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충주는 소백산맥의 연봉인 계명산(鷄鳴山)과 남산(南山) 그리고 대림산(大林山)이 동남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여 비옥한 평야를 끼고 발달한 충청북도 제2의 도시이다.
일찍이 계립령(鷄立嶺)과 죽령(竹嶺)을 통하여 영남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목줄과도 같아 문물의 남북교류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여 왔으며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가흥창의 곡류가 서울의 경창으로 운반되는 수륙 교통의 요충지였고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이 서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각축을 벌였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또한 충주는 중원 문화의 중심지로서 찬란한 중원 문화의 꽃을 피워온 역사의 고장으로 이 고장 사람들의 온순하고 부드러운 인심과 함께 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라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이 도처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이제 사과와 택견의 고장 충주는 중부 내륙 고속도로의 건설과 함께 충주호와 수안보온천이 어우러진 호반 관광의 도시로, 21세기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힘차게 용틀임하고 있다.
고대 3~4세기 - 삼한중 마한에 속함
삼국 시대 350 (백제 근초고왕 5년) - 백제 영역
475 (고구려 장수왕 63년) - 국원성 혹은 미을성, 완장성이라 함
550 (신라 진흥왕 11년) - 국원성에 목 설치
557 (진흥왕 18년) - 국원소경으로 개칭
통일신라 685 (신문왕 5년) - 중원소경으로 개칭
757 (경덕왕 16년) - 중원경으로 개칭(신라의 중앙표방)
고려 940 (고려 태조 23년) - 충주부로 개칭.
983 (성종 2년) - 12주 중 하나인 충주목으로 개칭.
995 (성종 14년) - 중원도를 설치하고 절도사를 배치.
1018 (현종 9년) - 8목 중 충주목 설치.
1254 (고종 41년) - 국원경으로 개칭.
1277 (충렬왕 3년) - 충주성 개축 때 성벽에 연화를 조각하여 예성이라 함.
조선 1395 (태조 4년) - 충청도로 개칭, 충주에 도감영 설치.
1449 (세종 31년) - 충청좌도 우도로 변경, 좌감사 배치.(목사를 겸함)
1602 (선조 35년) - 충청도 감영을 공주로 이전.
근·현대 1896 (고종 33년) - 관찰사를 배치, 충청북도 도청소재지가 됨.
1908 (순종 2년) - 도청을 청주로 이전, 군수 배치.
1956 - 충주군 충주읍에서 충주시로 승격. (그 외 지역은 중원군으로 분리됨)
1995 - 충주시, 중원군이 통합하여 도농복합 형태의 충주시 발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