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들노래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는 모내기, 김매기 등 주로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농요로서 그 가락이 다양하고 뒷소리를 길게 빼면서 시종일관 노래를 부르는 특징이 있다. 1971년 제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함으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 가락과 내용이 뛰어나 ‘남도들노래’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 진도 씻김굿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춤과 노래로써 신에게 비는 무속의식으로 의상은 상복차림이며 망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망자와 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1979년 세계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받은바 있으며 원시종교인 샤머니즘과도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적 세계로 승화시킨다고 말할수 있다.
◈ 진도다시래기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상가에서 출상 전날 밤에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물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가무극적 민속놀이다.
◈ 진도만가 무형문화재 제19호. 만가는 사람이 죽었을 때 메고 가면서 부르는 일종의 상여소리지만 남자만이 상두꾼이 되고 요령이나 북을 치면서 만가를 하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상여 앞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특이한 상장례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고구려 출상모습과 똑같아 과거 한민족의 주검에 대한 수용과 처리의 원형으로 해석되며 죽음이 생의 마감이 아니라 더욱 좋은 세상으로 가는 과정으로 보았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진도 소포걸군농악 임진왜란 당시 거지 행세를 하면서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단원의 행동과 악기 소리로 아군에게 알려 작전을 우세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데 80년 전 악기를 보존하여 역사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작전놀이 굿중패 풍장까지 좌도와 우도 농악의 혼성으로 가락이 다양하고 흥겹게 엮어진 것이 특징이다.
◈ 진도 나배도 닻배노래 나배도 닻배노래는 조도 나배도를 중심으로 어민들이 칠산, 연평도 등 먼 바다까지 고기잡이를 나가 노를 저을 때, 그물을 당길 때 만선이 되어서 귀향할 때 부르는 노래로서 피로함과 고달픔을 달래는 대표적인 어업요이다. 진도닻배는 보통배와 달라 선두 선미가 둔하게 생겨 양 옆으로 많은 사람이 노를 젓게 되어있다.
◈ 강강술래 강강술래에 대한 최초의 시연기록이 진도에서 비롯되고(1896) 유일한 연행터로 구전되는 ‘군내면 녹진리 강강술래터’를 감안할 때 진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가 있다. 진도 서북부의 가흥현이 고려초기 군 치소가 되는 왕건·견훤 전쟁 이후의 변화와 관계되는 가흥지방의 민중 군사놀이로 보기도 한다.
◈ 진도아리랑(분류:민속예술/민요, 행사시기:진도 일대) ◈ 강강술래(분류:민속예술/민요, 행사시기:진도 일대) ◈ 진도 도깨비굿(분류:민간신앙/공동체신앙, 전승장소:진도 일대)
◈ 말굽바위 전설 지력산 명사찰 동백사에는 전부터 비전되어 오는 말이 있었는데 절의 북쪽산이 험하고 높지만 절대로 길을 만들지 말고 현재 있는 길만 이용하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몇 대 째 인가 그곳 주지가 동북방의 고야리나 보전리 방면에 길이 없어 멀리 돌아 다녀야만 하는 불편을 걱정한 나머지 내려오는 비전을 무시하고 길공사했는데 중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천둥이 치며 폭우가 내리기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천마가 바위 옆에서 나타나 비명을 지르면서 목에서 검은 피가 터져나오며 이 암반위를 힘차게 딛고 뛰다가 몇발자국 못가 숨을 거두었다. 이때 천마가 얼마나 최후의 힘을 다했는지 앞 발자욱은 약간 얕으며 뚜렷하게 4개의 말발자욱이 현존하는데 이를 말굽바위라 부르고 있다.
◈ 허새비재(허수아비재) 허새비는 ‘허수아비’의 방언이다. 이 고개는 고군면 내산리 동편 뒷산에 있으며 이 고개를 넘으면 고군면 연동리로 빠져나간다. 옛날에는 황조 앞바다에 대해군선단(大海軍船團)이 몰려와 곧 상륙하려함을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의논하여 허새비를 많이 만들어서 이 고개에 일렬로 세워 아군 군병이 많이 있는 것으로 위장전술을 써서 겁에 질린 적병이 단념하고 돌아가서 마을이 무사했다고 전래(傳來)한다. 지금도 그 재를 허새비재라 부른다.
