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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거제문화원의 지식창고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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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05. 고깔 쓴 토우가 발견된 아주동고분군(鵝州洞古墳群)
거제도에는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있다. 오른쪽 자락 끝에 있는 아주동을 말하는 것인데, 용소 늪에 거위〔鵝〕가 서식하고 있다고 하여 아주동(鵝州洞)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오늘도 힘찬 날갯짓하는 아주동에는 아주동고분군(巨濟 鵝州洞 古墳群)이라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61호가 있다.
005. 고깔 쓴 토우가 발견된 아주동고분군(鵝州洞古墳群)
- 김남희
 
 
거제도에는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있다. 오른쪽 자락 끝에 있는 아주동을 말하는 것인데, 용소 늪에 거위〔鵝〕가 서식하고 있다고 하여 아주동(鵝州洞)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1) 오늘도 힘찬 날갯짓하는 아주동에는 아주동고분군(巨濟 鵝州洞 古墳群)이라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61호가 있다.2)
 
거제도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그 이후 삼국시대까지 유적은 남산패총南山貝塚3)을 비롯하여 아주동고분 등의 고분군, 아주동 주거지 유적 등 다양하게 확인이 된다.4) 그리고 6세기 중반 가야 멸망 후에 신라문화가 들어오면서 고분과 산성을 중심으로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신라는 562년 진흥왕의 대가야 멸망을 전후하여 남해안으로 진출하여 사천만을 경계로 백제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즉 거제 아주동 유적은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거제도까지 진출하면서 남긴 유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라는 거제도를 거쳐 소가야와의 교섭을 강화하였고, 사천만까지 진출하였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아주동 유적에서는 수장층〔首長-당시의 지배자 계층〕의 무덤 형태인 대형 봉토분까지 존재한다. 그래서 아주동 고분군을 보면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흔적도 있고, 가야시대 토기가 발견되며 그리고 신라시대의 모습도 남아 있는 것이다. 주로 신라계 앞트기식 무덤인 횡구식석실묘(橫口式石室墳)이며5), 모두 30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6), 신라계 횡구식석실묘가 중심을 이룬다. 이런 석실묘의 모습은 6세기 이후 기장 동부리, 김해 예안리, 창원 가음정동, 덕곡리 고분군 등 남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신라의 앞트기식 무덤과 유사하다.7)
 
봉토는 지름 10m 이하의 소형분이 대부분이다. 유물은 대부분 토기이고, 신라계 토기이다. 철기는 도자(刀子, 손칼), 철겸(鐵鎌, 쇠낫), 철부(鐵斧, 쇠도끼 모양의 무기이자 농기구) 등이 출토되었다. 장신구로는 은제 요대 장신구, 허리띠 등이 출토되었다.
 
 
▶ 사진1. 아주동 고분군 금동제 대금구8)
 
 
아주동고분군의 유물 중에서 허리띠와 토기가 보여주는 의미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신라는 거제도로 진출하면서도 바로 군현으로 편제하지 않고 신라 고분을 조성시켜 인적 자원을 먼저 신라로 편입하였다. 신라는 거제도를 군현으로 편제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거제도의 인물에게 신라문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신라가 거제도의 재지 세력을 신라의 영향권 내로 편입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허리띠 장식이다.
 
이는 신라가 지방의 세력가에게 허리띠 장식을 하사하여 신라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토기 역시 아라가야의 것과 닮아 있다.9)
 
이렇듯 아주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지석묘 16기, 삼국시대 고분 11기, 총 27기의 분묘들이 혼재하고 있어 중복현상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삼국시대 고분인 3호분과 3호 지석묘는 벽석 일부가 맞물려 청동기시대 지석묘 위에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동일한 장소에 고분이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앞선 시기에 조성된 지석묘군은 삼국시대 고분 축조 시에 지석묘 상부구조의 일부분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주동 유적은 수차례에 걸친 교란으로 인해 지석묘의 상부구조 파악이 어려운 상태이다. 특히 상석은 16기 모두가 유실되었다. 발굴조사 전 상석으로 유추되는 큰 바위 3개가 이미 지표에 누출되어 있었는데 조사 결과 이 상석들은 원래 자리에서 이탈되어 본래의 소속 유구 추정이 불가능하다.10)
 
 
▶ 거제박물관 〈토우 달린 뚜껑〉
 
 
아주동고분군을 조사할 때, 우연히 찾게 되었다는 고깔 쓴 토우도 있다. 특유의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표정이 볼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 달린 뚜껑이다. 변한의 특징인 고깔을 쓴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토우는 변한 독로국이라는 거제의 역사를 입증해 주는 증거이자 해와 달을 표현한 동심원 무늬와 빗살무늬로 그 미학적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주동고분군은 그 오랜 역사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되거나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분군 앞에 안내 표지판은 있지만 고분들은 이미 흙에 묻혀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무심한 잡초들만 자라고 있으니 이곳이 고분군인지 언덕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니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이 온통 철조망으로 뒤덮여 쓰레기까지 뒹굴고 있었으나 이제는 말끔히 정리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곳은 가야의 모습이, 신라의 힘이 빛나던 곳이었다. 나에게 거위처럼 큰 날개가 있다면 품 가득히 안아주어 그 수고로웠던 시간을 위로해 주고 싶다.
 
 
-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거제문화원, 2023년 12월)
 

 
1) 《거제지명총람》, 거제문화원, 2020년.
2) 《거제문화재분포도》, P.99.
3) 南山貝塚-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남동리 29-21 위치.
4) 김재홍, 기획논문 I: 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고·중세시기의 도서(섬) 주민의 삶과 생활, 〈신라의 거제도 郡縣 편제 과정〉
5) 세계한민족문화대전, 〈고분〉, 고분은 돌무지무덤과 흙무지무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장 방식으로는 구덩식과 옆트기식이 있다. 구덩식 장법(葬法)의 매장 부로는 돌굴과 돌덧널이 있는 반면, 옆트기식 장법의 매장부로는 굴방, 돌방, 벽 돌방이 있다.
6) 《거제 아주동유적》, 1998, 동아대학교박물관.
《거제 아주동고분군》, 2006, 경남문화재연구원.
《거제 아주동고분군》, 2008. 경남문화재연구원.
《거제 아주동고분군》, 2007,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7) 김재홍, 〈신라의 거제도 郡縣 편제 과정〉.
아주동 고분군 종합안내 표지판 설명.
8) 김재홍, 〈신라의 거제도 郡縣 편제과정〉, P.19.
9) 하승철, 〈유물을 통해 본 아라가야와 왜의 교섭〉.
10) 김익준, 〈巨濟 鵝洲洞 靑銅器 時代 遺跡 硏究 論文〉, 1997.
【문화】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
• 004. 가야시대 가야연맹체와 독로국(瀆盧國)
• 005. 고깔 쓴 토우가 발견된 아주동고분군(鵝州洞古墳群)
• 006. ‘거제둔덕기성’과 고려왕 ‘의종’ 이야기
(2024.09.0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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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