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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 정보
◈ 상주시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사벌국의 멸망과 상주(上州)의 설치, 삼국(三國)의 왕(王) 배출, 우리나라 최초의 범패(梵唄) 보급지, 국토수호의 충혼이 서린 금돌성(今突城), 임진왜란때 상주 전역에 걸쳐 복호(復戶)를 받은 충절의 고장, 사설의료원 존애원(存愛院) 설치, 한국 유학사(儒學史), 동양 초유의 천도유경설(天道有敬說) 발표, 상주목 성(城)의 훼철, 상주 동학농민혁명운동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사벌국의 멸망과 상주(上州)의 설치
상주의 역사 문화는 사벌국(沙伐國)에 근원을 두고 있다. 『삼국사기』 「열전」 ‘석우로(昔于老)’조에 의하면 사벌국은 신라 첨해왕(재위 247∼261) 때 석우로에게 망하여 신아 소속의 주(州)가 되었다.
 
유례왕 10년(293) 2월에 사도성(沙道城, 현 영덕)을 개축하고 사벌의 부유한 민가 80여 호를 옮겨 살게 하였다.
 
법흥왕 12년(525) 상주(上州)를 상주(尙州)로 개칭했는데 이것은 신라가 고구려 장수왕에게 빼앗긴 서북방 일대의 회복과 백제를 견제하는 의미가 포함된 북진책의 강한 의사표시였으며 실질적인 상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 삼국(三國)의 왕(王) 배출
상주는 삼국의 왕을 모두 배출한 희귀한 고도(古都)이다. 사벌국(沙伐國, 사벌면)의 왕과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 함창읍)의 왕과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상주 가은현)을 배출하여 한 지역에서 세 나라의 왕을 배출한 것은 그 유래가 없는 일로 왕기(王氣)가 서린 땅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범패(梵唄) 보급지
통일신라시대의 고승인 진감국사(774~850)는 흥덕왕 5년(830)에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상주 노악산 장백사에 불교음악의 일종인 범패(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를 이곳에 최초로 보급하였다.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악곡의 하나이다.
 
◈ 국토수호의 충혼이 서린 금돌성(今突城)
· 태종무열왕의 삼국통일 대업의 첫 경륜장 : 신라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해 김유신 등의 군대가 백제로 출정할 때 (660년 6월 21일부터 7월 29일까지) 이곳에 직접 머물면서 백제왕의 항복을 받았다는 승전보를 접한 총 지휘소였다.
 
· 몽고 차라대(車羅大)군의 대파 : 고려시대 몽고의 차라대가 군사 5천명을 이끌고 고종 41년(1254) 겨울(10월) 상주까지 침공하였을 때 은척면 황령사의 중 홍지(洪之)가 관민병을 이끌고 백화산 저승골로 유인하여 싸워 이긴 승첩지이다.
 
· 임진왜란 때 상주의병의 향병소(鄕兵所) : 왜적이 침입하여 국토가 교란되고 패전이 거듭되자 상주의 선비들이 의연히 일어나 의병을 양성하던 곳으로 국난 극복책을 강구하였으며, 조선의 형제애를 중국에까지 드날린 월간(月澗)·창석(蒼石)의 「형제급난도(兄弟急亂圖)」의 탄생지이다.
 
◈ 임진왜란때 상주 전역에 걸쳐 복호(復戶)를 받은 충절의 고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중앙군을 급히 내려 보냈다. 만산동 북천변은 우리나라 중앙군과 왜적과의 공식적인 최초 격전지로서, 당시 순변사 이일과 상주목사 김해는 도망을 갔으나, 관군 60여 명과 민병 800여 명은 왜적 1만 5천명에 대항하여 모두 순절하였다. 선조는 이 장한 소식을 듣고 교서를 통해 장려하고 상주전역에 복호(조세면제)를 내린 유일한 고장이다. 1592년 7월 30일 은척면 황령사에서 창의진(倡義陣, 함창지역)이, 9월 13일 백화산 고모담에는 상의진(尙義陣, 상주지역)이, 8월 16일에는 충보군(忠報軍, 속리산 지역)이 조직되어 의병활동을 한 충절의 고장이다. 만산동 699번지에 상주임란북천전적지(지방문화재 기념물 제77호)가 있다.
 
◈ 사설의료원 존애원(存愛院) 설치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어 피폐화된 상주 사회의 질병치료를 위해 존심애물(存心愛物)을 선비의 덕목으로 여기던 이 지역 선비들이 13개 문중에서 성금을 거두어 1599년에 사설의료원인 존애당(뒤에 원으로 바뀜)을 세웠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이 지역의 민생안정 향풍쇄신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산 교육장이었으며, 갑오경장까지 문회와 시회를 겸한 상주문학의 산실이기도 한 곳이다. 청리면 율리 353번지(지방문화재 기념물 제89호)에 있다.
 
