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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과천시 경기도 과천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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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 정보
◈ 과천시의 생활문화자원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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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문화자원

 
 

1.1. 전통생활민속

◈ 무동답교놀이
무동답교놀이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사도세자 능행시 대왕의 효행을 칭송하기 위해 종래의 기풍(祈豊)의례인 지신밟기와 답교놀이에 무동극을 가미한 민속놀이이다. 무동은 모두 여섯 명으로 별감·나장·소승·팔복이 각 1명이고, 여무동이 2명인데 어린 소년 소녀가 윗무동이 되어 장정인 밀무동의 어깨 위에서 해학적으로 연출한다. 악대편성은 일반 농악대와 대동소이하며 다만, 왜장녀, 방자, 길라잡이, 촌장, 마을사람들이 등장하여 무동과 호흡하며 연출한다. 일제강점기에 중단된 것을 이지역 이윤영(작고)씨의 증언으로 복원하여 과천민속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 게줄다리기
광무 2년(1898) 정월 17일에 있었던 줄다리기가 이 지역 출신 우산 신종묵(작고)의 『우산만고』에 관전기가 나온다.
 
“물러남으로 승리를 삼고, 나아감으로 패배를 삼는데 게는 물러나는 걸음을 장기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하기를 게줄다리기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취해 왔을 것이다. 남충(南充, 과천)은 삼남가는 큰 길가에 끼어 있어 백성과 물산이 풍성하며 인가가 조밀하다. 이따금 놀이하는 일도 많아 불싸움놀이와 돌싸움놀이가 모두 그 도구인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줄을 당기는 놀이이다. 매양 풍년들고 사람들이 즐거울 때를 당하면 마땅히 이 행사가 있게 된다. 오늘 남창교 위에 제일 장관이 그것이다. 숫줄과 암줄이 다리의 남·북으로 나뉘고 달리는 뱀 모양으로 꼬아 누운 용의 모양을 가마 태우듯이 한다. 음양의 이치로 결합되고 승부의 수를 비교하는데 온 성안이 개울을 갈라 많은 사람이 바다와 같다. 징을 울리며 기를 흔들고 각기 줄을 뒤로 당기고, 어영차 하는 소리가 양편에 진동하면서 어깨가 대이고 입을 다물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부라린다. 한바탕 지고 이김에 한번 즐거워하고 한번 분해하는데 노래하는 사람과 춤추는 아동이 승리를 틈타 단란하게 기뻐하니 해로울 것이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불싸움 놀이와 돌싸움 놀이보다 낫다고 한다.”
 
이 줄다리기는 1915년 2월 18일(김수온 증언)에도 있었는데 북쪽의 하리·막계리·주암리 사람들을 내점팀으로 하고, 남쪽의 관문리·문원리·갈현리 사람들을 외점팀으로 하여 줄다리기를 하였는데 줄의 굵기가 장정이 타고 앉으면 발끝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일제가 민족의 단결을 염려하여 중단시켰던 것을 해방 후 다시 재연하였었는데 줄의 굵기는 훨씬 작아졌다. 과천 도시화 과정에서 중단되었던 것을 1993년 시민의 날을 기념하며 과천 민속보존회 주관으로 재연된 바 있다.
 
◈ 보부상 두령뽑기
조선 말기 중상주의가 발달됨에 따라 대원군은 상인들을 통한 재력확보로 실권을 되찾고자 때 아니게 사발통문을 내 보부상 두령을 새로 뽑는다. 이때 송좌를 중심으로 양주, 과천, 광주, 용인 등 근기 5읍 처소의 임방들이 송파에 모여 두령(접장)을 뽑는다. 이때 각 임방의 일행맞이, 마방, 중노미, 걸궁패, 상노미, 환쟁이, 화랭이 등의 잡색놀음(난장판)이 벌어지고 권점을 주어 두령을 뽑는 방법이 민주적이며 두령을 뽑고 나면 삼현육각이 연주되는 가운데 제왕즉위식에 준한 공문제가 이루어진다. 1995년 이후 과천민속보존회에 의해 복원 전승되고 있다.
 
◈ 원소절
정월대보름에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위해 부림1교에서 유교식 제례에 준해 천·지신에게 기복하는 의식이 진행된다. 제례가 끝나면 민속보존회의 답교놀이가 연출되고 일반시민을 포함한 참가자 전원이 소지하고 음복(잔치)한다.
 
