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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01. 거제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거제도에서 아직까지 구석기시대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산달도패총과 대포패총 등에서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 櫛文土器)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면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에 걸쳐 사람들이 거주하였고 고기잡이와 가축사육 등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001. 거제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 김의부
 
거제도에서 아직까지 구석기시대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산달도패총과 대포패총 등에서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1)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 櫛文土器)2)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면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에 걸쳐 사람들이 거주하였고 고기잡이와 가축사육 등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거제에 분포되어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분포지도를 보면 주로 본도(本島) 주변의 부속도서(付屬島嶼)나 그와 마주한 해안지역에 분포함을 알 수 있다.3) 해안에 살던 사람들이 버린 조개·굴 등의 껍데기가 쌓여서 무덤처럼 이루어진 조개무지(패총: 貝塚)가 산달도 전등과 후등, 일운면 내도, 공곶이, 남부면 대포, 장목면 이수도 등 6개소가 확인되었고 가조도 신교마을과 칠천도 연구 및 장곶마을에서도 신석기시대 유물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4)
 
 
▶ 신석기 유적 분포도
거제 큰 물을 건너다, 2016, 국립김해박물관
거제시문화유적분포지도, 2005, 동아문화연구원
 
 
남부면 저구리 대포마을 동쪽 망산의 서북쪽 구릉 말단부 동사면에 대포패총이 있는데 이는 1998년 경상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대포패총에서는 결합식 낚싯바늘과 융기문토기, 돌끌, 돌도끼, 돌칼, 흑요석제 화살촉, 돌창 등이 발견되었다. 산달도 패총은 거제면 법동리 산전마을 산10에 해당하는 전등패총과 거제면 법동리 실리마을 181 일대에 위치하는 후등패총이 있다. 이 두 곳 패 총은 1970년 초에 처음 확인되었으나, 1982년 해안도로공사와 수산물 가공공장 건설 등으로 대부분 멸실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 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융기문토기, 압인문토기5), 태선침선문 토기6)가 많으나 이중구연토기7)도 보여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형성된 유적으로 보인다.
 
내도패총은 일운면 와현리 산99 일대로 지금은 펜션으로 운용되고 있는 전 구조라초등학교 내도분교 운동장을 중심으로 패총이 형성되 어 있으며 흑요석8)과 무문토기 등이 발굴되었다. 공곶이패총은 일운 면 와현리 87에 위치하여 내도패총과 서로 마주보는 지점인데 와현 해수욕장에서 동남쪽으로 산지가 길게 뻗어 내리면서 형성된 돌출된 지형으로 이곳에서 사질태토의 무문양토기와 흑요석편, 날 부분만 마연된 돌도끼, 깬돌도끼, 압인문토기와 압날문토기9), 동물유체 등과 청동기시대의 유구석부10)와 돌끌 등이 채집되어 신석기시대 말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수도패총은 장목면 시방리 이수도에 있는 패총으로 섬의 잘록한 허리 부분에 조개더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방파제를 만들면서 대부분 없어졌다. 남해안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지두문(指頭文)11)과 단선문(短線文), 중기의 삼각집선문12), 후기와 만기의 퇴화침선문13)과 이중구연토기 등이 채집되었다. 또한 사등면 가조도에 위치한 신교마을에는 신석기시대 타제석부(打製石斧)와 갈돌 등이 출토되었고, 1960년경 하청면 연구리 연구마을 연구초등학교를 증축할 당시 즐문토기 편(櫛文土器片)과 석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하청 면 연구리 장곶마을 앞으로는 도로가 지나고 도로의 좌측 마을 앞 일 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이 밭 일대에서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편과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의 토기 편이 수습되었다 고 한다. 이 지역은 해안가이고 지형적인 조건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이후의 패총이나 주거지 등의 생활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많은 것 으로 추정된다.14)
 
기록이 없었던 선사시대에는 유물과 유적으로 사람이 거주한 흔적을 알 수 있다. 거제는 해안 일대의 패총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을 볼 때 1만여 년 전부터 농·어업과 가축사육을 하여 정착 생활을 하 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토기의 무늬를 만든 다음 그 기벽 위에 또다시 점토 띠를 덧붙여 돋아 오르게 한 것을 말한다.
2) 표면을 빗살 같은 시문구(施紋具: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긋거나 찍어서 기하학무늬를 나타낸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3) 거제(巨濟) 큰 물을 건너다, 2016, 국립김해박물관, P.34
4) 문화유적분포지도(文化遺蹟分布地圖), 2005년, 거제시(巨濟市), 동아문화연구원(東亞文化硏究院)
5) 압인은 신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복합적으로 사용된 시문 방식이다. 대체로 자돌·압날 방식과 함께 신석기시대 전기에 주로 사용된 대표적인 시문 방식이다.
6) 선이 굵고 깊이가 깊은 침선문토기로 새김무늬토기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가느다란 봉이나 끝이 뾰족한 시문구로 기면에 다양한 문양을 시문한 토기를 가리킨다.
7) 구연(아가리)을 보강하거나 혹은 장식적인 목적으로 점토 띠를 덧붙여 이중으로 구연부를 만든 토기이며 겹아가리토기라고도 불린다.
8) 흑요석은 자연적으로 화산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 유리(Volcanic Glass)이다.
9) 공예 손이나 기구 따위로 눌러 찍은 무늬를 넣은 토기.
10) 머리 부분에 홈이 팬 자귀 모양의 석기. 이 홈에 직각으로 된 나무 자루를 대어 묶어서 썼다.
11) 도자기에 잿물을 덮고 붓 대신에 손가락 끝으로 그린 무늬.
12) 도자기에 삼각형 모양 안에 선을 3개 그린 무늬.
13) 남부지방 신석기시대 중기의 태선침선문이 점차 퇴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는 문양을 퇴화침선문이라 한다.
14) 문화유적분포지도, 2005, 거제시/동아문화연구원, P.193, P.204.
【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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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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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