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수도권) 중심부에 위치한 과천은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 구릉지대에 형성된 도시로 정부과천청사가 소재하여 행정수부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전체면적의 92%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역이다.
과천의 진산인 관악산은 경기 5악 중의 으뜸으로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어 왔으며 수목이 울창한 청계산 자락에 조성된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경마장과 함께 수도권 시민이 주말에 즐겨 찾는 관광위락 지역이다.
과천의 남태령 고갯길은 한양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중요 교통로이기 때문에 과천은 한양의 관문 역할을 담당했고, 조선시대 제왕이 능행이나 온행을 위해 남행(南幸)할 때 과천객사에서 자주 경숙하여 다른 지역보다 규모가 큰 관아가 있었으며, 왕의 남행을 환송하기 위한 민속놀이(무등답교놀이)가 연출되어 오늘날 문화와 체육의 전당 과천시민회관을 중심으로 과천 세계마당극제를 비롯한 문화·예술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과천은 서울과 인접해 있고, 정부과천청사 소재로 인한 통신망이 잘 발달되어 있는 데다 공장이 없는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정보산업육성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이 분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본 참고자료였던 『과천현 신수읍지』에 “과천은 산읍도 해읍도 아니고 토양마저 자갈이 많은 척박한 땅이어서 토산품이 별로 없으나 밤이 많이 생산되어 율목·율진·과주라는 옛 지명을 간직한 곳이며, 백성들은 농사와 양잠에 종사하여 부자는 없으나 자못 예의를 지켜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기록하고 있듯이, 현재의 과천 시민은 도시화가 이루어져 비록 농사나 잠업은 아니더라도 각자 생활에 충실하고 예의를 지켜 범죄가 없는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에서 산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고대 선사시대 군 전역에서 청동기시대 지석묘 발견 마한의 백제국 등 소재 475 고구려 장수왕 63년, 백제의 수도 한산을 점령하고, 지명을 율목군 또는 동사힐로 부름 757 신라 경덕왕 16년, 율목군을 율지군으로 개칭하고 곡양(시흥), 공암(양천), 소성(인천)현을 속현으로 둠 898 신라 효공왕 2년, 궁예에 의해 평정되어 후 고구려 땅이 됨
고려 918 왕건에 의해 궁예가 축출되고 고려에 속함 940 태조 23년, 율진군을 과주군으로 개칭하고 감무관을 둠 990~994 성종 9 ~ 13년, 부림·부안이라는 별호 사용 1284 충렬왕 10년, 용산처를 부원현으로 승격 분리
조선 1413 태종 13년, 과주군을 과천현으로 개칭 1414 태종 14년, 금천현과 병합하여 금과현으로 하였다가 두달만에 파함 1456 세조 2년, 금천현과 병합하여 금과현으로 하였다가 곧 파함 1789 정조 13년, 호구총수에 과천현에 7개면 40개리, 3273호, 14,179명 기록 1895 고종 32년, 홍범 14조에 의해 과천현이 과천군으로 개칭됨
근대·현대 1914 과천군, 안산군이 시흥군에 통합되어 과천군은 과천면이 됨 동면 주암리를 과천면에 편입 1936 시흥군 북면(과천군 하북면), 노량진리 본동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편입 1949 시흥군 북면(과천군 하북면) 동작리·흑석리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편입 1963 시흥군 신동면(과천군 동면 상북면)서 초리·잠실리·반포리·방배리·양재리·우면리·산원리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편입 시흥군 신동면(과천군 상북면)사당리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편입 1973 시흥군 안양읍(과천군 하서면·상서면)호계리·비산리·1동리·2동리 안양리·안양시로 승격 1979 경기도 과천지구 자원자업소 설치 1982 경기도 과천 출장소 설치 1986 시흥군 과천면(과천군, 군내면) 과천시로 승격 1989 시흥군 군포읍(과천군 남면)당리·산본리·당정리·금정리·부곡리 군포시로 승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