정수기 미상, 승록대부, 형령부사.
 
◈정이량 미상, 좌의정을 지냄.
 
◈정원달 미상, 사조참판을 지냄.
 
◈정석달 미상, 길주목사.
 
◈정일달 미상, 도승지를 지냄.
 
◈정후겸 미상, 참판을 지냄.
 
◈정의주 미상, 승문원 좌승지를 지냄.
 
◈정태석 미상, 정평부사, 대종무관이다.
 
 
내 고장의 문화유산
■ 유형문화재(광역시 지정)
◈원대철제범종 제3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송대철제범종 제4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관음좌상 제5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정우량영정 제9호, 동춘동 325.
 
◈목조여래좌상 제13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목조보살좌상 제14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각국조계석 제4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원인재 제5호, 연수2동 584.
 
■ 문화재자료(광역시 지정)
◈학익지석묘 제2호, 옥련동 시립박물관.
 
■ 기념물(광역시 지정)
◈능허대지 제8호, 옥련동 194-54.
 
 
 
능허대지
■ 비지정
◈이허겸의 묘 비지정 유형문화재, 연수 2동 286-10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동막의 도당굿 마을의 안녕·풍어·풍양 등을 기원하는 마을제 또는 산신제로서 동막에는 마을 동쪽 나지막한 야산에 도당 할아버지(오른쪽), 도당 할머니(왼쪽)의 당가리를 모셔놓았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고 다만 동리들의 말로는 그 부락에 삶의 터를 마련한 시조(始祖)의 부부(夫婦)일 것이라고 한다.
인천은 포구도시인 까닭에 도당굿을 많이 하였다. 따라서 당(堂)도 상당수 있었으나, 일제때 태반이 없어지고 6·25전 까지는 경서동과 연희동에서도 도당굿을 하였으나, 그후 도당굿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던 동막의 도당굿 또한 1989년을 마지막으로 그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지금은 도당굿을 발굴, 재현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동막의 도당굿
구전설화
◈먼우금의 유래 인천 땅 먼우금이라는 곳은 옥련동, 동춘동, 청학동, 연수동을 관할한 면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지역 노인들은 '먼우금’이라 부른다.
먼우금의 전설은 옛날 문학면과 남동면 사이에는 갯골이 깊숙이 파고 들어가 만수동 앞까지 뻗치니 걸어서 가려면 10리 이상의 갯골을 돌아가야 하는데 배로 건너려면 400∼500m에 불과했다. 그래서 멀고도 가깝다 해서 먼우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또 한 설화는 ‘먼우금’이 ‘먼오금’으로 이 지역의 산맥이 멀어서 뻗어내려오다 보면 팔이나 다리가 오금처럼 휘어 오그라져서 ‘먼오금’이 ‘먼우금’으로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설화로는 먼우금이란 멀고도 가깝다는 뜻으로 옛날 옥련동 능허대에서 사신들이 배를 타고 중국 대륙으로 떠나던 나루라서 떠날 때에는 먼 길이나 이곳에 다다르면 갈 길은 가깝다는 뜻이라 한다.
 
◈뜬 돌을 깔았다는 고개 인천 연수동에서 동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논고개’라고 부른다. 조선조 영조 때 동춘동 일대가 연일 정씨들이 말을 타고 고개를 넘어갔다. 위엄을 뽐내기 위하여 고개길 바닥에 얕은 뜬 돌을 깔아서 말이 지나가면 말굽소리가 요란하게 나도록 했다. 그들은 말굽소리로 자기들이 온다는 신호로 이웃마을 사람들이 굽실거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큰 행차가 온다는 것을 알아 듣고 모두 나와 전송하기도 했다. 그래서 뜬 돌을 깔아놓은 고개를 ‘논고개’라 부르고 있다.
 
◈연일 정씨 99간 대가 인천지방에서 제일가는 명산대지는 척전리(동춘동)라 하겠다. 이 마을은 인천 명문의 연일 정씨의 세거지로 많은 인물이 배출된 곳이라 한다.
특히 정승을 지낸 학남대감 정우량은 경종 3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영조 4년에 부수찬으로 시독관을 겸임하고, 왕에 주청하여 퇴계, 율곡들의 문집을 간행케 했고, 대사성, 좌승지,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이어 판중추부사에 전임되었다.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권세와 영예를 누리며 부유하게 살았고 그의 집들은 궁궐같은 집을 지었는데 특히 99간 집이있다. 옛날에는 궁궐 이외 신하의 집은 100간 집을 지을 수가 없어 99간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헐어 버렸는데 이 집터에는 거목과 한 고가가 있으며, 그의 종손이 학남대감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용마가 낳았다는 아기장수 전설 청학동에 ‘흔들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그 연못의 물이 크게 흔들거리면서 연못 한가운데서 용마 한필이 쑥 솟아 올랐다. 그러자 별안간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아울러 하늘에서는 뇌성병력이 일어났다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 괴이한 광경을 보자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더욱 괴이하고 신기한 일은 이 마을의 최씨 집에 마침 아기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기의 겨드랑이 밑에는 날개가 달려있었다고 한다. 마치 용마의 날개와 비슷했는데 그 아기는 날개를 펼치면서 천장에 올라가 붙었다 다시 내려 앉았다가 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힘이 센 장사가 태어나면 장차 반란을 일으킨다 하여 나라에서 가족들까지도 모두 잡아서 죽였다. 그래서 그의 부모들은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부모들은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그 아기를 죽여버렸다. 그러자 또 괴상한 일이 일어났으니 그 흔들못에서 솟아오른 그 용마가 슬픈소리로 울어대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 용마는 하늘로 날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이때 또 다시 뇌성병력이 일어나면서 용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한다.
 
