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재
아주동 탑 골에 두 남매가 살았지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여기저기 동냥하듯 먹고 살아갑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늘에서 남매를 내려다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요? 벌써부터 울음이 나려고 하네요. 정말 딱해서 못 보겠어요.
거주할 곳이 따로 없어 남의 집 헛간에서 눈칫밥을 먹고 살아간대요. 허드렛일도 하고, 어린 손으로 나뭇가지를 모아 받은 삯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하네요.
남매는 자라면서 제법 일을 잘 해냅니다. 용돈을 받으면 가게로 달려가는 요즘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절약정신이 투철합니다. 드디어 아껴 쓰고 또 아껴서 모은 돈으로 남매가 들어갈 만큼 작은 오두막집 한 채를 장만했습니다.
“동생아, 그동안 누나 말 잘 따라주어서 고맙다. 늘 배 고프고 또 추위에 많이 힘들었지?”
“아니야, 누나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남의 집 헛간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자고 있을 거야.”
오두막집에 들어서는 순간 두 남매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부모 없는 설움에 북받쳤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의 집 살이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우리 집이네, 진짜 우리 집이지?”
“그럼, 그렇고말고.”
그날 밤 동생은 누나 걱정을 하고, 누나는 동생 걱정을 했어요. 누나가 먼저, 아니야, 동생 먼저. 서로 좋은 신랑을 만나고 좋은 색시를 만나라고 덕담을 하곤 했어요. 정말 우애가 남다른 오누이였지요.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남매를 모른 척 하지 않았습니다. 의젓한 처녀 총각으로 자란 의좋은 남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아이들처럼 의좋은 남매가 어디 있겠나? 부모가 일찍 돌아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게 어찌 그 아이들의 책임인가?”
어디 중매라도 서려는 걸까요? 이걸 어째, 마을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아버렸어요. 남매를 좋은 신랑감이고 신붓감이라 칭찬하면서도 정작 중매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빈말만 늘어놓았으니까요.
어느 날, 혼기를 놓칠까 걱정이 된 동생이 말했습니다.
“누나야, 올 가을에는 반드시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야 해.”
“아니, 동생이 먼저 장가를 들어야지. 그래야만 조상님 뵐 면목이 있어. 나는 동생이 예쁜 색시 맞이하는 걸 보고 그 다음 시집가려고 해.”
그러고도 한참 세월이 흘렀습니다. 두 남매는 아직도 같이 살고 있고요. 혼기가 꽉 찬 처녀 총각이 됐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마땅한 혼처가 없었던 그들은 그저 일만 열심히 할 뿐이었지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되었습니다.
“누나야, 외할머니 제사 모시러 가자.”
“그래. 외할머니는 어릴 때 우리를 무척 좋아하셨지.”
두 남매는 살아생전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쑥떡 보따리를 짊어지고 외갓집을 향했습니다. 거제 구읍으로 가는 문동 고갯길을 넘어가야 했습니다.
가는 길은 봄꽃이 가득했습니다. 신록의 계절, 오월을 알리듯 온통 꽃물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네요. 그런데 피할 데가 없어 온몸이 젖은 채 고갯길을 넘어갔어요.
그로부터 한참 후 누나를 뒤따르던 동생이 고개를 들다 깜짝 놀랐습니다. 누나의 옷이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마치 꽃봉오리가 터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나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는 야릇한 기분마저 들게 했습니다. 그 순간 동생은 몸이 달아올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황급히 정신을 차렸지만, 잠시나마 누나에게 딴마음을 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성기를 돌로 내리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누나는 주룩주룩 비를 맞으며 산마루에 올랐습니다. 인기척이 없어 돌아보니 동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생아, 동생아!”
발길을 돌려 정신없이 동생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군데군데 뚝뚝 떨어진 핏자국이 보였습니다. 흥건히 고인 핏물과 함께 동생의 주검을 확인한 누나는 엉엉 울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거니와 가슴이 먹먹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동생의 주검 위로 오색 무지개가 떠올랐습니다.
“누나야, 정말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누나를....”
동생아, 어찌할꼬! 세상에 죽을 일이 뭐가 있다고 죽는단 말인가? 사람 목숨만큼 중요한 건 없는데. 너만 알면 아무도 모를 건데 죽기는 왜 죽어. 동생이 없는데 누나가 어찌 산단 말인가. 아이고, 동생아, 내 동생아!”
동생의 주검을 껴안은 누나는 꺼이꺼이 울며 고갯길을 넘어 갔습니다. 이를 본 하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다 동생을 묻은 누나는 밤낮없이 동생의 무덤가에서 울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고갯길을 ‘울음이재’라고 부른답니다.
- 옛날 옛적 거제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