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장수왕 63년(475) 국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진정책을 추진하여 그 결과 백제수도 한성을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서 백제는 부득이 수도를 웅진(熊津)으로 옮기게 되고 경기도의 전지역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에 따라 고구려는 과천시의 전역과 군포시, 안양시의 만안구 안양동, 동안구의 호계동 등을 율목군(栗木郡)이라 칭하였다.
이어 반도 동남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신라가 진흥왕 14년(553)에 한강 유역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문무왕 16년(676)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대에 이르러 행정구역을 정비하여 9주 5소경을 설치하였다.
이후 고려가 건국될 때까지 군포시는 신라의 영토로 존속하게 되었다.
9주 아래 설치한 군과 현은 경덕왕 16년(757)때 일대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율진군(栗津郡)으로 개칭되었다.
율진군은 오늘의 과천시, 군포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작구, 관악구, 영등포구, 구로구, 서초구의 일부 지역이었다.
신라 말기에는 지방의 호족이나 성주, 촌장 등에 의하여 후삼국이 성립되었으나 궁예를 축출하고 개성지방에서 세력을 규합한 왕건에 의하여 후삼국이 통일되었다.
◈ 송복산(宋福山, 1390∼1467) 조선 초기 문신으로 자는 향부(享夫), 호는 묵재(默齋),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는 처음 음보(蔭補)로 서사정에 임명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감찰과 사농소윤(司農少尹)이 되었다. 그후 네 현(縣)의 수령을 지내고 해주목사에 전임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었다. 후에 승진을 거듭하여 품계는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고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거쳐 한성부판사에 올랐다. 1467년 4월에 78세의 나이로 죽자 지금의 군포시 금정동에 묘소를 조성하였다.
◈ 정난종(鄭蘭宗, 1433∼1489)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자는 국형(國馨), 호는 허백당(虛白堂), 본관은 동래이다. 세조 2년(1456)에 생원 진사시와 식년(式年) 문과에 급제, 1463년에 시강원 문학을 거쳐 예조정랑 종부사소윤(宗簿寺少尹)을 지냈고 동부승지, 좌부승지, 예조참판을 거쳐 형조참판으로 오위장(五衛將)을 겸하였다. 이어 황해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이시애(李施愛)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웠으며 그후 병마절도사, 우참찬, 이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를 역임했다. 그는 훈구파의 중진으로 성리학에 밝았고 세조, 성종대 최고의 서예가였다. 초서와 예서를 잘 썼는데 조맹부체(趙孟體)에 뛰어났다. 시호는 익혜(瀷惠)이고 묘는 지금의 군포시 속달동에 있다.
◈ 한치의(韓致義, 1440∼1473)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의지(誼之), 본관은 청주이다. 좌의정 한확(韓確)의 아들이고 인수왕비(仁粹王妃)의 동생이다. 예종 즉위 후에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성종 1년(1470)에 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에 올라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참판, 공조참판을 역임하고 1472년 병조판서로 승진하였음. 시호는 장도(章悼)이다. 묘는 지금의 군포시 산본동에 조성되었다.
■ 사적 • 군포시 산본동 조선백자요지 - 제342호, 산본동1057-4
■ 중요무형문화재 • 방자유기(김문익) - 제10호, 대야미동 122-1
■ 기념물(이하 도지정) • 정난종선생묘 및 신도비 외 묘역일원 - 제115호, 속달동 산 3-1 • 이기조선생묘 - 제121호, 산본동 1152-11 • 전주이씨안양군묘 - 제122호, 산본동 산27 • 김만기선생묘역 - 제131호, 대야미동 158-3,4,5
■ 문화재자료 • 정운석전통가옥 - 제95호, 속달동 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