◈마리에 전해오는 전설 현재 연수 1동 4단지 서쪽 일부 지역을 ‘마리’라고 불렀는데 옛날 한때 이곳은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동네 가축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어버렸다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산신령의 노여움 때문이라 생각하고 큰 감나무 밑에 상돌(제사를 지내기 위해 놓은 돌)을 놓고 산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해마다 감나무에는 많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지만 열린 감 중에 한 개를 사람이 먹으면 죽어버린다고 하여 감을 따지 않았다 한다.
어느날 석공이 제를 지내는 것은 미신이라 하여 상돌을 깨뜨려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석공의 아내는 바다로 조개를 캐러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고 딸은 비가 많이 오는날 고개를 넘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죽었으며 석공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한다.
지금 이곳은 택지개발로 인하여 주택단지로 변해 있으며, 지금까지도 매년 음력 4월 15일이면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산쪽에서 매년 산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이름 두루메기, 구레메기 연수동 동남쪽 한 마을을 두루메기 또는 구레메기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 이름이 석연치 않다. 우리말로 학을 두루미라 했다. 풍수설에 길마산 동북향의 지향이 마치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이라 이를 갈마음 수혈이라 했다. 그래서 말이 물을 못먹어 힘이 빠져 굴레를 벗어버리고 이 고개를 넘어 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 구레메기가 된 것 같다.
이 두레메기가 학의 별명인 두루미에서 나온 말이고 구레메기는 말이 굴레를 메고 넘어왔다고 붙여진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의 길마산의 산명은 말의 안장, 즉 길마에서 유래된 것이며, 흔들목 고개 역시 말이 말방울을 흔들며 지나갔다고 해서 흔들고개가 된 것이라 한다.
 
주민의 생활권역
연수구는 옥련동(송도권)을 중심으로 음식점과 유흥업소의 집결지이다. 시민들이 자주 찾아가는 음식점이 많다.
킴스클럽과, 한화마트, 롯데마그넷, 대동월드 등 비교적 대형 편의시설이 좋은 편이다.
아직 대중교통수단이 미약한 편이나, 1999년 인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어 향후 연수구의 숙원사업인 최첨단 위락시설이 완성되면, 인천에서 가장 훌륭한 신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지역의 별미음식
◈송도갈매 연수구 옥련동 499,갈매기살 ☎ (032) 831-6010
 
