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개 곤발네 할머니
한번 들어 보실래요? 곤발네 할머니 이야기예요. 할머니는 옛날도 아주 오랜 옛날, 거제면 죽림포 대숲개 마을에 살았대요.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갔는데 그만 일찍이 남편이 돌아가셨지 뭐예요. 에구! 불쌍해라. 자식이라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 건데, 할머니 혼자 외롭게 살아야 했답니다.
돈이라도 많았으면 다행이지요. 가진 것이라고는 겨우 초가집 단칸방이 전부였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초가집 오두막에 살아 마을 사람들이 곤발네라 불렀답니다. 땟거리가 없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하러 나가야 했습니다.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답니다. 그런 중에도 할머니는 알뜰살뜰 저축했어요. 낱알도 한 톨 한 톨 버리지 않고 모았대요. 그렇게 할머니는 매일같이 모으는 즐거움으로 살았답니다.
그러다 보니 새색시였던 할머니의 검은 머리에는 하얀 이슬이 내려앉았어요. 열심히 살았던 만큼 재산도 많이 쌓인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답니다.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였겠지요. 재물이 쌓일 만큼 쌓였으니, 여태 살던 오두막집을 허물고 대궐같이 큰 기와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지요.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자식도 없는데 큰 집은 사치야, 암 그렇고말고!”
곤발네 할머니는 ‘빈곤할 곤, 초가집 발’이라는 뜻을 지닌 자신의 호칭이 싫지 않았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주고 감싸준 초가 오두막이 편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오두막 단칸방을 보금자리로 여기고 평생 살기로 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이 모았지만, 눈만 뜨면 일하는 즐거움으로 살았답니다.
세월이 흘러 일흔 살이 된 할머니는 예전과 달리 일하는 것이 힘들어졌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험한 일을 하다 보니 등이 굽어지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요. 그 몸을 하고서도 수수와 조를 심고 거두어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대숲개 마을에 난리가 났답니다. 300년 만에 큰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들판의 농작물은 타들어갔고, 집집이 땟거리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가뭄으로 바짝 마른 농토가 갈라 터지듯 사람들의 인심도 갈라졌습니다. 대숲개 마을이 자랑하는 황금빛 들판의 오곡 백과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살아남은 사람도 파리해진 낯빛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은 바다나 산에서 채취한 해조류와 칡으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이조차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은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지요. 그리하여 몸이 퉁퉁 붓고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돼, 어떻게든 아이들을 살려야 해.’
할머니는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을 살릴 궁리를 했습니다. 먼저 창고에 쌓아놓은 수수와 조를 솥에다 넣고 밤새 고았습니다. 물론 뜬눈으로 지새며 지켜보았겠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엿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사용하던 오줌통을 씻고 또 씻었습니다. 할머니, 뭐 하려고요? 혹시? 그래요. 오줌통 안에다 만든 엿을 차곡차곡 넣어두었어요. 엿을 담은 오줌통을 변소 옆에다 옮겨놓았습니다. 방에다 놓아두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알아차려 순식간에 동이 났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여 감쪽같이 마을 사람들을 속였지요. 할머니는 마을어른들이 바다와 산으로 땟거리를 구하러 간 사이에 오줌통을 열고 엿을 한 봉지씩 꺼냈습니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지요. 행여 어른들이 알게 되면 아이들 먹을 엿이 부족할까 봐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엿을 먹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생동감을 되찾았습니다. 이에 신바람이 난 할머니는 날마다 정성껏 엿을 고아 오줌통에다 보관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른들이 일하러 나간 틈을 타 아이들에게 엿을 나눠주는 즐거움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같은 일이 또 생겼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이글이글하던 해가 보이지 않았어요. 어디론가 살짝 숨어버렸답니다. 할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하늘이 알았나봐요. 단비가 내렸습니다. 주룩주룩 며칠 동안이나요. 논밭의 쩍쩍 갈라지고 벌어졌던 틈으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비다, 비가 온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큰절을 하고 또 했습니다. 이 빗물로 예전처럼 농사도 지을 수 있었고요. 흉흉하던 민심도 돌아왔습니다. 대개 사람들 마음도 당연히 넉넉해졌지요.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마다 알알이 여문 벼들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후 곤발네 할머니는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더없이 행복했지요. 눈만 뜨면 몰려오는 아이들이 엿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허리 펼 틈도 없이 바빴답니다. 할머니의 작은 오두막 집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답니다.
- 옛날 옛적 거제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