◈ 한국 유학사(儒學史)
최초의 영남학파 형성 조선 선조 39년(1606)에 상주의 선비들은 낙강(洛江)의 무임포(도남동)에 도남서원을 창설하였다.
 
동방 유학의 정통맥을 잇는 오현(五賢, 정몽주·김굉필·정여창·이언적·이황)을 봉안하면서 조선 유학의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과 영남의 으뜸서원으로 탄생하였다. 추로지향(선비고을)의 위상을 수백년간 지켜온 곳이다.
 
◈ 동양 초유의 천도유경설(天道有敬說) 발표
상주의 대유학자인 식산 이만부(李萬敷, 1664∼1732)가 당시 조야를 막론하고 성리학에 종사하던 선비들에게 일대 충격을 준 동양 초유의 학설이다(식산집 부록). 당시 천도유성(天道有誠)과 인도유경(人道有敬)의 이원론적 이론이 정립되었으나, 식산은 ‘천도의 성(誠) 역시 자체적인 경(敬)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경지’라 하였다. 퇴계학의 적전(嫡傳)인 갈암 이현일(李玄逸)의 인정으로 더욱 유명해진 학설이다(식산집 12·記錦水講問).
 
◈ 상주목 성(城)의 훼철
상주는 신라 이래 국방의 요새지로서 성곽문화가 발달해 온 고장이다. 상주목 성은 왕산(王山)을 중심으로 평지에 쌓은 석성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 7년(687) 다시 사벌주를 설치하고 성을 쌓으니 주위가 1,109보였다.”라는 기록이 있고, 향지인 「상산지」에는 “석축으로 둘레가 1,549척, 높이 9척이며, 임진왜란때 왜병들이 14개월이나 점거하면서 성 둘레에 10척이 넘는 호를 파고 토성을 쌓으니 그 터가 남아 있다.”라고 하였다. 그 후 1869년부터 수축하여 1870년에 홍치구루(弘治舊樓, 남문), 돈원문(敦元門, 동문), 진상문(鎭商門·相露門, 서문), 현무문(玄武門, 북문)을 중수하였다. 일제가 1912년 성첩과 문루를 헐고, 1924년에는 마지막 남은 홍치구루마저 훼철하였다. 1971년 7월 상주문화원에서 그 자리를 알리는 표석을 세웠다.
 
◈ 상주 동학농민혁명운동
1894년 4월 27일부터 활동을 전개하여 9월 18일 동학교주 최시형의 기포령 이후, 북접의 상주농민군은 22일에 상주성을 점령하였으나 28일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100여 명이 학살당하고, 10월 22∼23일에는 김석중의 유격대에 체포되어 처형당하였으며, 그후 태평루·남사정, 모동, 화령, 화동, 화남, 북실 등에서도 무수히 처형당하고, 1895년 1월 24일 영남소모영의 해체로 끝이 났다. 그후 남아 있는 동학 농민군 남접 접주 김주희는 1920년경 상주 화북에서 동학청립교를 세웠고 다시 상주 은척면 우기리에 동학경천교를 세웠다. 1996년에 상주동학농민혁명운동백주년기념사업회를 열어 민족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가장동 소호천의 소공원에 농민상을 세워 놓았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난계 김득배(金得培, 1312∼1362)
본관은 상산이며 포은 정몽주의 스승. 고려때 정당문학에 오른 선비로 1359∼1361년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등 국난극복의 공신으로 시호는 문충공(文忠公). 아우인 득제(得齊)·선치(先致)도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군(君)에 봉해졌으며, 세칭 3원수(三元帥)라 하였다.
 
◈ 난재 채수(蔡壽, 1449∼1515)
본관은 인천.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부친(함창현감)을 따라 상주에 내려 왔으며, 말년에는 이안면 이안리에 정자(쾌재정)를 짓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지금까지 발견된)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다. 문집으로 난재집 4권 2책이 전하며, 산경·지지·시문에 능했다. 시호는 양정공(襄靖公)이다.
 
◈ 평양군 김순고(金舜皐, 1489∼1574)
본관이 순천으로 낙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도사에 오른 무장이다. 임진왜란이 나기 20년 전부터 왜구가 철환을 사용함을 염려하여 전선의 좌우에 바퀴를 달아 철환의 직사(直射)를 방지하였고, 특히 전선의 앞뒤에 대포를 설치한 것은 조선에서는 최초이다(李濟臣撰, 墓碣銘).
 