◈ 도당제
남태령 고개 밑 삼거리(하리) 주민들이 10월 1일 가가호호 추렴하여 송암사 뒤 도당터에서 산신에게 기복하는 산신제를 지내고 대로변에 있는 성황신목(느티나무)에게 성황제를 지낸 후 주민 모두가 음복하는데, 현재 이용완씨가 주재한다. 이와 같은 산신제는 마을마다 모두 있었는데 대부분 소멸되고 찬우물 우물제가 존속되고 있다.
 
 

1.2. 구전설화

◈ 남태령 지명유래
과천에서 서울쪽으로 가는 큰 고개는 여우(산적)가 많이 나타나 과천현에서는 고개 밑에 유인막을 짓고 이 유인막에 고개를 넘는 손님 50명이 모이면 관가에서 나온 관리가 호송하여 고개를 무사히 넘게하고 호송료를 받는데서 ‘쉬네미고개’ 또는 ‘여우고개’로 불리어 왔다. 정조대왕이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에 능행할 때 이 고개에서 잠시 쉬며 한노인(변이방)에게 고개이름을 묻자 노인은 「남태령」이라고 고쳐 아뢰었다. 이에 정조는 고려때 강감찬 장군(관악산 낙성대출신)이 이 고개를 지나다 여우들의 장난이 너무 심해 “너희 여우들이 다시 이 고개에 나타나는 날이면 너희 족속들을 모두 멸종시키겠다”고 호통을 친 후 '여우고개'가 되었다는 전설을 들어온 터라, 노인이 거짓말을 아뢰고 있다고 판단하고 크게 꾸짖으며 거짓 이름을 댄 이유를 묻자 노인은 “이 고개 이름은 원래 여우고개이나 상감께 그런 상스러운 이름을 고하기가 황송하옵기로 생각나는대로 아뢰었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어찌하여 남태령이라고 했는고”라고 정조께서 물으니 “이 고개가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게 되면 맨처음에 나타나는 큰 고개이옵기에 그리 아뢰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정조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노인을 가상히 여겨 주지(周知)의 벼슬을 내리고 이후 고개이름을 ‘남태령(南泰嶺)’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 벼슬을 받은 찬우물
정조대왕이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에 능행할 때에는 과천행궁에서 쉬고 화성(수원)으로 행하게 되는데, 갈현리 찬우물 마을 앞에 이르러 갈증을 말하자 신하가 동네우물에서 물을 떠다 드리니 정조께서 물을 마시고서 “물맛이 좋고 차다”며 가자당상(加資堂上)에 제수토록 명하여 이후 가자우물이 되었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도 과거에 급제하고 남원으로 가는 도중 이 우물에서 물을 마셨다고 전해지며, 마을에서는 음력 4월과 7월 영농의 한가한 틈을 타 우물고사를 지내오고 있다.
 
◈ 불산(火山)인 관악산
해발 629m의 관악산은 한양의 조산(祖山)으로 그 형상이 관(갓)처럼 생긴 산이라 하여 관악산이라고 했으며, 풍수지리학상 한양 남쪽에 있는 불산(火山)이라 하여 쳐다보기조차 꺼려 했다. 조선 초기 왕궁터를 정할 때 관악산을 정남으로 하면 관악산이 궁성을 위압하여 국가가 평안하지 않다는 무학대사의 주장과 한양과 관악산 사이에 한강이 있어 관악산의 화기를 한강이 막게되어 무방하다는 정도전의 주장이 맞서기도 했었다.
 
풍수지리설을 믿던 당시에 숭례문(남대문) 바로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파고, 모든 성문의 현액이 가로로 되어 있음에 비해 숭례문의 현액을 세로로 써서 관악산의 화기를 막고자 하였는데, 숭례의 예(禮)는 오행으로 따져 불에 해당되고 오방(五方)으로는 남에 해당하며, 숭(崇)자는 불꽃이 타오르는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숭례는 세로로 붙여야 불이 타오를 수 있어 불산에서 옮겨 붙는 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의 화기를 막기 위하여 물짐승인 해태의 조각상을 궁 안에 설치하고, 관악산 꼭대기에다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우물에다 넣었고, 관악산정 연주봉에 아홉개의 방화 부적을 담은 물단지를 넣기도 했다. 지금도 남태령 고개에는 길 양쪽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해태상이 세워져 있다.
 