◈언덕마루 연수구 옥련동 508,버섯생불고기 ☎ (032)834-2300
 
◈다리집 연수구 옥련동 550-2,꽃게, 활어전문 ☎ (032)833-1796
 
◈칡넝쿨 연수구 옥련동 415-3, 칡냉면 ☎ (032) 833-6555
 
◈아리랑횟집 연수구 옥련동 540-1, 활어, 꽃게탕 ☎ (032)832-5304
 
◈길집 연수구 옥련동 550-1, 산꽃게탕 ☎ (032) 832-7274
 
◈경복궁 연수구 옥련동 572, 소갈비 ☎ (032) 831-7776
 
◈모란각 연수구 옥련동 564-17,냉면, 만두 ☎ (032)833-1575
 
◈솔밭가든 연수구 옥련동 산85-24, 유황오리 ☎ (032)833-7771
 
◈궁중삼계탕 연수구 동춘동 800-4, 삼계탕 ☎ (032)832-3380
 
◈아리아리랑 연수구 동춘동 819, 산채정식 ☎ (032)833-0505
 
◈명동칼국수 연수구 동춘동 809, 보리밥 ☎ (032) 833-9423
 
◈제주도먹갈치 연수구 동춘동 809-11, 갈치조림 구이 ☎ (032)833-3766
 
◈대흥물텀벙 연수구 동춘동 800-9, 아구탕 ☎ (032)832-0088
 
◈하동재첩마을 연수구 동춘동 817-2, 다슬기탕, 재첩국 ☎ (032) 831-1117
 
◈송도소머리국밥 연수구 동춘동 816-2, 소머리국밥 ☎ (032)833-0700
 
◈송도장 연수구 동춘동 783-16, 장어구이 ☎ (032)833-8855
 
◈금강산 연수구 동춘동 816-5, 설곰탕 ☎ (032) 831-1117
 
◈거북정 연수구 연수1동 574, 칡냉면 ☎ (032) 815-1755
 
◈시정찹쌀순대 연수구 연수2동 618-6, 순대국밥 ☎ (032)811-2329
 
◈진성춘천닭갈비 연수구 연수2동 620-13, 뼈없는 닭갈비 ☎ (032) 821-8840
 
◈김정문칼국수 연수구 연수2동 598-6, 칼국수 ☎ (032)821-2626
 
◈시골촌두부집 연수구 청학동 482, 모두부, 콩비지 ☎ (032) 821-0606
 
◈금산식당 연수구 청학동 483, 벤댕이 ☎ (032) 818-1893
 
◈송도역 기차까페 연수구 옥련동 292, 기차정식 ☎ (032)834-9955
 
◈연수철판구이 연수구 동춘동 934 안심철판구이 ☎ (032)819-5757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연수구 구민한마당 잔치 연수구는 전통민속문화인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통한 구민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1995년부터 구민 한마당 잔치를 연다. 각종 민속경기, 농악시연, 향토주점 등 행사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개최한다.
그외 청소년 음악회, 가족영화 상영 등이 개최되고 있다.
 
 
 
구민한마당잔치
지역언론기관
◈경기FM방송 인천지역총국 연수구 옥련동 531-3 ☎ (032)831-6417
 
◈산업안전신문(주간) 연수구 동춘동 923 ☎ (032)812-8489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능허대 연수구 옥련동 194-54, 중국 왕래 배터.
 
◈청량산 연수구 옥련동(청학동, 동춘동)일원, 높이 172m.
 
◈흥륜사 연수구 옥련동 소재, 고려 우왕 2년 공민왕의 왕사인 나옹스님이 창건한 절.
 
◈호불사 연수구 옥련동 산 65.
 
◈외국인묘지 연수구 옥련동, 개항 후 외국인 묘.
 
◈아암도 연수구 옥련동 섬, 낚시터 등.
 
관광시설
◈호텔송도비치 연수구 동춘1동 812, 객실192(토산품점, 갤러리 등) ☎ (032)832-1311-20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연수구 옥련동 525 전시장 ☎ (032)832-0915
 
◈송도유원지 연수구 옥련동 504, 관광명소(해수욕장), 여가자원 놀이터
 
관광코스
◈1코스 연수구청 → 인천시립박물관 → 인천상륙작전기념관 → 능허대 → 송도유원지
 
◈2코스 연수구청 → 문학산성 → 청량산 → 흥륜사 → 호불사
 
관광쇼핑
◈대동월드 연수구 연수 2동 633 ☎ (032)815-9600
 
◈동남스포피아 연수구 연수 1동 536 ☎ (032) 814-7000
 
◈영남스포렉스 연수구 연수 3동 577 ☎ (032) 811-3112∼14
 
◈킴스클럽 연수구 청학동 451 ☎ (032)810-5000
 
◈한화마트 연수구 동춘동 ☎ (032)811-1301∼6
 
◈롯데마그넷 연수구 청학동 ☎ (032)810-2500
 
관광안내소
◈연수구 관광계 ☎ (032)817-1011
 
여가시설
◈청량산 연수구 옥련동 일대
 
◈송도 골프장 연수구 동춘동 호텔송도비치 앞 : 해안 매립지에 골프장이 있다.
 
◈아암도 낚시터 연수구 아암도
 
◈대우 스키돔 연수구 옥련동 소재(송도유원지 옆)
 
 
 
 
 
 
6. 문화시설자원
 
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연수구 옥련동 525, 1990년 신축, 고려시대, 근대 등 4,352점 소장 ☎ (032)832-2152
 
공연장
◈연수구청 연수구 동춘동 923-5, 공연장 490석 ☎ (032)817-1011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연수구 옥련동 525, 공연장 150석 ☎ (032)832-0915
 
◈학동예술관 연수구 연수동 569-4 좌석수, 120석 ☎ (032)821-0202
 
연수구청 소개
◈연수구청 동춘동 923-5 (032)817-1011
 
 
 
연수구청사
◈연수구 소개 연수구는 5년 된 신도시로 농촌에서 도시로 탈바꿈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도시다. 자연 입지조건이 아름받고, 옥련동 일대는 다변화된 유흥업소와 음식점이 점거하고 있어 생활권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인천시민들이 즐겨 가족단위로 이곳을 찾고 있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의 음식문화가 이곳에 성업하고 있다.
특히 연수구는 주변에 미추홀 왕국 성터가 자리잡고, 청량산, 봉재산 등이 감싸고 있어, 자연과 구민간의 조화로움 속에 선진 도시구조 형성을 위한 청사진이 진행되고 있다.
연수구의 숙원사업인 송도유원지 일대 매립지 29만평에는 세계최대의 실내 스키돔, 88층의 매머드 호텔, 차이나타운, 콘도 등 최첨단 위락시설의 건설은 놀이문화를 조성하게 될 것이다.
향후 연수구의 신도시 개발은 관내에서도 괄목할만한 생활문화자원이 형성될 것이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정보
• 연수구의 역사문화자원
• 연수구의 어제와 오늘
(2005.06.0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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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