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섬, 소병대도
수백 년 전, 거제 한산도에 큰 부자가 살았습니다. 인심이 여간 고약한 것이 아니었지요. 거지에게 동냥도 주지 않고 물벼락을 씌우는가 하면, 병든 노인이 살려달라고 해도 한 푼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종살이하는 사람에게도 인색함은 물론입니다. 죽도록 일만 시키고 입에 풀칠만 할 정도의 곡식만 주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도 미역국은 커녕 냉방에 장작불도 지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만큼 주변 사람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지요.
부자가 먹는 밥은 매일같이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밥상을 받고서도 따뜻한 아랫목에 등을 지지며 창 타령만 일삼았지요.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쑥덕거렸습니다.
“귀신은 뭐 한다고 저런 고약한 부자를 안 잡아간단 말이오.”
“그래요. 대궐 같은 큰집에 살면서도 정작 남에게는 찬밥 한 그릇도 아까워한다니!”
“고약해라. 어쩜 저리도 인심이 야박하담?”
“그러게 말이오. 강아지도 저 집 앞을 지나갈 땐 고개를 돌린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그 부잣집에 시주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 스님은 소매 끝이 미어지고 여기저기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 승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초라한 행색이었지요.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너 같은 땡중에게 줄 곡식은 없다. 이거나 받아라.”
부자는 시주는 커녕 스님에게 몽둥이로 매질까지 하며 내쫓아 버렸습니다.
며칠 뒤 스님은 다시 그 부잣집을 찾아갔습니다. 슬며시 걱정이 되네요. 그 집에 왜 또 가시려고요? 저번처럼 문전박대 당하면 어쩌시려고. 휴, 다행이다. 오늘은 옷차림이 다르네요. 승복을 벗고 나니 완전히 딴 사람 같아요.
부자는 그때 그 스님이 변장한 줄도 모르고 집안으로 들였습니다.
“나는 못자리를 보는 사람입니다. 당신 집안이 이렇게 부자로 떵떵거리고 사는 것은 분명 묘(무덤)를 잘 쓴 덕분일 것입니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부자는 선대 조상들의 자리를 찾아 하나하나 설명해 주며 자랑했습니다. 둘러보던 스님은 그다지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5대 조상의 묫자리에 이르자 땅의 기운이 사뭇 달랐습니다. 스님은 그 조상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랍니다. 조상님이 여기에다 못자리를 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지요. 당시 거제도에 대흉년이 들었답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조상은 먹을 양식이 없어 칡을 캐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날도 허기진 몸으로 산에 올라가 칡을 캐던 중 배가 너무 고파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세월이 흘러 조상의 주검 위에 흙이 덮이고 덮여 그 자리가 무덤이 되었다는군요. 그날 이후 우리 집안은 자자손손 대를 이으며 큰 부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스님은 무덤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양지바른 곳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부자를 혼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속마음을 숨기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만약 이 선산을 여기 그대로 놔두면 당신도 망하고 대를 이어 자손들이 다 망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무덤만큼은 당장 좋은 자리로 옮겨야 합니다.”
덜컥 겁이 난 부자는 사색이 된 채 물었습니다.
“어디로 옮기면 좋겠습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이에 다급해진 부자는 조상의 무덤을 시키는 대로 이장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못자리를 옮길 일꾼을 배에 태우고 왔습니다. 서둘러 조상의 무덤을 파라고 했습니다. 분상도 크지 않고 평장이므로 언뜻 보면 그것이 무덤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무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습니다.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뜨자, 까마귀 세 마리가 훨훨 날아올랐습니다. 세 마리의 까마귀는 하늘을 빙빙 돌며 높이 날아오르더니 다시 바다에 사뿐히 내려 앉는 게 아닌가요? 그때 까마귀가 앉은 자리마다 세 개의 작은 섬이 솟았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부자는 못자리를 봐 주었던 스님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자손대대 뭘 하려고 해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떵떵거리던 집안이 기울고 쫄딱 망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고약하고 인정머리 없는 부자를 단단히 혼내준 게지요. 그때 그 무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덤을 파낸 그 자리에는 맑은 샘이 솟아났답니다. 소병대도가 어디에 있느냐고요? 거제도 남쪽 끝에서 대마도를 마주하고 있답니다. 거제에 오시면 꼭 여기를 둘러보고 가세요. 화려한 경관에 푹 빠질 것입니다. 참, 까마귀가 앉은 순간 솟아난 작은 섬, 소병대도는 ‘까마귀 섬’이라고도 한대요.
- 옛날 옛적 거제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