 

1.3. 주민의 종교생활

전통적인 마을 신앙이 곳곳에 남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은 하리와 주암리의 산신제, 성황제와 우물물이 잘나서 풍년들기를 기원하는 갈현리 찬우물 마을의 우물고사(용왕제)가 이어지고 있을 뿐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고 대신 개신교가 그 자리를 빠르게 메워가고 있다. 현재는 불교 사찰 10개소, 개신교 교회 30여개소, 천주교 성당 3개소(수녀원 1곳)등이 있고 신흥종교인 소망(이삭)교회가 본부를 두고 있다. 6·25 이후 각 세도의 분파인 천지원리교를 이성재가 과천에서 창교하였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1.4. 주민의 생활권역

주말 관광레저지역
과천은 서울근교 지역으로서 관악산·청계산의 수려한 경관과 국립현대미술관·서울대공원·서울랜드 등 테마관광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과천 경마장의 레저공간이 있어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수도권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이들 관광지는 결혼기념사진촬영장소로도 크게 활용되고 있다.
 
주암동 화훼단지
과천시 주암동·과천동 일대는 339 화훼농가가 밀집하여 인근 서초동·양재동과 함께 화훼단지를 이루어 꽃과 분재의 유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체육의 전당 시민회관
과천시민회관은 문화와 체육의 복합기능을 갖는 11,944평의 대규모 시설로서 한수이남에서는 예술의 전당과 함께 문화·체육진흥의 거점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시민들은 수영·볼링·헬스·아이스링크·에어로빅 등 체력관리와 대·소극장 공연 관람 외에 컴퓨터강좌·서예·국악·한국화·서양화·손뜨개질·일본어·영어강좌·미용맛사지·자동차정비·바둑·글짓기·선물포장·고전강독·수지침·한국무용·사물놀이·탈춤·바이올린·단소, 기타 풍물·단전호흡 등 문화소양을 익히고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용객이 줄을 잇는다. 문화강좌는 이외에도 문화원·도서관·각 동사무소 등 여러 곳에 개설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문화소양을 넓혀가고 있다.
 
 

1.5. 지역의 별미음식

◈ 일본에까지 소문난 수동정육
수동정육은 약 35년 전부터 서민들을 위한 주물럭구이 형식으로 술과 함께 팔아 왔는데, 1인분이 다른 집과 달리 기름을 뺀 200g이기 때문에 실질적 고기량이 많고, 고기를 냉동실에 얼리지 않고 냉장실에 보관하기 때문에 육질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이는 매일 소 한마리 분이 팔리기 때문에 가능한데 고기 맛이 좋고 양이 많아 지역주민은 물론 강남일대를 찾는 일본인에게도 소문이나 각광을 받고 있다.
 
◈ 건강식 오리 찰흙구이
오리속에 배·인삼·대추·밤·녹각·황기·당기·감초·마늘 등의 보양제를 넣고 오리 표면을 황토흙으로 싸 발라 옹기에서 구워내는 요리로 갈현동 소재 ‘숲속의 하얀집’의 주메뉴이다.
 
◈ 대나무통밥 한정식
대나무통에 백미·흑미·수수·검정콩·은행 등을 넣어 밥을 짓는 것으로 대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이 성인병 및 중풍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문원동 소재 ‘산수갑산’의 주메뉴이다.
 
 

1.6.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지명이 된 밤
과천은 관악산·청계산·우면산 등에 밤나무가 많아 옛지명이 ‘율목’, ‘율진’, ‘과주’이었듯이 밤이 많이 나는 고장이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경기도 장원서 경외과원에 과천이 있고 과목에는 밤나무가 기록되어 있으며, 과천주민은 과목관리를 위하여 잡역을 면제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세종조에 2석, 정조 때 9석의 종자밤을 보급하여 정조·순조 때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민가에서 밤밥, 밤경단, 밤묵 등의 요리로 사용될 뿐 상업적으로 특화된 밤 특산품은 없다. 다만 매년 9월 밤아람이 적당히 벌어지는 날을 정하여 갈현동 소재 밤나무동산에서 밤줍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 과천시 정보
• 과천시의 역사문화자원
• 과천시의 생활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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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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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