◈ 매헌 정기룡(鄭起龍, 1562∼1622)
경남 곤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곤양. 처음에 무수(茂壽)라고 했으나, 선조(宣祖)가 기룡으로 고쳤다. 25세때 무과에 급제하여 그후 상주가판관, 상주목사,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1592년 4월 25일 상주성이 함락되자 11월 23일 밤 화공법으로 상주성을 탈환하는 등 임진왜란때 31세의 나이로 대소 60여 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당시 상주목사 이석표(李錫杓)는 “장군이 없으면 영남이 없고, 영남이 없어진다면 우리나라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다. 곤양정씨의 시조.
 
◈ 소재 노수신(盧守愼, 1515∼1590)
본관은 광산이며 화서면에서 태어 났다. 1543년 29세때 문과의 초시·회시·전시에 거듭 장원 급제하여 삼괴선생(三魁先生)이라 불렀다. 대성리학자요, 명재상(영의정)으로 이름을 떨쳤다. 문집으로 『소재집』 11권 5책 등 많은 유물이 옥연사에 보존되어 있다. 시호는 문간공(文簡公).
 
◈ 우복 정경세(鄭經世, 1563∼1633)
상주가 낳은 대유학자로 본관은 진주이며, 청리에서 태어났다. 이원익은 ‘경연에 제1인’이라 하였고, 임숙영은 ‘경연관으로 고금을 통한 이는 우복 정경세’라 하였다. 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다. 학문이 고명하고 주역과 예학에 당세 1인자였다.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창의하였고, 많은 문집이 있다. 상주 도남·대구 연경·개령 덕림·강릉 퇴곡·우산서원 등에 봉향되었다. 시호는 문장공(文莊公).
 
◈ 위암 장지연(張志淵, 1864∼1921)
상주 출신으로 본관은 인동이다. 한말 정국이 혼란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과 만인소를 기초했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 날이야 말로 방성대곡할 날이로다)」이란 사설을 써서 전국민에게 알렸다. 그 후에도 항일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건국공로훈장을 추서받았다.
 
 

1.3. 내고장의 문화유산

 
■ 보물
 
◈ 화달리 3층석탑 - 제117호, 사벌면 화달리 422
 
◈ 증촌리 석불입상 - 제118호, 함창 증촌리 258-2
 
◈ 복용동 석불좌상 - 제119호, 서성동 163-48
 
◈ 증촌리 석불좌상 - 제120호, 함창 증촌리 258-2
 
◈ 석각천인상 - 제661호, 신봉동 산2-1
 
◈ 정기룡장군유물 - 제669호, 사벌면 금흔리 453
 
◈ 상오리 7층석탑 - 제683호, 화북면 상오리 699
 
◈ 남장사 보광전목각탱 - 제922호, 남장동 502(남장사)
 
◈ 남장사 관음선원목각탱 - 제923호, 남장동 504 (남장사)
 
◈ 남장사 철불좌상 - 제990호, 남장동 502(남장사)
 
◈ 조정 임진란기록 - 제1003호, 신봉동 179-4
 
◈ 조정종손가 소장문적 - 제1004호, 신봉동 179-4
 
◈ 북장사 영산회괘불탱 - 제1278호, 내서면 북장리 38
 
 
■ 천연기념물
 
◈ 운평리 구상화강암 - 제69호, 낙동면 운평리 산17
 
◈ 화서면 반송 - 제293호, 화서면 상현리 50-2
 
 
■ 도지정 문화재
 
지방문화재  34 개 (236 점)
문화재자료  15 개 (28 점)
 
 
◈ 상주의 서원
 
웅주거목(雄州巨牧)인 상주는 선비의 고장답게 서원(서당)이 매우 많다. 특히 영천 신잠(1491∼1554)이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재임 3년(1551∼1553)동안 18개 서당을 건립하는 일대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600개가 넘는 서원 중 47개만 남았는데 상주에 옥동서원과 흥암서원이 남았었다. 주요 서원은 다음과 같다.
 
· 하곡서당 : 상주시 연원동 1551년 설치
· 도곡서당 : 상주시 서곡동 1551년 설치
· 수선서당 : 상주시 청리면 청하리 1552년 설치
· 임호서원 : 함창읍 신흥리 1590년 설치
· 도남서원 : 상주시 도남동 1676년 설치
· 흥암서원 : 상주시 연원동 1702년 설치
· 옥동서원 :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1786년 설치
· 옥동서원 : 모동면 수봉리 1714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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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