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는 광주산맥의 지맥으로 비교적 험준한 산세를 이루는 검단산의 줄기가 남한산성으로 이어진 산록과 청계산의 여맥이 남북으로 거의 평행선을 이루는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성남시의 지형은 일반적으로 300∼600m에 이르는 산지와 탄천 중심의 하곡평야의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시의 중앙을 관통하는 탄천이 북류하여 한강과 연결되고 있어 한강 문화권역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성남시는 동쪽으로 광주군, 서쪽은 과천·의왕시, 남쪽으로는 용인시, 북쪽은 서울시에 접하고 있다.
‘성남’이란 명칭은 남한산성의 남쪽이란 데서 연유한 것이며 해방 후 1946년 3월 광주군 세촌면 관할구역 6개리(단대, 탄, 수진, 상대원, 복정, 창곡지역)를 관장하는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가 개소함에 따라 ‘성남’이란 지역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1964년에 광주군의 성남출장소로 승격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업무를 능동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1968년 5월에 이르러 ‘중부면 성남 지구 일단의 주택단지경영사업’이 건설부에서 인가되고 무허가건물 일소에 따른 철거민 정착주택단지를 조성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후 주택단지 조성과정에서 1971년 8월 입주민들의 소요가 발생하기도하였다. 그 결과 1971년 9월에 경기도 직할 성남출장소가 설치되었고 기존의 중부면을 포함한 6개리와 대왕면·낙생면·돌마면의 편입을 통하여 관할지역의 확대를 도모했다. 1973년 7월 1일 성남시로 승격하였다. 성남시로서의 새로운 출발은 기존의 개발 난맥상에서 발생한 문제점과 과도기의 혼란 및 기형적인 도시 성장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어 성남시의 인구 증가로 인하여 1989년에는 수정구와 중원구를 승격 설치시켜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나갔다.
성남시의 제2의 도약적인 발전은 분당지구 개발지원사업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1989년 4월 성남 남단 녹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분당지역 일대의 540여 만평 규모에 10만 6천호 건설 사업을 핵으로 하는 신도시 건설계획의 입안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성남시는 수도권의 일부 기능을 수행하는 부차적인 도시의 성향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적 독립시로의 승격이 진행되면서 비약적인 발전 과정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1991년 분당 신도시주택이 건설되면서 ‘분당구’가 형성되었고, 현재 30만 세대, 인구 92만여 명의 성남시로 성장하였다. 2000년대를 지향하는 성남시는 판교 지역의 개발과 지역내 산업구조 개편사업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산업디자인센터를 건립하여 산업디자인의 중심도시를 이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첨단지식산업, 즉 벤처산업의 특화지역 육성책을 통한 도시발전을 실행해 나가면서 새천년 미래 신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상고 B.C 18 백제시대 백제 시조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 옛터에 도읍지 지정
삼국 475 고구려 영토 한산군에 편입 553 신라 영토 산주(한산주) 568 남천주로 개칭
통일신라 664 한산주로 개칭 668 남한산주로 개칭 756 한주로 개칭
고려 940 광주로 개칭 983 광주목으로 승격
995 관내도에 편입 1018 양광도로 개칭
조선 1395 경기좌도로 편입 1577 광주부로 승격 1623 유수부로 승격 1760 현 성남시 관할인 당시 세촌면,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으로 구분 1895 광주군으로 개편
근대·현대 1911 현 성남시 관할의 세촌면이 중부면으로 개칭됨 1919 돌마면 율리 일원에서 3.1독립만세 봉기 1946 중부면 성남출장소 개소 1961 모란개척단에 의한 성남동 일원 개발 착수 1969 광주군 성남지구 도시건설사업소 설치 1970 광주대단지 사업소 설치 1971 8.10 광주대단지 소요사건 발생, 9월 경기도 직할 출장소 설치 1973 성남시 승격(18개 동) 1989 수정구, 중원구 신설 및 승격, 분당개발사업소 설치 1991 분당구 승격으로 신도시 개발 1994 지하철 '분당선' 개통 1996 지하철 '8호선' 개통 2000 3개 구, 44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