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재기 이야기
먼 얘기지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얘기 들어보실래요?
거제도 아주에 꼽재기가 살았답니다. 쩨쩨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지요. 하루는 아주꼽재기가 장터에 갔어요. 뭘 사려고 나갔나 보네요. 장터에서 우연히 진주꼽재기를 만나 막걸리 잔을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네요. 밤새 잔을 기울이다 이야기는 자식 혼담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좀스럽고 인색한 맛이 남달랐던 두 사람은 서로 솔깃해 사돈을 맺었습니다. 사돈을 맺었습니다.
혼례식을 올리던 날, 하잘 것 없고 아주 작은 물건을 비유할 때 꼽재기라 하는데, 과연 두 꼽재기가 어떤 일을 벌일지 참 궁금합니다. 기가 막히네요. 두 사람은 말로만 시끌벅적 요란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하듯이 잔칫집 부뚜막에 소금만 가득했습니다. 아궁이 안에도 온기조차 없었고요. 이러니 사람들이 제대로 축하나 해주었을지 의문입니다.
혼례식 이듬해, 아주꼽재기는 진주꼽재기 사돈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초대받은 진주꼽재기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 구불 구불 산길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거기서 또 노를 저어 어둑 어둑할 무렵에야 거제도에 도착했습니다.
사돈집에서 끼니를 해결할 생각으로 굶다시피 한 진주꼽재기는 시장기가 절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주꼽재기는 사돈을 초대하고서도 여전히 쩨쩨한 꼽재기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걸쭉하니 입담만 늘어놓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사돈, 먼 길을 오신다고 정말 고생 많았소. 시장하실 테니 담배 한 대 피우겠소?”
아주꼽재기는 방 안에 있는 숯불화로를 사돈에게 당겨 놓았습니다. 진주꼽배기 는 지칠 대로 지친 몸을 하고서 엉겁결에 화로에 놓인 담뱃대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기다란 담배 봉 끝에는 담배 타는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담배 봉에 새겨놓은 담배무늬가 타는 냄새였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 진주꼽재기는 사돈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능청스럽게도 사돈은 화로에 담긴 담배 봉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담배 그림 무늬가 녹아내리는 냄새를 즐기는 눈치였습니다. 그러고는 진주꼽재기에게 말했습니다.
“사돈, 담배를 피우면 몸에 해롭습니다. 그렇다고 안 피울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화로에다 담뱃대를 올려놓고 봉이 녹아내릴 때마다 담배 무늬가 타는 냄새를 맡는 겁니다. 이것을 입에 물고 뻐끔뻐끔하면 좋겠지만 기침이 나서 할 수 없이 이렇게 냄새만 맡는답니다.”
할 말을 잃은 진주꼽재기는 사돈집에서 담배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른 아침 해 뜨기도 전에 배를 타고 거제도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진주꼽재기는 거제의 아주꼽재기 사돈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겠다는 말에 솔깃해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섰지요. 배를 타고 고갯길을 넘고 넘어 해질 무렵에야 진주에 도착했습니다.
허기진 몸을 겨우 가다듬고 사돈집으로 들어가자 맛있는 음식냄새가 풍겼습니다. 시장이 몰려와 상 앞에 주저앉아 가득 차려놓은 음식을 보며 숟가락을 들자, 진주꼽재기가 말했습니다.
“사돈, 먹지 말고 가만가만 보고만 있으세요. 숟가락을 들면 팔이 아플 것이고, 음식을 먹으면 씹어야 하고, 씹으면 삼켜야 하고, 삼키면 소화시키는 데까지 시간이 듭니다. 그러니까 나처럼 이렇게 한상 가득 차린 음식 냄새만 맡으세요. 그렇게 하면 다시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또 힘을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아주꼽재기는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보다 더 쩨쩨한 꼽재기를 쳐다보며 말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이에도 아랑곳없는 진주꼽재기는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한상 가득 차려놓은 음식을 가리켰습니다. 연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면서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아주꼽재기 역시 진주꼽재기처럼 사돈집에서 음식냄새만 맡고서 거제로 돌아와야 했답니다.
두 꼽재기가 잘 만난 것 같네요. 서로 되로 주고 말로 받으며 아껴 보시구려. 정말 쩨쩨한 꼽재기들의 진수를 봤어요. 그래도 참 재밌고 웃음을 주는 풍자와 해학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 옛날 옛적 거제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