◈ 복수(復讐)하는 조도(鳥島) 구렁이 옛날 조도 어부가 집에 들어온 큰 구렁이를 잡아 죽인 일이 있었다. 그뒤 이 어부는 보통 때와 같이 배를 몰아 출어(出漁)를 하여 그물을 늘어뜨려 고기잡이를 하던 중 하도 많이 고기가 그물에 걸려서 좋아라 하며 끌어 올리다 보니 과연 고기도 많았으려니와 자기가 잡아 죽였던 구렁이와 똑같은 구렁이가 여러마리 섞여 무섭게 덤비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그물을 잘라 버리고 겨우 목숨만 살아 돌아왔다. 이것이 여러사람에게 알린바 되어 지금도 조도 사람들은 구렁이를 잡아 죽이는 것을 아주 꺼리며 방에 침입한 구렁이도 죽이지 않고 몰아 낸다고 전한다.
◈ 심술을 일깨운 상골산의 쌀굴 군내면 금골마을 뒤편 금골산 언저리에 큰 절이 있었고 그 산 중턱에 큰 굴이 하나있었는데 늙은 스님과 상좌 한 분이 살았는데 암석벽의 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 분의 식량이 나와 아무 곤란없이 지냈다고 한다. 이 암자에는 옛부터 아무리 쌀이 부족해도 욕심내지 말고 나오는 쌀만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중 의외로 많은 손님이 찾아와 쌀이 부족하여 당그래자루로 구멍을 쑤시었다. 그랬더니 당그래자루만 깊이 들어가고 그 후로는 쌀 한톨도 나오지 않았다 한다. 현재도 그 굴에 가면 마애여래좌상의 큰 조각이 있고 깊은 자욱도 역역히 남아 있다.
◈ 가다선 지심뫼 분류:구비문학/설화, 행사시기:군내면 용장리
◈ 이씨보(李氏洑) 분류:구비문학/설화, 행사시기:군내면 월가리
■ 종교단체 현황(1988년)
◈ 개신교 교회 101개소, 교직자 111명 ◈ 천주교 성당 13개소, 교직자 11명 ◈ 불교 사찰 15개소, 교직자 20명 ◈ 유교 교직자 10명 ◈ 원불교 교당 1개소, 교직자 1명 ◈ 기타종교 교당 2개소, 교직자 2명
◈ 진도읍권 현재의 진도읍은 왜구 피난길을 떠난 1350년 이후 87년만에 주민입도가 허락된 1437년부터 군행정을 다시 시작한 재설군 천읍지이며 군치소 564년의 역사를 지녔다. 제반 주민생활의 중심지로 전체인구의 약 50%가 집중되어 있다. 2, 7일 5일마다 장날이 있어 5개면 주민들도 읍장을 이용하는 편이며 외지와 연결짓는 교통의 중심이 되면서 각종 여론과 군민의식을 주도해 가고 있다.
◈ 석교, 10일시권 열흘장터로 성장한 십일시는 진도 서남부에 해당하는 임회면과 지산면 일부와 조도면 주민도 이용해 왔다. 요즘은 면소재지 석교리와 맞닿아 석교천을 끼고 하나의 공동체 마을 형태가 되었다. 서남해변 팽목리는 조도 여러 섬들을 연결짓는 부두로 간접적 기여를 해왔다.
◈ 5일시권 5일시는 과거 진도현의 치소였던 고성리 인근에 조성된 군내, 고군면 주민들의 장터로부터 확대되어 이 지역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한다.
◈ 돈지권 진도의 4대 생활권인 의신면 돈지리는 과거 의신향이 있던 곳으로 돈지리와 향교리가 한마을 형태가 되어 장이 서는 등 의신면 일대의 생활 중심지 역할을 꾸준히 감당해 왔다.
◈ 간재미회 진도의 서촌 별미로서 부드럽고 쫄깃 쫄깃한 맛이 일품이며 특이한 감칠맛이 나며 특히 가을철 별미로서 각광을 받고있다.
◈ 전통 홍주 애주가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진도홍주는 지초 약효성분이 들어있으며 40도 이상으로 붉은 빛깔이 특이하며 맛이 좋아 널리 평가받고 있다.
◈ 장수의 명약 진도구기자 진도구기자는 고혈압과 저혈압에 좋은 치유효과가 있으며 눈을 밝게하고 신체의 모든 기능을 원활케 하므로 장기복용하면 장수하는 명약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 검정약쌀 진도 특유의 해양성 기후와 유기질이 풍부한 간척지에서 많은 일조량을 받아 자란 간척지 쌀과 검정약쌀은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진도대파와 돌미역·돌김 등이 진도의 특산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